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숙제를 남기다
지난 11월 중국 정부의 종교정책과 중국기독교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장면이 펼쳐졌다. 첫 번째는 시진핑(习近平) 당 총서기를 중심으로 한 제5세대 최고 지도부가 탄생한 것이다. 미국과 더불어 G2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중국의 새 리더십 구성 과정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향후 10년, 짧게는 5년간 14억의 중국을 이끌어갈 최고 지도부의 등극을 앞두고 ‘보시라이(薄熙來) 사건’ ‘시진핑의 잠적’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축소설(說)’ 등 적잖은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현재 중국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급속도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두 번째는 비록 오래 전 은퇴했지만 공인된 중국교회(삼자교회)의 상징으로 국내외에 널리 인정받아온 딩광쉰(丁光训) 주교가 사망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중국교회에게 어떻게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사회 중심세력으로 등장할 것인가 세계교회한테는 어떻게 중국을 향한 선교적 과제를 재조정해나갈 것인가 하는 쉽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장면1
11월 15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내외신 접견 단상. 11월 8일 중국공산당 제18기 전국대표대회에 이어 열린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 1중전회)에서 선출된 시 총서기 등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이 처음으로 전 세계 미디어 앞에 섰다. 시진핑을 중심으로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云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 등이 자체 서열에 맞춰 도열했다.
시 총서기는 전임자 후진타오의 스타일과는 달리 시종 자신만만하고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것 같은 과거 리더십과는 달리 약 20분간 대화를 하는 듯 편안한 말투로 연설을 했다. ‘인민’(19회)과 ‘민족’(12회), ‘책임’(10회)을 자주 언급했다. 그는 “책임은 태산처럼 무겁고 갈 길은 멀다”면서 “우리는 인민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밤낮없이 일해 역사와 인민들 앞에 합격 답안지를 바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 총서기의 이날 연설을 좀 더 들어보자. “우리의 책임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도록 당 전체와 국가 전체, 각 민족을 단결시키고 이끌며 중화민족이 세계 여러 민족 중에서 더욱 견고하고 힘차게 자립하고 인류를 위해 더욱 새롭고 큰 공헌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인민은 더 좋은 교육, 더욱 안정적인 일, 더욱 만족할 만한 수입, 더욱 의지할 수 있는 사회보장, 더욱 수준 높은 의료, 더욱 안락한 주거, 더욱 아름다운 환경을 원할 뿐 아니라 자식들이 더 훌륭하게 자라고 더 좋은 일자리를 얻으며 더욱 좋은 생활을 누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민생안정과 더불어 부패척결에 나설 뜻도 분명히 드러냈다. “당 간부들의 부패와 독직, 군중과의 괴리, 형식주의, 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있다”면서 “이는 반드시 모든 힘을 기울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3월 제12기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국회)에서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 등 정부 요직이 최종 결정되지만 공산당이 국가를 영도하는 ‘당국가(黨國家)체제’ 하의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결정이 우선한다는 점에서 이날 최고 지도부 구성은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에 시 총서기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까지 동시에 거머쥐었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임을 국내외에 충분히 각인시켰다.
#장면2
지난 11월 22일 오전 10시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제7기에서부터 10기까지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을 지낸 딩광쉰 애덕(爱德)기금회 이사장이 향년 98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5일 뒤 화장된 그의 별세 소식에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 장쩌민(江澤民), 우방궈(吳邦國), 원자바오(溫家寶), 자칭린(賈慶林), 리커창, 장더장, 위정성, 류윈산, 왕치산, 장까오리 등 중국 지도부가 각종 방식을 통해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딩광쉰은 중국 특색의 정부 공인교회인 삼자(三自: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를 이끌어왔다. 그러기에 중국 가정교회(지하교회)와 세계 복음주의 인사들로부터 공산당에 협조하는 변절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는 원래 모태신앙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영국성공회 신부,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인이었다. 생후 4개월에 유아세례를 받은 그는 성공회 계통 학교를 다녔다. 1937년 상하이(上海)의 성 요한대학(중국 공산화와 함께 1952년에 폐교됨)에서 문학학사를 취득한 그는 42년 동 대학에서 신학학사 학위까지 받은 뒤 캐나다에서 기독학생 운동을 하다가 도미, 48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와 유니온신학대학에서 각각 문학석사와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48년부터 51년까지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기독교학생동맹의 간사를 맡기도 했다. 51년에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2년 후 난징의 진링(金陵)협화신학원 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중국 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중국삼자회) 설립에 기여했다. 55년에는 영국성공회로부터 중국 성공회 저장(浙江) 교구 주교로 임명됐다.
하지만 80년부터는 중국 기독교협회 회장을 맡은 이래 중국성공회 해산을 주도했다. 그는 부총리 급에 해당하는 정협 부주석을 4회 연속 맡으면서 중국 공인교회의 상징임을 과시했다. 97년부터 중국삼자회 명예주석과 중국기독교협회 명예회장을 맡으면서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었다. 1998년 딩광쉰을 중심으로 ‘신학사상건설 운동’이 일어나면서 해외신학사상과의 접촉을 통한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중국 특색의 신학이론을 제시했다. 삼자교회 리더십은 2008년을 기점으로 상당히 젊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사망은 삼자교회의 한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이 내렸음을 보여주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종교정책의 가늠자, 과거 최고 지도부의 종교관 계승
활짝 열린 시진핑 시대에는 서구적 가치로도 동의할만한 종교자유가 실현될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중국선교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국 인권단체인 중국구호협회(CAA , China Aid Association)가 2011년 ‘중국 가정교회 박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전국적으로 93곳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으로 1289명(교회지도자 267명)이 체포·구금되고 교회지도자 4명이 교도소에 수감됐다. 고문사건은 24건, 대상자 76명에 달했다. 2006년에는 46곳에서 검거작전이 펼쳐져 650명이 체포되고 17명이 교도소에 보내졌다. 반면 고문사건은 4건, 대상자 7명에 불과했다.
이번 보고서를 보면 베이징 등 대도시 가정교회 지도자와 크리스천 법조인, 인권운동가에 대한 박해가 보다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가정교회 지도자 및 도시 가정교회, 2010년에는 기독교인권변호단체 등에 대해 주로 이뤄졌던 제약이 2011년을 기점으로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음도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가정교회 지도자들은 “중국에 법률적 종교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종교활동 자유는 극히 제한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한인 선교사들이 꾸준히 추방되고 있는 게 그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AA의 보고서 등 중국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정부의 압박은 일반적 가정교회 지도자, 도시 가정교회, 변호사 등 기독교인권운동가, 영향력 있는 가정교회와 기독인, 외국인 선교사 등으로 세분해서 이뤄지고 있다. 2007년 추방작전 ‘타이펑 5호’에 따라 외국인 선교사 100명 이상 추방된 이래 해마다 꾸준히 선교사들이 사역지를 등져야 했다. 과거에는 체포 대상을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았지만 2006년부터는 이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2007년 체포된 기독인 가운데 지도자는 415명이나 됐다. 지역도 과거 농촌 교회가 주종을 이뤘지만 도시화의 급속한 진척에 따라 도시 가정교회로 옮겨갔다. 2007년 체포된 693명 중 도시에서 500여 명이 붙잡혔다. 2011년 10월 티베트자치구 라싸에서 11명의 가정교회 지도자와 기독인들이 체포돼 한 달간 구금상태에 있었고 장족어로 된 성경책 2000여 권이 몰수됐다. 전국적으로 주요 교회지도자들이 실형을 받는가하면 가족과 함께 연금 상태에서 생활해야 했다.
중국에서 종교는 공산당과 정부의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며 지도를 받아들이고, 당과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탄압 사례들이 심심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중국에서 ‘종교는 아편’이라는 ‘교조주의적 종교관’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2007년 12월 18일 중국공산당 정치국 제2차 집단 학습시간에 행한 후진타오 당 총서기의 연설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중국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법의 테두리에서 종교 관리와 종교 자유정책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종교단체들이 더 많은 종교 교직자들을 선발, 양성해야 할 뿐 아니라 자주능력을 높이고 종교인들은 민족 단결과 경제발전, 조화로운 사회 건설, 조국통일 등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후진타오 시대의 종교정책인 ‘종교사무조례’ 발효 후 최고 지도부가 얼마나 종교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교회하면 떠올리게 되는 단어인 ‘4다(多)’ 현상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교회 구성원 가운데 젊은이들보다는 노인이 많았고 고학력자보다는 저학력자가 많았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월등히 많았다. 또 도시보다는 농촌중심 교회였다. 하지만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발전과 도시화가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도시로 몰려드는 농촌출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기업가, 교수, 문인, 화가, 연예인, 해외유학파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아져 교회 판도가 점차 바뀌게 됐다. 외국 유학이나 해외 선교사들과의 지속적인 교류 등을 통해 목회자들이 직장선교, 가정사역, 치유사역 등 기존의 전통가정교회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훈련프로그램들을 신흥도시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중국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 진행하고 있다. 자체 홈페이지뿐 아니라 ‘살구꽃(杏花)’ ‘교회(敎會)’ ‘감람나무(橄欖樹)’ 등 전문잡지를 펴내는 교회들도 늘고 있다. 이는 자칫 반지성주의, 신비주의에 휩쓸릴 수 있는 전통 가정교회의 신학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도시 가정교회 지도자 간 모임과 사회적 책임 논의가 빈번해지면서 목회자들은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교회와 목회 모델, 신학과 실천 방안을 찾는데 힘쓰고 있다.
대도시에는 기존 교회 외에 노동자교회, 상인교회, 해귀파(海歸派: 해외 유학 후 귀국한 인력)교회, 문화예술인교회, 학생단체 등 다양한 교회 형태가 등장해 지식인 중심 예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공산당원 중 신분을 숨기고 교회에 출석하거나 예배 처소를 제공해 주는 이들도 있다. 게다가 해외에서 신학·목회학석사는 물론 신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젊은 목회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시장경제, 개성화, 브랜드 추구, 인터넷, 스마트폰, 세계화 등에 노출돼있는 ‘바링허우(80後, 1980년대 출생자)’ 세대에 이어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출생자)’ 세대가 사회진출을 시작하면서 1970년 이전 세대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바링허우 세대 수는 전체 인구의 7분의 1 수준인 2억 명에 달한다. 주링허우는 인구의 11.7%에 달하는 1억 40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그만큼 세속화에 대해 과거 세대에 비해 더 쉽게 오염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독교는 외래종교, 사교, 아편’이라는 이데올로기에는 덜 전염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관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회가 점점 다양해지고 젊어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공식적인 교회 건물을 갖기 쉽지 않아 장소를 임차해 예배를 드리지만 사고가 유연한 젊은이들에게도 장애 요소가 되지 못한다. 대학생 성경공부 모임들이 속속 교회 조직을 갖추면서 집회 장소가 배 이상 늘어난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담임목회자를 당당하게 청빙하는 재정자립도가 높은 교회들도 있다.
중국 정부의 입장 변화와 일반인들의 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점점 엷어져간다고 해도 정교관계는 일정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첫째, 종교단체는 지역의 당 통전부(統一戰線部)와 정부의 종교사무처, 공안국, 민정 담당 부서와 긴밀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교사무처는 종교활동 장소에 대해 관리권, 비준권, 인사권, 종교장소 보수 건립권, 처벌권 등을 갖고 있다. 둘째, 종교단체가 자체 이익회복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제한하고 심지어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종교가 법률의 보장과 보호를 완전히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1년 2월 5일 중국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에서 공포한 ‘6호문서’는 종교에 관한 기본법이 아니라 종교업무 관계의 행정법규다. 1994년 1월 31일에 공포한 국무원령 144호(중화인민공화국 국내외국인 종교 활동 장소관리규정)와 145호(종교 활동장소 조례) 등은 종교자유의 제한과 종교 활동의 범주화, 정부의 종교사무 담당부처의 권력 강화, 종교 활동장소에 대한 합법적 권익과 보호와 장소에 대한 관리 강화, 중국내 외국인의 종교 활동의 제한과 금지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역마다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범위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종교법규를 통한 종교의 발전과 종교권익의 확대, 종교고유권과 자주권의 확립은 아직 거리가 있다. 향후 5세대가 전임 지도자들보다 더 유연하게 종교문제를 다루게 된다면 종교가 보다 자율성을 갖고 관리되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당분간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의 스타일을 보면 향후 종교정책을 짐작할 수도
시진핑 시대의 종교정책을 언급하기에는 시기상조라 할 수 있지만 총서기 취임 이후 그의 행보를 보면 유추할 수도 있다. “공허한 말은 나라를 망치고 실질적 행동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空談誤國, 實幹興邦).”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이다. 최근 시 총서기가 이 말을 인용한 것은 그가 어떤 리더십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시 총서기는 격식보다는 실용과 소통, 이미지를 우선하는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12월 5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총서기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주재한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지도부 중심의 언론 보도 관행 개선 방안을 논의하면서 뉴스 가치를 기준으로 보도 여부를 결정하고 글자 수, 방송 시간 등을 대폭 줄이고 지도자 발언 등의 개별 보도를 금지토록 했다. 이는 기존 중국 언론이 지도자의 동정과 회의 내용을 뉴스 가치와는 별개로 중요 기사로 보도해온 천편일률적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과거에도 유사한 상황이 있어 지도자 중심 관행 보도 행태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유의미하다.
시 총서기가 첫 정치국회의에서 과거 지도자들이 의례적으로 당의 지도사상을 강조하는 것 대신 당 간부가 지켜야 할 업무방식 8계명을 적시하면서 가치 없는 정치국원의 동정을 언론에 보도하지 말라는 것 외에도 ‘당 간부의 지방 방문 시 교통을 통제하지 마라’ ‘대중을 동원한 꽃다발 증정 등 환영행사를 하지 말라’ ‘지도자 방문 시 레드카펫을 걷어치워라’ 등의 주문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부패와의 전쟁에는 매우 단호함을 선보였다.
따라서 시 총서기 시대의 종교정책은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되 철저한 법의 집행을 통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헌법공포 3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공산당은 반드시 헌법과 법률의 범위에서 활동해야 한다”면서 당 간부의 임의적인 판단이 헌법과 법률보다 중시되는 일을 경계하면서 법치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따라서 그가 선택할 종교정책 기조는 앞선 리더십과 동일하게 당 국가와 종교조직의 통제 메커니즘을 통해 교회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대신 당 국가에 지배받는 교회를 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다. 당 국가는 더 이상 극좌적인 수단으로 종교를 말살하지 않을 것이며 종교 신앙 자유 정책을 통해 전국의 안정과 단결을 유지해나가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당 국가가 종교영역에 대한 관리와 지배를 포기하고 완전히 자유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종교는 중국의 장래를 평화적으로 변혁하는데 쉽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당 국가는 부득불 관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총서기는 전임 후진타오 시대의 종교정책을 계승하면서도 독립 자주적으로 종교 세력이 중국문화와 역사적 상황 이해와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심화와 갈등구조 해결 등 중국이 처한 상황에 걸맞게 성장해나갈 것을 바랄 것이다. 중앙정부의 기본 입장은 전국적으로 정책은 동일하게 집행돼야 하지만 지방정부가 관련 규정을 만들 때 지역과 종교상황 등 개별적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음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즉 정책 집행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부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중국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지 않는 한, 해외종교 세력이나 불온세력에 의해 중국교회가 휘둘리고 있다는 판단을 하지 않는 한 종교 관리 정책이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비롯한 해외선교사들의 활동에는 경계의 시선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국교회를 전략적 교류 파트너로 활용해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정책에 일정 압력을 가할 개연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한국교회, 중국선교를 넘어 선교중국의 길로
중국 정부는 기독교가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지 않는 한 기독교 인사들을 직접 탄압하는 것은 최소화하는 대신 대외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기독교를 옥죄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우리가 관리하는 것은 종교사무이지 종교 신앙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통문화와 유가사상 등을 활용, 사회가 주동적으로 기독교를 거부하는 분위기를 연출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세계교회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중국기독교의 성장이 결코 사적 이익만 추구하고 국가와 민족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어야 한다. 교회가 절대로 국가에 적대적이지 않으며 교회가 성장할수록 나라의 평화와 발전에도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주어야 한다. 중국 기독교는 공공이익을 보호하고 교회 행정 시스템이 그 어떤 조직보다 선진적이라는 것을 사회에 각인시켜주어야 한다. 중국인에게 기독교가 필요할 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도 중국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그동안의 중국선교를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2년은 한중수교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는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본격화된 지 20년이 됐다는 의미다. 중국교회, 특히 가정교회가 성장하는 데 있어 한국교회와 한국인 선교사들의 눈물과 땀이 적잖은 기여를 한 것을 현지 교회지도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가정교회와 삼자교회 모두와 관계를 증진시켜나가야 한다. 가능하다면 가정교회와 삼자교회 간 피스메이커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삼자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2008년 전후로 젊은 세대로 교체됐다. 당시 베이징에서 폐막된 중국기독교 제8차 대표대회에서 70대 중반의 지지앤훙 중국삼자회 주석과 차오성졔 중국기독교협회 회장이 물러나고 64세의 푸셴웨이와 46세의 까오펑이 각각 주석과 회장에 선출됐다. 이때 딩광쉰 주교는 삼자회 명예주석과 기협 명예회장에 재추대됐다.
중국기독교대표대회는 5년마다 한 차례 열린다. 중국 각 지역의 삼자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모여 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할 뿐 아니라 향후 삼자교회 발전의 바로미터가 될 주요 내용들을 결정한다. 1954년 7월 첫 대회가 열린 이래 지금까지 8차례 전국 규모의 회의를 주재하는 등 삼자교회를 실제로 영도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기독교 제8차 대표대회에서 선출된 중국삼자회와 중국기독교협회 최고 리더십 16명의 평균 연령은 55세로 지난 대회에 비해 10세나 낮춰졌다. 최연소자는 43세에 기독교협회부회장에 선출된 탕웨이민 목사이었다. 전국 30개 성, 시, 자치구 등을 대표해 이번 대회에 참석한 지도자 277명의 평균연령도 50세에 불과했다. 전체 참석자 중 27%가 여성으로 지난 대회에 비해 0.1%포인트 높아졌다. 소수민족 대표와 평신도 대표도 각각 28명 참석했다.
한국교회는 중국 사회와 기독교를 연구하는 중국학자들과의 연대도 고려할만 하다. 중국학자들 가운데 가정교회 문제의 ‘투어민(脫敏: 금기를 깨고 공개적으로 다루자는 의견)’을 주장하는 이들이 적잖다. 이를 반증하듯 중국 정부는 중국사회과학원 농촌연구소 위지앤롱(于建嶸) 교수에게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국가연구 프로젝트인 ‘중국 가정교회의 현황과 미래’라는 연구를 진행시키기도 했다. 기독교의 사회적 기여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의 공동연구를 통해 기독교가 국가에 반하지 않고 애국의 모체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정부가 탄압하면 할수록 교회는 더 불같이 일어난다는 역사적 사실을 들어 정부가 교회를 체제 내에 편입시키려 할 때 삼자회로 무조건 들어오라는 태도보다는 ‘제3지대’를 마련해놓고 선택하게 하는 게 더 현명할 것임을 걸 알려줘야 한다.
한국교회는 중국교회가 세속화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교회는 농촌 중심 리더십과 도시의 신세대 목회자 간 하모니, 국내외 정규 신학교 학위 소유자와 비학위 목회자 간 파트너십 구축도 녹록치 않다. 교회가 점차 대형화되면서 단순한 설교자가 아니라 목회자를, 평신도 목회자가 아니라 보다 훈련된 전문 목회자를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
요즘 가정교회 목회자들이 선교하는 중국교회, 즉 ‘선교중국’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부르짖고 있다. 과거 중국 내 선교 열의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추동체가 없었다. 화교교회들과 연계된 해외 선교기관들이 중국교회와 공동으로 선교운동을 펼쳤지만 풍성한 열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른바 ‘원저우 상인’들도 국내외에 교회를 세워 선교공동체 운동을 펼쳐왔다. 중국 접경국가는 물론 중동 지역까지 선교사 또는 선교후보생들을 파송, 선봉대 역할을 감당케 했다. 이 역시 선교 경험이 미천하고 구체적인 선교전략 부재로 인해 ‘서바이벌(생존)’ 수준에 머물렀다. 비즈니스 사역 등으로 선교의 지평을 넓혀가려 하지만 복음 전도와 사업을 병행하기 쉽지 않아 적잖게 실패를 한다. 이 때문에 한국교회가 선교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15년 이상 사역한 한국인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중국 기독인들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하거나 훈련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교회는 실제로 중국교회를 도울 수 있는 기간이 짧아야 10년, 길어야 2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중국적인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이다. 이를 위해 ‘성경적인 세계관과 중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상황과 공과를 보다 냉정하게 평가하고 이론과 실제에 정통한 화교권 기독인 전문가그룹 및 중국선교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감 있는 연구와 교육 훈련, 대상별 맞춤 현지 기독인 목양과 선교 훈련 프로그램 구축과 컨설팅, 사역자 네트워크 등을 포괄하는 ‘원스톱 멀티형 파트너십’을 꿈꿔야 한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의 중화권을 비롯해 전 세계 화교 크리스천들과 세계 크리스천들과 함께 논의하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현재 성과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중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정보와 경험, 은사와 노하우 및 재정을 공유하고 중화권 교회를 비롯하여 세계 교회와의 협력전선을 구축해 사역해야 한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동반자적 사역을 위해서는 해외 교회와 중국 교회 및 각 단체들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회·기관 간 정기 교류 채널을 가동하고, 포용력을 갖고 서로의 노하우를 배워나가야 한다.
중국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을 해외 교회가 중복 사역해서는 안 된다. 중국교회가 해외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도울 때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가정교회가 옳고 삼자교회는 잘못됐다는 단순 비교논리에서 벗어나 현장이 필요로 하고 어떤 단체와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선교사를 훈련, 파송해야 한다. 안식년 선교사들이 대만 싱가포르 등지의 중국신학원 등에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가능하다면 한국교회 자체 또는 현지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의 선교와 목회훈련 기관을 만들어 운영해보는 것도 좋겠다. 중국교회의 인력 개발 시스템을 구축, 선교사가 없어도 현지 사역자들이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사역의 토착화, 자립 선교를 시도해나가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부터 크리스천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감정과 예감으로 대처 방안을 세우지 말고 다양하게 정보를 수집, 철저히 분석한 뒤 위기 종결과 사후 관리까지 고려하는 전방위적인 위기관리 대책이 요청된다.
요한복음 3장과 4장은 예수님이 대상에 따라 어떻게 복음을 제시했는지 잘 보여준다. 3장은 유대인 지도자인 니고데모에게, 4장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중국선교를 넘어 선교중국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도시와 농촌, 지식인과 보통사람, 남성과 여성, 노인, 어린이 등 지역과 대상에 따른 차별화된 선교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중국교회가 이슬람권을 비롯해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기독교인들과 중화권, 한국 기독교인들이 함께 일할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중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의 선교전략, 부흥전략이 아니라 기도, 헌신 등 복음에 대한 열심이라는 중국 목회자의 말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대니얼 오 | 한국중국선교협의회 상임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