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을 바라보며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제와 노에 걸쳐 그 푸름이 끝이 없구나
조물주는 신령함과 수려함을 모아놓았고
산의 남북은 어두움과 밝음이 다르도다
씻긴 가슴엔 높은 구름이 일고
터질 듯한 눈으로 새들이 날아 돌아온다
언젠가 반드시 저 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뭇 산들을 한번 굽어보리라

岱宗夫如何? (대종부여하)
齊魯靑未了。(제로청미료) 　　
造化鍾神秀，(조화종신수)
陰陽割昏曉。(음양할혼효) 　　
蕩胸生曾雲，(탕흉생층운)
決眦入歸鳥。(결자입귀조) 　　
會當凌絶頂，(회당능절정)
一覽衆山小。(일람중산소)

주석
1 岱宗(대종): 태산. 중국의 오악五嶽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동악東嶽 태산은 지금 산동성 태안泰安에 있다. ‘대산’, ‘대악’으로도 불렸는데, 여기서 ‘대종’이라고 한 것은 예부터 태산을 오악의 으뜸이요, 뭇 산들의 조종祖宗으로 여겼으므로 으뜸의 뜻을 갖는 ‘종’자를 붙여 말한 것이다. 역대 제왕들이 이곳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2 夫如何(부여하): 대저 어떠한가. ‘부夫’는 발어사發語詞로 의문의 어기를 강조한다.
3 齊魯(제로): 제나라와 노나라. 춘추전국시대에는 태산을 경계로 하여 태산 북쪽은 제나라요, 태산 남쪽은 노나라였다. 이 구절은 태산의 넓은 크기를 설명한 것이다.
4 靑未了(청미료): 푸름이 끝이 없다. ‘료了’는 ‘끝나다’의 뜻.    
5 造化(조화): 조물주. 대자연.
6 鍾神秀(종신수): 신령함과 수려함을 모으다. 이 구절은 조물주가 태산만을 특별히 사랑하여 온갖 신령한 기운과 수려한 자태를 이 태산에만 모아놓았다는 말이다.
7 陰陽(음양): 산의 남쪽과 북쪽을 가리킨다.
8 割昏曉(할혼효): 저녁과 새벽을 나누다. 이 구절은 산의 남쪽은 이미 새벽처럼 밝은데 산의 북쪽은 아직 저녁처럼 어둑하다는 뜻으로 그만큼 산이 높고 크다는 말이다.  　　
9 蕩胸(탕흉): 가슴을 씻다. 흉금을 씻어내다.
10 生曾雲(생층운): 높은 구름이 일다. ‘曾’은 ‘층層’과 같은 뜻으로 ‘층’으로 읽는다. 이 구절은 높이 구름이 일어나서 가슴의 온갖 근심과 염려를 씻어낸다는 말이다.
11 決眦(결자): 눈가가 찢어지다.
12 入歸鳥(입귀조): 산으로 돌아오는 새들이 들어오다. 이 구절은 눈을 크게 뜨고 산새들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13 會當(회당): 반드시 ~할 것이다.
14 凌絶頂(능절정): 산꼭대기에 오르다.
15 一覽(일람): 한번 바라보다.
16 衆山小(중산소): 뭇 산들이 작다. 마지막 두 구절은 태산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발 아래로 펼쳐지는 작은 산들을 굽어보겠다는 말이다.

이 시는 시성 두보가 청년 시절에 지은 역작으로 시 전체에 걸쳐 호매한 기백이 넘쳐흐른다. 주석가 중에서는 이 시에 대해 “글은 적으나 힘이 커서 태산과 겨룰 만하다”고 평가하거나, “두보의 전체 시중에서 가장 뛰어난 시”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이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마지막 두 구절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뭇 산들을 내려다보리라( 會當凌絶頂，一覽衆山小)인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한다. 특히 후진타오라든지 원자바오와 같은 중국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외교 회담에서 자주 인용하여 서방에도 많이 알려졌다. 물론 이 구절을 빌어 중국이 언젠가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두보가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후에 훌쩍 떠난 여행길에서 지은 작품이다. 독서가 만권을 넘고, 글에는 신명이 깃들어 있다고 자부하던 두보였지만 답안지 작성에는 별 재주가 없었던지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두보는 배낭을 싸 훌쩍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제(齊, 지금의 산동성)와 조(趙, 지금의 하남성과 산서성) 지역을 거침없이 쏘다녔다. 멋진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함께 겨울 숲에서 매사냥도 하고 봄이 온 누대에서 음주 가무도 하면서 거칠 것이 없이 한 시절을 보냈다. 이 시절의 모습에 대해 두보는 만년에 지은 장편 회고시 <장유壯遊>에서 “제나라 조나라 사이에서 멋대로 노닐 던 시절, 살진 말 타고 비싼 가죽옷 걸치고 제법 폼 나게 놀았지”라고 회고하였다. 한바탕 실컷 놀고 난 후 두보는 산동성 연주로 가서, 그곳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벼슬살이하고 있던 아버지 두한(杜閑)을 찾아뵙는다. 아버지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는지 자애로운 권고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뜰에서 아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잘 수습하였던 것 같다. 연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태산이 있다. 오악독존(五嶽獨尊)! 동악 태산은 예부터 오악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명산이요, 천자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성산이었다. 초여름 햇살이 연주성 고루에 쏟아지던 날 두보는 아버지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태산을 향해 길을 떠난다. 

구절양장 십팔반 산길을 하염없이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생각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인가’.......제법 따가운 초여름 햇살에 땀이 흥건하다. 잠시 쉬어갈까? 가까운 곳에 널찍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사이에서 소나무가 굳세게 뿌리박아 자라고 있었다. 바위에 올라 봇짐을 소나무 가지에 걸어두고 그늘 아래 앉아 올라온 산길을 뒤 돌아보는데, 아, 끝없이 펼쳐진 푸른 태산이여! 저 끝없는 푸르름이여!, ‘청미료(靑未了)’, 청미료, 청미료......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북쪽으로 제나라까지 남쪽으로 노나라까지 그 푸름이 끝이 없구나! 나 두보는 대저 어떤 사람인가, 저 태산과 같이 푸름이 끝이 없는 존재 아닌가! 태산의 푸름은 곧바로 두보 자신의 청춘, 푸른 청춘으로 환치되었다. 젊은 꿈, 젊은 기개는 결코 다하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둘러보니 태산의 온갖 기험한 봉우리들이 수려하기 그지없다. 조물주가 이곳 태산만을 유독 편애한 탓이런가. 신령스러운 봉우리, 수려한 골짜기들만 따로 뽑아서 이곳 태산에 집중적으로 들여놓았단 말인가. 조물주가 편애한 것이 어찌 태산뿐이랴. 나 역시 하늘의 편애를 입어 태어난 뛰어난 천재가 아닌가. 태산은 드넓어 북쪽 골짜기는 이미 어둡지만 남쪽 봉우리들은 아직도 밝다. 뉘 어둔 북쪽 골짜기만을 보며 어둡다 탄식하는가. 과거(科擧)의 실패도 그저 한 골짜기에 깃든 한 조각 어둠일 뿐이거늘 어찌 과거(過去)에 집착하여 암울해 할 것이 있으랴. 나에게는 아직도 햇빛 찬란한 봉우리들이 저렇게 높고, 저렇게 찬연하거늘. 바람이 산기슭을 불어간다. 산을 씻은 바람이 내 가슴도 훑고 지난다. 산에는 높이 구름이 일고 내 마음에도 희망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태산과 내가 일체가 된 듯 가슴이 터질 듯하다. 한 무리 지친 새들이 날아 돌아온다. 산은 넉넉한 가슴으로 새들을 품에 안는다. 나 또한 저 태산처럼 넓은 가슴이 되어 만상을 다 품어줄 것이다. 새들이 날아 돌아간 능성이 너머로 신비롭게 우뚝 솟은 태산의 정상 옥황정이 아련히 보인다. 불끈 다리에 힘이 솟고 가슴에 의욕이 넘친다. 천고를 진동한 명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내 반드시 저 산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봉우리들을 한번 굽어볼 것이다.( 會當凌絶頂，一覽衆山小) 두보의 이러한 다짐처럼 그는 시인으로서 최고의 봉우리에 올라 시성(詩聖)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스스로 거대한 봉우리가 되어 천년 세월을 넘어 여전히 뭇 산들을 굽어보며 호령하고 있다. 

실패의 그늘에 주저앉고 싶을 때 불끈 일어나 산으로 가자. 거기서 아직도 끝나지 않는 ‘푸름’을 보자. 그리고 나 또한 ‘젊음이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하자. 또 거기 하늘이 빚어낸 수려한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하늘이 빚어낸 걸작이라 자찬해보자. “하늘이 나와 같은 재주를 내었으니 반드시 쓸 날이 있을 것이다.(天生我材必有用-이백의 <장진주> 구절)”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의 바닥을 뒤집어 먼지 같은 근심들을 탈탈 털어버리고, 혹여 구름이라도 피어오르면 그것이 하늘이 내게 주는 상서로운 희망의 메시지라 여기자. 산새들도 날아와 우리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호기롭게 말하는 거다. 중국어로. “會當凌絶頂，一覽衆山小。(후이 땅 링 쥐에 딩, 이 란 쭝 산 시야오.)”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