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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  통권 133호  필자 : 무시(慕溪)  |  조회 : 1785   프린트   이메일 
[내가 만난 하나님]
은혜의 길


나는 내가 출생했을 때의 일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났을 때의 일은 생생하다. 정말 아름다웠다. 무채색이었던 삶은 주님을 믿고 나서야 비로소 색채를 입혀 놓은 것 같았다.  내 생명도 새로운 한 페이지를 넘긴 것 같았다. 세례를 받고 집에 돌아가던 길을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마음은 줄곧 흥분되어 있었다.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지만 마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이미 집에 돌아왔고 다시는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2004년 사촌 자매인 야펑과 나는 사람의 기원과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난 단호히 거절하며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다. 후에 그녀는 오색의 비유로 생명의 의미를 전했다. 그녀가 빨간색은 무엇이 연상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피’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눈빛이 기이하다는 듯 반짝였다. 하지만 난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학교 생활은 매일 별 차이가 없었다. 기숙사-강의실-식당. 마음의 생각도 매일 별 차이가 없었다. 혼란-방황-공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거짓말 같은 ‘신앙’이 내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렸다. “네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어, 방법만 생각해낸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야.”   

대학을 졸업하며 경제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나는 더 많은 이력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 중국 정법(政法)대학에 응시해 법률을 전공하려 했다. 그렇게 되면 법률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을테니깐. 하지만 복습할 시간이 부족해서 합격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법대학 경제과를 응시하고 법학과로 전과하려고 했다. 모험이긴 하지만 나는 시도해보았다. 시험은 쉽게 통과했다. 나는 중국 정법대학의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순조롭게 졸업을 한다 해도 경제학학위를 두 개나 가지는 것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법률과로 전과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교수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모든 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대학에서는 학생이 입학한 후 전과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행각하며 내가 쓴 전과 신청서를 가지고 법률과와 경제과 주임교수님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전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너무나 놀랍게도 그분들은 나의 요청에 동의해 주셨다. 게다가 어떠한 시험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이 일은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라는 잘못된 생각을 견고케 했다. 

그렇게 바라던 법률과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법률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지가 않았다. 단지 더 높은 학위 하나를 따고 싶은 것 뿐이었다. 그 잘못된 음성이 또 다시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방법만 생각해 봐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는 한 친구를 통해서 정법대학 교수님 한 분을 소개받았다. 그녀는 학생에게 아주 큰 돈을 받고 귀 속에 음성장치를 넣어서 시험 답안을 가르쳐 주는 일을 했다. 2005년 1월, 법률을 좋아하지도 않고 법률에 대한 충분한 지식도 없는데, 전국의 대학원  시험을 치르는 교실에 태연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앉아 있었다. 귀 속에 감춰진 음성장치를 켜기만 하면 원하는 답을 답안지에 적어 넣을 수 있었다. 법률과 학생으로서 전국의 대학원 응시 중에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형법조례에 위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모험을 강행했다. 이틀 간의 시험은 순조롭게 지나갔다. 합격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시험 성적표가 나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내가 얻은 점수는 합격선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이 이번 부정행위에 가담했던 학생은 합격했다. 비록 같은 답안이었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앙’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는데 어째서 내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

숨어서 부르짖다
바로 그즈음 나와 한 친구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등 뒤에서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말들로 나를 괴롭혔다. 이런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인생살이가 왜 그리 힘든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너무 지쳐서 어떤 일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진종일 숙소에 틀어박혀서 생각했다. “도대체 하나님이 있기는 한가? 이런 상황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2005년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한 학우가 영화를 좋아해서 함께 DVD를 보았다. 그날 우리가 본 것은 ≪예수 수난기≫였다. 영화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예수를 믿지 않던 나는 영화가 이야기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예수님이 받은 고난이 너무 가슴 아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게 복음을 전했던 사촌자매 야펑에게 말했다. “내가 전에 너에게 교회에 같이 가겠다고 했지? 우리 교회 가자” (나중에 야펑이 말하길 내가 그런 대답을 한적은 없다고 했다.) 계산해 보니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게 벌써 1년전 일이었다. 내가 주님을 밑도록 끊임 없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에 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니 잠 밖에 안 왔다. 예배가 끝나고 사촌 자매가 전도사님과 교제하도록 인도해주었다.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난 야곱 목사님께 결신 기도를 부탁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치 내 집을 찾은 것 같고 하늘에 아버지가 생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렀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그날부터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달라 보였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보이는 나무의 잎사귀들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빛나고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내 마음은 하늘로부터 온 기쁨으로 가득했다. 며칠 전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던 걱정과 근심이 다 사라졌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은혜로 대하시는 하나님
2005년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을 해야 했다. 무슨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동안 고학력 취득을 위해서 공부해왔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취업 문제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내게 가장 합당한 것으로 응답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뜻밖에도 수도(首都) 강철그룹사무실 주임에게서 온 전화였다. 통역사가 필요하니 한번 와보라고 했다. 나는 흥분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막 졸업을 한 데다가 영어 전공자도 아니었고 간단한 이력서조차도 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수한 졸업생이 넘쳐나는 베이징에서 그들은 어떻게 나를 찾아낸 것일까? 그런데 뜻밖에 면접도 순조로웠다. 복잡한 평가나 신청자도 없었기 때문에 난 그대로 통과되었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내가 어찌 그 자리에 합당하겠는가? 난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은혜로 대하시는 분이셨다. 

그 후로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고자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매일 한 끼씩 금식하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다렸다. 하루는 오랫동안 기다리던 한 찬양학습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 날 1개월 과정의 학습이 시작되는데 타지에서 오기로 한 사람이 올 수 없게 되어 내가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몇 개월 전부터 기도해 오던 소식이었다. 찬양학교에서는 6개월 전에 이미 등록이 완료된 상태여서 안 된다고 했었다. 개학하기 하루 전에 전화가 와서 갑작스럽긴 했지만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회사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 어쩐다? 오늘 출근했다가 내일 사직을 해야 하나? 가족들은 뭐라고 할까? 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기묘하신 하나님은 그분이 세상의 주재이심을 알게 하시고 그분만 의지하길 원하시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이 밝자마자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떠나야 하는 이유와 앞으로 거할 곳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비록 이전에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미 이런 배움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은 있었지만 회사로선 갑작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장님께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놀라운 것은 사장님이 1개월간 배움을 허락하는 대신에 매주 토요일에 출근하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는 내가 주일마다 교회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당신의 말씀을 더 많이 경험하길 원하셨던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 한 번 출근하는데도 월급을 그대로 주신다고 하니 맘에 걸렸다. 그래서 그냥 사직을 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옥도 함께 비우고 싶었다. 가족들이 이 모든 일을 알게 되자 엄마는 나를 호되게 책망하셨다. “예수가 먹을 것을 주니? 입을 것을 주니?”(어머니는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난 비록 반박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은 내게 확신을 주셨다. 주님은 내 생명의 양식이요, 그에게 온 자들을 굶기지 않으시며 그를 믿는 자들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임을.

내가 일을 그만 둔 그 달 말일에 회사 재무부에서 임금을 받아 가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일 한 날은 반 달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두 달 치 급여가 들어있었다. 엄격히 따지면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두는 것이기에 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동료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그는 사장님이 그동안 일해준 것에 대한 장려금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이 언약하신대로 나를 먹이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다
찬양학교에서의 한 달 동안 나는 성경지식과 악보 보는 법, 피아노연주법 등을 배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내 속에서 역사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감동시키시고 부드럽게 하시며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죄악들을 제거해 주셨다. 결국 나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다.

9월 14일은 40일 금식기도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2006년 교회에서는 성경통독 계획을 홍보하고 있었다. 형제자매들이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완독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연말이 되어서 나는 성경읽기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나의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보니 내가 읽은 두꺼운 책은 많지 않았다. 로맨스 소설에 사로잡혀 읽어 본 것 외에 다른 책은 끝까지 다 읽을 인내심이 없었다.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시어 그의 말씀을 귀중히 여기게 하셨다. 

나는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린다는 것은 전문 사역을 하거나 신학을 전공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지 않으셨다. 내게 새 일을 주셨고 새로운 환경 가운데서 갈고 다듬으셨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다. 주님을 믿은 지 2년 후 나는 남편과 함께 작은 모임을 인도하게 되었다. 우리는 젊고 경험도 많지 않지만 주님은 우리가 주님과 동역하길 원하셨다. 어린 두 아이를 안고서 서로를 일으켜 세워가며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셨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 한 일이 맘에 들지 않아 움츠러 들었는데 원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신다.’ 그랬다. 나는 많은 일에 미숙했다. 다른 사람은 가볍게 할 수 있는 일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부족한 그릇을 사용하고자 하신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앞 길이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어디를 가든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출처 | 海外校園 第 113期
번역 | 이순자 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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