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국인
2002년, 중국 W지역으로 첫 발을 디딘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덕분에 중국에서 새롭게 태어난 기분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선배 선교사의 도움으로 학교 기숙사에 보금자리를 틀 수 있었지만 기본적인 가재도구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3월부터 시작된 학교 수업과 병행해 가며 방과 후 근 한 달은 주방도구며 살림 도구들을 장만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중국생활 6개월에 접어들 무렵 갑자기 아내가 아이처럼 펑펑 운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가족들 보고 싶다. 엄마아아….”일종의 향수병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한 그리스도인 중국인 자매가 학교 놀이터에 멍하게 앉아있는 아내에게 다가왔다. 자기는 남편의 일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산 지 벌써 몇 년째라고 했다. 남편을 보고 싶어도 중국 정부에서 그렇게 해서 어쩔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렀다. 그 모습에 아내의 향수병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버렸고 아내가 그 자매를 위로하게 되었다. 

학기가 바뀌고 학비 낼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비를 미리 준비해 두려고 현금지급기에 가서 어느 정도 돈을 뽑았다. 그래도 부족해서 더 뽑아야 했다. 잔액은 분명 있는데 더 이상 뽑히지 않았다. 부족한 중국어에, 민감한 돈 문제라 누구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일 다시 와서 찾으면 되겠지 생각하고 미리 찾아둔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세어 보았다. 그때 선배 선교사로부터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전화가 왔다. 책상 위에 돈 봉투 채 두고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집을 비웠다. 돌아와 보니 문 자물쇠가 심하게 비틀어져 있고 방바닥에는 여 기저기 신발 자국이 나있었다. 아뿔사! 현금지급기에서 돈이 안 뽑혀 전전긍긍 하던 내 모습을 보고 외국인임을 금방 알아차리고 뒤를 밟아둔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나간 사이 돈을 훔쳐간 것이었다. 다행히도 학비 옆에 있던 생활비 봉투와 노트북은 그대로 놔두고 학비가 든 봉투만 양심적(?)으로 가져갔다. 경찰에 신고했고 와서 사진도 찍고 했지만 오히려 우리 신분이 노출될까 걱정하기도 했다. 사후 약방문이라고 이 일로 학교 측은 없었던 보안문을 설치하였다.

어떤 사역을 할까?
중국에 올 때 신학교 교육과 제자양육, 캠퍼스 전도의 목표를 가지고 왔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달랐다. 선배 선교사가 자신이 섬기던 교회를 이어서 섬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 선배선교사가 안식년을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기도하다가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고 선배의 사역을 이어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선배에게 보안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인수인계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교회를 맞게 되었다. 중국에 온 지 1년 2개월만의 일이었다. 선배 선교사가 출국하기 전 세워놓은 설교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선배가 출국하자 내 앞에서는 한사코 설교를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갑자기 내가 설교를 하게 됐다. 학교 공부는 그야말로 시간 때우기밖에 되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한국어로 설교 원고 작성하고 다시 중국어로 번역하는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나는 그 당시 중국어로 주기도문조차 외우고 있지 못한 터에 설교부터 하기 시작하였으니 제대로 전해졌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예배 참석 인원들이 점점 늘어나 소그룹으로 나누어 체계적인 양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원이 늘어날수록 설교에 대한 부담도 늘어갔다. 결국, 선배 선교사가 세워놓은 중국 형제를 설득해서 번갈아가며 설교하기로 하고 그 형제는 나의 양육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사스라는 복병을 만났다. 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학교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몇 개월째 모임은 진행되지 못했다. 급기야 손으로 직접 쓴 설교 원고를 학교 정문에서 나눠주며 학생들끼리 학교 안에서 모임을 갖게 했다. 

사스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정말 사스와 같은 대형 사건이 터졌다. 예배 모임은 갖지 못해도 설교자 형제를 우리 집으로 불러 좋은 CD도 보여주며 양육하려는 마음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형제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사전에 얘기도 없이 불쑥 기차를 탄 이유는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서란다. 몇번 전화 통화를 하고는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순간 의심이 생겼다. ‘그 형제가 관리했던 그 많은 헌금은 교회에 두고 갔을까?’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교회에 가보았다. 여기저기 빈 맥주 캔, 담뱃갑이 널브러져 있고 헌금 장부는 책상 위에 펼쳐진 채로 놓여 있었다. 헌금이 들어있던 봉투에는 동전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2주 후 돌아온 형제의 수중에는 헌금이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헌금이기에 반드시 갚으라고 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갑자기 7천 위안이 든 카드를 내게 내민다. 무슨 돈이냐 물으니 결혼자금으로 부모님이 주신 것이란다. “그것은 부모님 돈이지 네 돈이 아니다. 받을 수 없다.”하며 거부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이 형제는 울며불며 내게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집을 나갔다(그 자매로부터 결혼을 못하겠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었다). 또 황당한 경우를 당하고 말았다. 며칠 후 그는 갑자기 우리 집에 와서 다짜고짜 1만 위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술 취한 친구 차를 대신 몰다가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고 지금 감옥에 있단다. 그러나 그때는 매달 잘 들어오던 사례비가 행정착오로 우리에게로 오지 않고 한국에 있는 처형에게로 가버려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2천 위안 밖에 줄 수 없다 했더니 그는 교회 열쇠를 꺼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교회를 떠나겠다는 의미냐고 물었더니 신을 떠나겠단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1만 위안을 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니 그땐 다시 생각해 보겠단다. 그 형제에게 줄 돈도 없거니와 붙잡을 마음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몇 번 교회에 나오더니 스스로 발길을 끊어 버렸다. 

그렇게 폭풍과도 같았던 사스가 끝나고 첫 모임시간. 학생들이 많이 나오지 못했다. 사스의 영향이 크긴 컸다. 다시 스무 명 가량이 되기까지 시일이 걸렸고 기존 학생이 아닌 새신자들로 채워졌다. 또 다시 양육을 시작해야 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전도 덕에 인원이 채워졌다. 우리는 그곳에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에 중국어 학습과 복음 전도, 중국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개인교사를 두었다.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개인교사 덕분에 그 유명한 ≪사기≫ 를 지은 사마천의 고향이자 그녀의 고향집에 놀러가서 며칠 묶고 오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 신분을 의심했는지 남자친구를 데려왔는데 경찰이란다. 순간 놀랐지만 태연한 척 애를 쓸수록 더욱 티가 났다. 개인교사는 며칠 더 와서 가르치더니 본인 학업 때문에 바쁘다며 가버렸다. 이제까지 쌓아온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새로운 개인교사를 두었지만 복음전도는 쉽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학교 총장이 입학식 때 기독교인 외국인과 만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주의를 주는 것이 아예 정례화되어 있었다. 게다가 한 외국인이 복음을 전하다가 발각되어 그 학교에서 추방되기까지 했단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경각심은 더더욱 높았다. 개인교사 전도는 대부분 실패하였고, 성공했더라도 1년여 관계를 쌓다가 공산당 입당문제로 떠나버렸다. 이 일로 아내보다도 내가 크게 실의에 빠졌었다. 복음전도의 잇단 실패로‘내가 선교사가 맞나?’하는 정체성의 위기감이 몰려왔다. 

감사하게도 학생들이 끊이지 않고 전도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상실감은 사라져갔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전도출석 인원이 40여 명 가까이 됐을 때 교회를 두 곳으로 나누었다. 한 곳은 형제숙소, 다른 한 곳은 자매숙소로 사용하였고 주일에는 제자훈련을 마친 4명이 2인 1조가 되어 설교를 하며 교회를 섬기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안식년을 갈 수 있었다.

달라진 사역환경
안식년을 마치고 두 번째 텀 사역에 접어들었다. 아내와 3개월이 안 된 딸을 안고 세 사람이 다시 같은 땅을 디뎠다. 첫 번째 텀 때와는 달라진 환경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 주소를 신고하러 경찰서에 갔더니 키가 거의 1미터 90에 달하는 경찰서 부소장이 위압적인 자세로 이곳에 왜 왔느냐고 따져 묻기 시작했다. 30분 가량의 심문이 이어졌다.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차분하게 대처했다. 그는 의심이 풀렸는지 갑자기 한국의 드라마, 계절 등등으로 화제를 바꿨다. 그날 우리 전담경찰이 정해졌고 모든 외국인이 다 그렇듯 6개월마다 비자 연장 때문에 경찰서를 방문해야 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학생이라 졸업하고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모임도 두 개에서 하나로 줄었다. 설교했던 형제자매들이 내가 오자 다들 설교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들었다. 결국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 선교사들이 지금 안전 문제로 몇 분이 쫓겨나갔고 위험하니 교회에 가서 설교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했다가 쉬고 있던 현지인 전도사님을 세웠다. 학력, 실력, 인품 모두 좋은 분이었다. 교회 사역에 대한 모든 것을 그에게 안심하고 맡겼다. 아내가 한국어 강사로 대학교에서 일하면서 전도접촉점을 만들려 분주히 애쓰는 동안 아기 돌보기는 내 차지였다. 근 1년간 내가 하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아이를 돌볼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했다. 

학력도 좋고 실력도 좋은 전도사님이라 안심한 것은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그 전도사님의 부인은 가까운 교회에 나간 후 주일에도 장사를 했다. 사역을 맡긴 지 3년이 다다랐을 때 우리는 그에게 아내와 자녀도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권면했다. 평신도라면 모를까 말씀의 대변자로서 어떻게 다른 성도에게 주일성수하라고 설교할 수 있겠나 했더니 그는“장사는 포기 못합니다. 설교는 포기해도….”하고 답했다. 그 순간 눈물이 흘러 내렸다. 3년간 그를 위해 했던 모든 기도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급기야 내가 또 뛰어 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더더욱 놀랐다. 3년 동안 그의 말씀을 들었던 성도들은“말씀은 좋지만 비현실적이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 전도사의 태도와 똑같았다. 이런 생각을 말씀으로 수술하고 바로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주 매주가 영적 전쟁이었다. 그 전도사님은 당분간 우리 교회에 나오더니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대형 사고를 쳤다. 유부남인 그가 여청년을 성추행했다. 그 전도사가 고향으로 돌아간 후 그 자매가 참고 참다 눈물로 실토하는 바람에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를 한 때 존경했던 어떤 성도는 그 일로 장기간 나오지 않았고 외국인 목사인 나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은 잔잔해졌지만 정말 잔인한 시간이었다. 또 다른 전도사님을 초빙했다. 성도들이 모두 좋다고 하여 그를 세웠다. 열정적이었고 설교하는 목소리가 아주 좋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성도들은 모두 전문대 졸업 이상이어서 스스로 위축된 그를 세우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균형이 없고 상황에 안 맞는 말씀을 종종 전하곤 했다. 성도들은 그런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답답했고 소통이 되지 않음을 느꼈다. 급기야 성도들 입에서“교역자가 설교만 하면 다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생각을“우리는 모두 과정 중에 있고 하나님도 참고 기다리신다”라는 말씀으로 교정시키느라 애를 썼다. 현지인 전도사의 생각을 바꾸는 일에도 애를 많이 써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 사역의 대상이 학생이 아닌 가정을 가지신 분들로 거의 모두 교체되었다. 우리는 딸아이가 아니었다면 가정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힘든 양육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들을 이해할 수도 섬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설교 내용도 바뀌었다. 이렇게 두 번 째 텀은 첫 번째 텀과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간간이 제자훈련이 실시되어 리더가 서고 두 곳의 목장이 세워졌다. 잦은 출장으로 제자훈련을 받지 못했던 남편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경험상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과연 누가 제자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알기에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교회에 선교부 간사를 세워 전문적으로 섬기도록 했다. 장차 그도 선교사로 헌신할 자매였다. 그러나 믿은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새벽기도도 나오게 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였다. 공동체의 점검을 받고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그는 대학 졸업에 영어도 잘하고 실력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부족함이 많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며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예상외의 일이 발생했다. 한국 성도 한 사람이 중국인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우리에게 일정액을 후원했다. 우리는 그 후원비로 그 자매를 돕고 있었는데 그 후원자가 갑작스런 일로 후원을 못하게 됐다. 결국 그 일을 사실 그대로 말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그 자매는 일에서 물러섰다. 사역현장에서 우연히, 때마침 일어난 일들을 종종 보면서 선교는 하나님이 하심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복음 전도, 즉 영혼이 모아지는 과정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함을 알았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말이다.

시험대 - 말씀에 순종
두 번째 텀을 마치고 안식년으로 귀국하기 전 성도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11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였다. 돈에 민감한 중국인, 그것도 신앙적으로 연약한 중국인에게 헌금에 대해 설교한다는 것은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도 무릅써야 하는 일로 생각될 만큼 민감한 일이었다. 세례식 때 세례교인은 십일조를 내야한다는 소리를 듣고 실제로 안 나온 지체도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웠고 긴장했다. 이윽고 헌금 설교가 다 끝나고,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저마다 봉투에 헌금을 넣어 하나님께 드렸다. 한 때“말씀은 좋지만 비현실적이야!”하던 지체들이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과 마음에 나는 적잖이 감동했다. 

지금 나는 한국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우리 교회가 말씀과 기도의 교회가 되며 선교적인 교회, 주위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박다윗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