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과 가을은 선교지로 가기 전에 훈련을 받는 예비선교사들을 잠시나마 섬길 기회가 있다. 선교 훈련 속에서 만나는 그들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흥분, 약간의 불안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 그런 훈련 속에 있는 예비선교사들을 만났을 때는 사역지에서 돌아온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돌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서로 바라보며 축복해 주는 시간이 있는데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사실 이들이 앞으로 선교지에서 경험하게 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생각과 애틋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난 것이긴 했지만 어쩌면 그들과 상관없는, 경우에 맞지도 않는 눈물이기도 해서 민망하기도 했다. 왜 우냐는 질문에‘당신들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라고 답하기에는 너무 주관적이고, 미안하기까지 한 마음이 들어서 애매하게 웃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왜?
세상에는 많은 위기와 위험이 있다. 그것은 예상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다가와서 조용했던 삶을 뒤흔들어 놓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 영향이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호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선교사들이라고 해도 어떤 위험이나 유혹, 사건, 사고에서 늘 벗어날 수는 없다. 뜻밖의 사고로 가족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믿고 사랑했던 현지인 사역자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말할 기회도 없이 아침에 집을 나섰던 그대로 추방을 당하기도 하고, 휴식을 끝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도착한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하고,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폭동 속에서 불안에 떨기도 하고, 지진, 폭풍 등의 자연 재해를 겪기도 한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막상 그런 일을 경험하고 나면‘왜?’라는 질문과 함께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자신을 향한 자책까지 겹쳐 다시 회복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오래전에 사역지에서 강도를 만나 물건을 뺏기고 폭행을 당해 건강에 이상이 생겨 되돌아온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다. 본인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아 비행기도 간신히 타고 왔는데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진단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일을 철두철미하게 잘 해오던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놀라고, 아팠는지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누구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마음의 벽이 커지고 두꺼워져 결국 심한 스트레스가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트라우마
위기는 결정적으로 한 개인이나 그룹이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와 싸울 수 있는 기술보다 더 큰 충격을 주는 사건으로 심리적 외상을 남긴다. 그것은 보통 갑작스럽게, 강력하게 닥쳐서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큰 도전을 주기도 한다.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는 안전한 세계를 흔들어 놓는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위기상태 이상이다. 트라우마란 단어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상처를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트라우마가 같지 않고 가벼운 것부터 심각한 것까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뽑으러 치과에 가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도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트라우마는 마음, 감정, 신체에 받은 상처이기에 치유를 받아야 한다. 트라우마 상태에서는 이게 정말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현실감을 상실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면서 자아감, 주체성 또한 상실하게 된다. 자기 생각, 몸, 주위 환경으로부터의 분리, 불화를 경험하며 자기 행동을 통제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트라우마를 경험할 때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반응이 나타난다. 

정신적으로는 감각 상실, 혼동, 집중력 손실, 결정을 못함, 죄의식, 사건에 사로잡힘, 감정적으로는 불안, 분노, 기분의 두드러진 변화, 두려움, 공포, 공포로 인한 회피, 죄의식,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PTS), 폭식, 수면장애, 과도한 경계심, 시간 감각 왜곡, 경직, 폐쇄적 사고, 비현실적 전지전능, 냉소 혹은 부정직, 절대적 사고(결코·항상), 비판적 판단(나는 실패작), 후회(만약 ……·왜·나는) 등이 일어난다. 신체적으로는 심장 두근거림, 발한, 홍조, 호흡증가, 가슴통증, 구토, 식욕감퇴, 근육경련, 두통, 근육통, 언어통제 불가, 휴식불가, 현기증, 목·구강 건조, 이갈기, 감기, 체중변화, 불면, 악몽, 극심한 피로, 성기능 장애, 월경 장애 등이 일어난다. 감정적인 면으로는 감정 닫힘, 쇼크, 불안, 흥분, 공포, 두려움, 분노(자신·타인·하나님), 기분변화, 악몽, 슬픔, 우울증, 무력감, 부적절감, 죄의식, 유머감각 손실, 감정 스트레스(부적응) 등으로 시달리게 된다. 관계 면에 있어서는 민감, 쉽게 좌절, 무감각, 타인무관심, 고립/ 거리감, 친밀감 회피, 타인비판, 불안정, 인색, 논쟁에서 불일치, 희생양(분노·우울증· 억압), 과민 반응(상처) 등을 겪게 되고, 사역적인 면에서는 일 중심으로의 변화, 목적과 역할의 감각 상실, 사역의 의미 상실, 하나님에 대한 실망, 동기 상실, 회의감 등이 일어난다. 

감정적인 상처는 잘 나타나지는 않지만 적절한 치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하고 삶의 다른 부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감정적 외상과 위기는 오래가며, 내버려두고 있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잠복하여 나쁜 감정, 기억을 만들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흐름으로 자연스레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도움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것은 성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고 충격을 받게 한다. 아이들은 사건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와 관련된 성인들의 반응에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어린이의 필요도 적절하게 채워져야 한다. 

외상은 세월 속에서 정처 없이 떠다닌다. 그러다 어떤 기폭제를 만나는 순간,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 현재 사건으로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외상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기본 가정들이나 상식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쉽게 처리될 수도 장기 기억으로 묻어 버릴 수도 없다. 외상을 경험한 사람의 두뇌는 그 정보를 계속 처리하려 애쓰기 때문에 그 사건에 관한 불쾌한 생각은 회상이나 악몽을 통해 계속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디브리핑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겪은 사건을 구조화된 방식으로 상세히 말함으로써 그 사건은 활동기억(Active Memory)에서 장기기억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이 다시 불쾌한 생각을 해도 그것이 더는 문제로 생각되지 않으므로 그 사건을 회피할 필요가 점점 없어지게 되며 정신적 회복 속도 역시 더 빨라진다.

감정의 응급조치 디브리핑
디브리핑은 감정의 응급조치라 할 수 있다. 위기 디브리핑은 담당자가 사전에 계획을 짜서 구조적으로 진행하는 그룹 활동인데 발생한 위기 사건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 사건 경험자들의 생각, 그들이 받은 인상 및 반응 행동 등을 자세히 되짚어보고 증상과 반응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불필요한 후유증을 예방하고 빠른 회복 및 그룹 구성원들 간의 융화를 돕고, 향후 위기 사건을 경험할 때 정상적인 반응 행동을 할 수 있게 도우며, 정서적인 안정을 찾고 위기 상황을 인지하여 잘 파악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위기 상황을 경험한 후 24시간에서 72시간 안에 디브리핑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위기를 겪은 사람들은 사건 발생 직후 24시간 동안은 충격이 너무 커서 본격적인 도움을 받기에 무리가 있다. 24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내리게 되는데, 어떤 확고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건 발생 후 72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할 마음이 없어지고 더는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 따라서 마음에 모든 것이 생생할 때, 그 사람이 잘못된 생각에 영원히 고착되기 전에 틀린 개념들, 잘못된 인상들과 정보를 가르치고 재구성하기가 더 쉽다. 위기 디브리핑은 상담이 아니므로 이 후에 또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때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려주어야 한다. 누가 옳고 틀렸는지, 제대로 일을 처리했는지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은 해서는 안 된다. 

디브리핑은 동료가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때가 있다. 즉 강간, 멤버의 예기치 못한 죽음, 폭력, 자살, 납치나 전체 그룹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사건이나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 이미 심각한 고통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우울증 분노·믿음 상실), 그룹 디브리핑이 필요한 그룹 사건 등은 피어 디브리핑(peer debriefing: 동료 연구자에 의한 조언과 지적-편집자주) 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이다. 

위기에 있을 때는 주위의 도움을 받고 자신이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 해야 할 일은 긴장을 풀고 휴식하기, 영양식, 운동, 충분한 수면, 하나님과 타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기, 일어난 일을 기록하기 (저널·편지·이메일), 가능한 한 많이 웃기, 적절한 목표를 설정하기, 규범을 지키기, 안전하다면 친숙한 환경에 머물기, 지지하고 도움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할 수 있으면 큰 소리로 울기, 기도, 말씀 묵상, 음악 듣고 노래하기, 외상 반응에 대해 배우기, 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그 의미를 찾아보기, 도움을 요청하기 등이 있다. 반면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주요 결정, 적극적 여행 계획, 강의 스케줄, 음주,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 진정제(수면제), 외상 직후 민감한 문제에 대해 공개적 언급 등이다. 또한 개인 예배나 공동체 예배를 통한 영적인 회복과 외상충격과 자기 케어에 대해 이해하는 것, 휴식, 안식년, 디브리핑, 취미활동, 개인적인 성장과 과거에 대한 치유가 필요하다. 또한 파송 단체나 교회에서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격려, 지지해 주는 것이 필요하며 중보 기도자와 모임 중심으로 기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실제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나 혹은 전문가 집단의 자문과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고통 통과하기
사람마다 외상에 대한 반응이 다르므로 동일하거나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과 반응이 같을 수 없으며 상처 치유는 시간이 걸린다. 또한 상처의 기억들이 많이 사라져 상당히 좋게 느낀다 할지라도 이런 기억과 증상을 유발하는 일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수 있다. 치유는 이해를 통해 온다. 외상에 대해 더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의 삶을 더 잘 제어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위기를 경험하고 겪어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이해도 되지 않았는데 그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훨씬 커지고, 더 편안해졌다고 그런 일을 경험한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위기들을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이해하고, 성장하는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속에 겸손과 이해와 부드러움이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오랜 시간을 힘들여 자신의 고치를 뚫고 나와야 날개에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나비가 되듯이 누구도 예상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낸 사람들만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힘든 과정을 통과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동료, 나눌 수 있는 친구,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며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심으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음이 감사하다. 하루라는 선물이 바구니에 담겨 매일 아침 배달이 되어 올 때, 그 선물 속에서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며 누리는 것은 우리의 몫일 테니까 말이다.


조수미 | 한국선교상담지원센터(MCC)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