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에서 이 땅으로
내가 서있는 안산시는 열방의 또 다른 끝자락이며, 우상숭배의 천국이고, 사탄의 공격이 만만찮은 곳이다. 특히 10/40창에 속하는 민족들이 이 땅에 들어올 때 거리낌 없이 그들의 우상을 들여와 섬기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 힌두교, 회교(回敎) 등은 어느새 우리 곁에 낯설지 않은 종교로 활동 중이다. 또한 산업발전이라는 경제 논리를 따라 공산권 국가의 근로자들 다수가 유입되고 있다. 특히 무슬림들은 그들의 포교전략(동진정책)을 손에 들고 당당히 이 땅에 들어오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하나님의 계획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땅 끝으로, 땅 끝으로 나가야 하는 원심적인 선교전략을 가지고 일해 왔다면이제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저 땅 끝에서 이 땅으로 달려오게 하는 구심적인 선교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본다. 시간, 재원, 인력을 최소화하여 선교를 더 폭넓게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산의 원곡동 지역에는 하나님의 계획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밀려오는 저 땅 끝 민족들을 복음으로 섬길 교회 또는 선교사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안산시는 국내 산업공단 중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 근로자가 밀집된 곳이다. 이곳의 유동 인원은 약 7-8만 5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땅에 뿌리 내리지 않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도 어떤 중국인 근로자가 움직일지 모르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도 요즘은 분야별로 법이 잘 세워지고 사회적인 인식 또한 향상되어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우리의 손길이 필요하다. 돈을 갈취 당한다거나, 임금체불, 산업 재해임에도 적용을 원만히 받지 못한다거나, 문화충돌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다거나, 심지어는 부당하게 매를 맞는 일까지 벌어진다. 철저하게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소외당하여, 차별 받고 있다. 다른 언어로 인한 소통의 부재로 법규를 잘 몰라서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히는 일도 있다. 나는 이런 일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법무부, 노동부, 경찰청, 출입국사무소 등 민관 구분 없이 다녔고, 관련된 개인을 만나 일을 처리하느라 힘을 쏟았다. 이렇게 저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그리스도가 진정 안식처임을 증거하고 있다.
태국에서 온 옥이
2010년 9월로 기억한다. 그날은 검단지역 심방을 마치고 오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귀가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귀가였다. 요란스럽게 핸드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선교사님, 아파요, 많이 아파요”
“옆에 한국사람 있으면 전화를 바꿔 주세요. 네 무슨 일입니까?
“옥이가 일하다가 프레스에 손가락 3개가 잘렸어요”
“아, 그래요 그럼 잘린 손가락을 가지고 빨리 OO병원으로 가세요. 제가 병원에 연락하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옥이는 2년 전에 국가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취업하여 남동공단 OO프레스 업체에서 근무하는 40세의 태국인 형제다. 그는 태국에 사랑하는 아내와 11살, 9살의 두 딸이 있고, 아버님 어머님 누이 두 분과 조카 셋까지 모두 열 명을 봉양하는 가장이다. 그는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태국으로 돌아가면 상점을 차려 장사하며 온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소박한 꿈이었다. 그런 그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한국에 온지 2년이 되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년 정도 더 있으면서 돈을 벌어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번 사고로 손가락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 된다면 그는 돈을 벌어 장사하겠다는 꿈을 접은 채로 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는 이 형제를 6개월 전에 노방전도를 통해 만났다. 서로 언어소통이 안 되어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한 번 두 번 만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가 일하는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할 때 만나다가 그의 숙소로 찾아갔다. 매주는 아니지만 교회가자고 데리러 가면 가끔은 따라 나서기도 하던 형제다. 태국인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형제 역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불자로 자랐다. 그래서 교회로 나오는 일은 쉽지만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특히 태국인들의 문화와 민족성을 볼 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가 몹시도 급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당시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2-3회 노방전도를 했다. 특히 인천의 산업공단(남동, 부천, 부평, 주안, 시흥, 김포, 검단 등)을 대상으로 오후 10시경부터 새벽 2시 사이 공단 내 각 공장을 돌며 노방전도를 한다. 왜냐하면 그 시간대에 공장에 남아 야간(철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야간작업을 안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밤을 세며 일한다. 어쩌면 나 같은 선교사들에게는 이주민들을 전도하기에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다시 말해 황금어장인 샘이다. 산업공단 내 대부분의 기업들은 근로시간이 일정하다. 그래서 그 시간대만 잘 맞추면 언제든지 또 만날 수 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대화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근무 일정표를 만들고 그들이 근무하는 날짜에 맞춰 심방하면 된다. 그들이 하는 일들이 대부분 반복되는 단순작업이기에 팔, 어깨, 손목, 발 등의 특정한 부위가 근육통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파스와 약간의 빵, 음료만 준비하면 된다.
옥이는 손가락 접합수술을 잘 받았고 치료역시 최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간의 있었던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산재 처리 관계, 치료비 관계, 급여 지급 관계, 본토에 생활비 송금 관계, 근무회사와의 관계, 보상금 등) 이 한 두 건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를 다방으로 도왔다. 옥이는 6개월 동안 치료받았으나 가운데 손가락에 약간의 후유 장애를 받고 퇴원하였다. 그리고 근무하던 회사의 호의로 나머지 체류기간을 다 채울 수 있었다. 옥이는 지난 7월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없이 울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옥이가 지난 8월에 한 장의 사진을 메일로 보내왔다. 당시에 받았던 보상금의 일부로 800평의 땅을 구입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 교회를 건축할 계획인데, 나 보고 와서 교회를 맡아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지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장을 썼다. “사랑하는 옥아, 나는 이곳에서 너와 같은 형제들과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다. 그곳에 세워질 교회는 옥이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선물이야. 이젠 옥이도 신학공부를 했으면 해.” 옥이는 많이 망설였는지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네!” 라는 짧은 응답을 전해 주었다. 비록 짧은 한 마디의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묻어 있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그도 그렇게 살게 될 것을 확신한다.
천이 형제로 들킨 속마음
몇 주 전부터 말없이 예배에 참석은 하는데 예배당을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형제가 있었다. 정말 내가 봐도 은혜가 안 되는 형제였다. 그런 그와 어렵사리 상담을 하다 보니 이 형제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병원이나 치료센터를 권면했지만 거부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술만 마신다. 술이 밥인 셈이다. 예배 시간에도 예배당 입구에 술병을 숨겨놓고 예배 중에도 나가서 기어이 한 모금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눈에 불편한 사람이었는데 이번 주일 예배를 드릴 때 그 형제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늘 예배가 산만하지 않을 것 같아 오히려 안심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였다. “목사님, 천이 형제가 지난 목요일에 간경화로 배에 복수가 차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만 세상을 떠났어요.”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고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죄책감 때문에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 천이 형제는 그의 삶 속에 상한 마음이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끊을 수 없었던 알코올이었다. 그래서 그는 상하고 피폐한 마음과 병든 몸을 이끌고 교회에 가면 평안을 얻을까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한순간 이었지만 귀찮은 존재로 취급했었다. 나도 얼마나 속물인지 형제의 마음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선교를 위한 세 가지 비전
나는 중국선교를 하는 가운데 세 가지 비전을 품게 되었다. 첫째는 제자 훈련을 통해 중국 대륙으로 역 파송하는 사역이다. 둘째는 조선족 사역을 통해 북한사역을 도모 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 땅에 중국교회를 세워가는 일이다. 이 세 가지 사역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 어쩌면 이 사역들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사역들이고 복음을 전달하는데 교회의 역량에는 한계에도 부딪힐 것이다. 하지만 선교사로 부르시고 세우신 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또한 선교사로 부름 받은 나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의 비전만 있을 뿐, 한계는 없다. 왜냐면 주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단들의 포교가 극심하다. 특히 중국인들은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베레아, 예수중심교회 등 이단들 포교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신천지의 경우 무료성경신학원을 통해 동포들을 미혹한다. 신학원 6개월 과정을 마치면 전도사로 임명하여 본토로 파송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돈 벌려고 왔다가 이단에 미혹되어 돈도 못 벌고 방황하는 저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현종희 | 안산중국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