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간다.
- 김훈의 ≪자전거 여행≫ 중에서 -

작가로서의 최적의 조화
한 사내가 두 바퀴에 몸과 네 개의 큰 짐을 싣고 달린다. 이미 그는 미국 전역을 자전거 일주로 마친 화려한 경력마저 갖추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중국이다. 정확히 60일 동안 책제목 그대로 중국의 만리장성의 길이에 버금가는 만리장정(주행거리 4,873km)의 여정을 두 바퀴의 페달로 완주해냈다. 그가 달린 길 위에는 중국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상하이를 시작으로 8대 古都(난징, 시안, 뤄양, 정저우, 카이펑, 안양, 베이징, 항저우)에서 만나게 되는 일반서민의 삶이 풍겨져 나온다. 이 도시들을 선으로 연결해보면 크게 봐서 중원을 안에 품고 상하이와 시안, 베이징을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을 그리는 노선이다. 

선교지에 있을 때 중국을 알고 싶어 하는 분들께 최소한 이 세 도시는 보셔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정확히 저자가 세 꼭지점으로 찍어놓은 베이징, 상하이, 시안이다. 베이징은 정치수도로, 상하이는 경제수도로, 그리고 시안은 1300년의 수도역사를 가진 수도 중에 수도인 역사도시로의 가치로 꼭 보셔야 한다고 추천해왔다. 그런데 이 길을 저자는 자전거로 완주해간다. 그리고 페달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눈과 손도 움직이며 끊임없이 기록과 사진을 남기고 길에서 만나는 도시 곳곳의 흔적들을 생생히 중계해준다. 

흔히들 중국을 성의 도시, 로마를 길의 도시로 말하는데, 이 책을 보면 중국 역시 길의 도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만리장성도 보기에 따라 벽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한다. 이방민족들의 남하침략을 막는 데는 장벽의 기능이지만, 동서로 놓인 그 장성 위를 지나면 하나의 훌륭한 길이 된다. 

먼저 저자 홍은택의 이력부터 다시 확인해보자. 그는 대학에서 동양사학과를 전공했는데, 그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중국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이미 그는 청년시절부터 중국통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연마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전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그는 현장에 대한 감각과 필력을 동시에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라이더(rider)로서의 오랜 경력으로 체력과 여행 경력을 가지고 이미 두 권이 자전거 기행형식의 책을 선보였다. 이처럼 그는‘중국을 자전거로 돌며 글을 쓰는데 최적의 충분조건’을 갖춘 유일한 국내의 작가가 아닐까 생각된다.

만리길 속에 역사를 보듬고
넘기는 책장을 따라 저자의 경력과 필력이 수수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또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이면을 뚫어낸 내공이 없으면 쓰기 힘든 글쓰기 소재들을 잘 개발하며 엮어가고 있다. 단편적인 예로 각 도시마다 연관된 인물을 제시하며 중국의 역사를 구수하게 들려준다(펄벅, 쑨원, 정화, 위안스카이……). 또 자신이 유일한 이동수단인 자전거를 통하여 중국에서 경험하게 되는 자전거의 의미와 라이더들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 중국기독교의 심장인 허난성에서 339번 국도를 따라 건물위로 솟아난 붉은 십자가를 보며 다짜고짜 자전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간 경험과 느낌도 들려 준다. 

“허난성을 돌아다니면서 보통 합가환락(合家歡樂)이나 오복임문(五福臨門)같이 가정의 평화와 복을 비는 문구가 쓰여 있는 대문 위 현판에 이마네이리(以馬內利)를 붙여놓은 집들을 제법 봤다. 알고 있는 한자 지식을 총동원해 사자성어를 풀어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중역으로‘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이라는 뜻인 줄은 나중에 알게 됐다.”(170쪽) 

또한 여행기행은 맛기행과 같다고 말하며 상하이에서 시안까지 312변 국도를 따라 실크로드가 아닌‘누들로드’, 국수길을 소개하고 있다. 

“국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수가 모래솥이라는 뜻의 샤궈미엔(砂鍋麵)이다. 허난의 정저우에서 두 자매가 시작해서 퍼지고 있는데 나는 광산현의 2호점에서 시식할 기회를 잡았다. 상하이에서 시안까지 가는 312번 국도는 남쪽으로는 쌀, 북쪽으로는 밀가루의 경작지대를 가르는 분계선이다. 이 국도는 내게 쌀과 밀가루의, 수없이 많은 국수 변주곡을 체험할 수 있는‘누들 로드’이다.”(208쪽) 

책의 후반부에 가서는 이제 중국의 이해가 감성에서 지성적으로 바뀌며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정치적 속마음을 엿보며 질문한다. 

“사람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서로 믿기 어렵고, 너무 많아서 자유를 허용하면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번 여행에서 만난 대학교수, 대학생, 농민, 상인, 노동자 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다. 진짜 총선거를 실시하기 위해‘알맞은 규모로 나라를 쪼개면 어떨까’싶다.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중국인들은 경기를 일으킨다. 천하통일이 되지 않으면 천하대란이 일어난다는 고래(古來)의 이분법을 여전히 믿고 있다. 이것이 혹시 일당독재가 받아들여지는 심리적 기저가 아닐까?”(330쪽)

라오바이싱(老百姓: 보통사람)에 대한 헌사
작가가 자전거로 중국의 땅을 돌고 있지만 그의 최종적 관심은 일반서민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작가는 책을 통해 감사와 애환의 대상으로 새롭게 중국을 바라보게 해준 라오바이싱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자전거를 타고 거의 땅과 밀착하다시피 훑고 지나간 길의 여정에서 저자는 현지인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낯선 이방인을 향한 환대를 통해, 그리고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저자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던 그들의 표정과 어투 속에서 작가는 잘 뚫린 길만큼이나 서로에게 연대적 공감의 길을 만들어간다. 

“이번 여행은 중국 라오바이싱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는 하루하루 무탈히 여행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 이방인과 옷깃을 스친 인연을 소중히 여겨 작지만 아낌없는 자비를 베풂으로써 윤회의 사슬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을 것이다.”(272쪽) 

저자는 이동수단을 자전거로 삼은 것답게 중국의 절경이나 화려한 건물, 명소들을 소개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자전거 길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드러난다. 페달이 닿는 곳마다 중국의 숨결을 느끼며, 시간과 길의 흐름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현장의 모습들을 보여줌으로 마치 독자가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탄 채 지나가며 보는 것 같은 세밀함으로 중국 일반서민의 삶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요즘 중국 관련서 중에 여행과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유행에 치우치지 않고, 이처럼 페달, 길, 서민의 키워드로 또 다른 중국보기의 관점을 제시한 이 책은 새로운 여행서적의 좋은 모범이 될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을 자전거 페달로 자기 흔적을 남긴 저자의 다음 일정이 궁금해진다.

누군가 유행과 여행의 의미를 이렇게 멋지게 비교하며 표현한 적이 있다.

유행(流行)은 찾아오고 흔하게 간다.
여행(旅行)은 찾아가고 진하게 온다.

여기서 유행 대신 상품화된 관광이라는 말을 넣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관광은 찾아오고 흔하게 간다. 그러나 여행은 찾아가고 진하게 온다.

이 찾아가는 여행에서 물론 최적의 방법은 도보이지만, 길이나 넓이로 볼 때 그 다음은 자전거이다. 엄밀히 말하면 자전거도 무동력으로 순수하게 두 다리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것이다. 그 점에서 작가 김훈은 자전거를 통한 찾아감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간다.’ 

인생의 길에도 관광 같은 삶이 있고, 여행 같은 인생이 있을 것이다. 찾아오는 흔함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찾아가는 진함을 결단할 것인지는 다음 일정을 준비하는 저자의 몫일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숙제일 것이다.


이관 | 前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