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으로 중국 땅에서 지냈던 많은 시간들이 아름답고, 그립고,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는 중국은 선교사를 추방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비위생적인 문제가 적지 않은 나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중국은 정말 그립고 그리운 고향 같은 곳이다. 중국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올지는 꿈에도 몰랐다. 단 1%의 가능성도 생각 못했다. 그래서 더욱 더 중국이 그립다. 전 세계에서 내 여권을 가지고, 내가 가고 싶어도, 조국에서 여행을 허락해도 갈 수 없는 유일한 나라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그립고도 그리운 나라이다.
그래서 주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원망과 불평, 섭섭한 마음, 쓴 뿌리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나를 거부하고, 비자를 거부해서 입국을 거부하고 나와 가족을 추방한 나라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사랑과 그리운 마음, 고마운 마음이 더 많다. 지금도 누가 중국에 대해서 너무 피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아주 찰나의 짧은 경험을 가지고 폄하하고, 비하하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느새 중국인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따지고 있다. 나는 중국의 어떤 매력에 사로잡힌 것일까?
관용과 여유 중국인의 삶 속에 흐르고 있는 정신은 관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교통 상황을 보면 마음이 힘들어질 수 있다. 트럭, 승용차,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이 다 뒤섞여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 해서 보면 그것이 중국인 것이다. ‘무질서의 질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끼어들 수 있는 여유와 수용’나는 그것을 관용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큰 차, 중간 차, 작은 차, 오토바이와 자전거, 사람이 참 사이좋게 잘 지내고, 제 갈 길을 잘 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언제든지 내 앞에 다른 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이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운전을 하는 것 같다.
중국은 한족이 주류지만 수많은 이방 민족들에 의해서 침입을 당했고, 나라를 내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조급하고 이민족을 배타시하며, 한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몽골족, 만주족이 지배한 원나라, 청나라의 시간들이 길었지만 결국 그들은 다 중국에 흡수되어 지금은 같은 중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관용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인 증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중국인들은 음험하고 속을 알 수가 없다. 언제 뒤통수치고 배신할지 모른다. 뒤도 안 돌아보고 냉혈한처럼 떠나버린다”고 얘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분명히 그렇게 느낄 만한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해가 되는 부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을 더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우리에게 있다. 중국인들은 보통 인간관계를 맺을 때 10단계 정도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고 얘기들 한다.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10년을 차를 마시고, 그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전에는 진정한 친구가 되기가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과정과 특성을 무시하면 스스로 상처를 입게 될 수 있는 것이다.
1단계 정도의 피상적인 관계를 10단계로 오해하면서 마음 속 깊은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는 친구관계를 요구한다면 중국인들은 너무 당황스러울 것이다. 단 한 번의 만남, 단 몇 번의 만남으로 그런 단계로 가는 특별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랜 만남과 많은 만남의 횟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선교는 그 지역에 머물면서 오랫동안 교제하고, 차를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속전속결의 역사를 주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한다. 그런 열매가 있는 선교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중국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중국인들과 접촉하고, 복음을 전하고, 제자가 되고, 사역자가 되기까지는 몇 단계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많은 세월과 시간, 만남의 횟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나오는 관용과 주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문화대혁명을 끌어안고 기다려주기 중국을 여행하고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위생적인 부분과 불친절, 부드럽지 못한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하는 이야기도 꽤 많은 것 같다. 중국선교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중국에 와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신 한 목사님의 고별 설교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국을 사랑하고, 선교사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이 땅에 왔는데, 한국 사람이 나를 향해서 옷 입은 것이 중국인 같다고 하면 바로 한국 옷을 사서 입었습니다. 헤어스타일이 중국인처럼 보인다고 하면 바로 한국 미용실에 갔습니다. 중국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삶에 있어서는 중국인과 다르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일상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단지 설교, 강의, 집회나 모임 때만, 사역을 할 때만 선교사로 산다면 반쪽짜리 선교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왜 그렇게 중국인을 향한 선교사로 살기가 어려울까? 택시를 타거나 식당에 가서 불친절한 대접을 받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해를 못하면 오해하기가 쉬운 것이 우리의 습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의 중국인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중국 친구는“중국의 문화 대혁명은 ‘중국인의 정서’를 빼앗아갔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바로 공개재판과 처형의 운명을 맞이할 수 있고, 또 그 사람을 두둔하거나 변호하면 같은 처형의 길을 가게 되고, 자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공개재판과 처형의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여기면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면 그 이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모든 상식과 질서가 파괴된 상황 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서 살아온 중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삶, 일상을 놓치기가 너무 쉬울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사역을 할 때만 중국인을 향한 사랑과 은혜의 선교사가 되고, 일상생활에서는 중국에 살면서도 중국과 동떨어진 자기만의 삶을 살 확률이 높게 될 것 같다. 문화대혁명의 잔재가 지워지고, 중국인들의 정서가 회복되려면 역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자기 보호의 껍질이 벗겨지려면 세월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시간동안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운 일에 도움을 주는 것, 자신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 정서와 감성의 풍성함을 드러내는 모든 것들이 시간을 요한다. 친절과 부드러움, 따뜻함도 역시 시간이 필요하고, 문화대혁명의 잔재의 아픔들이 씻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여러 가지 반론과 실제적인 증거까지 있는 분들은 글이 편향되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의 말씀은 주께서 내게 주신 말씀으로 요즘 나를 사로잡는 말씀이다. 우리 예수님은‘살려주는 영’이시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님께 순종한다면 어느 곳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살려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의도적으로 중국을 살려주는 말들로 글을 썼다. 추방과 입국 거부의 경험은 인간적으로 보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내 여권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빨강색의 입국 거부 표시를 볼 때 여러 감정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법, 예수법을 따르고 있듯이, 지금 중국에는 중국법이 있고, 그 법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우선 따라야 할 법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계속해서 천국법, 예수법으로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중국을 축복하고 살려주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께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법에 따라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에 충실 할 것이다. 우리가 끝까지 살려주는 영의 역사에 순종할 때 중국법도 천국법, 예수법을 따르게 되리라 믿는다.
중국선교에서 선교중국으로 선교사의 가장 큰 목표는 선교지가 선교사를 받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선교사를 파송하는 지역이 되는 것이다. 중국선교에서 선교중국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해 온 세월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께서 이렇게 중국선교사를 불러내어서 각 나라로 재배치하시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20년 베테랑 선배 선교사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이 모든 것을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재배치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추방도 주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중국에 있을 사람과 나와야 될 사람을 계획하고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든 중국선교사님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길 소망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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