渭城朝雨吩輕塵(위성조우읍경진)，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위성에 아침 비가 먼지를 적시니,
객사의 버들은 새로 푸르구나.
그대 권하노니 술 靑잔 더하시게,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한 벗이 없으려니. 

주석
1 渭城(위성) - 지명. 섬서성 서안 서북쪽에 있는 도시로, 진(秦)이 도읍했던 함양(咸陽)이다. 옛날 서역으로 나서자면 이곳을 지나야 했다.
2 吩(읍) - 젖다. 적시다.
3 客舍(객사) - 여관
4 陽關(양관) - 서역에 설치한 관문 이름, 감숙성 돈황(敦煌) 서북쪽에 있다.

원이(元二)와 송별연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 일행은 벌써 한나라 때 왕들의 무덤이 죽 늘어서 있는 오릉(五陵)을 지나고 있었다. 한고조의 장릉(長陵)에 올라서는“큰 바람이 일어 구름을 날리누나(大風起兮雲飛揚-고조의 <대풍가>)”라고 호탕하게 외치기도 했고, 한 무제의 무릉(茂陵)을 찾아서는“젊음이 얼마런가 늙음을 어찌하리(少壯幾時兮奈老何-무제의 <추풍사>)”를 읊으며 늙어가는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진시황의 아방궁 옛터를 지날 때쯤 해는 벌써 서산에 기울고 있었다. 황폐한 옛 궁궐터에는 봄풀만 무성히 자라 옛 자취를 더듬는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아득하게 하였다. 위성의 객사는 아방궁 옛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연이은 송별연에 피곤이 쌓였던지 원이는 저녁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골아 떨어졌다. 천둥 같은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왕유는 내일 송별연 자리에서 쓸 시를 구상하느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특별한 시를 쓰고 싶었다. 근간에 나오는 송별시들은 하나같이 이별의 정한을 슬프게만 묘사한‘상별(傷別)’류요, 암울하게 넋을 녹이는‘소혼(消魂)’류들이 아닌가. 보내는 아쉬운 정을 표현하는 것이야 송별시에서 피할 수는 없겠지만 눈물과 탄식의 여성적인 정서만 가지고는 좋은 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천하에 지기만 있다면야 하늘 끝도 이웃이려니, 헤어지는 길에 아녀자처럼 눈물 뿌리지 말자(海內存知己, 天涯若比紐. 無爲在岐路, 兒女共霑巾.)”는 초당(初唐)의 젊은 천재시인 왕발(王勃)의 송별시가 특별히 환영을 받았던 것 아닌가. 극도로 불안한 이 시절에 먼 곳 서역으로 사신을 떠나는 원이에게는 특히 밝고 씩씩한 송별시가 필요할 것이다. 씩씩한 기상의 송별시를 생각하니 기상이 남달랐던 고적(高適)이란 시인의 <별동대(別董大)> 시가 떠오른다.

千里黃雲白日俉천리 누런 구름에 해는 어둑한데
北風吹雁雪紛紛북풍은 기러기에 불고 눈은 분분히 날린다
莫愁前路無知己앞길에 벗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시게
天下誰人不識君천하에 누가 그대를 모르겠는가

광활하고 삭막한 변방의 기상을 주로 노래한 변새시(邊塞詩)의 시인답게 고적의 송별시는 그 기개가 씩씩하기 이를 데 없다.‘ 천리(千里)’,‘ 황운(黃雲)’, ‘북풍(北風)’과 같은 용어만 봐도 버들가지 꺾어 눈물 떨구며 정인을 보내는 유약한 시들하고는 사뭇 다르다. 이 시의 주인공인‘동대(董大)’는 당나라 개원(開元), 천보(天寶) 연간에 활동했던 칠현금(七弦琴)의 대가 동정란(董庭蘭)이다. 그가 잠시 실의낙백하여 떠돌다가 저양(雎陽)에서 고적을 만났던 것인데, 이 당시 고적 또한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하를 떠돌던 시절이었다. 고적 스스로 품고 있는 탁월한 재능이나 꿈꾸는 원대한 이상으로 보자면 금객(琴客) 동정란에 못할 바 아니었으니, 이 시는 피차 헤어지는 마당에 상대를 격려하는 응원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향한 주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를 알아주는 이 없다고, 삭막한 세상이라 탄식하지 맙시다. 천하가 이미 그대와 나를 다 알고 있소. 조만간 우리를 알아줄 사람, 우리의 가치가 빛나는 시절을 만나게 될 것이요.”이 송별시의 축원처럼 고적의 시명은 천하에 알려졌고 관로(官路)로 활짝 열려 정관계에서의 그의 명성도 혁혁하게 되었다. 안록산의 난 이후 사천절도사를 거쳐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임명되었고 마침내 발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시를 읊조릴 때마다 매번 북풍한설을 뚫고 의연하게 길을 가는 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나 멋진 시인가! 먼 사막 밖으로 가는 원이에게도 이런 시 한 수 써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한동안 천둥처럼 코를 골던 원이는 무슨 달콤한 꿈이라도 꾸는 지 배시시 웃기까지 한다. 전별연 자리에서 어여쁜 가기(歌妓)가 정다운 추파라도 보냈는가. 원이는 유독 정이 많아 친구들이 많았고 여인들도 많았다. 이 다정다감한 친구를 감동시키려면 어떤 멋진 송별시를 써야하는가? 아름다운 송별시를 생각하니 자연스레 이백의 절창 <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이 떠오른다. 

이백이 양주(揚州)로 가는 맹호연(孟浩然)을 전송하면서 지은 이 시는 준수한 젊은 이백이 그려낸 그림처럼 아름다운 송별시이다. 호북(湖北) 안륙(安陸)에서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20대 후반의 이백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양양(襄陽)에 살고 있던 유명한 시인 맹호연을 알게 되었다. 맹호연은 이백보다 12살 연상이었으나 둘은 아주 절친한 벗이 되어 시로서 창화하며 행복한 교유(交遊)를 하였다. 이백은 맹호연을 너무나 존경하여 <증맹호연(贈孟浩然)>이라는 시를 그에게 바쳤는데, 이 시에서는“천하의 풍류남 맹 선생님, 저 이백이 사랑합니다(吾愛孟夫子, 風流天下聞)”라고 애정을 직접 고백하기도 했고, “그대의 높은 산을 어찌 오를 수 있으랴, 예서 그저 맑은 향기를 맡을 뿐이라네(高山安可仰, 徒此揖淸芬)”라는 표현을 써서 맹호연에 대한 숭모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 표현하기도 했다. 어느 해 봄날 맹호연이 강남의 명소인 양주로 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 이백은 그를 전송한다는 구실로 호북성 동남단에 위치한 무한(武漢)까지 따라가서 함께 노닐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무한 장강 변에 세워진 유명한 누각 황학루(黃鶴樓)에서 맹호연을 전송한다. 두 사람 모두 이름난 대시인이었으니 최고의 송별시는 예약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계절은 백화가 만발한 춘삼월이었고 친구는 강남 최고의 도시 양주로 흥분과 설렘을 안고 여행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故人西辭黃鶴褸  내 벗은 서쪽 황학루를 이별하고
烟花三月下揚州  봄꽃 흐드러지는 춘삼월 양주로 내려가네
孤帆遠影碧空盡  외론 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唯見長江天際流  오직 장강의 물결만 하늘 끝으로 흘러가는구나

얼마나 그림같이 아름다운 송별시인가. 장강 변에 전설처럼 아름답게 우뚝 서 있는 황학루, 연화삼월의 강남 꽃 천지, 꽃향기가 시 밖으로 물씬 물씬 풍겨져 온다. 풍류가객과 절세가인들이 넘쳐나는 강남 양주로 가는 벗에 대한 부러움이 제2구에 가득하다. 함께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제 벗은 배를 타고 황학루를 떠났다. 하지만 이백은 전별의 장소를 떠나지 못한 채 맹호연이 탄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의 배가 푸른 하늘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소멸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 끝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이백은 스스로 장강의 물결이 되어 맹호연을 따라간다. 하늘 끝까지……. 맹호연이 탄 배의 뱃전을 두드리는 물결에 담긴 이백의 정회가 얼마나 가슴 벅차게 하는가. 물론 이 시를 전별자리에서 지어 맹호연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면 후반 2구는 맹호연을 보낸 후의 이백의 모습을 예견하여 쓴 것이 될 것이다. 이 시 구절을 읊으면서 맹호연은 또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황학루를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그리움의 강물 되어 뱃전에 부딪는 이백의 마음의 물결에 또 얼마나 감동하며 행복해 했을까?

왕발의 송별시로부터 시작해서 고적, 이백의 시까지 더듬다보니 벌써 오경이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이는 소리가 창밖으로 들린다. 일어나 창문을 여니 비를 머금은 습습한 바람이 객사의 버들가지를 살랑살랑 날리고 있었다. 그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장안에서 함양까지 오는 길도 마른 먼지가 펄펄 날렸었는데, 이제 반가운 비가 내리면 먼 길 가는 원이에게도 좋은 일이지 않은가. 마른 먼지를 적시는 아침 비라, 아침 비에 젖어 더욱 푸르러진 객사의 버들이라, 나는 그대 떠나는 길에 살포시 내리는 아침 비, 그대의 가는 길에, 그대의 옷깃에, 그대의 어깨에 내리는 가랑비 되어 그대와 함께 가리라, 후훗, 너무 유치한가? 나는 그대 머문 객사의 버들을 씻는 가랑비, 버들가지 꺾어 이별의 정한을 전하는 섬섬옥수 위로 떨어지는 가랑비, 눈물인가, 빗물인가, 후후, 무슨 유행가 가사 같군. 왕유는 비 맞은 중처럼 혼자 중얼거리다가 혼자 웃다가 하면서 가물가물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꿈속에서 왕유는 한 전별연에 참석해 이별주 몇 잔으로 이미 그윽하게 취한 상태였다. 한 친구가 웃으며 잔을 건네면서 말했다. “어이 친구, 한 잔 더 하셔, 먼 타향으로 가면 거기 자네한테 술 권할 친구 하나 있겠어? 어여 한 잔 더 하셔!”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