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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1  통권 138호  필자 : 이관  |  조회 : 2646   프린트   이메일 
[서평]
우울한 중국인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_백범 김구


우울한 힐링
이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힐링이고, 다른 하나는 힐링의 대상인 우울증이다. 무엇이 먼저일까? 논리상으로는 우울이 먼저이고, 힐링이 다음이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게만 반영되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어느새 상담과 치유라는 말이 일반화되고, 힐링이 열풍과 같이 몰아치고 있어, 가끔은 ‘나 역시 우울증?’이라는 자가진단과 의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가 있다. 즉 우울한 개인이 우울한 사회를 구성할 수도 있지만, 우울한 사회에 오래 속하다 보면, 정상인도 힐링이 필요한 우울한 개인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중화의약회가 중국의 대도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중국의 15세 이상 조사대상자 중 정신질환 발병률이 약 17%며, 우울증이 5%, 불안신경증이 5%, 약물 및 알코올 중독증이 약 5%로 조사되었다. 또한 베이징시 심리위기연구소에 따르면 매년 28만 7,000명의 중국인이 자살하고, 200만 명이 자살 미수에 그치는데, 그 자살 원인의 70%가 우울증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오늘날 중국은 G2로 상징되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대국의 면모를 갖추었지만, 이러한 비약적인 성장 이면에는 이처럼 중국인들의 우울한 내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모순적 시대상황을 반영하듯 우울이라는 키워드로 중국을 바라본 책이 나왔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울한 개인이 우울한 중국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우울한 중국이 우울한 중국인으로 몰아갔을까?

“일반적인 중국인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꽤 오랜 시간 동안‘우울함’이라는 세 글자로 집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전환기에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점차 익숙해져야 하는 심리적 과정인 우울함이 있었고, 국가통치의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우울함도 있었으며, ‘극좌에 치우친 정치’의 폐해로 드러난 우울함도 있었다.”(10쪽)

저자는 초반부터 중국 현 인민들에게 잠복해 있는 큰 질병을 우울함이라 진단하고, 이어서 과거의 제도적 환경에서 나온 우울증의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어둡지만 밝게 바라보는 작가
책의 저자 량샤오성(梁曉聲)은 베이징어언대학교의 교수로 학자적 깊이와 작가적 표현력에 있어서 탁월하다. 게다가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의 삶의 궤적은 자신의 서술적 주장에 더욱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이미 1997년 ‘중국사회 계층 분석’이란 보고서를 통해 개혁개방 이후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을 가져온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그늘을 조명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연구파로 알려져 있다. 국내 출판계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이지만, 중국에서는 유명한 작가이자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의 중국의 주요 격동기를 겪으며, 현재까지의 중국 사회의 부조리와 국민성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며 글을 발표해오고 있다. 

이 책은 통계자료에 근거한 분석적 글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소소한 일상과 체험, 그리고 자신이 듣고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전개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내보이고 있다. 자신의 사용할 수 있는 탁월한 문학적 도구를 가지고 작가적 역량을 발휘하여 우울함으로 채색된 주변 사람들의 억눌린 삶들을 조명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글쟁이의 면모를 풍기며 500여 쪽에 가까운 두께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지루하지 않도록 곳곳에 에피소드와 옛글의 명문구 인용을 배치하는 솜씨를 보이고 있다.

산발적 내용, 단일한 주제
책의 내용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1장에서는 중국인의 우울한 표정의 이유를 노예근성과 수치를 모르는 시민의식, 그리고 완곡함으로 대변되는 수동적인 태도들이 답답함을 넘어 우울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2장에서는 저자를 포함한 많은 중국인이 직간접으로 경험한 중국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편리함이나 이익만이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어 남의 불편이나 공동의 질서를 파괴하는 공중의식이 희박한 사람들, 값비싼 명품으로 자기를 꾸미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일반 서민을 무시하는 속성 귀족들, 학교에서의 진정한 배움이 사라지고, 서로를 이용하여 사회적 상승을 꾀하는 무너진 교육열, 극도의 개인주의로 나가며 이너 서클 (inner circle: 조직의 권력을 쥐고 있는 핵심층)을 형성하는 엘리트 집단의 사교 모임 등을 논픽션 기사 쓰듯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3장에서는‘평범함이라는 죄’의 소제목처럼 일상에서의 인연이나 의리, 사랑 등 변하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이 점차 소멸돼 가는 것을 개탄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에게 전한 말을 소개하며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꿈을 좇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권면한다.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사랑해야한다. 인생에서 가장 구체적인 행복이 평범한 삶의 모습에 그대로 드러나거든.”(283쪽) 

4장에서는 골목과 시장에서 만나게 되는‘작은 중국’을 보여준다.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베이징시의 변천사와 함께 그 골목과 이웃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시민의 삶을 보여준다. 그중 어느 지방세 징수원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요즘에는 세무사 사무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어요. 이런 세무사 사무실에서는 퇴직한 세무 공무원이나 간부를 직급 높은 세무사나 고문으로 모셔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여기에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장점이라면 사업장의 납세의식이 제고되어 저희 같은 징수원의 일을 더는 것이고, 반면에 단점이라면 퇴직 세무공무원이 세법의 허점을 노려‘합법적 탈세’를 알려 줄 경우 우리가 더 일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365쪽) 

마지막 5장에서는 구체적 대안을 기대했으나 서양의 비관주의 철학을 인용하며 다소 식상하고 뻔한 열린 결론으로 글을 맺고 있다.

“서양의 비관주의 인생철학에서 이야기 하는 무수한 주장도 결국에는 한마디로 귀결된다. ‘욕망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금욕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욕망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인 삶의 태도는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욕망을 가지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그렇기에 우리는 젊은 시절부터 3할의 욕망과 7할의 이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479쪽)

두 번째 책을 기다리며
우울한 중국인, 서두에서 예상한 것처럼 우울한 중국인이 우울한 중국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우울한 중국 전체가 모든 사람을 우울함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때는 개인의 치유라기보다는 동시에 구조적 변화를 꾀함이 지혜일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우울증의 원인을 여러 국내외적 정세변화로 인한 대국민 스트레스 강화로 진단하지만, 그 처방은‘개인적으로 참아내자, 욕망을 절제하고, 이성으로 견디자’로 내리고 있다. 참 아쉬운 결론이다. 

아울러 중국인들이 우울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우울함 그 자체보다 오히려 사회적 불만을 배출할 수 있는 출구와 방법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라 지적하면서도 그것을 해소하는 정책적 대안은 찾아 볼 수 없다. (50쪽) 한 가지 대안이라면 개인과 집단의 우울함이 답답함과 분노를 넘어 화병에 이르게 되는 소나기구름이 형성되기 전에 적절한 바람과 햇볕의 문화로 해소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저자는 중국 인민들이 활력을 잃은 근본원인에 대해 직설하고, 구조적 대안을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대안이 문화의 훈풍과 햇볕이라면 그것이 잘 비추이고 스며들 수 있도록 건강한 구조와 생태계도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두 번째 책이 요청된다. 우울한 중국인이 더 악화되어 침통한 중국인이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권장해주어야 한다. 이때는 본서처럼 작가로서의 에세이식의 접근이 아닌 학자로서의 준엄한 글쓰기가 필요하다. 

우울함의 극복은 새로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울함은 문제가 있다는 징후이자, 이유 있는 내면의 상태이기에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치료와 함께 강한 면역력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지나치게 수동적인 자세, 지나친 힐링의 존적 자세는 작은 상처에도 늘 일어나지 못하고‘누군가가 나를 치료하라’는 식으로 드러누워 버리는, 몸의 면역력을 다 상실한 나약한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상실감은 개인적으로 이겨나간다 할지라도 그 성장의 그림자는 다시 국가가 거둬주어야 한다. 상하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덜어주고, 이너 서클로 대변되는 패거리문화를 해소하고, 공평함을 사회의 공기와 같이 느낄 수 있는 제도적 승격을 이룬다면 우울증을 이겨낼 면역력이 강화될 것이다.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이러한 우울한 모습은 어찌 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 곳곳에 산적해 있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개인과 함께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김구 선생의 표현처럼‘오직 한 없이 높은 문화의 힘으로 나를 치유하고, 남도 새롭게 하는 구조’를 함께 이루어감이 우울한 중국인을 미소 띤 중국인의 꿈을 갖도록 할 것이다.



이관 | 前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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