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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28  통권 142호  필자 : 최중  |  조회 : 2432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비전만큼 살고 기도만큼 이루는 길


나의 작음을 알고
15년 쯤 전인 것 같다. 처음 베이징에 여행을 갔다가 한 선교사님이 주관하시는 금요심야 기도회에 갔다. 그곳에서 이해가 안 되는 특이한 모습을 보았다. 공안에게 들키면 안 됐기에 살벌한 분위기였고 통성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밖으로 새나가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는 선교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하나님 지금부터 중국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기도가 흘러 나왔다. 그 뒤로 지속적으로 중국선교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 선교여행을 했다. 특히 신학교를 방문하면서 이 마음은 더욱 선명해졌다. 공안이 뜨면 도망을 가야하는 긴장감 속에서 창고 같은 건물에서 합숙하며 공부하는 청년들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한A국에서 사역할 때와 는 분명히 다른 감동을 느꼈다.
 
그러던 중 2009년 중국에서 신학교 교수 사역을 하고 있는 한족 사역자와 베이징에서 가정교회를 섬기고 있는 전도사를 만났다. 그들과 사역을 나누는 중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쓰임새를 비교하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신앙경력과 훈련 정도, 학력 등에 있어 나에 비해 훨씬 부족했고, 경제적인 상황도 훨씬 열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역의 양과 질은 나보다 많이 앞서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꼭 필요한 사역에 쓰임 받고 있었다. 작지만 사업체도 운영하면서 신앙생활 40년에 젊은 장로로, 교회의 선교위원장 사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사역자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나고 보니 그건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과 생각 속에 도전을 주신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앉아 있는데 우리 집 식당의 원목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밥을 먹을 때 외에는 늘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식탁의 모습에서 나하고 비슷한 초라함이 느껴졌다. 그때 그 식탁에 앉아 복음을 전한다면 식탁의 쓰임새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한국에 유학 온 중국 학생들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중국을 위해 기도하던 내게 주신 귀한 생각이었다. 나는 식탁을 향해 “너도 나처럼 쓰임새가 무척 초라하구나, 이제부터 내가 너의 쓰임새를 높여 주겠다” 라고 선포하고 부산대 교수인 아내에게 중국인유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중국인 학생을 한두 명씩 만나 내가 훈련 받은 ‘전도폭발’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부산대에 중국인유학생이 몇 명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내가 받은 대로라면“당신에게 배우는 중국인유학생이 몇 명 있나?”라고 질문을 해야 했는데 받은 비전에 비해서 덩치가 큰 질문이었다.


내 마음에 두신 포석(布石)
이쯤에서 중국인유학생 사역을 하면서 크게 와 닿은 말씀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기도와 관련된 빌립보서 4장6-7절 말씀이다.“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기도에 대한 응답이 지금껏 알고 기대하던 것과 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도하면) 하나님(성부)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성자)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성령).”즉 내가 기도하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과 마음에 그분의 마음을 품도록 하고 나의 생각을 다스리시는 것이 응답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사역을 통하여 이 말씀을 깨닫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서 선교도 사역도 결국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을“성령님이 내 마음에 두시는 포석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바둑을 둘 때 하수는 왜 그곳에 포석을 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고수가 한 점 한 점 둔 포석이 나중에 선으로 연결되고 결국 바둑에서 이기는 결과를 보게 된다. 그렇다. 선교는 전투적인 곳이니 하나님께서 두시는 생각의 한 점 한 점(앞으로 포석이라고 얘기하려고 한다)을 순종하며 반응하며 한걸음씩 따라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벌써 그 포석이 여러 군데에 찍힌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중국인유학생 사역의 결과보다는 이 포석을 증거하고 싶다.

 
아내는 부산대에 중국인유학생이 1500여 명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한두 명씩 만나서 해야 할 사역이 아니었다. 2010년, 우리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우리가 섬기고 있던 쿤밍의 신학교에 여름특강을 위해 식구 모두가 성경, 영어, 음악 강사로 섬기기로 했다. 그때 쿤밍신학교 교장이신 김○○ 선교사님이 10월 초에 한국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부산대 1500명의 중국인유학생들을 품게 하신 성령님이 또 하나의 포석을 내 마음속에 두셨다. “선교사님, 제가 10월 8일에 부산대에서 중국인유학생을 위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섭외해 볼 테니 그날 5분 정도 중국어로 메시지를 전해 주십시오” 라고 요청하여 선교사님의 약속을 받았다. 이전에 생각치도 않았던 계획을 쏟아낸 것이었다. 이 부분도 분명한 포석이었다. 왜냐면 내가 아는 교수는 아내뿐인 상황에서 이런 모임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몇 초 동안 내 생각을 주관하신 분이 문화행사를 생각하게 하셨고, 1500명의 중국인유학생들을 만나는 접촉점을 생각하게 하셨으며, 5분 정도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하는 그림을 그리게 하신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런 계획을 가지고 아내는 부산대 신우회 회장과 부회장님을 같이 만났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신 것 같네요. 우리가기도해오던 바입니다.”라는 답을 얻었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이 바로 접수되었다. 그래서 ‘중국유학생의 밤’(10월 26일로 변경되어 부산대 교수 신우회 주관으로 부산대 본관 대강당에서 150여 명이 참석했다.)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 모임을 준비하던 중에 부산대 대지 안에 일반건물인 쇼핑센터의 학원 강의실을 주일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곳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때 또 다시 성령님은 중요한 포석을 두셨다. “그곳을 중국인유학생교회로 하여 바로 예배를 시작해라.” 이 명령에 따라 교회개척의 그림을 그려 주시며“전도대상자인 중국인유학생이 있고, 교회가 있으니 목양자로 네가 가서 섬겨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때 잠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젊은 장로로서 박수를 받아 가며 하던 교회 안에서의 사역이었다. 또 교회 안에서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일도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의 생각을 이끌어가시던 하나님의 강력한 포석 앞에서 그런 이유들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예, 하나님! 저희 부부가 섬기겠습니다.”

목사가 아니지 않느냐 라는 브레이크도 아무소용이 없었다.

“그래, 중국식으로 하자”

이미 내 마음속에 중국의 두 성도 사역자에게서 받았던 포석의 힘이 있었기에 결단할 수 있었다. 아내와 합의하고 본 교회 목사님의 동의를 구하여 2010년 그해 마지막 주일 예배에서 ‘부산대 중국유학생 예배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이로써 부산대 교수신우회 사역의 일환으로 두 교수의 가정이 위임을 받고 2010년 10월 10일 부산대 중국인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원 강의실에서(지금은 그 건물이 이랜드 그룹 NC백화점이 되었는데 소극장을 예배당으로 쓰고 있다) ‘부산대 중국유학생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장로에서 선교사로 섬기게 되었다. 이때 또 중요한 것은‘하나님의 파송장을 받았는가?’였는데 사역 시작 한 달 전 쯤 말씀 묵상을 통해 파송장 말씀을 받았다. 26살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에 붙들린 삶을 사는 복을 받게 하셨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뚜렷한 말씀(사 42: 1-9)으로 비전을 주셨다. 이 말씀을 주신 이후로 나는 한 달 동안 계속 그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기도했다.


새로운 시작
‘중국 유학생의 밤’행사와 함께 예배가 시작되면서 개척목회도 시작되었다. 전혀 새로운 영역의 사역이지만 흥분과 기대 속에 주신 비전을 열어 나갔다. 교수 두 가정이 돌아가면서 밥 당번을 하고, 설교도 하고, 거실에서 하고 싶었던 개인전도, 양육훈련, 셀 모임, 1박2일 수련회, 전인치유수련회 등을 해 나갔다. 학교 주변 교회들의 동역으로 각 단과대별‘전도초청 만찬회’등 유학생들에게 신앙적인 도움을 주며 전도하는 일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아내와 나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기쁨을 나누는 동역자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이 있다. 사역을 시작한지 3개월 쯤 지난 어느 날 아침, 말씀을 묵상하다가 다니엘서 9장 19절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해 하시옵소서” 이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하나님 제가 하나님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며 하나님을 기다렸다. 그때 “네 사무실을 옮겨라”라고 말씀하셨다. 조그만 내 사무실은 부산대에서 차로 25분 거리에 있었는데 유학생들이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으로 옮기라고 하셨다. 이전에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은 것이었다. 명령에 곧 “예, 알겠습니다” 라고 응답하고, 학교 근처에 작은 빌라를 구했다. 그 당시에는 그저 학생들과 만나기 쉬운 위치라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집은 너무나 필요한 공간이었다.

예배실을 주일에만 빌려 사용하는 형편이었기에 예배시간 말고는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는데 바로 이곳이 센터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큰방을 회사의 사무실로 하고 나머지는 세미나 룸을 만들고 주방과 거실을 이용하여 예배 후 밥을 해 먹이고, 셀 모임을 했다. 우리의 진정한 처소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근무하면서 개인전도(전도폭발)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보기도를 해 주기 위해서 명단을 적고 있는데 3년 반 동안 같이 밥 먹고 전도를 한 중국인유학생들이 110명이 된다. 이 중 결신율이 75-80%정도나 되니 이는 수지맞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이 중에는 한국에 관광 오신 학생들의 부모가 다섯 분 포함된다(3분 영접기도). 이는 자청하여 하루 부산관광을 시켜드리면서 맺은 결실이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는 명령에 따라 지금까지 6회에 걸쳐서 40명이 세례를 받았다. 한 학기 단위로 양육반, 성경공부반, 제자훈련 1, 2단계 등 모두 4단계의 훈련 시스템으로 교육하고 있다. 중국인유학생 예배의 첫 삽을 뜨게 했던‘중국인유학생의 밤’행사는 매년 실시되어 2013년 10월에 300여 명의 학생이 초청되어 4회째 진행했다. 이는 문화행사와 뷔페 식사(학교 주변 교회의 도움)를 통해 전도의 1차적 접촉점으로 활용되는 행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개인적인 쓰임새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된 중국유학생 사역을 하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중요한 부분을 많이 발견했다. 첫째, 이들은 중국의 지도자가 될 인재들이므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서 중국의 어두운 선교역사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중국의 복음화율이 7%라고는 하나 주로 저소득층이거나 시골에 쏠려 있어 상대적으로 중국의 유복한 환경에 있던 이들은 복음의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넷째로 한국에서 하는 사역이니 비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공안의 두려움이 없다. 여러 가지 다른 요인도 많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중국인유학생 예배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패러다임
이제 내 앞에 열린 비전에 대해 쓰면서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전국의 대학에 산재해 있는 중국인유학생 6만여 명을 어떻게 전도할까? 지금까지의 사역을 통해 효율적인 유학생선교를 위한‘1/3 전략’을 발견했다. 첫째 1/3은 이 사역을 기독인교수들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교수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에게 교수의 말은 곧 법이다. 그리고 1/3은 학교 가까운 곳에 예배처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1/3인 학교 주변의 교회와 협력 사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한국 학생들이 아니니 긴장감이 없는 큰 장점이 있다.

이것은 사역을 시작한지 6개월째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셔서 세운 전략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협력 사역으로‘전도 초청 만찬’을 하였다. 교수들이 각 단과대의 학생들을 모이게 하고 학교 주변 교회로 초청해 식사와 게임, 간증, 그리고 목사님의 복음 제시 등을 통하여 전도한다. 모임이 끝날 때 쯤 설문조사를 해 기독교나 교회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선별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전도하는 전략이다. 현재 다섯 교회에서 실시했는데 수확이 컸다.

그래서 이러한 비전을 품고 기도하던 중 내가 소속 되어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남전도회 전국연합회’가 이 선교 전략에 동의하여 학교 앞 예배처소를 마련하는 1/3을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건국대학교 신우회 교수님들이 부산대 중국유학생 사역의 전략을 듣고 1/3에 동의했다. 이렇게 2012년 9월 13일, 건대 북문 가까이에 64평‘글로벌 비전센터’가 설립되었다. 지금까지 기독교수들이 유학생 사역의 중심에 서서 이 예배처소에서 행복하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더불어 감사한 것은 학교 내 16개의 선교단체가 이곳을 사용하여 성경공부 하고 예배를 드린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국남전도회에도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이 1/3 사역을 각 교회와 대학에 알리고자 유학생 조직인 코스마선교단체와 협력하여 2013년 12월 6일 우리나라 대학의 메카인 신촌지역에서 교수님들과 교회 선교 지도자들을 모시고 “신촌 지역 유학생선교 포럼‘을 열었다. 또 감사한 것은 건대 사례를 들은 충남대의 한 교수님이 비전을 품고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을 남전도회가 알게 되어 유학생 예배처소인 ‘글로벌 비전센터’를 계약하고 후원하는 협약식을 1월 27일에 가졌다. 그 외 개인적으로 방문했던 창원대, 동아대, 공주대, 한국교원대 교수님들 중에서도 유학생 사역을 시작하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사역이 30배, 60배, 100배로 커지는 역사를 확인하고 있는 요즘이다. 분명한 것은 말씀이 결실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아직도 주신 비전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의 방법대로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두시는 포석에 반응하며 순종하여 그분이 가게 하시는 길을 열심히 걷고 싶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면서 말이다.

 
나는 중국유학생 사역을 거실에서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부산대학교로 옮겨 주셨다. 그리고 부산대 사역을 샘플로 취하셔서 전국 대학교와 교회로 가게 하신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글을 읽으신 독자들은‘필자가 중국말을 잘 하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직 “쎄쎄” 밖에 할 줄 모른다. 유학생들이 한국말을 알아듣는다(물론 설교를 할 때는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 통역을 세운다). 또 다른 예상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중국 관련 사업을 하겠지” 전혀 아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느끼는 게 또 있다. 성령님이 포석을 두면서 시키신 사역이 분명하다. 그래서 쓰임 받는 자로서 무척 즐겁다. “사람은 비전만큼 살고 기도만큼 이룬다.” 아멘!




최중 | 부산대 중국인유학생 선교사, (유)동성기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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