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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30  통권 148호  필자 : 안핑(安平)  |  조회 : 3059   프린트   이메일 
[차이나 윈도]
중국 청년들의 귀농이야기

3년 전 베이징에서 랴오닝(辽宁)성 칭위엔(清原)현으로 귀농한 리우다(刘达)는 언론인이었다. 그는삶의 방향이 더 뚜렷해 보이는 농촌을 선택하고 정착한 후 좋은 먹거리를 위해 일에 파묻혀 살았다. 그의 꿈은‘중국의 현대적인 농민(中国的现代农民)’이 되는 것이다. 랴오닝, 쓰촨(四川), 후난(湖南), 산동(山东)에는 리우다와 같은 꿈을 꾸는 청년들이 많다. 그들의 공통된 이름은‘신농민(新农人)’이다. 약 2억의 농민이 농촌을 떠나 그들의 땅과 멀어지고 생소해질 때, 신농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농촌의 땅과 인연을 맺으며 새롭고 생기가 넘치는 농업현장을 만들었다. 신농민은 새로운 신념과 생태계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 또한 그들은 신기술과 새로운 기구 사용에 사명감과 추진력이 있다. 신농민은 정부의 신농민 정책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다.

베이징 농업자문서비스회사의 창시자인 화후이팡(华慧芳)은 신농민에 대해 오랜 연구를 해왔다. 연구 결과, 그녀는 신농민이 된 경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는 지식과 소신을 가지고 귀농한 농민 2세대들. 둘째는 공무원 인턴 대학생들. 셋째는 직종을 변경한 사람들. 넷째는 농업기업.  다섯째는 노후생활을 위해 농업을 택한 고령자들. 마지막으로 농업에 투자하는 자들이 있다.

귀농 2세대인 탕량(唐亮)은 사람들이 그를 신농민이라고 해서 많이 민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2011년 시난대학교(西南大学)를 졸업하고, 총칭(重庆)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베이징에 있는 ‘샤오마오뤼(小毛驴)’을 만든 스옌커뮤니티(石嫣学习社区)에서 농업을 배웠다. 1년 후, 청두(成都)의 고향 마을로 돌아가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친환경 농법은 환경과 땅을 보호하고,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생산자에게는 소득을 보장하는 유익한 농법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이웃사촌들은 귀농한 그를 이해하지 못 했다. 우리 집을 빼고는 농사를 짓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수익창출도 너무 낮다고 하신 어르신들은 귀농한 젊은이들이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그가 고집하는 친환경 농법에 대해 마을 어르신들은 이해를 못하셨다. 아버님은 한 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그는 중압감에 시달렸지만 다행히 지원을 받아 ‘아이쟈웬(爱佳源)’이라는 농장을 세웠다. 생강, 고추, 땅콩, 고구마, 옥수수, 메주콩 그리고 닭과 돼지도 사육했다. 농장은 작지만 참 좋은 농장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지난 가을부터 농작물이 조금씩 생산되었다. 고추는 고추장을 만들었고, 새끼돼지와 병아리들도 건강하게 잘 자란 덕분에 마을사람들은 농약퇴비를 안 쓰면 농작물을 거둘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그러나 부담감은 여전하다. 농사를 지으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수천 헥타르의 땅을 기계로 경작해야 수입이 늘 수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여전히 “요만큼의 땅만 갖고 네가 무슨 큰 농사를 하겠냐”라고 인정해 주지 않으신다.

왕닝(王宁)은 신장(新疆)농업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다. 2003년 지방간 판정을 받고 병세가 더 악화되었다. 지방간의 원인은 중독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약초학을 전공했다. 그는 독성이 있는 화학제품이 씨앗과 묘목의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했다. 이 화학제품들은 상당한 독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실험실이 통풍이 잘 돼지 않았던 것이었다. 같은 학년 식품학과 학생은 아마도 식품화학첨가제나 약품을 접촉해서인지 6개월 뒤에 그만 간암과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과학연구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유독물질로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니 정말 끔직하네요.”라고 왕닝은 말했다. 2008년 대학원을 졸업한 그의 몸 상태는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왕닝은 베이징의 농장에서 일하는 친구 황즈여우(黄志友)가 “빨리 우리 농장에 와서 좋은 것 좀 먹고 가”라고 해서 그의 아내와 함께 친구의 농장에서 10개월 간을 보냈다. 그는 그곳에 머물면서 좋은 것을 먹고 친환경 농법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러던 중 그의 병도 점점 좋아졌다. 그리고 친환경 농법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여러 지인들과 교제를 하였다. 그는 또 홍콩의 농장과 식물원을 견학했고 프리마켓과 묘목분재회사도 방문했다. 드디어 자기 삶의 목표를 찾았다고 그는 흥분하며 말했다. 2009년 그는 아내와 귀농을 했다. 그는 약 3300평방미터의 땅을 임대해서 오이, 가지, 고추, 토마토와 상추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했다. ‘소박한 농원(归朴农园)’이라고 이름 지었다.

왕닝의 농작물은 주로 광동(广东), 정저우(郑州) 지역 고객들에게 배송된다. 올들어 그는 땅콩, 옥수수, 참깨로 바꿔 심었다. 채소는 손이 많이 가고 힘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불만도 많아서 수익이 그다지 좋지 않은 까다로운 작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신농민의 처지가 그다지 낙관적이지만 않다. 투자만 있을 뿐이지 이익이 잘 나지 않는 것이 전체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신농민들은 여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초보이지만 삶의 질은 만족스럽다고 했다.

“친구들 중에 저만큼 안전한 먹거리와 식용유를 자급자족하며 사는 이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생활이 아주 행복해요.”라고 왕닝은 말했다. 탕량과 왕닝의 과제는 함께 일할 사람과 운영자금이라고 했다. 그중 가장 시급한 일은 농장의 인부들이 친환경 농법과 지역사회지원농업을 얼마나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농장규모가 커지면서 그에 따른 판매시장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지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신농민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현재 중국의 농업생산액은 1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50%를 차지한다. 따라서 10%의 국민소득으로 50%의 농민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농촌의 몰락과 농민의 빈곤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기울어진 비율의 균형을 맞추려면 정부의 거시정책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기술, 자금, 시장개방에 대한 불필요한 제지도 없애야 한다.

화후이팡은 진정한 신농민이 발전할 길은 규모는 작지만 견실하고, 농업 기술에 정통한 기초 위에 성장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신농민들은 스스로 성장해 나가야만 하지만, 정부는 직업훈련을 더 많이 실시하고 창업자금도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자원을 통합시킬 수 있고 다같이 발전할 수 있다. 농업과 농촌의 지속적 발전에는 반드시 신농민들이 두각을 나타날 것이다.

탕씨는 이들의 미래는 전망이 좋다고 하지만 왕닝은 부정적이다. 반면에 화씨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앞으로 신농민은 트렌드가 될 것이다. 6월 하순 미국을 방문한 그녀는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하는 유기농마트가 호황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친환경 농법 시장의 밝은 미래를 확신했다.  앞으로 친환경 농법 종사자 역시 새로운 추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더 성장해야 한다.

끝으로 왕닝은 귀농 청년들 모임에 참석하면서 귀농과 지역사회지원농법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인 우리에게 책임이 있으며, 두 번째는 귀농이야기는 재미 있고 흥미진진하며, 세 번째는 도시에 사는 것은 편리하고 쉬운 일이지만, 귀농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은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



출처 | 《中国周刊(중국주간)》 2014년 7월 16일
번역 | 차이나  . 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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