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타이완에서 개봉한 《청견하우적성음(听见下雨的声音)》은 중화권 스타 저우제륜(周杰伦)의 작사가로 유명한 팡원산(方文山)이 메가폰을 잡은 첫 번째 영화이다. 그는 5년 동안 영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로큰롤, 중국 전통음악, 동서고금의 악기, 아시아 전통의상, 서예, 수묵화, 아시아 전통무용과 전통무술 등 다채로운 장르로 고전과 현대의 만남을 비 오는 날의 수채화처럼 영화에 담았다.


저우제룬의 작사가
팡원산은 2014년 포브스(Forbes） 차이나 저명인사 100인 중 3위에 오른 ‘저우제룬의 어용(御用) 작사가’로 알려져 있다. 타이완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상인 진취장(金曲奖)을 여러 번 수상하는 등 ‘작사의 성인’으로 불린다. 그는 류더화(刘德华), 궈푸청(郭富城), 장쉐유(张学友), 차이린(蔡依林) 등 여러 유명가수들과 앨범작업을 함께하면서 대중음악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타이베이 근교에서 성장한 팡원산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판매원, 배달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꿈은 시나리오를 써서 감독으로 데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을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먼저 작사가의 길을 가기로 했다. 팡원산은 자신이 쓴 100여 개의 가사와 이력서를 음악기획사와 음악종사자들에게 보냈지만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때의 좌절감이란.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가수이자 버라이어티 진행자인 우쫑셴(吴宗宪)의 러브콜을 받은 팡원산은 그의 소속 작사가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같은 소속사에서 알게 된 저우제룬과 함께한 음반작업이 히트를 치면서 작사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팡원산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성공은 자신이 갈고닦은 실력뿐만 아니라 기회를 잘 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안운각시’ 고전미의 재현
팡원산과 쌍벽을 이루는 홍콩작사가 린시(林夕)는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탕웨이 주연의 《황금시대(黃金時代)》의 주제곡 작사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홍콩대학 중문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으며 조교경력까지 있는 수재였다. 그의 창작가사는 4천여 수에 달하고 홍콩 대중음악 최고영예인 ‘진전장(金针奖)’을 수상하였다. 그가 창작한 가사 속에 주쯔칭(朱自清), 이수(亦舒), 쉬즈모(徐志摩) 등 중국 문인과 서양 작가들 중에 남미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체코 출신의 밀란 쿤데라 등의 그림자가 투영된 동서융합의 몽롱미(朦朧美)를 잘 그려내 찬사를 받았다. 

반면 팡원산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체험한 삶은 가사를 창작할 때 오롯이 배어나왔다. 중국 당시(唐詩)와 송사(宋詞)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인의 기호에 맞는 새로운 풍격을 창출했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쓴 가사를 ‘소안운각시(素颜韵脚诗)’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는 민낯의 얼굴처럼 순수하게 한자만 사용하고 표점부호나 외국문자, 아라비아숫자, 그림 같은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시의 매 줄마다 리듬을 맞춰 민요처럼 낭송할 때의 그 경쾌함이란. 운각시(韻脚詩)는 당대(唐代)의 격률시(格律詩)의 영향을 받은 신시(新詩)의 창작 형태로써 193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 “빗소리가 들려(听见下雨的声音)”가 운각시로 쓰였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보면.

青春 嫩绿的很 鲜明  청춘은 연푸른 초록 마냥 선명해요
百叶窗 折射的 光影  블라인드에 드리운 빛 그림자
像有着心事的 一张 表情  근심어린 얼굴 표정 닮았네

이 가사에서는 표점부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띄어쓰기만 했으며 매 줄의 마지막 글자는 리듬을 살려 밍(明), 잉(影), 칭(情)으로 ‘잉(ing)’ 동일한 소리로 일치한다. 이는 중국 고전시와 신시의 교량 형태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저우제룬과 작업한 〈칠리향(七里香)〉〈국화대(菊花台)〉〈천리 밖(千里之外)〉〈본초강목(本草纲目)〉〈황금갑옷(黄金甲)〉〈청화자기(青花瓷)〉〈난정서(兰亭序)〉 등의 가사가 있다. 차이스윈(蔡诗芸)과 작업한 가사로는 〈뉘얼훙(女儿红)〉이 있고, 린쥔제(林俊杰)의 곡에 붙여준 〈취적벽(醉赤壁)〉이 있다.

이들 가사에는 중국풍의 질감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저우제룬이 작곡하고 팡원산이 가사를 쓴 영화 《황후화》의 주제곡 〈국화대(菊花台)〉는 제79회 오스카 음악상 경쟁부문에 올랐고, 제26회 홍콩영화제 진샹장(金像奖)에서 최고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중국 강남 지역의 희곡적 음악의 특징을 살려 작곡한 저우제룬의 〈청화자기(青花瓷)〉에 팡원산이 강남의 산수를 그려 넣은 수묵화 같은 가사를 얹어 완벽하게 중국풍의 음악을 구현하여 R&B의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팡원산은 또한 시와 서예 그리고 그림 속에 담긴 멋의 조화를 이룬다는 전통 문예관에 기초하여 현대 대중음악에 전통 시사(詩詞)의 아름다움을 덧입혀 가사에 세련되고 탁월한 감각을 드러냈다. 

오프닝 크레디트에서 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이 고전무용을 출 때 동작에 맞춰 화면에 먹물이 튀어 번지면서 수묵화의 애니메이션 효과 시적 연출한 흑백의 미(美)는 일품이었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만남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롭게 은유적으로 표현됐다. 밴드의 리드 보컬인 아룬(阿伦, 柯有伦 분)은 풍물시장에서 중국 전통의상동아리 여대생인 위제(雨婕, 韩雨洁 분)를 만난다. 위제는 의상디자인학과 학생으로 그녀가 속한 ‘한푸(汉服)’동아리는 고전의상의 현대화를 연구하고 회원들은 서예나 수묵화에도 조예가 깊다. 아룬의 밴드와 중국 전통의상동아리는 ‘묵혼(墨魂)’이란 팀으로 제8회 팬아시아시티컵 문화축제에 참가하였다.

이 문화제는 전통과 대중문화와의 통합을 표방하는 대회로서 싱가포르, 도쿄, 서울, 타이베이, 베이징 등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경합을 벌였다. 서울 팀은 K-POP, 태권도, 해금, 한복, 한글서예 등을 선보였다. 타이베이 대표 팀인 묵혼은 아룬 밴드는 전자기타, 키보드, 드럼 등 악기로 로큰롤을. 남성 팀은 중국무술을 선보였다. 저우이러(周以乐, 释小龙 분)가 무대에 설치된 벽면에 붓으로 수묵화를 그릴 때, 다른 팀은 붓으로 한자를 쓰고 위제는 전통의상을 입고 고쟁(古筝)을 연주하였다. 감독은 동아시아 젊은이들이 문화를 통해 고전과 현대의 어울림과 하나 되는 세상의 꿈을 멋지게 연출하였다.


시와 노래의 만남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 위제가 창밖의 빗소리를 듣고 있을 때 여동생 샤오위(小瑜, 徐娇 분)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생활 속에서 시(詩)가 필요한가?”

“청춘은 시와 같다”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장면은 팡원산의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엿 볼 수 있다. 평소 마주치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운 빗소리에서 시와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을 것을 보면 말이다. 팡원산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평소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던 〈빗소리(落雨声)〉를 틀어드렸다. 이것도 이 영화의 주제곡과 맥을 같이한다.

팡원산 감독은 장면마다 심혈을 기울여 한 장의 엽서처럼 뛰어난 영상미와 자연의 소리와 음악으로 아파하고 갈등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의 메마른 영혼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시, 낭송, 음악, 회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한 영역을 대변한다. 위제는 평소 운각시를 창작하고, 여동생 샤오위는 청각장애인 언니의 시를 낭송한다. 아룬은 대중음악을 창작하고 노래 부르고, 저우이러는 그림에 소질이 있다. 

영화에서 삽입 된 스무여 곡에 팡원산이 직접 가사를 썼다. 〈강남이 들린다(听见江南)〉〈한 편의 시 같은 청춘(青春如诗)〉〈여보세요(喂)〉〈바람 속 미소(风中的微笑)〉〈옆으로 걷는 청춘(横着走的青春)〉〈추억의 비(回忆之雨)〉〈소리 없는 수호천사(无声的守护)〉〈시의 언어(诗的语言)〉〈소리 없는 눈물(无声的眼泪)〉〈스토리 화면(故事画面)〉〈비 온 뒤의 희망(雨后的希望)〉〈빗소리가 들여(听见下雨的声音)〉 등이 있다.

유독 많은 내레이션을 시 낭송으로 장식하고 배경음악과 운율미를 더해주고 타이완, 베이징, 싱가포르, 프랑스 등 현지촬영으로 화려한 화면은 비오는 장면과 같은 담백한 수채화와 어우러져 시적 함의가 풍부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사랑의 고전적 해석 - 함축미
아룬의 룸메이트인 저우이러는 사진과 그림 속에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즐긴다. 타이완의 주린(竹林)기차역에서 우산을 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위제를 렌즈에 담았다. 저우이러는 위제의 뜻밖의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 몰래 도와주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병실에 남겨두었다. 그 후 저우이러는 오랫동안 위제와 얼굴을 모르는 펜팔친구로만 지냈다.

어느 날 아룬과 위제가 사귀는 것을 알게 된 저우이러는 속을 태운다. 위제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저우이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가 싱가포르에서 청각회복수술을 받을 때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다. 두 사람은 싱가포르에서 거닐 때 살짝 손이 스쳤지만 저우이러는 그녀의 차마 손을 잡지 못한다. 그는 그녀의 곁을 맴돌며 지켜주는 수호천사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꿈과 열정 그리고 힐링
비 내리는 여름날, 고등학생 위제는 남자친구의 오토바이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 친구를 잃고, 자신의 청각마저 상실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 후 5년 간 가슴속의 상처와 아픔에 묻혀 외부 세계와 단절한 위제에게 시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위제는 우연히 밝은 성격의 아룬을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아룬이 좋아하는 음악을 위제는 들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귈 수 있냐고 우려하였다. 사실 그녀는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고 서툰 목소리이지만 말할 수 있었고, 고쟁도 연주할 수 있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 대해 많은 말을 쏟아내었지만 정작 그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룬은 위제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노트에 수화를 적어 그녀와 대화하고 듣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빗소리가 들려’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이 곡이 바로 영화의 OST인 것이다.

위제는 청각장애인이 되었지만 운각시로 고쟁 연주로 친구를 잃은 아픔을 달랬고 엄마, 여동생, 아룬과 저우이러 등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위제는 문화제 경연에서 고쟁을 연주할 때 자신이 그토록 소망했던 청각이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다. 영화 속 여주인공 위제의 캐릭터에는 사실 팡원산 감독의 순탄치 않았던 지난 삶의 여정이 간접적으로 투영되었다. 그는 시와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으로 수많은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였고, 중화권 빅 스타인 저우제룬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화룡점정이 되었다. ▩



김영철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