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한국에서 열린 제5회‘중국영화제’에서 다시 주목을 받았던 영화이다.《 타오제》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제31회 홍콩 진샹장(金像奬)에서 최고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5개 부문에 수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 48회 타이완 진마장(金馬奬)에서는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감독 쉬안화는 70년대 홍콩 뉴웨이브(新浪潮)를 이끌었던 여성감독이다. 홍콩 자허(嘉禾) 영화제작자 리언린(李恩霖, Roger Yan-Lam Lee) 집에서 지내던 한 가정부의 노년의 삶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연출했다. 2012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아무르(Amour)》는 음악가 출신의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것과 달리《타오제》는 소외계층 노인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고 차분하게 풀어냈다.

이름과 옷에 대한 편견
타오제(硏德業분)의 본명은 종춘타오(鍾春桃)이다. 그녀는 어릴 때 입양되었는데 양부는 일제침략 때 죽었고, 양모는 생계능력이 없어서 13살의 어린 나이에 량씨 가문에 팔렸다. 그때부터 60여 년 동안 량씨 집안 ４대를 섬겼다. 타오제는 스무 살에 미국으로 유학 가서 서른 살에 홍콩으로 돌아와 영화사에서 일하는 로저(Roger, 劉德華분) 도련님의 유모이다. 

홍콩 사회에서 춘타오는 일반적으로 하인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녀는 아타오(阿桃)라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녀의 이름과 신분은 량씨 집밖을 나서면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된다. 량씨 가문의 도련님은 로저 라는 영어식 이름을 사용한다. 

어느 날 로저는 에어컨 수리공과 옷이 같아서 오해받기도 하고, 식당에서는 택시기사로 오해받기도 하였다. 도시라는 공간에서는 주로 사람들을 첫 인상과 외모로만 판단할 뿐 사람들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쉬 감독은 도시에서 이름, 옷, 외모로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판단하는 왜곡된 현상을 유머러스하게 꼬집어 보여준다.

틀니조차 사치로 여기는 희생
타오제는 어려서 량씨 가문에서 생활하면서 몸종이나 유모처럼 살아왔다. 타오제는 병든　할머니의 수발을 도왔고 로저의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도, 로저가 심장수술을 했을 때도 곁에서 보살폈다. 그녀는 어린 로저에게 사이다를 먹지 못하게 하자 몰래 콜라를 가져다 줄 만큼 로저의 마음을 읽어 주었다. 

로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내로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었던 타오제와 친밀감을 누렸기 때문에 그녀가 입원한 후에 잠시 동안지만 어머니와 동거하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옆방에서 TV를 보거나 신문을 넘기는 소리도 독서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짜증을 냈다. 로저는 타오제와 함께 있을 때 어머니보다 더 편안함과 친밀감을 느꼈다. 로저는 응접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타오제가 만들어 준 고급요리를 먹지만 타오제 자신은 주방에서 남은 반찬을 먹는 것이 더 익숙한 일상이다. 로저는 해외에서 유학을 하였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였지만 항상 섬김을 받는 도련님의 일상을 버리지 못했다. 로저는 평소 타오제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가족처럼 친밀하게 대하지는 못했다. 타오제가 중풍으로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로저가 그녀와 연락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사주려 했다. 그러나 타오제는 자신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줄도 모른다며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의사가 타오제의 치아를 보고 틀니를 권했지만 그녀는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거절하였다. 

타오제는 노년에도 자신을 몸종처럼 여기고 남들에게 희생하는 것을 자신의 미덕으로 여기고 지나치게 근검절약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요양원에서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색하여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애쓴다. 타오제의 몸에 베인 희생은 자신을 더욱 힘들고 외롭게 만들었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새로 집안일을 돌볼 가정부를 구하기 위해서 타오제는 구직자를 만났다. 무슨 솥으로 밥을 하며 어디에서 신선한 생선을 살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응모자들은 힘든 일이나 귀찮은 일을 꺼렸다. 그녀가 보기에 로저의 까다로운 식성을 채워줄 의향도 없어 보였다. 현대 사회에서 타오제와 같은 가정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헌신적인 희생을 요구할 수도 없다. 

로저는 전에 자신이 심장 수술할 때 타오제가 돌봐 주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병든 타오제를 돌볼 수 있는 것이 무척 행운이라고 여겼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상하 지위가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있어 행복하다고 여기는 가족과 같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유지되는 것이다. 로저는 요양원에서 자신이 타오제의 양아들이라고 밝혀 그녀의 난처한 신분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사람들 간에 일방적인 희생이나 돌봄이 아닌 사랑으로 교감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로운 노인과의 동행
우리는 어떻게 노인을 도와야하는가? 영화에서는 노인 곁에서 함께 있어주는 모습을 그렸다. 로저는 병든 타오제와 함께 식사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타오제는 화장으로 맘껏 멋을 내고 저녁은 외식한다고 자랑하며 우울한 분위기의 요양원을 신나서 나선다. 들뜬 마음으로 로저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여 여러 사람을 만나 소개받고 인사를 나눈다. 그녀는 중국 신예감독 닝하오에게 담배를 피우면 암에 걸린다고 따끔하게 충고를 하기도 한다. 시사회가 끝난 후 로저는 타오제의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거닐었다. 

요양원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할 때 상대방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하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며 티격태격하면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누렸다. 

로저는 휠체어에 타오제를 태우고 공원 산책을 하기도 하였고 전에 타오제가 살었던 집에　와서 물건을 정리하였다. 타오제가 사용하던 고장 난 재봉틀, 비닐봉투에 담아 보관한 그녀의 첫 월급 ５달러짜리 홍콩지폐, 로저가 좋아해서 모았던 영화잡지, 로저를 업고 다녔던 포대기, 로저가 어렸을 때 타오제와 함께 찍었던 빛바랜 사진 등을 통해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로저는 그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형식적인 봉사는 위로보다 피로를 가중시킬 뿐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요양원으로 위문공연을 와서 노래하고, 선물을 주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봉사활동을 한다. 여러 단체들이 잇달아 찾아오면서 노인들은 피곤해하며 지치고 사람들이 떠난 밤이면 요양원의 노인들은 더욱 외로움을 느낀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
생명은 시간의　유한함을 인식할 때 삶의 질은 심도를 갖게 된다. 타오제의 담관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앞두고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릴 때 전도서 3장을 낭독하셨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이 성경구절은 쉬안화 감독의《송가왕조》에서 쑨원이 일본에서 동지들과 혁명을 준비하며 기도할 때도 인용되었다. 수술을 마친 후 로저는 타오제를 모시고 한국 아이의 돌잔치에 참석하여 돌을 맞이한 아이가 물건을 고르는 한국의 풍습을 설명해 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영화에서는 출생과 죽음, 늙음과 젊음을 대조하며 생명의 환희와 변화를 번갈아 조명하였다. 

요양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노인, 학교교장을 지냈던 노인, 신장 투석하는 중년의 딸, 아들에게 유산을 넘겨주고 자신을 찾아올 거라 믿는 할머니, 정부지원금으로 살아가는 노인. 요양원 구성원의 이야기는 어둡기만 하지 않고 온기를 느끼게도 해준다. 신장 투석하는 중년의 딸과 그녀의 어머니는 타오제에게 구정을 함께 보내자고 청한다. 

폐기종과 중풍의 재발로 타오제가 병원에 입원하자 로저는 병원에서 국수를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운다. 절박한 순간에 찾아온 공복감은 인간의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로저는 １주일간　중국 출장을 떠나면서 의사에게 타오제가 죽으면 영안실로 보내주길 부탁한다. 로저는 떠나기 전에 타오제의 베개에 머리를 잘 베게해주고 두 발에 신은 양말을 잘 신겨주고 다리를 안마해주며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그는 죽음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의를 표시했다. 요양원에 있던 노인이 죽게 되면 가족들은 흐느끼지만 요양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평소처럼 장기를 두고 마작을 하거나 호박씨를 까먹고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영화의 영어제목인‘심플(Simple)’처럼 죽음을 소박한 일상의 단면으로 조명하였다. 소소한 인물들의 죽음 앞에 애절한 통곡을 여과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일관하여 늙음과 죽음을 일상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유머로 풀어내기도 하였다. 

빠른 고령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이웃은 다양해졌다. 독거노인, 외국인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난민 등등. “누가 강도를 만난 자의 선한 이웃이냐?”라는 질문에 예수는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고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주막 주인에게 돈을 건네주고 그 사람을 돌보아 주기를 부탁하며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와서 더 주겠다고 말한 이라고 말한다 . (누가복음 10:30-37) 타오제는 고아출신의 가정부로 외로운 독신 노인이었지만 량씨 가문사람은 그녀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돌봐주며 그녀가 연로하면 독립해서 살 집도 마련해주었다. 

다문화시대를 맞아 우리는 길손을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혈연과 지연이나 사회계층의 벽을 넘어 사랑과 보살핌으로 주변의 소외계층을 돌아보며 살아가게 되길 바란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