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병조의 호마를 노래하다>

방 병조의 호마는 대원국의 명마
칼끝처럼 불거진 마른 골격.
두 귀는 깎은 대나무처럼 오똑하고
네 발굽은 바람이 든 듯 가볍게 달리네.
향하는 곳 멀다할 곳 어디 있으랴
진실로 생사를 맡길 만하다네.
그대 이토록 용맹스럽고 날쌔니
만 리라도 마음대로 달릴 수 있겠네. 

胡馬大宛名, 鋒慄瘦骨成
竹批雙耳峻，風入四蹄輕
所向無空闊，眞堪托死生
驍騰有如此，萬里可橫行

<주석>
1 房兵曹(방 병조) 방씨 성의 병조참군. 병조참군은 군무를 담당하는 작은 벼슬아치.
2 胡馬(호마) 서역에서 난 준마.
3 大宛(대원) 한나라 때 서역에 있던 나라 이름. 좋은 말이 많이 배출되었다.
4 鋒慄(봉릉) 칼날의 모. 뾰족한 물건의 끝부분. 이 구절은 호마의 마른 골격이 마치 칼끝처럼 툭툭 불거져 있다는 말이다.
5 竹批(죽비) 대나무를 깎다. 이 구절은 호마의 두 귀가 마치 대나무를 사선으로 깎아놓은 듯 날카롭게 쫑긋 솟았다는 말이다.
6 四蹄輕(사제경) 네 발굽이 가볍다. 이 구절은 호마가 나는 듯이 가볍게 달린다는 말이다.
7 所向(소향) 향하는 곳마다. 이 구절은 이 호마가 워낙 빠르게 잘 달려서 아무리 먼 곳일지라도 멀다고 할 것이 못 된다는 말이다.
8 堪(감) ~ 할 수 있다. 托死生(탁사생) 생사를 맡기다. 이 구절은 말이 훌륭해서 주인이 자신의 목숨을 맡길 만하다는 말이다.
9 驍騰(효등) 씩씩하게 달리다.
10 可橫行(가횡행) 마음껏 내달릴 수 있다.

이 시는 두보가 이십대 후반 청춘의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던 시기를 통과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당시 두보는 낙양에서 거행한 과거시험에서 낙방하고는 훌쩍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하북성과 산동성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훌륭한 벗을 사귀어 성품을 바로하고 명산과 대천을 바라보며 호연한 기상을 길렀다. 이 여행길에서 우연히 방씨 성의 병조참군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멋진 호마를 타고 있었다. 두보가 말을 매우 좋아하였음은 그가 남긴 시중에 말이나 말 그림을 노래한 시가 제법 많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늠름한 호마는 젊은 두보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두보는 이 말이 서역 대원국에서 온 명마임을 금방 알아보았다. 예부터 대원국에서는 좋은 명마가 많이 났다. 붉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고 하는 한혈마(汗血馬)도 바로 이 대원국에서 난 준마다. 방 병조의 호마는 생김새부터 보통 말들과 달랐다. 뼈 마디마디가 칼날처럼 툭툭 불거져 나올 정도로 군살이 하나 없이 탄탄하고 날렵한 몸매를 갖추었으며 두 귀는 오똑해서 마치 대나무를 깎아놓은 듯하였다.

호마의 멋진 모습에 반한 두보가 말을 어루만지며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방 병조가 웃으며 고삐를 건네준다. “자, 맘껏 달려보시오!”호마가 달린다. 짧은 발목, 높은 발굽으로 서리 내린 들판을 짓밟으면서 힘차게 달린다. 바람이 네 발에 든 듯, 번개라도 잡을 듯 쏜살같이 달려간다. 순식간에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왔다. 말머리를 돌려 출발점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서서 손을 흔드는 방 병조의 모습이 점처럼 까마득하다. 씩씩거리는 말을 토닥이며 달래면서 다시 돌아간다. 호마의 귀에서는 바람이 일고 호마의 발은 땅 위의 허공을 달리는 듯하다. 방 병조가 빙그레 웃으며 묻는다. “내 말이 어떻소?”두보가 상기된얼굴로고삐를돌려주며말한다.“ 이런말이라면 진실로 생사를 맡길만 하겠습니다!” 방 병조가 흐뭇한 얼굴로 말을 타고 돌아가며 두보를 향해 소리친다.“ 내가 보니 당신 또한 범상치 않은 명물임에 틀림없소. 말로 치자면 대원국의 명마일게요. 허허허!”

방 병조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두보의 가슴에 새로운 격정이 솟구친다. 본래부터 삐쩍 말라서 사람들로부터 말라깽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는데, 어쩌면 이 골상은 칼날처럼 불거져 솟은 명마의 모습을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때는 가을이라, 길가의 조그만 웅덩이 물이 거울처럼 맑다. 그곳에 비춰보니 두 귀가 종긋하니 과연 아까 방 병조 호마의 귀와도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한 번 달려볼까? 달리기라면 자신 있다. 열다섯 나이 이후로 달리기로는 마을에서 나를 따를 자가 없었으니까.

두보가 달린다. 남루한 청포 옷자락 휘날리면서 낯선 들판을 가로질러 휙휙 바람을 가르며 두보가 달린다. 이 젊은 청춘에 거칠 것이 무에랴. 아무리 넓은 들판도, 아무리 낯선 환경도, 아무리 의지할 곳 없는 광야일지라도, 이 준족의 젊은 청춘이 가지 못할 곳이 어디 있으랴. 턱밑으로 숨이 차오를 때까지 한참을 달려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땀이 비오는 듯하다.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는 깜짝 놀라 손을 펴본다. 땀이 핏빛처럼 붉은 게 아닌가. 그럼 내가 한혈마처럼 붉은 핏빛 땀을? 눈을 비비고 바라보았더니 그건 피가 아니었다. 고개 너머 타오르는 저녁놀이 홀로 우뚝 서있는 두보의 전신을 붉은 기운으로 감싸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격정에 사로잡힌 두보가 외친다. “내 장차 이러한 용기와 강인함으로 만 리 온 세상을 내 맘껏 달려볼 것이다!”얼마를 그러고 서있었을까?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고 고개 아래 마을에서는 저녁 짓는 연기가 가을바람에 살랑대며 오르고 있었다. 문득 한기와 함께 배고픔이 밀려왔다.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 당산목으로 서있는 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제법 큰 기와집으로 가서 하루 숙식을 청했다.

다행히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치안이 안정된 개원(開元) 호시절이었던 터라 허(許)씨 성을 가진 주인은 선뜻 사랑방을 내주었고 소박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사랑방 뒷 편 대숲에 서걱이던 가을바람이 두보의 꿈속까지 찾아와 꿈의 푸른 벌판을 달리는 호마의 갈기를 힘차게 드날렸다. 다음날 하직인 인사를 하려고 주인이 있는 대청으로 올랐더니 거기에 멋진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다. 흰 비단에 그려진 푸른 매 그림이었다.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것이 그냥 그림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역 호인의 푸른 눈을 닮은 듯, 흘겨보는 듯, 노려보는 듯 매의 움푹 들어간 눈에선 매서운 신기가 느껴졌다.

“그 그림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드시오?”어느새 주인이 나와서 그림 감상에 넋을 잃고 있는 두보에게 말을 건넸다. “주인이 부르면 금새라도 그림 밖으로 박차고 날아올 듯 생동감이 넘치는 좋은 그림입니다.”주인이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젊은이는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 같구려.”“제가 처음 대청마루에 올랐을 때 문득 바람과 서리의 서늘한 기상을 느꼈는데 알고보니 바로 이 그림에서 번져나오는 기운이었습니다.”주인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시를쓰시오?” “예, 저의 조부께서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셨습니다. 저는 이제 조금 글자를 엮는 정도 일 뿐입니다.”“조부의 함자가 어떻게 되는가?”“측천무후 시절 수문관직학사를 지내신 양양(襄陽) 사람 두심언(杜審言)입니다.”주인이 깜짝 놀라 두보의 손을 잡았다.

“자네 조부가 지은‘매화와 버들이 강을 건너며 봄이 오는구나(梅柳渡江春)’라는 시는 초당의 오언율시 가운데 제일이 아닌가. 그 유명한 분의 손자를 예서 보다니!”주인 허씨는 감격에 겨워 떠나려던 두보를 눌러 앉히고는 종을 불러 주안상을 후하게 차리라 명하였다. 며칠 동안 두보는 허씨 집안의 상객으로 대접을 후하게 받으며 지냈다. 가을 호수에 배를 띄워 놀기도 하고 늦가을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숲길을 지나 창포가 시든 냇가에서 잘 익은 마름을 따먹기도 하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계절이 깊어져 고향의 푸른 담요가 점점 그리워지는 날, 두보는 주인 허씨를 작별하고 길에 올랐다. 두보가 떠나간 허씨의 대청마루에 걸린 푸른 매 그림 옆에는 두보가 주인의 부탁으로 쓴 제화시(題畵詩) 한 수가 걸려 있었다.

흰 비단에 바람과 서리가 일어나니
푸른 매 그림이 기이하구나.
몸을 솟구쳐 교활한 토끼를 낚아챌 듯
흘겨보는 눈은 수심 어린 서역의 호인과 같구나.
다리에 매어단 실은 잡아 뗄 수 있을 듯 빛나고
처마와 기둥 사이에서 부르면 날아올 듯.
어느 때에나 범상한 새들을 쳐서
털과 피를 들판에 뿌릴까!

눈만 뜨면 잘난 사람이 천지인지라 늘 기죽어 살기 십상인 시절이다. 돈 많은 사람, 지위 높은 사람, 많이 아는 사람, 잘 생긴 사람, 그 중에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듯 우울한 세상이다. 이런 날에는 어디 강가라도 나가서 한번 달려보자. 힘차게 달려보자. 달리다 보면 게으름의 군살이 빠지면서 칼날처럼 불거진 천리마의 골격처럼 탄탄하고 날렵한 몸매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달리다 보면 체념으로 늘어졌던 귀가 오똑 솟아오르면서 세상 밖의 음성을 듣는 행운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마침내 신령한 바람이 불어와 온 몸이 가벼워지리니, 세상에 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 세상이 무서울 것이 있겠는가. 생사 또한 그분께 맡기지 않았는가! 이런 용기로 이런 기세로 만 리 세상에서 맘껏 횡행하자! 주께서도“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이렇게 달리다 보면 어쩌면 우리 겨드랑이에 큰 날개가 돋고 마침내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 맘껏 누비며 호령하는 멋진 매 한 마리 될 수도 있으려니!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