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 사역자가 사진을 나누어주고 내용을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쌍둥이가 태어나서 따로따로 인큐베이터에 두었는데 폐가 나쁜 동생이 위태로워지자 간호사가 형을 동생이 누워있는 인큐베이터로 옮겨 놓았고 나란히 누운 형이 팔을 동생에게 얹어 감싸 안자 동생의 숨결이 편안해지며 회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둘 다 조숙아로 태어나서 건강이 염려되는 상태였는데도 함께 있으므로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10년도 훨씬 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생각하면 아직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감싸 안으며 함께 할 때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역하고 돌아온 선교사들을 만나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들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럴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디브리핑(Debriefing)이다.

디브리핑이란?
디브리핑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것을 말하지만, 선교사들에게는 안전한 장소에서 안전한 사람과 편하게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디브리핑은 선교사들이 적합한 환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재조명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디브리핑은 선교사들 안에 과거의 사역이, 또는 경험한 일들이 정리되고 그것이 더 이상의 후유증이나 어떤 감정의 어려움으로 발전하지 않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돕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위기와 외상에서 효과적으로 돌봄을 받고, 사역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하나님을 사건의 중심에 모시고 다른 각도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면 결국은 성장과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선교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과 같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처가 있을 수 있고, 해결되지 않고 깊이 숨어 있던 문제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와 당황하기도 한다. 또한 선교사는 관계 갈등, 사역에 대한 회의, 정서적인 고립감, 사역에 하나님의‘기름 부으심’으로 인한 기쁨, 패배감 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추방을 당하거나, 건강악화, 갑작스러운 사고 등을 겪으며 예상치 못한 시간에 돌아오게 되는 선교사들은 많은 혼란과 죄책감, 패배감, 정서적인 불안, 분노, 슬픔 등 여러 감정을 안고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마음의 고통을 함께 나눌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경우 선교사들은 한국이 굉장히 바쁜 곳이고, 사람들은 여유가 없으며, 특히 교회에서조차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이렇게 한국이 너무 낯선 곳이 되어 또다시 이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주변의 상황에 대해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자신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점검해 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서둘러 다른 사역지로 가려고 한다. 

더군다나 한 곳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사역자일수록, 역할의 책임이 컸던 사람일수록 서둘러 다른 사역지로 가서 자신이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기 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일수록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문제를 파악하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다음 방향을 잡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안에 처리하지 않은 충격과 상처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만약 이때 안전한 장소에서 아무런 편견이나 판단을 받지 않고 안전한 사람과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면, 혹은 그런 시간에 찾아서 나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선교사는 자신이 가진 짐의 무게를 훨씬 가볍게 줄일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한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서둘러 다른 사역지로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갈등과 고통에 함께 있어 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선교사는 오지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열심히 사역한 만큼의 결과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늘 고백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옆에 있는 동료의 여러 가지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전에는 사소하게 여기던 것들이 눈에 거슬리며, 쉽게 짜증도 났다. 그렇게 마음이 가던 현지 사역자들도 부족한 모습만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에 있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 버겁게 여겨지고 멀리하게 돼서 뭔가 자신 안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중에 본국에서 격려차 방문 온 팀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힘들었고, 귀찮기만 했고, 자신의 이야기나 팀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나누게 될까 봐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디브리핑’이라는 단어도 생소하고, 무엇인가 자신의 것을 꺼내놓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자신과 마주 앉은 사람에게조차 거부감을 나타내었는데 나중에는 편안하게 자신이 사역지에서 겪은 일들, 좋았던 것과 힘들었던 것, 하나님이 하신 일들, 관계의 갈등, 현지 사역자들을 바라보는 동료 사역자들과의 시선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등을 나누게 되었다. 이 선교사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여러 검사를 통해 자신이 정서적으로 탈진되어 무기력해지고 주변의 사역자들과에게 예전과는 다른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이상하지 않고 지쳐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쉼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어 더욱 편안해졌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선교사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정서적 안정을 얻으면서 좀 더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 선교사는 새로운 사역지에서 활발하게 사역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김 선교사는 오지에서 사역하고 있었고, 사역지에서 만난 현지분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결혼 준비도 하고 건강 검진도 할 겸 잠시 한국에 나와 있는 사이에 현지에서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둘러 현지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디브리핑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신청했다. 한 시간 반 정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은 현재 상태에서 돌아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일로 김 선교사는 자신을 돌아보며 상담의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전문 상담가와 연결이 돼서 여러 문제를 돌아볼 수 있었고 다시 사역지에서 편안하게 사역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박 선교사 부부는 폐쇄된 지역에서 5년 동안 사역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현지에 잘 적응하고, 남편 선교사도 활발하게 사역을 잘 감당하며, 팀에서도 인정을 받고 즐겁게 지내고 있었는데 부인의 병이 심해져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부인은 열정과 사역에 대한 열망이 큰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사역을 잘 감당하던 사람이었는데 남성 위주의 사회로 들어가게 되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늘 집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남편 위주의 사역을 바라만 보기에 너무 힘들어 우울해졌고 나중에는 마음의 스트레스가 몸이 아픈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있는 동안에 검사를 통해 사역지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힘들었는지, 자신이 남편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갖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남편도 부인의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게 되어 사역지로 돌아가서 사역의 방향이나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 줄 수 있는지 등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또한 영적으로 많은 공격을 받는 곳임을 고려하여 기도를 요청하며 여러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사역지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예전보다 스트레스가 줄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디브리핑의 종류
디브리핑은 언제 필요한 것일까? 디브리핑은 위기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역을 마쳤거나 사역지의 이동이 있을 때, 중요한 사건이 있었을 때,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했을 때 위기 상황에 할 수 있으며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사역 디브리핑은 주로 사역 리더들이 디브리퍼의 역할을 하며, 그동안의 사역에 대해 돌아보고, 평가와 격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중점으로 나눈다. 가능하다면 사역지에서 떠나오기 전에 디브리핑 시간을 갖고 사역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것이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개인 디브리핑은 주로 자원하는 친구나 동료, 훈련된 디브리퍼가 역할을 하며, 이때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즉, 문화, 언어, 가정의 일상과 이슈들, 사역의 갈등을 나누어서 재적응을 돕는다. 가장 좋았던 것, 힘들었던 일들을 나눔으로 정리된 환경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이 돌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격려를 받는다. 또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 의미 있는 면들을 바라보도록 도울 수 있다. 반면에 팀원의 죽음이나 납치 등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친구나 동료가 아닌 전문가의 도움으로 디브리핑을 받아야 한다. 

♠ 위기 디브리핑은 훈련을 받은 디브리퍼나 전문가가 디브리퍼의 역할을 한다. 이때는 위기를 경험한 사람이 신속하게 회복하도록 돕고 후유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하며, 24시간에서 72시간 안에 해야 한다. 디브리핑은 한 가지 사건만 다루고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충격을 줄이는데 초점을 두며 디브리핑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장기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면에서 상담과는 다르다.

공감과 이해를 받는 시간
디브리핑은 디브리핑을 받는 사람을 돕고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사생활을 탐색하거나, 신세 한탄을 들어주거나, 판단하는 일도 아니다. 즉, 그들이 판단 받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를 받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들의 형편과 사정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그들 자신이 존중받고, 지나간 사역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와 함께 격려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디브리핑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판단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경청의 시간이다. 그들의 문제를 책임지거나 고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편견 없이 상대를 맞아 주고, 어찌 되었든 그들이 했던 사역에 대해 인정과 격려, 공감들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이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내민 격려의 손길로 인해 여러 감정을 안고 돌아온 선교사들은 숨을 고르고 일어나 다시 하나님을 향해 달릴 수 있다. 

오래전 사역지에서 겪은 일이다. 당시 나는 제자훈련을 하고 있고 일정 기간 훈련을 받은 학생들과 현지 사역자들이 함께 실습을 떠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시외전화가 왔다. 그곳으로 간 팀에 문제가 있는데 인솔해서 온 사역자의 문제가 크다는 내용이었다. 한 시간 정도 불평을 듣다 보니까 나까지 화나기 시작했다. 직접 가서 그 사역자를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속에서 그 사람을 향한 불만이 솟아올랐다. 정말 훈련 때도 그러더니 결국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원망이 가득 차서 당장에라도 좇아가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차로 왕복 4시간 걸리는 거리를 생각하며 한숨만 쉬다가 출발하기 전에 무릎을 꿇었다. 내 기도는“주님, 다녀오겠습니다.”였지만 마음은“내가 이럴 줄 알았어, 만나기만 해봐”였다. 그때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많이 격려해 줘라!”차로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해서 만난 목사님 부부는 전화의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하셨지만 내려와 준 것이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팀을 찾아가는 길에 앞에서 힘없이 걷고 있는 그 사역자를 보았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었다. 마치 혼자 있다가 엄마를 만나 안심한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그 사역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하나님이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현지인 사역자와 미국에서 온 한국 사역자 간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가 갈등의 주된 원인이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만히 듣고, 많이 격려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을 때 그 사역자의 얼굴이 다시 자신감과 기쁨, 감사로 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했다. 하나님께 잠시 갔다 오겠다고 말씀드린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나님과 사람이 보는 시선이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은 나의 잘난 척하는 실수를 막아 주셨고, 그 한 사람을 다시 살려내셨다.


조수미 | 한국선교상담지원센터(MCC)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