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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통권 147호  필자 : 이성은  |  조회 : 2749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故 방지일 목사님과 중국선교
방지일 목사님과의 남은 이야기

고 방지일 목사님 생전에 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목사님은 한 번도 답변을 늦추시는 일없이 꼭꼭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곤 하셨다. 한 번은 중국에서 목사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신앙의 후손이 찾아왔기에 이 일로 메일을 주고받은 일이 있었는데 목사님은 그와 관련된 사진까지 찾아내어 보내주셨다. 지금도 중국 전역에 흩어진 중국인 가운데 방지일 목사님을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선교회에서 중국선교 관련 행사를 위해 목사님을 초청하면 두말하지 않으시고 오케이 사인을 메일로 보내주셨다. 11년 전 필자가 중국에서 사역하던 중 잠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목사님이 월요성경공부팀과 함께 대만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기로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만에서 사역하고 있는 우리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과 연결하며 그 일을 도와 드리다가 아예 필자도 그 팀에 합류하여 함께 대만으로 가게 되었다. 대만의 선교사에게 전체 안내를 부탁했으나 일주일간의 시간을 낼 수 없다 하여 본의 아니게 목사님 팀을 안내하는 역할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선교여행에 참여하는 분들은 거의가 70세 이상 되는 목사님 부부셨다. 마침내 총 스물네 분이 대만에 도착하였다. 대만의 선교사들을 위로하고자 하시는 방 목사님의 뜻을 따라 대형버스를 타고 일주일간 대만 전역을 돌아보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버스기사는 현지인 목사였다. 먼저 장애인 사역지를 돌아본 뒤에 대만교회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과정을 통해 필자는 노 목사님들의 귀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뵙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방 목사님은 당시 93세의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인이 아닌 청년의 모습으로 아무에게도 몸을 기대지 않으신 채 정정하게 여행을 하셨다. 그리고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셨다. 대만의 봄 날씨는 제법 스산하다. 방 목사님보다 훨씬 젊은 70세의 목사님들은 힘들다고 하시는데, 방 목사님은 오히려 전혀 개의치 않고 도착지마다 아침성경공부와 예배를 진행하셨다. 모임 시간이 되면 모두들 각자의 숙소에서 나와 성경을 옆에 끼고 목사님이 계시는 방으로 가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은 사회자도 없이 본인이 예배를 진행하곤 하셨다. 오바댜의 말씀을 한 절씩 풀어주셨는데 한 시간 동안 꼬박 서서 말씀을 전해주셨다. 목사님, 연세도 있으신데 앉아서 하시라고 하면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의 나이를 합하면 자신의 나이보다 많으니깐 당연히 서서 해야 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모두들 한 바탕 웃기도 하였다.

여행일정에 따라 저녁 11시가 훨씬 넘어서 숙소에 도착할 때도 어김없이 성경을 옆에 끼고 방 목사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야 했다. 방 목사님이 한 시간씩 설교를 하시는데 누구도 피곤하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이 일주일간의 일정은 모두가 감사하며 다니는 선교여행이 되었다. 목사님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아름다운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셨다. 선물용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도 설교에 필요한 물건만을 고집하셨다.

필자는 원숭이 인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처음 알게 되었다.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고, 입을 가린 원숭이 삼형제 인형이었다. 시편 115편 5-6절에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설교 도구로 쓰기 위해 이 인형을 구입하셨다. 작은 물건 하나도 그냥 구입하는 법이 없으셨다. 정말 대단한 센스의 소유자셨다.

여행 중에 신학교기숙사에서 숙박을 하는 일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누군가 숙소가 불편하다고 불평의 소리를 쏟아냈다. 총무일을 맡아보는 목사님과 안내를 맡았던 필자는 상당히 당황스럽고 난처했다. 그때 방 목사님께서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시고 한 마디 하셨다.

“그냥 진행하도록 하세요.”

목사님의 이 한 마디에 노 목사님들은 그저

“예.”

라고 할 뿐 다른 말씀을 못 하셨다. 

대만교회들을 방문할 때 교회소개를 하는 시간이 되면 부득불 필자가 통역을 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방 목사님 앞에서 통역을 하게 된 것이다. 한 번은 “루터란교회”를 어떻게 통역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는데 방 목사님이 바로 도와주셔서 순조롭게 통역을 마친 적도 있다. 가는 곳마다 방 목사님의 제자들이 마중을 나와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는데 그분들도 연세가 일흔이 훨씬 넘은 분들이었다. 뷔페식 식사를 대접받은 일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일행 중에 50% 경로우대 할인을 받은 사람만 절반가량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접하시는 분도 부담을 크게 덜어서였는지 기분이 더 좋아보였다.

필자가 칭다오에서 사역하는 기간에도 목사님은 종종 메일을 보내 주셨다. 방 목사님이 일찍이 중국선교사로 사역하셨던 라이양과 산동성 일대를 다니다 보면 때로는 방 목사님의 소식을 묻는 가정교회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소식을 목사님께 전해드리면 목사님은 크게 반가와 하시면서 그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당부하곤 하셨다. 방지일 목사님과 나눈 메일 가운데 일부를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저는 중국어문선교회 이성은 선교사입니다.
심천에서 연락이 와서 알려드립니다.
 
我的父亲叫魏蒙生,华北神学院毕业,我是魏光众,我父亲1988年(84岁)在外出传道途中被接回天家,我父亲1949年中国大陆解放前后曾与韩国方牧师有交往,方牧师在青岛宣教时,被政府追赶,父亲在一个夜晚,从我家悄悄将方牧师带离青岛,我家当时住在青岛四方,由于当时条件,我父亲没有方牧师任何信息,他生前多次说,不知道方牧师是否安然离开青岛,约2006年前后,我在青岛教会,有韩国牧师在圣保罗教堂讲道,讲完后,说韩国有位方牧师找他青岛的朋友,并没提及朋友的名字,我当时没有在意,后来突然想起,但此时韩国的牧师已经离开青岛,我先居住深圳,与儿子在一起,我女儿在新加坡金链神学院读书,并以做传道,这是神莫大的恩典,我只想知道方牧师近况,确定他是否就是我父亲一直想念的方牧师,并告诉他,我父亲的情况,附件是我父母生前的照片。求神带领。阿们。

제 이름은 위광중이고, 제 부친은 화북신학원을 졸업한 전도인 위멍셩입니다. 부친은 1988년(84세) 외지에서 전도하던 중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부친은 1949년 중국 해방 전후에 한국의 방 목사님과 교제가 있었습니다. 방 목사님이 청도에서 선교하시다 정부의 추적을 받고 있던 어느 날 밤 부친은 몰래 방 목사님이 청도를 떠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후, 부친은 방 목사님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기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당시 방 목사님이 안전하게 청도를 떠나셨는지 모르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2006년경 저는 청도교회에 있었고, 당시 성바울교회에 한국인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한 후, 한국에서 동행한 방 목사님이 청도에 있는 친구를 찾는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찾는 그 친구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저는 그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났을 때는 이미 그분들은 청도를 떠난 후였습니다. 현재 저는 아들과 함께 심천에 살고 있고, 딸은 싱가포르에 있는 금련신학원에서 공부하며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저는 방 목사님의 근황과 제 부친 그리워하시는 방 목사님이 맞으신 지 좀 싶습니다. 그리고 제 부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첨부파일은 저희 부모님의 생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빕니다. 아멘.


이성은 선교사님
위멍중의 글을 보았군요. 그의 부친 위멍성은 나와 같이 일한 동역자입니다. 나도 사진이 있는데 사진을 보내주었군요. 사진을 얻으면 보내드리지요. 그에게 중국어로 편지하기도 그리 쉽지 않으니 그에게 말해주세요. 그가 심천에 있군요. 나도 사진을 찾으면 보내 줄게요. 그는 나와 같이 동역했던 것은 모르느만요. 그가 공산화 된 다음에 공산당 공문을 찢은 일로  잡힌 일도 있었지요. 저는 지금 103세로 기동이 거의 불가능하나 나를 같이 하는 원로 한분이 나를 늘 대동하여 아직 단에 서기도 하지요. 감사합니다. 방지일상 

목사님 심천에 계시는 분들이 너무 감격하고 감사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진에 사역자들 이름도 알려주시면 찾아보겠다고 합니다.

따지에
전에 보낸 사진의 이름을 드립니다.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뒷줄 첫 분이 그의 부친, 그 다음 방지일, 그 다음이 丁壽山(의사), 그 다음이 丁百山 목사, 다음 줄 于亮停, 萬世謙, 婁書琺, 郭世喜, 아랫줄 韓書文, 尹貴爛, 范旬淸, 내 내자, 許景和 등입니다 혹 그의 알 사람 있으면 반가울 것입니다. 방지일상



이 선교사님에게
위멍중에게 내가 찾은 사진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방지일상

이선교사님 위멍중의 부친사진을 찾앗기 보내오니 전하여주세요. 내 친히 동역하든 동역자님들입니다. 그 이름을 원하신다면 알려드리지요. 그는  이들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 부친은 내옆에 게센이지요. 방지일상     

언젠가 방 목사님께 “칭다오에 선교센터를 세우면 참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목사님께서 “그거 좋지요.” 하시면서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후 칭다오에 Q센터가 세워져 선교사들의 재충전 공간으로 활용되었는데 목사님은 이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며 당신 자신은 그곳을 방문할 수 없지만 아무쪼록 잘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돌이켜보면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귀하신 방지일 목사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필자를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편하게 대해 주셨으니 이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는가!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목사님, 저 천국에서 중국선교를 위해서, 선교중국을 위해서 응원해 주실 거죠?



이성은 | 중국선교사, 중국어문선교회 총무

 

왕도 (2014-11-03)
선교중국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들 하나님도와 주셔서 꼭 노력겠습니다. 화이팅!
이성은 (2014-11-03)
이선교사님 글 감명깊게 봤어요,
선교사님 순수한선교 사역에 방지일목사님은 당연히 응원하시겟죠. 김매희 선교사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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