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을 추악하게 그리지도 않았고 일본을 미화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시디그 발레(賽德克-巴萊, Seediq Bale)》가 친일적 성향을 띠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웨이더셩 감독이 한 답변이다. 그는 일본은 영화의 구성 요소의 일부분일 뿐이며 절대적인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웨이더셩 감독은 2008년《하이쟈오 7번지(海角七號)》-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선생과 대만 여학생간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로 본 잡지1/2월호에 소개- 로 선풍을 일으켰으며, 2011년에 선보인 대작《시디그 발레》역시 일제 통치기를 소재로 하여 대만 원주민이 일본군의 압제에 대해 강렬하게 저항했던 우서사건(霧社事件)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2000년 《시디그 발레》의 대본 완성으로 웨이더셩 감독은 대만 신문국(新聞局，문화관광부)에서 수여한 영화 대본상을 받았다. 2004년에 대만 돈(台?）200만원을 들여 5분짜리 예고편을 만들었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웨이더셩 감독이 제작비 모금에 허덕일 때 저우졔룬(周杰?)은 자신이 연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단 1원의 이자를 받고 대만 돈 4천만 원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영화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할리우드 감독 오우삼이 제작자를 맡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했는데 한국은 액션장면을 디자인하고 스턴트맨 역을 담당했다. 일본은 미술, 중국 대륙은 특수효과를 맡았는데 제작비가 무려 대만 돈 7억 원이나 투입되었다. 2011년 9월 4일 전례 없이 대만 총통부 앞 광장에서 영화시사회를 열고 총통 마잉주(馬英九)와 야당 대표 차이잉원(蔡英文), 영화인 등 각계 대표가 참석하여 대만의 역사를 이해하는 국민영화로 인정받았다.

《시디그 발레》는 2011년 11월 대만 영화제 진마장(金??)에서 최고 작품상의 영예를 거머쥐었고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방인에 의해 점령군에게 무단 인도된 원주민 
1895년 청(淸) 정부는 중일전쟁에서 패하여 《마관조약(馬關條約,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에게 대만을 할양하였다. 영화 도입부에서 일본인은 북에서 남까지 소탕작전을 벌이며 평지인(平地人, 한족)을 포박 압송한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하수도의 돼지들을 클로즈업하여 노예로 전락한 대만인의 처지를 비유했다. 일본은 대만을 개척하기 위해서 원주민에게 가혹한 압박을 가하여 1896년부터 1920년까지 일제(日帝)의 대만총독부(台灣總督府)는 원주민과 최소 150여 차례의 무력충돌이 있었다. 일제는 수급사냥(괵수, ?首), 얼굴문신 등 원주민의 전통 문화를 금지시키고 혼인 정책을 시행하여 원주민을 통제하고자 일본경찰과 족장의 딸을 정략 결혼시켰다. 1910년에 주재소 부장 일본인은 시디그 족장 Mona Rudo(莫那魯道)의 누이동생과 결혼했다. 

일본인은 고산지대 광물자원과 목재를 채취하기 위해 원주민의 터전 속으로 침투했다. 일제시기 대만의 장뇌(camphor, 樟腦) 생산량은 전 세계 70％를 차지했다. 대만총독부의 주요 재원(財源)인 장뇌 채취를 위해 일본군은 원주민을 동원하여 녹나무를 벌목했다. 또한 사냥하며 생활하는 그들의 터전을 짓밟았다. 대만의 원주민은 한족(漢族)·만주족·네덜란드인·스페인인·일본인보다 앞서 대만에 정착하여 거주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족과 만주족 등 이방인에 의해 강제로 점령군 일본에 인도되어 생존과 존엄을 위협받게 되었다.

문명의 편의와 유린 vs 영혼의 자유
족장 Mona Rudo(莫那魯道, 1880－1930)의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모나야 좋은 사냥꾼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라는 첫 대사로 영화는 시작된다. 원주민은 태생이 사냥꾼이기에 청년시기 모나는 사냥할 때 타인이 자신보다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오만한 멧돼지 사냥꾼이었다. 중년에는 일제의 강점에 의해 담배와 알코올중독자로 변모하여 20년이란 긴 세월을 낭비하는 중에 그들의 생활 터전 우서(霧社) 지역은 현대화라는 명목아래 산림은 벌목으로 황폐화되어 사냥터를 상실했다. 폭포 아래에서 Mona Rudo는 일본 경찰이 된 원주민 Hanaoka Ichiro（花岡一?，Dakis Nomin，1908－1930）와 대화를 나누며 우체국, 상점, 은행, 학교, 의원 등 문명은 단지 자신들의 삶을 박탈하여 더 빈곤하고 불평등하게 만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본인이 원주민 거주지를 점령한 후 원주민은 일본어를 배우고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문명의 편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원주민 여성들은 일본인의 하인으로 전락하고, 일본인에게 시집간 여성들은 이유 없이 구박을 받는 등 온갖 수모를 겪는다. 게다가 원주민이 설사 일본의 고등 교육을 받더라도 월급과 지위는 하급에 머물러 원주민끼리 결혼해서는 결코 일본인을 낳을 수 없다는 조롱받았다. 

대만 중부지역 우서사건(난터우현 런아이향 南投? 仁??)의 직접적인 발단은 1930년 10월 7일 원주민의 결혼식 피로연에 있다. 일본 경찰이 동료와 함께 순찰하는 도중에 족장 Mona Rudo의 장남이 순사에게 술을 권했는데, 그는 불결한 연회석을 꼴 보기 싫다면서 경찰 곤봉으로 술을 권하는 손을 때리자 원주민들은 격분하여 싸움이 일어났고 일본경찰은 부상을 당했다. 족장은 친히 부족민을 이끌고 술을 가져와 일본 경찰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요청했지만 일본 경찰은 끝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부에 사건을 보고했다. 이에 부족민은 굴욕을 느껴 복수를 결심하게 되었다. Mona는 일본은 대적하기 힘든 큰 적이라고 위축되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령과의 대화를 통해 굴욕적인 삶을 청산해야 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1930년 9월 27일, Mona Rudo는 6개 부족 300명을 이끌고 우서의 공립학교 운동회를 습격하여 일본인을 닥치는 대로 도륙했다. 우서사건이 발발한 것이다. 경찰지서, 학교, 우체국, 관리 기숙사 등이 공격당하고 공립학교에 모인 사람들은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도륙을 당했다. 원주민은 원래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지 않지만 증오심에 불타 운동회에서 인간 사냥을 벌였다. 원주민 남자 아이들은 일본군이 금지했었던 얼굴 문신을 하고 괵수의 성년식을 치르게 된다. 괵수는 원주민이 상대와 논쟁을 벌이다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때 사용되었고，아래턱에 문신을 하는 것은 결혼이 가능한 성인을 의미한다. 일본 순사의 결혼식에 대한 모독은 신성한 성인식에 대한 금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들은 문명인에게 자신들의 의식이 무참히 짓밟힌 것에 분을 품고 괵수를 통하여 과거의 전통을 회복하려 했다. 

《시디그 발레》는 진정한 남자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의미이다. 원주민은 죽음을 초탈하여 ‘무지개다리’를 넘어 조상과 만나 영광된 조상의 역사를 재현한다고 믿었다. 다리는 그들에게 지상에서 천상으로 인도해주고 외부의 침입을 막아 주는 상징물이었다. 원주민은 다리를 끊어 일본군의 침입을 막았고 자신의 전통을 조롱하고 금지했던 일본인을 제물로 삼아 조상의 영광인 무지개다리에 진입하여 진정한 사람이 되고자 하였다. 하지만 잃어버린 사냥터를 되찾기 위한 의식은 원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결국 일본의 노인, 어린이, 부녀자까지 사냥감으로 삼았다. 원주민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얘야! 너희가 무엇을 하고 있니?” 라고 힐책어린 의문을 내던진다. 이런 도륙은 처참한 비극일 뿐만 아니라 돌이키기 어려워 짙은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자신들의 파멸을 예고하는 추모곡이기도하다. 

일본군은 고산(高山)에서 치고 빠지며 괴롭히는 원주민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와 비행기를 동원하고 심지어 독가스를 투하하여 원주민을 몰살하려는 작전을 펼쳤다. 원주민들의 일본군에 대한 저항이 길어지면서 결국 양식이 바닥나자 원주민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처자식의 안전에 대한 염려를 덜어주려고 나무에 목을 매서 집단 자결을 하였다. 대만은 아열대 기후로 숲이 우거져서 수천 년 된 고목도 눈에 띈다. 원주민은 사람의 기원을 나무에서 찾는다.  그들은 나무를 생명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수호 정령이고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터전을 제공한다고 여겨서 산림을 파괴하는 약탈자와 용감하게 맞서고 자신들이 돌아갈 곳을 나무로 선택하였다. 원주민 출신 경찰 Hanaoka Ichiro(花岡一?)는 족장에게 “너는 죽어서 일본신사에 들어가는가 아니면 조상의 집에 들어가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고뇌에 빠진다. 그는 고민 끝에 결국 시위를 도와주게 되고 일본인 아내와 갓난아기를 손수 죽이고 할복자살을 선택하였다. Hanaoka Ichiro는 유서에 원주민이 고통스런 노역에 시달려 오랫동안 분노가 쌓여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의 종족은 연약하다고 비하하고 일본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생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Mona Rudo의 장남도 일본군에 저항하다 부하들과 함께 목을 매어 자살하고 주모자인 Mona도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오만한 사냥꾼이었던 원주민 족장은 일본의 압제에 눌려 의기소침하게 지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해후를 통해 깨어나서 목숨을 바쳐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는 저항을 통해 영웅시대의 종료를 알리고 대만의 항일운동사에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겼다. 

때리는 사람보다 부추기는 가족이 더 밉다?
Mona Rudo는 다른 부족과 사냥터로 오랫동안 분쟁을 겪어왔다. 일본은 우서사건이 일어나자 일제(日帝)에 굴복한 5개 부족들을 부추겨 상금과 총 탄약을 제공한다는 미끼로 시위에 가담한 부족을 제거하는데 반 강제로 그들을 동원하였다. 평소 일본인과 친분이 있는 부족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족을 죽이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원주민은 일본군과 산악전투에서 지구전을 펼쳤는데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사실 일본과의 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족 간에 벌어졌다. 일본은 산악지형에 익숙한 원주민을 동원하여 살벌한 추격전을 펼쳐서 무장 저항에 마침표를 찍게 하였다. 1931년 4월 25일 제2차 우서사건이 발생했는데 수용소에서 부족민끼리 방화와 도살이 자행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생환자들은 타 지역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생존자들은 대동아 전쟁에 끌려가서 또 다시 제국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원주민은 수많은 일본군과 비행기, 화학무기보다 더 무서운 내부 갈등으로 동족상잔이라는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고 원시(조상)신앙에 의지하여 집단학살과 집단자살이라는 너무난 큰 대가를 치렀다. 이방인이 자행한 집단에 대한 가학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보복을 낳고 자살로 이어지고 씻을 수 없는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이질 문화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바탕이 되어 분열을 획책하는 이기심과 오해를 차단할 때 비극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 있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부족 간의 알력과 대립은 현재 대만사회 내부의 갈등을 반영한다. 1895년에 청 정부와 일본이 체결한 ‘마관조약’은 원주민의 권익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1945년 일본이 패배한 후, 국민당 정부는 원주민에게 한족의 이름을 짓게 하여 원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 대만에 본토화 바람이 불어 원주민들은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시작했고 우서에서 무장 항일투쟁이 벌어진지 80년이 지난 2008년에 와서야 시디그 부족은 대만 당국에 의해 14번째 원주민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남한보다 작은 대만 땅에 14여개의 원주민뿐만 아니라 400여 년 전에 내도한 본성인(本省人), 1949년에 내도한 외성인(外省人),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국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각자 이해관계에 얽혀서 살고 있다.  

2012년 9월, 중국과 일본은 댜오위타이(대만명 釣魚台）영토분쟁으로 갈등을 겪는 중에, 중국은 대만이 미국과 친밀(親美), 일본과 우방(友日), 중국과 평화(和陸) 라는 다변적 입장을 취했다고 꼬집었다. 중국은 100여 년 전 일본에 패배해서 대만을 할양했던 악몽을 떠올리며 일본이 양안을 이간질하고 미국을 끌어 들인다고 일본에게 엄중한 경고 신호를 보냈다. 대만 여론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부도 대외관계에 국방과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한국 역시 근래에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영토분쟁, 과거사로 마찰을 겪지만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에서 대외관계보다 더 심각한 민심의 내분을 겪게 될까 우려된다. 이사야 53장 5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고 선포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국제적인 모든 갈등과 분열의 상처가 치유되고 분쟁과 전쟁이 있는 나라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