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압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 박노해 -
그리기 아리송한 중국인의 초상
중국에서 6년을 사역했고, 그 이전과 이후에도 끊임없이 중국을 오가며 중국 사람들을 대면해 온 필자에게도 ‘중국인’ 이라는 단어는 아직까지 거대한 미로와 같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은지 올해로 20주년이 되었지만, 이러한 고민은 소위 ‘중국을 좀 안다’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일전에 루쉰의 ≪아Q정전≫이후 가장 통렬한 중국 문화 비판서로 일컬어졌던 ‘추악한 중국인’의 저자 보양(柏楊)1)은 나름의 관점으로 중국인을 평가한 대표적인 지식인 중에 한 명이다. 1984년 9월 보양은 아이오와대학의 초청으로 미국 방문길에 오르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행한 첫 번째 강연의 제목이 ‘추악한 중국인’이었다. 강연에 대한 격렬한 반응은 곧바로 대륙으로 파급되었고, 마침 대륙에서 번져나가던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운동과 호응하며 큰 파문을 일으킨다. 그는 이 책에서 중국의 전통문화를 ‘장독’으로 비유하며, 중국인들이 이기적이고 타인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없으며 권력에 쉽게 굴복하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가 말한 중국인의 특징은, 첫째는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럽다. 둘째는 자기들끼리 싸우는 내분이다. 셋째는 유대인처럼 부지런하다는 것을 꼽는다. 넷째는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러한 평가는 이미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내부자적인 관점이기에 단순히 즉흥적인 감각으로 내린 판단(인상 비평)이라고 폄하하기도 어려운 주장이다.
필자에게도 중국인의 다양한 계층에 대한 이해가 있다. 대륙에서의 실제생활가운데 경험한 서민계층의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이 있고, 책과 영화에서 보아 온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은 동양 문화권에 속한 사람의 이해가 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언론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중국정치인들의 경직된 모습과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수만 명의 유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밑그림도 있다. 그러면서도 느끼는 것은 대륙이라는 지역의 광대함과 고대문명에서 출발한 민족의 다양함이 항상 원형적 중국인의 모습을 찾는데 오히려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 나름의 견해로 중국인의 모습과 정의를 특징지으면, 또 다른 한쪽에서 이런 모습도 있는데요, 이러한 특징은 왜 언급을 안 하시나요, 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내미는 주장들이 반드시 있다. 이렇게 거대한 용광로처럼 녹여 포용하는 모습이 중국의 특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라는 말처럼 모든 모습이 중국인의 모습이라면 어떤 모습도 중국인의 특징이라 단정할 수 없게 된다. 마치 방향 없는 미로 속에 갇혀 위에서 내려다보는 조망 없이 앞에 길이 트여있다고만 해서, 이쪽이다, 저쪽이다, 서로의 출구만을 고집해 간다면 더더욱 미궁에 빠질게 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감히 중국인의 초상을 그릴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내부자의 통찰, 외부자의 관점
베이징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유학 체류 기간 동안 다양한 글들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자리매김하며 눌러앉은 자지앤잉(査建英)은 ≪중국인의 초상≫(원제 Tide Players: The Movers and Shakers of a Rising China) 이라는 책으로 다시 한번 중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도전의 글을 시도한다. 이미 그 이전에 자지앤잉은 탁월한 문장력과 식견을 갖춘 통찰력으로 중국과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가 1995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처음으로 쓴 책 ‘차이나 팝’이 큰 호평을 받음으로 인해 그녀는 주목받는 작가의 자리에 올랐다. 또한 1980년대 중국의 모습을 문화적으로 회고한 ‘80년대 중국과의 대화’ 라는 책도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판매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자의 통찰력을 갖고 있는 자지앤잉은 기존의 작가들을 그려낸 중국인의 초상화들과는 다른 빠른 붓놀림으로 인물 중심의 서사적이며 현장감 있는 그림들을 보여준다. 이전의 대부분의 책들이 분석적이고, 하나의 틀을 전제로 글을 전개해 나가는 서술형식인 것에 반해 ≪중국인의 초상≫은 섬세한 묘사와 한 인생의 흐름을 꼼꼼하게 추적해 감을 통해 여섯 인물들의 다양한 중국인의 초상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2011년에 출간된 본서는 ‘이코노미스트’지가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본서는 여섯 인물들의 이야기를 사실감 있게 묘사하여 읽는 재미가 있고, 역사적 사건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고 있기에 한사람의 전기를 읽는 느낌이 있다. 특히 저자 자신은 대륙출신이지만, 미국의 오랜 체류 기간을 통해 영어로 글 쓰는 것이 더욱 편해질 정도로 동서양의 두 가지 사고와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글이다. 그러기에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인간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그런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향후 어떤 선택들을 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거시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그 큰 흐름 가운데 떠밀려 가는 다양한 인간상들의 세세한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 오히려 아직도 진행 중인 개혁개방 30년간의 변화의 광풍을 맞으며 주저앉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우뚝 서 지켜낸 6개의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사람들의 자화상
저자는 여섯 명의 신분을 크게 지식인들과 기업가들로 나눈다. 1부에서 3명의 지식인들을 조명할 때는 가장 먼저 일당 독재 체제를 고수하는 중국공산당에 맞서 중국민주당을 창당한 죄로 9년간 복역 중인 저자의 이복 오빠 자지앤궈(査建國)를 소개한다.
그는 문화혁명 당시 열렬한 홍위병 역할과 시골에서 하방(下放)생활의 모범을 보이며 혁명적 생활을 이어갔지만, 마오의 죽음과 함께 문화혁명이 막을 내리자 20년간의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해가 바로 89년, 톈안먼의 해였다. 그때부터 현실에 눈을 뜨며 중국 최초의 야당인 중국민주당을 창당, 제2의 혁명적 삶을 살아가며 엇갈린 두 평가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미아이자, 국가의 적’,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한 자지앤궈는 지앤잉에게 “중국은 거대한 나라다. 인구가 13억이나 돼. 민주화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사람이 적어도 몇 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라고 말했다. (66쪽)
두 번째 인물은 중국의 문화부장관을 지낸 왕멍(王蒙)이다.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네 번이나 거론될 만큼 영향력이 있는 작가임과 동시에 청년시절부 급진좌파 사상에 매료되어 열렬한 공산주의자이자 충실한 당원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평가는 자연스럽게 둘로 선명히 나누어지는데, ‘중국공산당의 대변인’이요,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위대한 작가’가 다른 하나의 평가이다.
왕멍은 스스로 “나는 중국공산당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없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을 옹호한다”고 말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대의 평가는 그를 비겁한 행동주의자로 몰아간다. (121쪽) 그러한 시각과는 달리 왕멍은 톈안먼 시위대와 싸우다 다친 인민군 병사들을 위문하라는 당의 지시를 거부함으로, 그 병사들의 발포로 죽어간 젊은이들을 외면치 않는 작가적 양심을 보여준다.
세 번째 인물은 중국의 교육개혁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중국 제일의 대학 베이징대 교수 류동(劉東)과 장웨이잉(張維迎)이다. 특히 류동은 2003년 베이따(北大)의 교수진 채용과 승진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발의된 ‘베이따 개혁’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개혁’이 아니라 ‘보존’이 최선이라는 주장을 고수해 갔다.
이 개혁안에 찬성하는 입장은 주로 서구식 교육을 받은 학자들이었고, 이러한 개혁이 오랫동안 지체되어온 중국대학을 진일보시키는 용감한 발걸음이라며 환호했다. 반대쪽에 서있는 이들은 국내에서 교육받은 인문학 교수들로. 교육적 현실의 몰이해속에 교육당국이 내놓은 독단적이고 그릇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렇듯 대학개혁 문제는 한동안 중국 지식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의 중심에 선 류동은 이렇게 말하며 베이따를 떠난다. “내가 베이따 교수가 되었을 때 다들 내가 베이따에 집착한다고 놀렸지. 하지만 떠날 땐 후련하더라. 베이따는 이제 과거의 베이따가 아니야. 점점 더 빈껍데기가 돼가고 있는 것 같아.” (201쪽)
2부의 내용은 기업가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중국의 돌변적 경제상황에서 출현한 벼락부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는 ‘반혁명분자’로 잔혹하게 처형당한 어머니의 한을 갚으려는 가전제품 유통업계의 거물 장따종(張大中)이 소개된다. 그는 한때 다종디엔치라는 62개에 달하는 가전제품 유통업체를 운영하며 수백만 시민들에게 알려진 친근한 인물이다. 특히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회사를 매각한 뒤 새로운 일에 몰두하는데, 문화혁명 기간 중 마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다 사형까지 당한 어머니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었다. 장따종은 그동안 쌓은 부를 이용해 정부에 법적으로 호소하고, 어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설득해 간다. 그러한 노력 끝에 어머니가 ‘반혁명분자’가 아님을 인정받고 정부로부터 보상금까지 받게 된다. (215쪽)
두 번째 인물은 각각 서른아홉과 마흔한 살의 장신(張欣)과 그의 남편 판스이(潘石屹) 부부로, 이들은 베이징에 기반을 둔 소호차이나의 공동 최고경영자로 중국의 내로라하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평가도 경제주체의 시각에 따라 선명하게 갈리게 된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존경과 부러움의 대명사로 불리고, 서민의 입장에서는 베이징의 주택가격을 터무니없이 끌어올린 장본인들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적 자선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는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자금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부동산 거품현상에 경보를 울렸다. 또한 2009년 말 트위터를 통해 자신과 남편 같은 신흥부자들을 중국인들이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알게 되었다며, 거품경제에 드리워진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한다. (292쪽)
마지막 세 번째는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동의 총애를 받던 ‘맨발의 의사’에서 상업화하는 중국 도서시장에서 선점하며 판을 흔들고 있는 출판계의 총아 쑨리저(孫立哲)의 이야기이다. 그는 문화혁명 당시 의료장비가 거의 갖춰지지 않은 동굴 속 진료소에서 매일 수천 명을 치료하며, 스스로 의학을 익혀 의사와 동등한 수준에 이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그러한 자수성가형 탁월함을 중국 도서시장에서도 발휘하여 ‘중국 5대 신인류기업의 하나’로 호평을 받는 CITIC 출판사를 일궈내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 두 번째 ‘맨발의 의사’로 변신한다. 그는 스스로의 삶의 모토를 ‘인민에게 봉사하라’ 단 하나의 것을 잡으며 변함없이 이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323쪽)
시대의 흔적이 배어있는 중국의 속살
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가 속한 시대배경을 통해 이해하는 거시적인 방법이 있고, 그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추적함으로 이해하는 미시적인 방법이 있다. 거시적인 방법이 사회과학과 연결하여 전체군속에서 하나의 개인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면, 미시적인 방법은 인문과학의 토대 위에 개별적인 인간상의 총합을 통해 사회구조까지 헤아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서 기존의 책들은 거시적인 방법에 따라 큰 흐름과 배경을 강조해 왔음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본서의 출현으로 중국인의 속살을 경험하는 인문학적 진술에서 읽어 가는 재미와 의미를 함께 누릴 수 있다. 본서에는 이상의 여섯 인물 외에도 상당히 많은 조연들이 등장해 각각의 주인공들의 급박한 삶에 돌아봄이라는 숨결을 불어넣어준다. ‘중국을 움직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군부와 정치가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의 방향이 중국을 움직여가는 것인가, 아니면 그 흐름과 마찰과 파열을 일으키며 개인의 창조적 영역들을 확장해 가는 다양한 인간상들이 움직여 가는 것인가?
중국을 움직이는 지식인과 기업가들의 파노라마 같은 삶을 보며 필자는 후자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한국의 또 한 명의 지식노동자이자, 시인인 박노해의 문장이 떠오른다. ‘억압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위에 여섯 인물들은 각자의 시대적 환경 속에서 억압 속에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했으며,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각자의 사랑법을 중국과 세상에 보여주었다. 진리와 사랑’이라는 인간 삶의 고갱이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삶의 현장을 지켜낸 사람들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흔적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관 | 前 중국선교사
미주)----------------
1) 중국 허난(河南) 태생으로 본명은 궈딩성(郭定生)인. 1949년 국민당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와 장제스(蔣介石) 정부의 부정부패는 물론, 중국 전통문화의 병폐와 대만사회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들을 출간하면서 ‘대만의 루쉰’, ‘중국민족의 양심’이라는 별명을 얻은 저명 작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