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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통권 134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128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기억할 일들이 많은 해가 물러가고 있습니다

정권 교체와 중국교회
2012년은 ‘세게지도력 교체의 해’ 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바뀌었습니다. 1월의 타이완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10여개 국가에서 선거가 있었고, 앞으로 남은 두 달 동안에 6개 국가에서 선거가 실시될 예정입니다. 이 여러 나라들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입니다. 그 다음에는 10월에 권력구조가 바뀐 중국과, 11월에 선거가 실시되는 미국일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제18차 공산당전국대표대회의 날짜가 늦게까지 정해지지 않았고, 시진핑(習近平)이 한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중국선교와 관련하여, 중국의 지도층 교체에 대해 특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전에는, 중국선교를 다루는 매체들은 이렇게 중국의 권력이 교체되면 ‘종교정책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기에 바빴습니다. 1993년에 장쩌민(江澤民)이 국가주석이 되었을 때 「중국을주께로」는 ‘중국의 종교정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특집좌담을 마련해, 전문가들의 폭넓은 의견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었습니다. 

중국의 지도층은 그동안 여러 번 교체되었는데 중국교회는 그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교회가 가는 길은 ‘선교중국의 길’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여름에 많은 분들이 중국 단기선교를 다녀왔는데 그 가운데 여러 사람이 ‘중국교회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 ‘중국교회는 선교를 받던 교회에서 선교하는 교회로 전환되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고등학생의 소감문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중국의 영적 굴기(靈的堀起)는 이제 상식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중국교회가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교훈과 힘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되돌아봄으로써 얻는 유익
올해는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결의 100년, 화교교회 설립 100년, 한중수교 20년 등 기억할 일이 많은 해였습니다. 「중국을주께로」는 이런 일들에 대해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기 위해 힘썼습니다. 저희가 미처 다루지 못한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올해가 연변조선족자치주 설립 60주년의 해였다는 것입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일인 9월 3일을 전후해서 현지에서는 많은 경축행사를 진행했습니다. ‘60’이 한국인의 정서에서는 의미가 깊은 숫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1970년대 말, 중국의 개방 이후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재개될 때, 한국교회는 연변지역의 조선족들을 중요한 대상으로 하고 중국선교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변지역은 중국선교의 재출발점이요 실습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1982년으로부터 30년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1982년에 중국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이 셋이 모두 중국선교에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하나는 9월 초에 열린 12차 당 대표회의입니다. 이 회의에서는 물질문명을 기초로 한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건설할 것이 결의되어서 종교관련 인사들을 긴장시켰습니다. 또 하나는 9월 하순에 있었던 대처 영국수상의 중국방문입니다. 중국을 방문한 대처 수상은 홍콩의 중국 반환 문제를 협의했는데 중국은 홍콩 회귀의 원칙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홍콩은 1997년 영국의 품을  떠나 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되었습니다.「중국을주께로」는 이와 관련하여 지난 호(133호)에 ‘홍콩반환 15년, 갈등의 도가니가 된 홍콩사회’ 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됨으로써 홍콩을 거점으로 하던 중국선교활동은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수정헌법이 공포된 것입니다. 중국 종교정책의 기초가 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신앙의 자유가 있다. 어느 국가기관, 사회단체와 개인이든지, 공민이 신앙을 갖든지 혹은 신앙을 갖지 않든지 간에 차별할 수가 없다…종교단체와 종교사무는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아서는 아니된다’(36조) 라는 조항이 담겨있는 헌법은 1982년 12월 4일,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공포되었습니다. 

20년 전, 30년 전, 60년 전, 100년 전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거기에서 앞으로 닥쳐올 많은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되돌아보는 일이 주는 유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 땅의 중국 형제와 자매들
지난 7월?8월호(132호)의 ‘발행인 통신’에서 저는, 북한선교분야에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이 없으면서 북한선교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이 말을 중국선교분야로 옮긴다면 “화교교회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서 중국선교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범위를 더 확대하여 “우리에게 와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서 중국선교를 말하는 것은 그저 울리는 꽹과리 같은 일이다.” 라고 하고 싶습니다. 지금 유학, 노동, 취업, 그밖의 여러 가지 명목으로 참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우리 옆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광객들도 참 많아졌습니다. 때때로 서울의 명동이나 제주도를 가보면 ‘여기가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지난 10월 초순, 중국의 이른바 ‘국경절’ 절기에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나 LA에 갈 일이 있으면 거의 빠짐없이 그곳의 ‘차이나타운’을  찾아가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중국선교를 하려면 현장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는 중국 방문은 꿈도 꾸지 못할 때라 대신 그런 곳들을 찾은 것입니다. 1950년대 중반에 백설희(白雪姬)라는 인기가수가 부른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 거리… 목단꽃 옷소매에 고향꿈이 그리워… 아 애달픈 차이나 거리”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할 만큼 그곳의 차이나타운들은 잘 알려져 있었는데 중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고, 규모도 컸습니다. 차이나타운의 골목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중국을 위해 기도하던 기억이 새로운데 이제는 한국 안에도 그런 차이나타운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중국을주께로」이번 호에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중국인밀집거주지역인 안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한국 속의 작은 중국 - 안산의 중국인사역을 말한다’ 라는 특집제목이 벌써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호의 특집이 ‘우리에게 와 있는(선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중국인 형제와 자매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기억할 일들이 많은 해가 물러가는 가운데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즐거운 성탄, 복된 새해 맞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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