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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7  통권 144호  필자 : 장첸예(張瘦燁)  |  조회 : 3808   프린트   이메일 
[차이나 윈도]
마화텅(馬化騰)과 텅쉰(騰訊) 제국의 도약

텅쉰의 한 사람
1998년 어느 날, 스물일곱 살의 IT청년 마화텅이 베이징에서 한 국제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만났다. 자기가 만들고 있는 온라인 메신저 OICQ에 대한 투자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때 CEO 곁에 있던 참모들은 OICQ의 전망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청년은 허탕을 치고 실망하며 돌아왔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중 15년 뒤에 그와 텅쉰제국(騰訊帝國)이 시가 1천억 달러가 웃돌고 주가가 한때 500홍콩달러(약 64미국달러)을 돌파한 중국 IT계의 ‘일인자’가 될 줄 아무도 몰랐다.

2013년 12월 19일 오후, 텅쉰은 중국 언론매체들을 본사로 초청했다. 회사 내 양쪽 벽에는 짙푸른 청색의 지구 모양의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그 지구는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인 QQ 온라인 메신저와 웨이신(微信, WeChat)의 네티즌 수를 비추고 있었다. 그날 오후 QQ의 온라인 접속자 수는 132,795,933명이었으며 이러한 통계항목의 최고기록은 1억 6천만 명을 넘었다. 웨이신 애용자 수는 2억 7천9백십만 명이라고 한다. 웨이신이 출시되기 전에 중국 내에서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고 한다.

중국이 민주주의 선거를 실시하여 텅쉰이 QQ 이용자들에게 쪽지를 보내 마의 한 표를 호소한다면 그는 중국 대통령도 될 수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이 우스갯소리는 마의 권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왜냐하면 2013년 10월, 3년 동안 웨이신은 이미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20여 개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 수는 6억을 넘어섰고 매월 애용자는 2억 7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웨이신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는 중국뿐만 아니라 홍콩, 대만, 일본, 유럽, 북미 등 중국인이 있는 곳, 어디를 가더라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언론계의 한 노장은 앞으로 10년은 시진핑(習近平)과 마화텅 이 두 사람이 중국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은 중국인이 꿈을 꾸게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중국인이 깨어 있을 때의 행동을 지배할 것이다.

마가 웨이신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닌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는 비관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IT계의 여러 최고 경영자 중에 그는 바이두(BAIDU, 百度)의 리옌홍(李彦宏)처럼 외모가 준수한 매력남도 아니고 써우후(SOHU, 搜狐)의 장자오양(張朝陽)처럼 허풍을 떠는 사람도 아니다. 마를 접해본 사원들은 그는 오히려 상품매니저(産品經理) 같다고들 한다. 상품을 테스트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 여직원이 포옹이라도 할라치면 수줍어서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웨이신에 대해 마는 별로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지만 과거에 생긴 일과 연관이 있다.

그룹 내 경쟁으로 탄생한 웨이신
텅쉰 내부의 입찰공고 제도를 언론매체에 설명할 때 마는 최초로 웨이신을 만든 장샤오롱(張小龍)과 유일한 팀워크는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 “웨이신이 처음으로 만들어졌을 땐 여러 팀에서 다들 하고 싶어 했으나 그들이 취한 액션과 헌신은 모두가 동일하지 않았다. 그때 세 팀이 있었지만 마지막엔 두 팀만이 이 과정에 참여했다. 상품은 다 똑같은 것이었고 둘 다 웨이신이라고 불렀다.

하나는 우리 무선팀에서 만들었다. 상대팀이 어떻게 진행하는지 다들 모른 채 동시에 시작을 하게 했다. 그런데 장샤오롱 연구개발 이사가 이끄는 우리 광저우(廣州)팀에서 먼저 만들어냈고 그 상품의 디자인과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그리고 그 제품은 우리 본사의 무선상품부의 팀워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라고 말했다.

오늘날 이용자들의 평가를 보면 웨이신은 그야마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상업적인 면에서 여전히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며 지금은 ‘텅쉰앱쇼핑채널(微購物)’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어 소매상들과 윈윈하고 있다. 텅쉰의 주가를 급등시키는 방법 외에 웨이신만으로 수입창출의 경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마 역시 웨이신이 텅쉰의 플랫폼으로 제3의 응용서비스 층과 통신의 전달 층 사이에 표준화된 인터페이스(API)를 개방해서 더 많은 응용서비스 층이 웨이신과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웨이신의 탄생은 중국 IT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료음성, 문자, 사진, 동영상, 영상통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이미 중국 내의 몇몇 대형 통신사의 수익을 크게 감소시켰다. 그래서 이들 대형 통신사들이 웨이신에게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웨이신에 자극받는 중국 통신사
중국 최대 미디어그룹(財訊傳媒, SEEC)의 수석 전략가인 돤용자오(段永朝)는 10년간 온라인 메신저의 텔레마케팅에 대한 자극 몇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는 1999년 QQ의 등장이었고 두 번째는 2003년을 전후로 한 휴대폰의 보급이었다. 휴대폰 보유량이 데스크톱보다 점점 많아졌다. 세 번째는 10년간 스마트폰의 급격한 성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웨이신의 등장이 기존 텔레마케팅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위에 몇 가지 중에서 휴대폰의 보급은 하드웨어기술의 진보로 인한 것이라면 나머지 두 가지 QQ와 웨이신은 모두 텅쉰에서 나온 것이다. 웨이신은 결제기능이 가능하다. 레이부쓰(雷布斯)라 부르는 샤오미(小米)휴대폰의 창시자인 레이쥔(雷軍)조차도 자신의 새 휴대폰을 시장에 내놓을 때 웨이신으로 결제했다.

마의 출신배경을 보면 아버지 마천수(馬陳術)는 1904년 차우산(潮汕)에서 태어났다. 교통부 하이난 8지점 항만청부국장(交通部海南八所港務局副局長),선전시 항공운수회사 본사 사장(深榴市航運總公司總經理),선전시 얜텐항회사부사장(深榴市鹽田港集團有限公司副總經理) 등 여러 직책을 거쳤다. 1997년에 퇴직할 때까지 얜텐항 주식회사의 이사장(鹽田港上市公司的董事)의 직함을 달았다. 그의 어머니 황훠이칭(黃惠卿)은 텅쉰 창립 시 회사의 지분을 60%나 보유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선전시 텅쉰컴퓨터회사의 법인대표로도 있었다.

마는 가정환경은 부유했지만 그가 창업할 때 투자금은 본인이 번 돈이 훨씬 더 많았다. 유년시절에 부모님이 동팡시(東方市: 원래 광동성에 속해 있었으나 하이난다오가 성으로 승격할 때 편입됨)에서 일을 했다. 1984년 중학교 2학년 때 가족들과 함께 하이난에서 선전으로 이사를 왔다. 그 후 선전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선전대 공학과를 졸업했다. 부모는 그의 아들이 부자가 되는 것에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다.

1993년 선전대학 졸업 후 그는 선전 룬신통신사(潤迅通訊)에 입사해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엔지니어 일을 했다. 무선호출기 소프트웨어 개발에 전념했으며 연구개발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OICQ의 최초 아이디어가 바로 이때 탄생한 것이다. 룬신통신사 내에 이런 소문이 있었다. 그때 마 씨가 QQ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건의를 했는데 회사 고위층의 반응
은 싸늘했다고 했다. 그들은 이 보잘것없는 것에서 비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기자는 룬신통신사의 중간 간부급이 몰래 그에게 “그때 이 안건을 논의하던 중, 이런 걸 갖고 돈을 받아야 할지 무료로 해야 할 지, 돈을 안 받으려면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야”라고 핀잔을 줬다고 말했다.

룬신통신사의 생각대로 했다면 지금 중국에는 웨이신이 없었을 것이다. 마화텅은 외국의 ICQ의 전망을 통해 중국의 ICQ를 만들어낼 결심을 했다. 그의 대학동창인 장지동(張志東)과 선전텔레콤(深榴電信)의 쩡리칭(曾李靑)에게 찾아가 함께 텅쉰을 창립하자고 했다. ICQ를 모델로 중국식 맞춤형 ICQ인 중국 버전의 OICQ를 만들어냈다. 그 후 OICQ는 QQ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짧은 시간 중국 천만 가정에 보급되었다. 그 후로 QQ게임, QQ회원, QQ공간 등 모두 다 텅쉰에 거대한 이윤을 창출했다. 룬신통신사의 최고 경영자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 QQ가 시장에 나올 때 중국 내에는 시나닷컴(新浪, UC), 중국이동통신의 페이신(飛信), 그리고 외국의 MSN, Skype 등의 온라인 메신저들이 있었다.

그중에 QQ만 이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텅쉰 이용자수와 함께 마 씨의 개인재산도 늘었다. 백만 달러의 투자자를 찾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그 젊은이는 6백억 원(약 백억 달러)의 청년부자가 되었다. 2013년 후룬(胡潤)의 중국부호 리스트에 마는 620억 원의 몸값으로 왕젠린(王健林), 쫑칭허우(宗慶后) 다음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중국 《포춘주간지(理財周報)》는 그를 중국 갑부라고 소개했다. 이 리스트의 다른 부자와는 달리 마는 매우 비관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홍콩 언론매체에서 그에 대한 이런 보도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중국 텅쉰 이용자들은 그가 홍콩 빅 웨이브 만 13번지(大浪灣道十三號)에 4억 8천만 홍콩달러의 호화저택을 구매한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는 언론매체를 대할 때 항상 긴장한다. 심지어 회사 방문고객들에게 PPT발표를 할 때도 역시 해야 할 말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는 심플한 양복에 넥타이는 매지 않고 클래식한 IT남스타일의 안경을 쓴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회사의 대리나 엔지니어쯤으로 생각한다. 직원들은 그를 포니(pony)라고 부른다. 회사의 분위기는 구글(Google)과 비슷하다. 소극적인 성격의 마 씨는 언론매체의 주목을 부담스러워 한다.

중국 갑부인 그가 선전에서 어떻게 국민주택보조금을 수령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때의 일이다. 2010년 당시 이런 소식이 보도되었을 때 그는 293억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빗발치는 비난 여론 때문에 그는 할 수 없이 회사의 입장에서 국민주택보조금을 수령했다. 하지만 그 일은 선전시 정부의 인재 지원정책의 한 일환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텅쉰이 점점 방대해지자 그는 비난과 욕설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텅쉰 QQ온라인 게임 플랫폼이 시장에 나온 그날부터 롄중(聯衆)의 실패는이미 자명한 일이었다. 《컴퓨터세상(計算機世界)》은 텅쉰에 밀려난 롄중의 온라인게임 창시자인 바오웨차오(鮑岳橋)와 인터뷰를 했다. 지난 세기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네티즌이라면 이 롄중이라는 회사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그들은 한때 롄중이라는 울타리에서 포커게임을 하고 체스도 하면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잘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최초로 온라인 게임을 시장에 내놓은 회사다. 한때는 온라인 게임 시장에 포커와 체스게임의 85% 이상을 차지했었다. 그러나 롄중의 기존상품을 모방한 텅쉰 QQ온라인 게임 플랫폼이 시장에 출시되면서 중국 게임 이용자들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였기에 롄중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텅쉰에서 내놓은 게임 ‘매일고고싱(天天酷驪)’은 월 순이익이 1억 원이나 된다.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텅쉰 제품은 해적판’이라는 비판에 대해 한 IT칼럼니스트는 텅쉰의 QQ 온라인 게임 중에 최소한 10개 정도는 타회사의 유명 게임을 모방한 아이템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최고 인기의 웨이신 역시 외국 Whatsapp을 변형시킨 것이고, QQ 온라인 메신저의 전신(前身)인 OICQ의 명칭도 ICQ의 이름에서 따 온 것 이라고 했다. 텅쉰은 가는 곳마다 업계 종사자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논설위원인 롄펑(連鵬)은 “텅쉰은 계속 남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막대한 QQ 온라인 메신저의 사용자와 거대 자본을 앞세워 동종업계 회사들을 힘들게 하는데, 그것을 부당경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텅쉰 애용자들 중 중국 IT업계에서 100% 창업한 회사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본다. 중국 페이스북 런런왕(人人網)과 SNS사이트 카이신왕(開心網)은 미국 페이스북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웨이보도 역시 미국 트위터를 모방한 것이다. 그런데 텅쉰은 제2의 창조와 혁신으로 중국 네티즌의 필요를 더 많이 충족시켰다. 마는 텅쉰을 해적판의 소굴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2013년 12월 9일 오후에 완커(万科) 고위층경영자와 직원 200여 명이 텅쉰 본부를 방문했다. 마 씨는 텅쉰이 보유한 과학기술을 설명했다. 그날 오후 그는 200여 명의 완커 직원들에게 “내 평생에 가장 큰 자부심은 QQ의 클래식한 수신 알림음을 이전에 그가 사용했던 모토로라 무선호출기에서 녹음한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텅쉰은 겨우 열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았다. 발전은 무궁할 것” 이라고 말했다.


출처 | 《亞洲週刊》第28卷2期 (2014年1月12日)
번역 | 차이나 · 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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