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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7  통권 144호  필자 : 윤미자  |  조회 : 3795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돌을 들어서도 쓰시는 하나님

꿈이 없던 어린 시절
한여름 밤 더위에 우리 5남매는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울타리도 없던 가난한 산동네 이웃들은 모두가 가족 같았다. 윗집에 사는 언니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중에 밖에 누워서 놀고 있는 우리들 옆으로 왔다. 달콤한 향기가 콧등을 스쳤다. “언니무슨 냄새야? 향기가 참 좋다!” 언니는 사탕공장에서 사탕을 비닐에 싸는 일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몇 개의 사탕을 포장했느냐에 따라 돈을 받는다고 했다.“ 오늘은 몇 개 포장했어? 얼마나 벌었어?” 순진한 언니는 몇 개를 포장했느니, 얼마를 벌었느니 얘기를 해주었다. 어린 나는 언니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커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언니만큼 돈을 벌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중학교를 다니면서는 내 평생에 항공우표가 붙은 편지를 받아 볼 일이 없을 것이고,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밖을 나가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인데 영어공부가 무슨 소용이겠냐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는 그 어떤 꿈도 없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삶은 곤고하고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그 곤고함이 나의 어깨와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것일까? 사랑이신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하늘을 쳐다보며“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증거를 보여 주세요”라며 말도 되지 않는 기적을 요구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교인들이 얘기하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있다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있거나 없을 것이다. 확률은 각각 50%다. 하나님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하나님이 계신데도 내가 그 하나님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불신앙적인 삶을 살다가 죽은 이후에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하나님에 대하여 소개한 성경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만남
나는 대학교 학과사무실에 사무보조원으로 취직했다. 그런데 그 학과 교수님 몇 분이 내가 취직하기 약 6개월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서 예수님을 만난 감격에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성경공부를 통한 전도를 막 시작하신 터였다. 나는 두 달 동안 신약성경을 두 번 읽었는데 무슨 얘기인지 머리에 하나도 남는 것은 없고 성경을 읽을 때마다 잠이 쏟아지고, 머리가 깨지게 아파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 나를 보시고 교수님 중 한분이 성경을 같이 읽자고 하셨다. 그분이 바로 나의 영적 어머니이시고, 안드레회 초대 회장이신 고(故) 이미라 권사님이시다. 이미라 권사님은 대학교 내 교회에서 대학부 부장을 맡아 지도하셨는데 그 학생들과 한 달에 신약성경 10번 읽기를 하자고 하셨다.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할 때 영적 공격과 방해가 많기 때문에 혼자 읽는 것보다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계산을 해보니 그때 당시 내가 한 달에 신약 10번을 읽으려면 하루에 8시간이상 성경을 읽어야 했다. 한달 동안 최소한 하루 8시간 직장에 근무하고, 3시간 집안일 하고(저녁준비, 빨래, 청소 등), 8시간 성경을 읽고, 5시간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화장실 갈 때까지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었다. 그런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새벽에 눈이 떠지고,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성경말씀의 의미와 뜻은 모르겠지만 내용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성경을 공부하고 읽으며 1년이 흘렀다.
교회도 다니게 되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지식도 생겼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 하나가 있었다. 머리로는 믿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해가 되었지만 가슴속에는 믿음이 없었다. 온 에너지를 쏟아 믿어보려 했지만 내 힘으로는 믿음을 갖지 못했다. 예수님이 마지막때에 구름타고 오실 것인데, 오늘 오실지 내일 오실지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확실히 오실 예수님 맞을 준비가 나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웠다.

사무실 유리 창문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하나님! 저는 예수님 오실 때 휴거되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믿고 싶은데 믿음이 없어요. 제게도 믿음을 주세요” 얼마나 간절했던지 눈물이 다 났다. 그리고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기적보다, 산이 옮겨지는 기적보다, 병자가 낫는 기적보다 더 큰 기적, 이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 하늘로부터 빛이 내 가슴에 쏜 살처럼 박혔다. 그리고 믿음이 생겼다. 분명히 지금까지 눈을 뜨고 살았는데 눈이 밝아지며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만물이 증거 하듯 춤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찬란했고, 바람은 하나님의 숨결 같았다. 나에게 새 삶이 시작되었다.


완전히 변한 나의 삶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은 죄다.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하나님아버지! 저는 너무 부족해서 어른들에게는 전도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멍석 깔아주시면 아이들에게는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전할 수 있도록 전도의 문을 열어주세요.”기도하고 일주일 후에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기도는 하였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기도한 것은 있고 분명 하나님의 응답하심인데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그렇게 전도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영어도 못하고, 배운 것도 없고, 가난한 나는 전 세계를 다니며 전도 할 수 없지만, 내가 키운 아이들 중 선교사가 되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10여년을 눈물과 열정으로 주일학교를 섬겼다.

20년 전에 여름성경학교, 겨울성경학교, 어린이성경공부, 노방전도, 어린이 전도집회, 어린이 아침기도회, 어린이 성가대 지도, 어린이 성가대 전도용 테이프제작 및 배포, 주일예배, 오후특별활동, 교사기도회 등 전도사도 목사도 아닌 돌 같은 내가, 평신도 교사가 주일학교를 총괄하였다. 물론 사례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할 수 있었거나, 할 만 해서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하나님은 항상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해보도록 하셨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시키셨다면 나는 교만해서 내가 했다고 내 의를 드러내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돌 같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선교사입니까?
성경공부를 하며 믿음생활을 함께 하던 대학부원들이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1993년 고 이미라 권사님은 그들 중에 30여 명과 평신도 선교회인 안드레회를 조직하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같이 가진 것이 적은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드릴 때 온 세상에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오병이어의 역사가 있을 것을 믿었다.
일 년에 1회 또는 2회 휴가 기간을 맞추어 우리가 기도하고 후원하는 선교사님의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에 동참하기로 했다. 영어로 성경 읽고, 영어로 기도하고, 영어로 찬양하는 안드레회 모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에 큰 결단이 필요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모임이기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혼자 기도원엘 갔다. 그리고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갔던 것처럼, 나도 영적리더이신 권사님과 함께 선교에 동참할 결단을 하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모임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1997년부터 현재까지 고 이미라 권사님의 뒤를 이어 안드레회 2대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나는 안드레회 회원들과 세계 각국을 다니며 선교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필리핀, 피지, 인도, 인도네시아, 온두라스,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하바롭스크, 태국, 루마니아, 케냐, 인도네시아 등 개인적으로 방문한 선교지도 있지만, 안드레회가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님의 사역지 중 방문요청이 있는 지역에 의료팀, 전도팀, 미용팀 등을 구성하여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동안 기도하며 준비하여 단기선교를 갔다. 선교지 외에도 일본, 미국, 호주, 아부다비, 홍콩, 과테말라 등을 경유하며 그 땅을 밟게 하셨다. 꿈이 없던 가난한 산동네 여자아이가 세계를 품고 다닐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곤 한다.

“선교사님이세요?”

그리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선교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선교사로 불려도 되는 것인가?”


비전
안드레회는 겨자씨 같이 작은 평신도 선교단체이다. 하지만 매주 기도모임을 통하여 스무 곳이 넘는 선교 지역을 품고 선교사님과 선교지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각자 수입의 일부를 모아 선교사님과 선교지의 필요를 후원한다. 또한 단기선교를 갈 경우 경비는 각자 부담한다. 단체의 경비 및 사역비는 후원을 받아 운영한다.
내가 믿음을 갖게 된지 30년, 평신도선교에 헌신한지 20년이 되었다. 그리고 직장을 퇴직한지 3년이 되어가고 있고, 어느덧 내 나이도 만 50세가 되었다. 남은 삶은 온전히 복음을 전하며 살고 싶다. 그 동안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로, 예수님 오심을 예비할 다음세대를 세우는 전도 사역의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며 꿈을 발견하도록 도울 수련장,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오실 때마다 영육 간에 재충전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삶에 지친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기도하고, 말씀 읽고, 예배드리며 쉴 수 있는 기도공간과 숙박시설, 텃밭 등 안드레회 센터를 위해 기도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합당히 여기시면 허락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난 예수님이 참 좋다.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 은혜 위에 은혜로 풍성케 하셨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 부르실 그날까지 내 작은 소원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전하는 것이다.


윤미자 | 안드레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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