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체제의 출범
2012년 11월 8일 열린 중국공산당 제18차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을 총서기로 하는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됐다. 마오쩌동,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에 이어 제 5세대로 불리는 이 들 지도부는 향후 10년간 중국을 이끌게 된다.

이들 5세대 지도부는 모두 문화대혁명 당시에 십대를 보내면서 농촌에 하방(下放)되어 수년간 고생을 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혼란이 무엇인지 절감하고 있으며, 당이 안정적으로 집정해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시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비록 지도부 안에 태자당, 공청단파, 상하이방 등 언론들이 지칭하는 계파가 있으며, 이들 간의 어떤 알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한 인물이 복수의 계파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고, 또 집단지도체제의 특성상 의사 결정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가 어렵다. 또한 이들은 학자나 법조계 출신이 아니라 지방 정부의 수장으로 현지 경제 운용을 맡아서 성공시켰던 사람들인 만큼, 현실 감각이 있고 서민 경제 문제에 대한 이해도 깊다.

물론 푸지앤성(福建省), 저장성(浙江省), 상하이(上海) 등 동부 연안의 발달한 지역에서 주로 공직 생활을 해 오면서 친시장적인 노선을 밟아온 시진핑과, 허난성(河南省)과 랴오닝성(遼寧省) 등 개혁과제가 많은 낙후된 지역을 거쳐 온 리커창 총리 사이에 어떤 성향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직면한 과제 앞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조화를 이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新지도부의 과제
新지도부가 직면한 과제 상황을 한 마디로 하자면 중국을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2011년 현재 중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5,184달러로 흔히 말하는 중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이 시기는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저임금에 기초한 산업 구조를 고임금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꿔야 하는 때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후 수많은 신흥공업국들이 있었지만 이 중진국 단계를 넘어서 선진국에 진입한 예는 한국과 대만이 거의 유일하다. 나머지 국가들은 구조조정에 실패하거나 사회적 혼란에 빠지는 등의 이유로 성장이 정체되고 말았다. 이를 흔히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 이라고 부른다.

중국 역시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먼저 노동력 공급이 빠르게 감소하면서 이른바 ‘루이스 변곡점(Lewsian Turning Point)’을 경험할 수 있다. 루이스 변곡점이란 농촌의 잉여 노동력이 고갈되면서 사회 전체의 임금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시점을 가리킨다. 중국의 농촌 인구는 현재 6억 4천만 명 정도이나 농업 활동에 종사하는 인구는 3억 명 남짓이다. 만약 농촌에 거주하는 비농업 인구가 도시로 유입될 수 있다면 루이스 변곡점까지는 아직도 3억 명 이상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동부 연안과 광동성 등 상대적으로 발전한 지역에서는 이미 노동력 부족 현상이 종종 보고되고 있다. 즉, 내륙 농촌의 잉여 노동력이 분명히 있지만 남동부 연안으로 인력이동이 활발히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 저임금에서 고임금으로 전환되면서 그만큼 내수가 진작돼야 하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미 저임금에 따른 인민들의 불만을 감지하고 최저임금을 매년 13%씩 높이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며, 실제로 각 지역별로는 년 20%가 넘는 인상폭이 나타나기도 한다. 만약 높아진 소득이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내수 위주의 구조로 경제 시스템이 옮아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생산 원가만 높아지고 수요는 창출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2011년 발표된 12차 5개년 계획은 바로 이 점을 핵심 과제로 삼아 ‘내수 위주로의 성장 방식의 전환’이라는 개념을 내걸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내수 진작(內需振作)은 중국 정부의 해묵은 정책 과제였으나 그 실현은 여의치 않았다. 사회보장 수준이 낮고 부동산 가격이 유달리 높아 주민들의 실제 소비액이 늘어날 여지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로서는 주민들의 소득을 더 높이고, 사회보장 체계를 더 넓고 깊게 갖춰나가는 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EU에 대한 수출이 급감하면서 외부 수요에 의존한 성장 방식의 한계를 체험한 중국은 더욱더 내수 위주의 성장 정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셋째, 중국 특유의 현상 중 하나로 토지 자원의 고갈을 들 수 있다. 모든 토지가 집체소유 혹은 국유지로 정해진 중국에서는 개발을 위한 건설용지 공급을 위해 농지를 수용하고 그에 대한 사용권을 판매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그리고 지방 정부는 저가 수용액과 고가 판매액을 통해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왔고 그것이 지방 정부 예산외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데 수용될 수 있는 농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농민에 대한 보상 수준도 갈수록 높아져야 하므로 현재의 토지 공급 방식은 무엇인가로 대체돼야 한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매년 토지 사용료를 납부 받는 연조제(年租制)나 이미 개발된 토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부동산세를 도입하는 등의 실험적인 조치를 개발했으나, 아직 현재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없는 상황이다.

넷째, 이러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사회적 불만이 응집되면 정치적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도 1988년에 있었던 물가 폭등을 그 배경으로 한다. 5억 명의 네티즌과 2억 개의 블로그가 존재하는 지금은 더 작은 불만 요소에도 여론은 급속히 악화된다. 중국 정부가 각종 방법으로 여론을 통제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공산당을 대체할만한 집정 세력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가까운 시일 내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상황은 공산당 집정에 점점 더 불리한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진핑 지도부는 꾸준한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한편 저가형 산업 구조를 고가형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는 모순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앞서 한국과 대만만이 중진국의 함정을 빠져나왔다고 언급했지만, 과정에 있어서 두 나라 국민의 자질과 적절한 정책 결정 외에 ‘3저(저유가, 저환율, 저금리)’라는 국제적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즉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수출을 할 수 있었던 행운을 만났던 셈이다. 중국은 현재 고유가에 위안화 절상 압력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한국과 대만이 누렸던 행복한 외부적 환경은 누리지 못 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도시화와 서비스화를 통한 내부 수요 창출을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돌로 삼으려 한다.

중국의 2011년 현재 도시화율은 51.3%로, 비슷한 소득 수준의 다른 나라들보다 매우 낮으며, 선진국의 70-80%보다도 훨씬 낮다. 앞서 언급한대로 앞으로 중국은 앞으로 3억 명 이상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될 여지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건설 및 부동산 수요가 발생하고, 집적 효과로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궁극적으로 도시민이 더 높은 소비성향을 보이므로, 새로운 도시인구로 인해 그만큼 내수가 커진다.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중국의 서비스업 비중은 낮아지고 그만큼 서비스업 비중이 낮아진다. 서비스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제조업보다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도시에 실제 거주하나 도시의 호적을 갖지 못한 이른바 농민공을 시민화 하는 것이다. 급속한 도시화를 막기 위해 호구를 통제한 결과 나타난 농민공이란 현상은 그동안 사회 전체의 임금을 인위적으로 낮춤으로서 중국의 고속 성장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슬럼이 별로 없는 중국 도시들의 오늘날의 모습도 호구제도의 제약으로 급격한 도시화 러쉬가 발생하지 않은 덕이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에서 소외된 농민공 및 관련 사회 계층의 불만이 여론을 형성할 정도로 커지고, 이들의 저소득이 저조한 내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호구를 개방해야 할 때가 왔다고 깨달았다. 이에 따라 이미 20여개 성에서 호구의 노동 일체화 관리를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성에서도 농민공 출신에 대한 실질적인 처우개선은 여전히 한계가 있으며,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농민공들의 시민화 수요가 높은 지역에서는 아직 호구를 개방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농민공을 시민화 하는데 교육ㆍ보건ㆍ주택 등과 관련한 돈이 들기 때문이다. 중국의 연구자들은 농민공 한 사람을 시민화하는데 약 8만에서 10만 위안 가량이 소요된다고 보고 있다. 현재 2억 5천만 명의 농민공을 모두 시민화 2조5천억위안, 2011년 GDP의 약 5%가 필요한 것이다. 18차 당 대회에서 점진적인(有序) 농민공의 시민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힌 이유도 이 큰 재원을 한 번에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상적 다원화 전망
한편 사상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앞으로 제한적이나마 다원화의 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열린 18차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업무보고를 하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동 사상을 언급하지 않고 바로 덩샤오핑 이론과 (장쩌민의) 삼개대표론, 그리고 자신의 과학적 발전관을 지도 이념으로 거론했다. 한때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이즘(Maoism)을 당장(黨章)에서 삭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 언급을 회피하는 정도로 수위를 맞춘 것이다. 비록 사회주의의 근본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영구혁명론 등의 기존 이념들이 현대 중국 지도부에게는 불편해진 것이다. 문제는 사회주의 이념이 빠져나간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과 장쩌민의 경제발전 우선 이념이나 후진타오의 균형 발전 방침이 정책 당국의 지침이 될 수는 있어도 인민들의 삶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중국 당국은 공자 사상으로 대표되는 유교를 부각시키거나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한다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적 다원화는 어디까지나 중국 정부의 틀 속에서 허용될 것이다. 비록 공산당이 인가하는 대형 교회가 베이징 시내에 들어서고, 민주주의 개혁을 부르짖는 ≪남방주말(南方週末)≫과 같은 언론들이 발간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모두 당국의 계산속에 있는 것들이라고 봐야한다. 18차 당 대회에서도 개방개혁과 민주 요소 도입을 강조하다가도 ‘사상공작 강화’와 같은 기존 통제 방식의 유지를 여전히 천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구식 정치 모델을 결코 답습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신구 지도부가 반복해서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상적 다원화에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최필수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