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감독 천저이가 연출한《일로 일로》는 제66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수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화권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50회 진마장(金馬奬)에서는 최우수작품상, 신인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4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4년 제86회 오스카상 외국어부문과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하다.
 
2013년 8월말 싱가포르에서 처음 상영한《일로 일로》(이하 일로)의 중국어 제목은 ‘鴦綾不在家(엄마와 아빠는 부재중)’이다. 그리고 영문제목‘ILO ILO’는 필리핀의 지명으로 가정부 테레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많은 필리핀 여성들처럼 테레사도 더 나은 삶을 찾아 싱가포르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그녀는 맞벌이 가정에서 초등학생 자러(家樂, 許家樂분)를 돌보면서 좌충우돌한다. 1997년 불어 닥친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테레사는 실업 위기에 놓인 바깥주인 아더(阿德, 陳天文분)와 둘째를 임신하고도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안주인 훼이링(惠玲, 楊雁雁분), 말썽꾸러기 외동아들 자러와 함께 생활한다. 

감독은 네 살부터 열두 살까지, 8년 동안 필리핀 가정부와 함께 보냈던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재구성하였다. 그는 직접 대본을 열 차례나 수정하는 등 뛰어한 연출력을 자랑한다. 《일로》는 영화감독과 가정부 사이에 있었던 추억을 회고한 것이다. 우리 잡지에서도 다루었던 쉬안화(許鞍華) 감독의《심플 라이프(桃姐, A Simple Life)》(평생 4대 가문을 모셨던 가정부와 영화 제작자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느끼는 이방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 그들과의 충돌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자.

낯선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이 해마다 증가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도 않고 관대하지도 못한 편이다. 그들은 흔히 건설인부로 투입되거나 가정부로 일한다. 현지인들은 외국인노동자들을 멸시, 의심의 눈초리로 보거나 투명인간 취급하여 따돌리고 약자라고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는 아이의 차가운 시선을 통해 현지인이 낯선 이에게 가했던 부조리한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러는 낯선 필리핀 가정부를 보자마자 거부감을 표시했다. 하교할 때 테레사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알고서는 몰래 학교 담을 넘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TV 볼륨을 높여 문을 두드리는 그녀를 모른 척 했다. 뿐만 아니라 문구점에서 테레사에게 구입할 물건을 건네주고는 자신은 몰래 빠져나 갔다. 테레사는 이미 계산된 물건인줄 알고 들고 나왔다가 좀도둑으로 오해받는 수치를 당했다. 게다가 자러가 아버지 차에서 담배를 훔쳐 몇 모금 빨다가 변기에 버렸는데, 훼이링은 테레사가 그랬다며 야단을 쳤다. 뿐만 아니라 자러는 테레사의 머리에서 냄새가 난다고 놀리고, 아더는 팬티만 입고 거실을 오가는 등 그녀를 무안케 했다. 평상시에 그들은 테레사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경제적 고용관계에 기반을 둔 외국인노동자와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고 인격적 모독까지 가한다. 외국인노동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비단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한국의 외국인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가 된 이방인
긴장된 상하관계에서 약자는 강자에게 모욕을 당해도 인내해야 하고, 강자는 약자의 도움을 저평가하며 약자에게 받은 도움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테레사는 어느 날 훼이링의 전화를 받고 자러한테 공부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자전거를 타다가 접촉사고로 팔에 깁스를 했다. 어쩔 수 없이 자러는 테레사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고 심술을 부렸다. 그러나 테레사가 자신의 몸을 씻겨주고 옷을 갈아 입혀주며 음식을 먹여주자 바쁜 엄마에게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느꼈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의 연구에 의하면,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는 유아에게 최적의 편안함과 위안을 주는 어머니, 즉 안아주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어머니를 뜻하며, 아기의 공생적 욕구를 충족시켜 아기가 능동적으로 대상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한다. 학교와 가정에서 문제아인 자러는 테레사의 관심으로 모정을 체험하였고, 사람관계를 회복하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어느새 그녀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고 그녀에게 예쁜 옷을 골라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자러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테레사도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엄마는 묘한 질투심을 느껴 사진을 찍어 줄 사람이 없다며 매정하게 거절했다. 자러가족은 외할머니 생일잔치에 갔다. 친척들이 너무 많아서 한사람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해서 테레사를 테이블에 앉지 못하게 했다. 어린 자러는 식당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맛난 음식을 가져다주며 가족처럼 대했다. 또한 자러가족은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낡은 차가 고장 나서 길에서 멈췄다. 이때 운전할 줄 아는 테레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어려움을 벗어났다. 그러나 아더는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것을 어이없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를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대상으로만 여긴다. 반면에 그들에게 받는 도움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테레사는 자신을 온갖 방법으로 괴롭힌 자러를 훼이링에게 고자질하지 않은다. 오히려 그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자러의 나쁜 행동을 바로잡아 주려고 애썼다. 자러를 친자식처럼 성심성의껏 보살펴 주었다. 테레사 역시 필리핀에서 아이를 낳자마자 싱가포르에 온 엄마였기 때문이다. 테레사의 고향집에서는 자주 돈을 요구하였고 집에 두고 온 아이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아 늘 신경이 쓰였다. 자러가 아파트 옥상은 자살하기 좋다는 말을 하자 테레사는 그런 말을 하는 자러한테 손찌검까지 해서 그의 생각을 바로 잡아주려는 진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낯선 이방인과 밀착된 아들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들의 반항으로 고민에 빠지거나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녀와 동반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엄마는 무능력하다고 자녀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부모가 맞벌이일 경우는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없어 자녀가 방황하기도 한다. 부모가 직장일로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남에게 맡기지만 마음 한 구석의 불안을 내려놓기도 힘들다. 

자러는 엄마가 만든 음식은 테레사가 만든 것보다 못하다고 짜증을 내며 테레사가 만든 비스킷을 꺼내 먹는다. 그러자 엄마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자신이 만든 음식을 싱크대에 내버렸다. 또한 저녁에 테레사가 미용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올 때, 사온 간식을 자러에게 주었다. 아들이 그것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본 엄마는 화가 나서, 저녁에 단 것을 먹으면 몸에 해롭다고 야단치면서 빼앗았다. 부모는 자신이 자녀에게 세상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남길 바란다. 때문에 자녀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줄까봐 두려워한다. 

자러친구가 테레사는 불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놀려대자 자러친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서 테레사는 직장일에 바쁜 훼이링보다 먼저 학교로 달려가 교장선생님께 퇴학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자러의 엄마는 학교에 찾아온 테레사를 보자마자 질투를 느꼈다. 그녀의 옷차림이 마치 엄마 같다고 비꼬며 아들이 가정부와 친해진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 했다. 자러는 테레사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모의 말을 듣고 놀랬다. 자러는 공항에 도착한 택시 안에서 내리려는 테레사의 팔목을 붙잡고 매달리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 손에 꼭 쥐고 돌아왔다. 늘 바쁜 부모의 부재로 외로웠던 자러는 엄마의 사랑을 대신했던 테레사와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맞벌이하는 부모보다 평소 자신을 돌봐주는 조부모의 품을 더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만삭이었던 엄마는 자주 야근을 하였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텼던 아빠는 결국 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더 이상 가정부를 쓸 수 없게 되어 테레사를 내보기로 결정하였다.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자러는 집안에 닥친 경제적인 위기와 사랑하는 테레사의 귀국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러는 전에 당첨되었던 번호를 일일이 수집하며 당첨되는 꿈을 키웠다. 성인에게만 파는 복권을 행인에게 부탁하여 웃돈을 얹혀주고 샀다. 테레사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날 복권이 당첨되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자러 부모는 경제적인 문제에 집착할수록 사기를 당하거나 잦은 해고로 형편이 점점 어려워졌다. 어린 자러도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그릇된 태도를 갖게 되었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세상의 부, 지위와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가정부인 테레사가 보여주었던 모성 즉 가족 간의 사랑으로만 회복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부모가 일상생활을 자녀와 함께 하며, 사랑을 표현할 때, 가족 간의 갈등과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이방인이 남기고 간 향기
자러엄마는 아이가 학교공부에만 집중하길 원했다. 가정부인 테레사는 집안일을 잘 하고 아이돌보는 일에만 집중하길 바랐다. 가정부가 외모에 관심 갖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상대의 감정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자러아빠는 임시직장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주식으로 10여만 달러를 날렸다. 게다가 엄마는 유명강사에게 사기를 당해 위기에 빠졌다. 부부는 가정부 테레사를 필리핀으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테레사의 여권을 돌려주며, 가정부이면서 외모를 꾸미고 자신의 화장품을 썼다고 야단쳤던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끼던 립스틱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그러자 테레사는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일상생활 속에서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먼저 상대의 욕구가 무엇인지 경청하고 공감해주면서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개인적인 습관 차이로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타국의 고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 속에서 초등학생들이 학교강당에 모여 싱가포르 공민으로서 다른 종족, 언어나 종교를 포용하는 공정하고 평등한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자고 크게 외쳤다. 이 자리에서 선생님은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동기생을 구타한 자러의 엉덩이에 회초리를 들어 가혹하게 체벌하였다. 관객은 자러에게 체벌을 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화적인 충격에 빠졌다.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문화차이는 고스란히 개인 간에도 벌어지기도 한다. 자러 엄마는 성묘할 때 천주교 신자인 테레사에게 향을 피우고 절하라며 그녀의 종교를 무시했다. 개인 그리고 민족과 국가 간의 문화차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도를 찾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점진적으로 탐색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족이 붕괴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도덕성의 회복 이 곧 가정을 지키는 길이라고 외친다. 

자러가족은 비좁은 아파트에서 세 사람이 살다 보니 필리핀 가정부에게 개인 방을 제공하지 못했다. 외동아들인 자러와 방을 함께 쓰게 하였다. 자러가족은 도시 속에서 상대적인 가난에 허덕였고 가정부 테레사의 가족은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렸다. 그래서 자신의 아기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타국인 싱가포르까지 와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또 한 번 시달려야 했다. 이 영화에서는 국가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매스를 가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과 오해를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태도로 풀고자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였다. 

영화의 엔딩장면에서는 父子(부자)가 분만실 밖에서 둘째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는 자러가 듣고 있는 음악이 궁금해서 이어폰을 자신의 귀에 꽂아본다. 그것은 가정부 테레사가 남긴 필리핀 노래였다. 한 외국인가정부에 불과했던 테레사는 위기에 처한 싱가포르가정의 정서적 고아였던 자러의 상처를 사랑으로 보듬었다.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자러엄마와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무뚝뚝했던 자러아빠까지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향기를 남겼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던 바울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8-9)고 고백했다.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한국, 그러나 이제는 140만이 넘는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아야 한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외국인노동자과 결혼이주민을 포용하며, 서로간의 갈등과 차이를 극복하고 성숙한 다문화 사회로 도약하길 기대한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