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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통권 141호  필자 : 우웨이웨이(吳微微)  |  조회 : 2885   프린트   이메일 
[특집 플러스+]
중국교회 주일학교 발전사
-주일학교 교재출판을 중심으로

중국교회 기독교교육의 발전 단계 
맹아시기: 1910년 이전 
1848년 3월 5일 메이교회(美以敎會) 선교사 커린쓰(柯林斯·J.D.Dollins)가 푸저우(福州)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한 주일학교는 최초의 주일학교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주일학교는 중국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9세기말에 이르면 1/8 정도의 교회에 주일학교가 있었다. 초기 주일학교와 기독교교육 사역은 대부분 선교사들이 감당했다. 그들은 교사로 가르치면서 또한 중국인의 협력으로 주일학교 교재를 번역, 출판했다. 1877년, 모리슨이 중국에 온 지 70년이 되었을 때, 중국교회는 이미 10여 종류의 새신자양육 교재를 출판했다. 

급속한 주일학교의 성장은 중국선교사 100주년 대회(1907년)에서 전국의 주일학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21명의 선교사로 구성된 주일학교위원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09년에 출판한《국제주일학교과정(國際主日學校課程)》에는 60페이지에 달하는 교사계본(敎師季本)과 부록으로는 학생용 그림교재, 성경요절암송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교재는 출판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교회는 주일학교 사역의 발전에 온 힘을 다했다. 1910년 4월 2일, 주일학교 위원회는 상하이(上海)에서 주일학교학생 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는 1200명에 달했으며 1910년 말 전국의 주일학교는 1832개, 학생은 73000명에 달했다. 또한 다른 두 기관인 기독교남청년회(基督敎男靑年會)와 기독교여청년회(基督敎女靑年會)도 중국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이 두 기관은 모두 기독교교육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다른 도시에‘시회’(市會)를 설립하고, 중학교와 대학교에‘교회’(校會)를 설립했다. 

이 맹아시기의 기독교교육 활동은 중국교회가 기독교교육, 특별히 주일학교에 대해 초보적인식과 관심을 갖게 했다. 

초창기: 1911-30년 
1911년부터 중국주일학교연합(中國主日學合會) 지도자와 영국주일학교연합회[英國主日學合會·普世主日學聯會(World School Bssociation)의 분회 중 하나] 도움을 받아 중국교회 주일학교 사역을 추진했다. 그 후 20년간, 이 연합회는 교재출판과 교사훈련에 있어서 중국교회에 큰 공헌을 했다.

→ 교재출판: 1911년 이후, 국제주일학교과정 중에‘통일과정’(統一課程・Uniform Lessons)과‘분급과정’(分級課程·Graded Lessons)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 두 과정, 특별히 통일과정은 교회에서 환영을 받았다. 1915년까지 각 교회에서 분급과정 사용자는 12000명, 통일과정 사용자는 8만 명에 달했다. 이외에 주일학교연합회는 교육 간행물을 출판했다. 그중에 아동 월간지《복유(福幼)》, 청년 월간지《청년지우(靑年之友)》, 계간지《성경공부일조(査經一助)》등을 출간했다. 많은 교회들의 특별한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교육적인 잡지와 서적을 출판했다. 상하이에서는 교사지침, 학생공과, 학생숙제용 교재가 포함되어 있는 어린이 주일학교 교재를 출판했다. 

중국주일학교연합회는 주일학교 사역의 발전을 위해 1918년 내지회(內地會·China Inland Mission)와 협력하여 주음(注音)추진위회을 조직하고, 문맹자들에게 주음부호(注音符號) 성경을 가르쳤다. 이 위원회는 중국인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목표로 삼았다.

→ 교사훈련: 중국주일학교연합회는 교사의 소양을 높이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도 다양한 교사훈련 활동을 실시했다. 1915년 이 연합회는 주일학교교사 총기학교(主日學敎師電期學校)를 계획했다. 8주 과정의 이 총기학교에서는 종교교육법과 주일학교 운영방법 등을 가르쳤다. 참가자는 각 성(省)과 각 교파(宗派)의 대표자들이었다. 

중국주일학교연합회는 교사훈련을 위해 교사용 참고도서를 사용했다. 이 연합회는 1911년에 침례회출판사의 주일학교사범학교수업(主日學師範課), 주일학교요강(主日學要綱) 및 화서성교서회(華西聖敎書會)의 어린이를 가르치는 요결 등의 책을 사용했다. 

1911-30년은 중국 기독교교육의 초창기이다. 중국주일학교연합회의 지도 아래 중국교회의 주일학교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1930년까지 주일학교 학생 수는 259339명에 달하였다. 연합회에서 출판된 통일과정을 사용하는 사람도 200000명에 달하였다. 

발전시기: 1931-37년 
1931년 7월, 상하이성요한대학교(上海聖約翰大學)에서 전국종교교육회의(全國宗敎敎育會議)가 열렸다. 중화기독교교육추진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이 중화기독교교육추진회는 전국 기독교교육 사역의 통일을 위해 두 가지 중요한 책임을 담당하게 됐다. 즉 전국기독교협진회(全國基督敎協進會) 아래 기독교교육위원회를, 중화기독교교육회 아래 기독교교육협회를 두었다. 1932년부터 이 중화 기독교교육추진회는 또 세계주일학교연합회 중국분회가 된다.

→ 과정발전: 모든 교회의 기독교교육에 필요한 과정교재의 발전을 위해 이 중화기독교교육추진회는 12개의 과정교재 소그룹을 구성했다. 각자 기독교교육 사역의 자료를 디자인, 편집 및 출판을 분담했다. 예를 들면 주일학교 소그룹, 방과 후 어린이성경반, 부모교육 소그룹, 농촌 청년 및 성인 소그룹 등이다. 중화기독교교육추진회는 기독교교육의 교육성(敎育性)을 중요시 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실천적 삶을 강조하여 실천 중심의 교재를 편집했다.

→ 지도자 훈련: 중국교회는 토착적이고 총체적인 기독교교육의 발전을 위해 인재가 필요했다. 1935년 여름, 중국기독교교육추진회는 장시(江西)에서 기독교교육회의를 열었다. 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독교교육자 웨거얼(Luther Weigle, 1880-1976) 박사였다. 

참가자는 전국 교회지도자, 기독교교육 및 신학교육 사역자 수백 명이었다. 웨거얼 박사는 중국교회는 남녀 평신도를 훈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전국 교회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내지회, 순도회(循道宗), 성공회(聖公宗), 신의회(信議宗), 그리고 중화기독교회 등은 다른 지역에서 다른 형식의 봉사자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학교, 단기훈련반, 교수과정과 전문인훈련 등이 있었다. 

7년간의 중국교회 기독교교육 사역은 전면화(全面化), 교육화(敎育化) 및 토착화(本色化)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독교교육은 주일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조직적인 훈련을 실시했다. 

혼란기 1937-49년
이 시기에는 중일전쟁(中日戰爭·1937-45)과 국공전쟁(國共戰爭·1945- 1949)이 있었다. 중국교회는 기독교교육 사역을 포함한 모든 사역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항전시기에 후방 교회가 필요한 주일학교교재는 총칭(重慶)으로 이주한 중국주일학교연합회에 의해 공급을 받았다. 교회의 70%가 항전시기에 중국주일학교연합회에서 출판한 교재를 사용했다. 

1945년에 종전 이후 기독교학교와 기관은 복구되기 시작했다. 광학회(廣學會), 주일학교연합회 및 종교출판사는 원래 주소로 돌아가 사역을 다시 시작했고 주일학교교재도 다시 공급을 받게 되었다. 일부 교회와 기독교학교는 기독교교재를 직접 출판하거나 출판계획을 세웠다. 

1937-49년 시기, 파송교회로부터 인재와 물질적인 후원이 감소했다. 그래서 중국교회의 기독교교육 사역은 토착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청년 사역의 문이 크게 열렸다. 많은 지식청년들은 이 시기에 예수님을 만났으며 헌신했다. 이것은 신도와 전도인의 소질을 높여 주었다. 

전환기: 1950-59년 
1949년 후, 중국 대륙에서 기독교교육 사역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사역은 점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주일학교과정 같은 종교교재 출판부는 점점 줄어들었으며 정지당했다. 또한 주일학교 사역과 청년 사역도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1950년 전후, 많은 선교사와 중국 성도, 교회 사역자는 중국을 떠나 홍콩, 타이완, 동남아로 떠났다. 대륙의 신학교, 출판사와 교회 기관도 홍콩과 타이완에 가서 다시 시작했다. 해외화교교회의 새로운 필요를 섬기게 되었다. 

1950-60년은 해외화교교회의 성장이 활발한 시기였다. 홍콩과 타이완의 성도 수는 매년 13%가량 성장했다. 이런 새로운 국면에 호응하여 홍콩, 타이완과 동남아 각지에서 새로운 신학교와 성경대학이 설립되었다.

침체와 해외발전시기: 1960-80년 
1961년 7월, 중국 대륙에서《천풍(天風)》이 어린이 주일학교를 비판한 이후, 주일학교 사역은 거의 20년간 침체했다. 그러나 오히려 해외화교교회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일학교 교재의 출판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이었다. 모든 번역된 교재를 중국인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도록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예를 들어 1960년 타이완에 있는 중국주일학교협회는 국제주일학교과정의 강요에 의해 토착화교재인《도광교재(道光敎材)》를 편집했다. 선교사와 화교 성도가 함께 편집한 통일교재는 인기가 많았다. 화교교회의 첫 번째 주일학교 교재 출판물은 《가음교재(佳音敎材)》였는데, 이 교재는 1961년에 홍콩 신이회연합출판부 (현재는 도성출판사·道聲出版社)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교재는 나이에 따라 3단계로 나눠진 단체분급제(團體分級制·Group-graded) 어린이용 교재이다. 

1968년 홍콩에서 동남아의 7개 화교신이종교회가 동남아신이종기독교교육 위원회를 조직했다. 화교신이종교회는 사역에 필요한 《신생명교재(新生命敎材)》라는 기독교교육교재 출판계획을 세웠다. 그중에는 주일학교, 초중학교종교수업, 새신자반교재, 성악교재, 양육교재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73년에는 고등부도 사용할 수 있는 《신생명청년교재((新生命靑年敎材)》도 출판되었다. 이 교재는 실천 중심이며 내용이 풍부하고, 중국 특색적이다. 

이 시기에 화교교회의 출판사도 유치원, 초중학교종교교재, 방과 후 성경반 교재 등 중국어 기독교교육교재를 출판했다. 그 외에도 1972년부터 기독교문예출판사는 《복유유치원교재》 등을 출판했으며 침신회출판사, 홍콩만국어린전도협회 또한 다양한 주일학교교재를 출판했다. 

1970년대, 해외화교교회는 기독교교육 사역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었다. 많은 교회들은 청년과 성인 주일학교를 설립했다. 이 시기 영어성경 공부반 기독교교육 사역자 등은 소수인원이었고, 그 외는 화교교회 사역자와 성도였다. 인재양성을 위해 많은 교회와 기독교교육 기관은 교사훈련반과 기독교교육 교사 양성반을 열었다. 신학교도 기독교교육학과를 개설하여 전문적인 기독교교육 인재를 양성했다. 

도전기: 1981년 이후 
1979년 9월부터 중국 대륙은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다. 관방(官方)비준의 교회들은 다시 시작했다. 이는 화교교회의 기독교교육 사역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1984년부터 홍콩은‘1997문제 명랑화(1997問題明朗化)’때문에 새로운 국면에 직면했다. 화교교회 또한 기독교교육 사역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80년과 90년대 해외화교교회 주일학교는 각지에서 크게 발전했다. 교회 주변의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와서 공부했다. 많은 비기독교신자 부모들도 주일학교를 인정하고 자신의 아이를 주일학교로 보내주었다. 교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일학교를 통해 아이들의 부모에게 복음을 전했다. 

중국의 일부 지역 교회에서는 삼자교회든 가정교회든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원저우(溫州) 지역의 주일학교는 크게 발전했다. 《도광(道光)》과《복광(福光)》의 교재를 사용했다. 이 교재는 후에 중국 각지에 배포되었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원저우 지역에서만 주일마다 모이는 어린이주일학교의 학생 수는 5만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해외에서 주일학교 교사가 중국에 들어와서 주일학교교사를 훈련시켰다. 21세기 중국은 기독교교육을 중시했으며 신학교와 훈련 사역의 꽃을 피웠다. 


우웨이웨이(吳微微) | 원저우 어우하이주(溫州歐海區)지도자
번역 | 리리·본지 중국어자료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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