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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통권 147호  필자 : 방선기  |  조회 : 4708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故 방지일 목사님과 중국선교
큰아버지의 신앙과 삶 그리고 가족


큰아버지는
중국 선교사로 사역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선교 아버지처럼 인식된다. 그리고 통합 교단의 총회장을 지내고 다양한 기관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교계에서는 유력한 인물이다. 또 장수하셔서 오래 사역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을 보면서 역시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아버지를 위대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역자로서의 진정성이다. 그분에게서는 흔히 대형교회를 이루거나 교계에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카리스마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역자의 진정한 모습을 간직한 분이다.

아들 방선주 박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교인들에게 너무 헌신적이어서 교인들이 성자처럼 존경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자기는 그렇게 헌신적인 삶을 살 자신이 없어서 목사가 될 생각을 포기했다고 한다. 영등포 교회 후임 목사로 노년에 큰아버지를 보필했던 김승욱 목사에 따르면 그 분은 교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교인들 한분 한분을 심방하기 위해서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셨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 사역을 할 때도 지시하기보다는 본을 보이는 분이라고 했다. 그는 평생 예수님을 닮으려고 했던 선교사요 목회자였다.

그 이전에 그는 정말 신앙인의 모델이다. 그는 복음과 말씀에 철두철미한 분이다. 현재 교회가 성장하고 부유해지고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복음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셨다. 신앙의 기본인 복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교회는 종교기관이 되고 신앙 활동이 종교 문화 행사가 된다고 걱정을 많이 했다. 성경말씀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시다. 성경 66권의 주석을 다 썼다. 이 주석은 신학자들의 주장들을 인용하는 신학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 자신이 성경 66권을 토대로 주석한 것이다. 어느 한 책을 주석하는데 성경의 63권을 인용했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특히 레위기나 아가서처럼 전통적으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것을 가르치셨다.

한 인간으로도 멋진 분이다. 머리가 비상한 분이다. 종종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날카롭게 지적을 한다. 100세가 되셨어도 그 이성적인 판단이 하나도 흐려지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의 뇌를 MRA로 분석하면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그의 기억력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들 중에 단연 최고이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되었을 텐데 그 사람들의 이름과 가족상황 등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마치 컴퓨터에 기록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 가족이 40여명 모였는데 돌아보면서 그날 오지 못한 몇몇 가족을 금방 찾아내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가 놀란 적이 있다. 종종 일상생활 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우리를 놀라게도 하신다. 그러면서 자기가 신학을 하지 않고 물리학을 공부했다면 많은 것을 발명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의 모든 것들보다 우리들에게 더 진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분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 가문의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증조부님 방만준 할아버지에게서 시작된다. 이분이 1898년에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신앙의 가문으로 시작했다. 이 할아버지의 신앙 이야기를 큰아버지를 통해서 많이 알 수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5남 1녀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 효원과 셋째 아들 효정이 목사가 되었고 사위인 홍승한이 목사가 되었다. 큰아버지는 첫째인 방효원 목사의 맏아들이다. 방효원 목사와 홍승한 목사는 처남 매부지간인데 이들이 처음으로 중국선교를 시작했다. 효원 할아버지가 선교하는 동안 큰아버지는 만준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만준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처럼 신앙 때문에 가족과 친척을 떠날 정도로 확고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렇지만 신앙을 자녀 손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신앙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다. 큰아버지에게 그 분의 이런 신앙의 모습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실 큰아버지는 촌수로는 거리가 있다. 우리 아버지의 사촌 형님이 되신다. 큰아버지에게 우리 할아버지(방효천)가 작은 아버지가 되신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 할아버지를 작은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항상 아버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큰아버지가 할아버지 앞으로 보낸 엽서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거의 한 달에 한번 꼴 안부편지를 드린 것이다. 그 당시에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대단한 정성이요 헌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편지를 집안 어른들께 정기적으로 보낼 정도로 그분은 가족에게 헌신적이었다.

자손들에게 대한 사랑과 배려도 정말 대단하다. 큰아버지의 동생 되는 방화일 목사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그때 그분에게는 1남 3녀의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 큰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동생의 자녀들을 자기 자녀와 똑같이 대했다. 다른 동생들에게도 아버지를 잃은 조카들을 자식처럼 대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단다. 이 4남매(나에게는 6촌 형제들이다.)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다 돌아보았고 그들의 자녀들, 즉 조카 손주들의 결혼도 빠짐없이 참석해서 축복해주었다고 한다. 부모를 잃은 가족이 있으면 형제와 자매가 조카들을 돌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신 것이다.

다른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말할 수 없다. 어린 시절에 큰아버지 댁에 갈 때 작은 선물을 사가지고 가면 고맙다고 하면서 더 큰 선물을 안겨 주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사촌동생이지만 먼저 세상을 떠나갔을 때 정말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아 주셨다. 내가 신학교를 가게 될 때는 물론, 동생들이 진로를 놓고 고민할 때마다 아버지 이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지도해주셨다. 그래서 우리 어머님이 사촌 시아주버님 되시는 큰아버지를 잘 섬겨 드렸다. 큰아버지와 우리 가족과의 관계는 친척관계를 넘어서 친밀한 가족관계 같다.

언젠가 큰아버지가 우리 부부를 불러서 가 뵌 적이 있다. 방만준 할아버지가 며느리들에게 비단을 선물해준 이야기를 하시더니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면서 아내를 실크 집으로 데려가서 옷을 사주셨다. 아내 뿐 아니라 제수와 사촌동생들의 아내들까지 다 해주셨다. 옷을 선물 받은 것도 감사했지만 큰아버지가 며느리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쓰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요즈음 이런 선물은 친 시아버지에게서도 받기 힘든 선물인데 그런 귀한 선물을 받은 셈이다.

큰아버지는 가족의 신앙을 계승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100세 되는 해 미국에서 온 가족이 기념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때 “떠나가라”는 주제로 말씀해주셨다. 100명이 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은혜를 받았다. 특히 방씨 가문에 시집 온 며느리들이 신앙의 가문으로 시집 온 것에 대해서 감사의 간증을 했다. 이 모임에서 은혜를 받아서 한국에서도 규모는 작지만 가족 수련회를 가졌다. 2012년도 추석 때에 ‘이기었노라’라는 주제로 말씀해주셨다. 자녀손주들의 간증도 들었다. 큰아버지께서 이 모임에서 나온 간증들이 너무 좋아서 책을 만들도록 하셨다. 그것이 ‘이기었노라’라는 제목의 가족문집이 되었다. 그때는 그런 책을 누가 읽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큰아버지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기념물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이 있다. 올해 초부터 큰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100세가 넘으시니까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그런데 몸은 불편하셨지만 두뇌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데도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셨다. 그분은 남이 아닌 가족들이 돌아보아 주시기를 원하셨다. 다들 바쁘니까 쉽지는 않았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돌볼 수는 없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시간을 내서 같이 저녁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당시에는 큰아버지가 베푼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솔직히 의무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시간을 지내면서 큰아버지와 더욱 친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만 아니라 아내도 그런 유익을 맛보았다. 돌아가신 후에 돌이켜 보면서 그 기간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특권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큰아버지 사진이나 녹음한 목소리를 들으면 금방 찾아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본받기에는 너무나도 큰 분이시다. 그저 조금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분을 큰아버지로 모시고 살 수 있었다는데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끝으로 이 지면을 빌어서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 큰아버지와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아니 가족보다 더 자상하게 큰아버지를 섬긴 분들이다. 영등포교회의 원로목사이면서 큰아버지를 아버지 모시듯이 모신 김승욱 목사님, 큰 아버지를 위해서 물질과 시간과 모든 정성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섬기신 이혜원 권사님, 그리고 38년 동안 운전기사로서 큰아버지를 섬긴 김동호 집사님이다. 우리 가족들을 대표해서 이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




 방선기 | 직장사역연구소 소장 · 이랜드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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