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중국선교의 또 다른 현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들이 날로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이제 삼다도가 아니라 사다도(四多島)예요! 돌, 바람, 여자, 그리고 중국인관광객들이 그것들만큼 많은 섬이 되었어요!”라는 소리를 들은 일이 있다. 제주도를 보면, 찾아가서 전도하는 것만이 타문화권선교가 아니고 와 있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도 훌륭한 타문화권선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제주도가 이렇게 중국선교에 귀하게 쓰임 받고, 중국선교의 사역지로 제주도를 택하는 선교기관이나 개인들이 늘고, 「중국을주께로」가 ‘복음의 섬 제주, 중국인 사역’이라는 주제로 특집을 꾸미는 날이 있으리라고 예측한 분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참 오묘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중국교회가이렇게빠르게성장하고, ‘선교중국’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주도는 지금만이 아니라 40여 년 전부터 중국복음화를 위해 알찬 봉사를 해 오고 있었다. 아세아방송이 거기에서 중국을 향해 복음을 담은 전파를 송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아세아방송’인가?
이 글의 제목에 ‘아세아방송’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 ‘아세아방송? 왜 아세아방송인가?’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혹시 ‘아세아방송’이라는 이름을 처음 대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그 점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목에서 밝힌 것과 같이 제주극동방송의 전 이름이, 아니 원래의 이름이 아세아방송이었다. 재단법인 아세아방송과 재단법인 극동방송은 원래는 별개의 방송이었다. 먼저 세워진 것은 극동방송이었다. 극동방송은 1956년 12월 23일에 인천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극동방송을 세운 것은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팀(TEAM)선교회였다. 팀선교회의 정식 이름은 ‘The Evangelical Alliance Mission’으로 번역하면‘복음주의동맹선교회’가 된다. ‘팀’은 영문 명칭의 첫 글자들을 모은 것이다. 처음에는 설립모체의 이름을 따서 ‘한국복음주의방송국’(약칭 팀 라디오)이라는 이름을 5년 남짓 사용했고, 1961년 초부터는 국제복음방송국이라고 하다가, 1967년 5월부터 ‘극동(약칭 FBS)’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아세아방송은 1963년 6월 30일, 제주도에서 방송을 시작하였다. 아세아방송의 설립모체는 미국 LA에 있는 ‘Far East Broadcasting Company(약칭 FEBC)’였다. 그런데 설립모체의 영문명칭을 우리말로 번역하면‘극동방송’이 되기 때문에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은 처음부터 어떤 숙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모양새로, 한편으로는 혼선을 일으키기 좋은 요인들을 안고 출발하게 되었다. FEBC에는 ‘극동방송에 그 이름을 우리가 쓰겠다고 요청하자’는 분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원동방송(運東放送)’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극동방송 측에서 ‘음은 다르지만 뜻이 같아 곤란하다’고 이의를 제기해서 결국 아세아방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극동방송은 1970년대 초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세칭 ‘구원파 파동’이 일어났고, 시설 이전과 확장으로 인한 부채가 늘어났다. 팀선교회에서는 극동방송 매각 또는 허가반납을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77년 1월 1일자로 아세아방송의 설립모체인 FEBC가 ‘공동운영’이라는 이름으로 팀 선교부로부터 극동방송의 운영권을 실질적으로 ‘인수’하였다. 이때부터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은 두 법인, 두 이사장, 한 사장, 한 연주소, 두 송신소의 기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형태의 운영을 해 왔다. 요즘 ‘갑을관계’ 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아세아방송이 법적인 지위나 시설규모, 북방 지역에서의 영향력에서는‘슈퍼갑’이었지만, 인지도는 먼저 세워졌고 수도권에 있는 극동방송이 더 높았다. 그리고 아세아방송이‘겸손한 갑’을 지향했기 때문에 여러 일에 극동방송을 먼저 내세웠다. 두 방송은 2001년 10월 1일부로 ‘재단법인 극동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합병하여 하나의 방송이 되었다. 이에 따라 제주도의 아세아방송은 2001년 9월 28일부터‘제주극동방송’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제주극동방송은 지금도 중국선교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선교의 환경이 예전과 달라졌다. 선교의 채널이 다원화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제약이 따르기는 하지만 현지에서 여러 형태의 직접 선교가 행해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사 통계보고에는 언제나 ‘한국선교사가 제일 많이 파송된 곳은 A국’이라는 대목이 들어 있는데 그 A국이 어느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는 달랐다. 방송이 독보적인 가장 효과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중국을 향해 복음을 담은 전파를 송출하는 방송이 세계에 몇 군데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것이 바로 제주도에 있는 아세아방송이었다. ‘아세아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던 시절에 그랬기 때문에 이 글의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이다.

아세아방송, 어떻게 해서 제주도에 세워졌나?
아세아방송을 설립한 미FEBC는 1945년 12월 20일, ‘안식의항구(Heaven of Rest)’라는 남성사중창단을 기반으로 해서 창설되었다. 설립기금은 천불이었다. 안식의 항구 지도자는 보우먼(Bowman) 박사였는데 그에게는 해군장교 출신인 브로거(Broger)라는 친구가 있었다. 브로거는 2차 대전 중에 항공모함에 승선하고 있었는데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 근해에서 작전 중에 정찰기가 폭우 속에서 무선전파의 유도로 안전하게 귀함(歸艦)하는 것을 목격하고 ‘무선으로 어둠 속에서 헤매는 영혼들, 특히 아세아의 영혼들을 밝은 곳으로 인도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이 영감이 FEBC 창설의 동기가 되었다.

FEBC는 처음부터 중국을 중요한 타깃으로 삼았고 이에 따라 상하이에 제일 먼저 방송을 세우려고했 다 . 브로거가 1946년 봄에 현지에 가서 중국내지선교회(CIM)의 협력을 얻어서 설립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당시 중국은 국공내전(國共內戰)의 와중에 있어서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브로거는 중국에서 설립허가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필리핀으로 이동하여 방송국 설립을 추진하여 1948년 6월부터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다. 브로거는 1954년에 FEBC를 떠나 다른 분야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는 보우먼 박사가 FEBC를 이끌어 나갔다. 

FEBC는 1957년에 중국에서 350마일 떨어진 오키나와에도 방송국(KSBU)을 세워 중국을 향해 선교전파를 송출했는데, 일본은 1972년 5월로 예정된 오키나와의 일본 귀속을 앞두고 이 방송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자기들의 영토에서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송이 송출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FEBC는 마땅한 이전 후보지를 찾기 위해 애쓰던 끝에 제주도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주도는 자유진영 안에서 상하이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는데 상하이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일 뿐만 아니라 FEBC가 첫 방송을 세우려고 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해서 제주도에 아세아방송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지면 관계로, 설립과정에서 있었던 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생략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 1973년 6월 30일의 개국식 광경. 서울에서 KAL기를 전세 내어 손님들을 모시고 내려갔는데 식이 진행되는 동안 공항에서 “기상 관계로 빨리 출발해야 한다”는 독촉전화를 여러 번 해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듣는지 안 듣는지, 초기에는 몰랐다. 그런데…
아세아방송은 한국어를 비롯하여 중국어·러시아어·일본어, 4개 국어로 방송했다. 설립초기 중국어는 오전 5시에서 6시까지 그리고 밤 10시 25분에서 자정까지 두 차례씩 송출되었다. 중요 프로그램은 ‘생명의 말씀’ ‘광야의 안식처’ ‘복음’등 이었다.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FEBC-홍콩(遠東廣播公司)에서 제작했다. 당시 방송 업무는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고 있었는데 문공부에서는 매년 한 차례씩 대외방송 평가를 실시했다. 이 평가에서 아세아방송은 한국에서 송출되는 대외방송이면서도 한국을 소개하는 프로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한국소개(韓國簡介)’라는 프로그램이 각 언어별 방송에 급히 편성되었다. 

아세아방송은 북방선교 전문방송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 강한 출력, 지향성, 공간파(空間波)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250kw의 출력은 민간방송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었다. 한국어와 러시아어 방송을 할 때는 북향, 중국어방송을 할 때는 서향, 일본어방송을 할 때는 동향으로 집중해서 전파를 송출했는데 해당 방향에 있는 마을들의 전화통화가 큰 지장을 받아서 민원이 제기된 일도 있었다. 공간파(Sky Waves)는 전파를 전리층에 반사시켜 멀리 보내는 방법인데 전리층이 밤에만 형성되는 점과 구름의 위치에 따라 방송이 잘 안 들리는 페이딩(Fading) 현상이 약점이지만 아주 효과적인 원거리송출방법이었다. 중국이 ‘철의 장막’이던 시절에는 중국에서 이 방송을 듣는지 안 듣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1969년에서 1978년까지 10년 동안 FEBC가 받은 중국 청취자의 편지는 모두 177통이었다. 

중국에 개방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1978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1978년에 53통의 편지가 오더니 1979년 10,781통, 1981년 13,050통, 1987년 16,048통 이렇게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1995년에는 21,631통의 편지가 왔다. 이것은 아세아방송·극동방송·필리핀의 이바송신소·사이판 등 중국어방송을 하고 있는 FEBC 체인 스테이션들이 받은 편지의 총계이다. 중국에서 오는 편지는 모두 홍콩을 수신지로 하고 있고, 편지에 어느 방송을 들었다고 명기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정확하게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이 제주도 아세아방송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 담당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중국에서 오는 편지통수의 폭발적인 증가는 사람들을 흥분시켰고, 그 내용의 진지함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당시 필자는 극동방송·아세아방송 전도국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전도국장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청취자들이 보내는 편지를 읽고 답장을 보내는 것이었다. 중국 성도들이 보내는 편지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신앙이란 말인가? 신앙의 힘이 이렇게 크단 말인가? 30년의 탄압 정책도, 문화대혁명도 신앙을 이길 수는 없었구나! 초대교회의 이야기가 중국 대륙에서 재현되고 있구나!’하던 기억이 새롭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동북 지역의 재중동포들이 보내는 편지에 얽힌 사연이다. 중국 동포들이 보내는 중국어편지와 관련된 업무는 홍콩에서 담당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 다리 건넌 감동’이었는데 재중동포들의 편지는 아세아방송에서 직접 받아서 처리했다. ‘성경을 보내주오’ ‘신앙생활을 도와주오’ 하는 내용과 함께 이산가족을 찾아달라는 내용이 많았고 적잖은 이산가족들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었다. 

그때는 중국(당시는 ‘중공’이라고 불렀다), 소련, 북한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공산권선교’라고 불렀는데 아세아방송 앞에는‘공산권선교의 기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게 되었다. 공산권 국가 가운데에서도 중국의 반응이 이렇게 뚜렷했기 때문에 아세아방송은‘중국선교의 기수’로 부각되었다.

"제주도와 공산권선교의 관계를 논하시오”
제주의 아세아방송은 처음에는‘아세아방송 제주송신소’였고 본부(연주소)는 서울에 있었다. 서울 사무실은 개국될 때 서울 시청 뒤에 있었다. 그 다음에 정동 CCC 빌딩, 그 다음에 대한일보 3층, 극동방송을 인수한 다음에는 상수동으로 옮겼다. 1993년에 제주 송신소를 ‘아세아방송 제주 본부’로 승격시켰는데 필자가 초대 본부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현재 제주극동 방송 건물을 그때 지었다. 아세아방송이 세워진 자리는 고려후기에 원나라 군대가 주둔해 있던 곳으로서 원병대(元兵臺: 현지주민들은 ‘원팽이’ 또는 ‘원삥대’ 라고 부른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나운 침략군이 주둔해 있던 자리에 그 침략군을 보낸 지역을 향해(몽골과 중국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구원의 진리와 사랑을 담은 선교방송이 세워진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1973년에 송신소 건물을 지을 때 원병(元兵)들이 먹던 군량미가 탄화된 것들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기에 1993년에 제주본부 건물을 지을 때도 ‘혹시나…’ 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아세아방송에 재중동포들을 집중적인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제목이 ‘만주 동포에게’에서 시작해서 ‘나의 살던 고향은’ ‘먼 땅 좋은 기별’ ‘사랑의 가교’여럿으로 바뀌었는데 재중동포들에게 오는 편지의 대부분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었다. 제주본부로 승격된 이후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여기는 제주도입니다’로 바꾸고 편지받는 주소를 제주도로 하였다. “이제 제주도가 중국복음화의 본부가 되었습니다.”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고 싶어서였다. 당시 제주우체국사서함 44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우체국의 담당자에게 “주파수가 1566khz이니 사서함번호도 1566호로 할 수 없습니까?” 하였더니 담당자는 “규정상으로는 안 됩니다.”하고서는 잠시 후에“그렇게 하세요.” 했다. 뒤에 가보니 사서함 44호 표시 밑에 ‘1566’이라고 새긴 아크릴을 붙여 놓았다. 그 뒤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갔더니 담당자가 앞자리에 앉아서 웃고 있었다. 제주의 교회들과 크리스천들의 협력이 이렇게 이모저모로 컸다. 제주본부 건물을 지을 때는 특히 그러하였다. 

제주도에 신학교육 기관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두 학교에서 필자를 보고 “이왕 내려 오셨으니 가르칠 수 있는 과목들을 마음대로 택해 가르치십시오.” 했다. 그 적극적인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선교학도 가르쳤다. 「제주기독신문」에 ‘제주도와 공산권 선교’라는 긴 글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선교학 시간에 이 글을 텍스트로 해서 한 시간 열강을 했다. 시험을 칠 때 “제주도와 공산권 선교의 관계를 논하시오” 라는 문제를 출제했더니 좋은 답들이 많았다. 좋은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면 열을 내게 되는 것 같다. 제주도를 떠날 때 부지사이던 L장로님(뒤에 환경부 장관 역임)이 이런 점들을 치하하는 내용을 적어 전보를 보내주신 것을 받고, ‘어떻게 아셨나?’했다. 사실은 지금도 궁금하다. 지금 “제주도와 중국선교의 관계를 논하시오” 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쓸 것이 참 많을 것이다. 좋은 답을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많은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제주극동방송은 지금도 저녁 8시에서 9시 30분까지, 밤 10시 45분에서 새벽 3시 30분까지 중국어방송을 하고 있다. 많이 변한 중국교회와 중국선교에 잘 적응하며 중국의 청취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송이기를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잊혀져 가는 이름이 되고 있는 아세아방송의 중국선교를 위한 순수한 섬김도 기억해 달라고 중국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유관지 | 북한교회연구원원장, 극동방송이사역임, 《극동방송40년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