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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통권 147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736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우산혁명(홍콩시위)" 과 중국의 기독교

두 달 여 전인 지난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는 2017년 홍콩 행정 장관 입후보의 자격을 친중국계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이전부터 홍콩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법안 통과 두 달 전인 6월 29일에는 반(反)중국 성향의 후보도 행정 장관 선거에 나올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는 비공식 주민투표가 행해졌는데 80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참여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국인민대표회의의 법안 통과가 도화선이 되어 폭발한 홍콩시위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시위대가 비와 경찰의 최루탄을 막기 위해 노란우산을 썼기 때문에 홍콩시위는 ‘우산혁명’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위는 어느 정도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친중 단체들과 반중세력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한 인기 연예인들의 중국활동에 제약이 걸릴 것 같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노란우산’이라는 이름의 모바일게임이 등장하고 나아가서는 이 문제가 중국과 영국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는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우산혁명이 혹시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의 재스민혁명(튀니지혁명) 때도 마찬가지의 토론이 활발했었습니다. 재스민혁명과 달리 우산혁명은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중국의 문제이고, 이제는 북한에도 외부의 정보가 많이 유입되고 있어서 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산혁명의 중심에 서있는 홍콩교계
우리는 ‘우산혁명이 홍콩교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시위의 중심인물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 홍콩시위는 뚜렷한 지도자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 가운데 17세인 죠수아 윙(Joshua Wong)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죠수아 윙은 기독교인입니다. 이번 시위를 이끄는 세력 가운데 ‘사랑과 평화로 센트럴을 점령하라(OLCP)’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이미 지난 6월 21일에 ‘친중 인물만이 홍콩 행정 장관이 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면 홍콩의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을 점거하기 위한 시위에 나서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법안이 통과되자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 단체는 츄이우밍(Chu Yiu Ming) 목사를 비롯해 설립자 다수가 기독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체의 이름에 ‘사랑’, ‘평화’가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츄이우밍 목사는 천안문사태 때도 반중활동에 앞장섰던 인사입니다.

홍콩의 교회들은 시위대를 위해 힘써 기도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시위대를 돕고 있다고 합니다. 시위현장에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있는 그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우치웨이(Wu Chi wai) 목사는 ‘성탄절에 거리에서 찬송을 부르는 것과 같이 시위현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위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48시간 기도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우산혁명에 홍콩의 기독교가 우산혁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보면 중국 당국은 홍콩시위에 대해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중국 당국이 홍콩의 기독교를 손보려고 하지 않을까, 이런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1989년 천안문사태 때에도 홍콩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중국의 ‘탱크 진압’을 비난하는 시위가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중국 당국은 그것도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삽화(揷話)입니다만, 천안문사태 때 FEBC - Hong Kong(香港廣播公司)에서는 홍콩에서 중국을 비난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제가 봉직하고 있던 극동방송으로 팩스로 계속 알려왔습니다. 생생한 현장 스케치들이 담겨 있는 이 소식을 국내 매스컴에 전달하고 싶었는데 마침 중국어방송 책임자(중국인)가 출장 중 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제가 형편없는 중국어 실력을 가지고 그것을 대강 번역해서 국내 보도기관에 계속 돌렸고, 국내의 매체들은 그것을 크게 다뤘습니다. 중국어방송 책임자가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에 번역한 원고를 보여주며 ‘제대로 번역했는지 검토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잘 살펴본 다음에 ‘대체로 잘 했는데 아주 중요한 것 하나는 거꾸로 번역했다.’며 ‘A-’라고 큼직하게 적었습니다. 실제로는 ‘C’를 주고 싶었겠지요. 지금도 중국 관계의 일로 이렇게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할 때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신앙 활동에 가해질 제약을 염려해서
홍콩교계가 이번 우산혁명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친중국계 행정 장관이 들어설 경우, 홍콩에서의 신앙 활동에 제약이 가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홍콩시티대학 정치학 교수인 죠셉 쳉(Joseph Cheng)은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기독교인들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면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어느 곳에 있든 그들을 억압한다.”는, 공감이 가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번 우산혁명을 지켜보면서 20여 년 전의 일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20여 년 전, 홍콩의 중국반환이 가까워 오면서 이 문제에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홍콩교계였습니다. 그때 홍콩교계에서 간행하는 각종 매체들에는 ‘97 이후(After 97)’라는 말이 빠지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중국선교 업무로 홍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실감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홍콩은 중국선교의 전진기지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중국선교 기관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홍콩교계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중국이 홍콩의 기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이 아무래도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중국 당국자들과 회동을 갖고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타진했는데 ‘홍콩 안에서의 종교 활동은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륙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통첩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홍콩에 있던 많은 선교기관들이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로 인해 홍콩의 중국선교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은 많이 감소되었습니다. 우리는 우산혁명과 홍콩의 기독교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근 이십 년 전 홍콩의 중국 귀속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을 때, 저는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되면 아무래도 홍콩을 발판으로 한 중국선교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홍콩 대신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 논리는 지금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지금 그때와 비교할 수 없게 변화되고 개방된 사회가 되었고 세계는 지구촌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은 선교를 받는 나라가 아니라 선교를 하는 나라로 180도의 전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우산혁명은 우리로 하여금 중국과 기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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