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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통권 141호  필자 : 장제핑(張矯平)  |  조회 : 3720   프린트   이메일 
[차이나 윈도]
갈 곳 없는 중화민국 국기

영하 1도. 타이완유학생 쉬이안(徐宜安)은 친구와 함께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대학교의 3번 강당 입구에서 두 시간째 장쉬안(張懸)을 기다리고 있었다. 쉬이안은“타이완을 떠나오면서‘남국의 아이’(南國的孩子)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고 적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장쉬안이 타이완의 원주민을 위해 직접 쓴 것이다. “너는 남국에서 온 아이. 사람들이 너를 예뻐하고 미워하는 모습이 너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먼 옛날이야기가 있네. 너의 손바닥에 하나님의 인자함이 새겨져 있네.”고향을 떠난 타이완 젊은이들에게 이 노래는 그들의 고향인 포모사(福爾摩沙, Formosa)이다. 

콘서트가 시작되고 장쉬안이 서너 곡을 부른 뒤에 무대 맨 앞에 걸려 있던 중화민국 국기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하며“오늘 누가 국기를 가져왔네요.”그녀는 거침없이 국기를 받아들고 펼치면서 영국팬들에게 “나는 타이완에서 왔어요. 이것은 우리나라 국기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장난치듯이“이 국기로 옷을 한 벌 만들어 입어야겠네요. 그러면 언제든지 이 국기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라고 영어로 말했다.

그때 무대 아래쪽에서 수근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국기(國旗)라고?!”“아직도 본토에서 온 학생들이 있는 거야(There are still students from Mainland!)”장쉬안은 그 소리를 무시한 채 다시 웃으면서 중국어로“여러분 안녕하세요? 타이완입니다.”라고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국기를 내려놓고 다시 말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우리나라 국기를 보게 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정말 기쁩니다.”그때 누군가가“오늘은 정치 얘기는 그만 합시다.”라고 소리쳤다. 이 한마디는 장쉬안을 흥분시켰으며 또 양안(兩岸: 대륙과 타이완) 사람들 간 설전을 벌이게 했다. 

이번 콘서트에 참석한 대륙에서 온 많은 팬들은 장쉬안에게“실망이 컸어요.” “너무 슬픕니다. 내 맘속에 있던 장쉬안은 이미 죽었습니다.”라고 인터넷에 올렸다. 또한“장쉬안이 어쩌다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게 되었는지”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대륙유학생들을 분노케 한 것은 ‘청천백일만지홍’(靑天白日滿地紅)기와‘국기’라는 단어이다.

만약 대륙에서 온 가수가 콘서트에서 ‘오성홍기’(五星紅旗: 대륙 국기)를 팬들에게 보여준다면 대륙유학생팬들은 “거참, 정치 얘기 좀 꺼내지 맙시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오성홍기는 그들이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던 국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이완은 당연히 중국 땅의 일부라고 어릴 적부터 학습해왔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생각하는 중국은‘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고 타이완의 국민당은‘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해협양안은 하나의 중국임을 견지하는 원칙(海峽兩岸均堅持一個中國之原則)’은 대륙 사람들이 언론매체와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었던 ‘92공동협의안’(九二共識: 1992년 중화민국 대륙 위원회와 중국공산당의 협의 하에 타이완과 대륙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공통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을 이름)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 92공동협의안이라는 협상은 과거에 미처 못 다한 사안이 있다는 점을 간과했음을 그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은 1995년 당시 타이완의 해협양안교류재단(海基會)의 자오런허(焦仁和) 수석비서가 제기한“하나의 중국이지만 각자 다른 국가명칭인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해준다(一中各表)”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당국은 이러한 ‘일중각표’라는 개념을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만“양안이 사무를 의논할 때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면 그 협상안건의 내포된 뜻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콘서트에서 공연했던 가수 장쉬안이 바로 그 당시 타이완 해협양안교류재단 수석비서인 자오런허의 딸 자오안푸(焦安溥)임을 알고 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국은 중화민국이라고 배우면서 성장했다 
중화민국의 국기‘청천백일만지홍’은 장쉬안의 성장과정에서 어떤 의미였을까? 타이완의 청년 학자 쩡보원(曾柏文)은 인터넷에서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 “장쉬안은 1949년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건너 온 와이성런(外省人: 부모님이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건너 온 사람들) 가정에 이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면서 성장 해 온 것입니다. 대륙에서 태어난 친구들은 본인들이 어떻게 어릴 적부터 오성홍기를 국기로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는지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장쉬안의 성장과정은 여러분과 달랐습니다.

그는 대륙이 날로 번성하는 타이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이 국기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이것을‘장제스 총통 독재정권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타이완의 야당인 민주진보당은 녹색 타이완 진영의 깃발을 대신 달고 있습니다. 또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이 중화민국 국기는 국제적인 행사나 대회 때에도 거의 얼굴을 내밀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성장한 여러분은 아마도 이런 느낌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콘서트에서 중화민국 국기를 마주한 장쉬안의 대륙팬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적지 않은 팬들이“우리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어색해서 아무 말도 하기 싫어요.”라고 했다. 대륙 사람들은 왜‘중화민국’에 대해 이토록 생소한 것인가? 그들은 또 다른 하나의 중국이라는 국가명칭과 또 다른 하나의 국기는 그저 강경한 타이완 독립인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것은 중화민국 국기를 든 장쉬안을 보면서 대륙의 네티즌들은“타이완 독립분자들은 대륙에서 꺼져버려라”라고 외친다. 그리고 장쉬안이 네티즌들은 장제스 총통과 그 후대가 대륙보다 더 자유민주주의적인 타이완을 만들어낸 것을 상징하기에 타이완이 독립해서 대륙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중국공산당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대륙과 타이완의 역사와 정서적인 논리의 혼란은 결코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중화민국 국기는 광저우(廣州)에서 탄생했다 
1893년 중국 광저우에서 쑨원(孫中山) 선생과 동향 친구인 루하오동(陸皓東)이 광저우 거사를 준비할 때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를 만들었다. 푸른 바탕에 흰색 태양은 자유와 평등이 온 땅을 비출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거사는 실패했고 27세의 루하오동 의사는 체포되어 중화민국 혁명에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그 후 쑨원 선생의 주장으로 빨간색 바탕을 더해 청천백일기는 중화민국의 국기가 되었다. 빨간색은 혁명을 위해 피를 흘린 혁명동지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콘서트에서 장쉬안이 들고 있는 중화민국 국기를 본 뒤 어느 여성 팬이“오늘은 정치 얘기는 그만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장쉬안은“이건 정치가 아니고 그저 국기일뿐이예요. 이 국기로 여러분에게 저의 고향이 어딘지 알려주고 싶었을 뿐 이예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중화민국 국기를 이 콘서트에 가지고 온 쉬이안 학생은 그 후 인터넷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우리 중화민국 국민들은 마치 뿌리를 잃고 비바람에 휘날리는 민들레와 같은 신세인 것 같다.

대륙에서 온 사람들은 이것을 정치라고 치부해 버리지만 그들이 내가 들고 온 이 국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내가 자라고 지낸 그곳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콘서트가 끝난 이틀 후에 장쉬안은 4천 자의 글로 국기 사건으로 인한 갈등, 중화민국 타이완과 중국 대륙의 다른 점에 대해 해명하고 기꺼이 대륙의 생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개인의 생각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한 사람만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중심을 잡고 살아야만 나와 다른 타인의 삶과 생각 역시 나만큼 존중받아야 합니다.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수단과 도구 그리고 기계가 아님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와 다른 이들과 진정한 연합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다른 관점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우리 고향의 국기를 소개할 때 대륙 친구들이 불쾌감을 표출한 것이야 말로 대륙과 타이완 서로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타이완에서 온 황씨 성을 가진 한 네티즌은 “고등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외국에서 공부할 때 자신의 나라에 대헤 소개하는 시간에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꺼낸 것 때문에 나 역시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 후로도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지 늘 난감했었는데 장쉬안이 그렇게 말해주니 참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유학 온 대륙대학생들 역시 타이완에서 같은 비난을 당했다. 대륙에서 온 후샤(胡夏)라는 가수가 타이완 종스(中視: 타이완의 공영텔레비전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대회에 참가했다. 뿐만 아니라 대륙의 대학생들도 대거 참가했다. 이러한 모양세를 보고 타이완 종스는 그야말로 중국인 방송국 종스라고 비웃음을 샀다.

대륙에서 온 대학생참가자들은 여러 곳에서 비난을 받아야했는데 참가자 중에 그 누구도 지역감정과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비난을 받아야 했다. 물론 개중에 국민당을 배척하고 야당을 지지하는 타이완 네티즌들은 장쉬안은 욕을 먹어도 싸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장쉬안이 중화민국 국기를 콘서트 중에 들고 나온 것이 과연 단지 고향인 타이완의 특산품 파인애플 과자(鳳梨隣)나 고산차(高山茶)를 소개하는 일종의 향수에 불과했을까? 진정 그것은 정치와 무관한 행동이었나? 쩡보원이 말한 것처럼“이 국기는 대륙에서 온 여자유학생의 항의를 초래했으며 장쉬안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은 이전에 장제스 총통의 독재 때 당했던 아픔이 떠올랐다. 작은 말과 행동을 할 때 누가 우리 대신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라고 할 때 이것 자체가 정치적인 표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콘서트에서 그 여학생이 정치 얘기는 그만 하자고 한 것과 장쉬안이 들고 나온 중화민국 국기의 타당성에 대해 부정한 것 역시 정치적인 발언이 아닌가? 정치적인 요소는 피하기 힘들다. 언젠가 대륙의 중앙방송국(中央電視台: 대륙의 공영방송국)에서 어떤 인터뷰 프로 중에서 우스운 일이 있었다. 사회자가 노벨상 수상자인 딩자오종(丁肇中)씨를 취재하는 중에 정씨는 나한테 동생이 몇 명 있는데 이름은 딩자오화(丁肇華) 딩자오민(丁肇民) 이라고 해요. 그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사회자는 웃으면서“막내 동생은 딩자오쭈(丁肇族)가 맞지요.”라고 했는데 정씨는 잠깐 머뭇거리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아닙니다. 딩자오궈(丁肇國)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중화민국의 정치를 중화민족이라는 단어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학자 우밍이(吳明益)가 말한 것처럼“우리는 정치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혹은 내가 당신의 정치적 견해를 또는 당신이 나의 정치적 견해를 어떤 식으로 바라볼 것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과 같다. 

나와 다른 생각을 잘 이해하자 
32세의 장쉬안은“이것은 정치가 아닌 그냥 국기일뿐이다”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치와 그간에 오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답도 얘기 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너무 많이 놓쳐버렸어요. 그저 우리가 그다지 신뢰하지도 않는 정치인들에게 그 문제를 던져버렸어요. 그러나 모든 정치인들이 결정한 사안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은 정작 우리 국민들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서로 화를 내면서 토론하고 의심을 품은 채 논의하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진정한 이해에 이르겠지요. 대륙과 타이완 국민들이 서로가 유머를 즐기면서 논의할 거예요. 언론매체가 그동안 우리에게 주입한 메시지에 조종당하지 않을 거예요.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뒤틀리게 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겉으로는 정말 조화롭고 평안하다고 그런 식으로 거짓된 생각을 하지 않게 해 줄 것입니다.”




출처 | <亞洲週刊> 第二十七卷四十六期(2013年11月24日)
번역 | 차이나 · 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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