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선교는 기쁜 마음으로
1912년 9월 1일, 평양 경창문(景昌門) 안 여성경학원(女聖經學院)에서 열린 제1회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에 황해도 노회에서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로회를 시작할 때에 제쥬에 선교사를 보냄으로 신령한 교회를 세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님으로 우리에 깃븜이 츙만한 바이온즉 지금 총회를 시작할 때에도 외국전도를 시작하대 지라(支那) 등디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를 청원하오며(가급적 원문에 가깝게 옮겼음)
올해 9월을 맞으면서 이 내용이 우리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청원서가 바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출발하도록 하는 나팔소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로교 총회는 청원서를 받고 중국에 세 분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1885년, 한국에 첫 선교사가 들어 온지 불과 27년 만에 선교사를 보내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최단기간 안에 선교를 받던 나라에서 선교하는 나라로 전환을 이룬 나라라는 명예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청원서에서 특히 마음을 끄는 것은 ‘우리에 깃븜이 충만한 바이온즉’ 이라는 구절입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기쁜 마음으로 선교를 하였습니다. 제주 선교를 시작하면서 기쁨이 충만하였으니 중국선교를 하면서는 기쁨이 더 컸을 것입니다.
우리도 기쁨으로 중국선교를 해야 하겠습니다. 현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 여러분, 기쁜 마음으로 선교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후원으로 중국선교에 동참하고 있는 분들도 기쁨으로 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선교비전학교 운영을 비롯하여 중국선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 분들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기쁜 마음으로 「중국을주께로」를 편집하고, 발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선교에 소망과 비전을 주고 있는 중국교회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개방정책에 따라 외부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힘차게 성장하고 확장되고 있는 중국교회는 한국교회의 북한선교에 두 가지의 소망과 비전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교회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세계의 교회들은 많이 놀랐습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된 이후 30년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은 중국교회가,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문화대혁명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중국교회가, 쇠락한 모습이 아니고 오히려 더 강성하고 순수해진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북한에 그 성격이 불분명한 교회조직들과 신도들이 있다는 것 외에는 북한교회의 실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북한에 순수한 의미의 교인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는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그러나 중국교회가 고난 속에서 성장한 것을 보면서 ‘중국의 교회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북한의 교회도 70년 가까운 박해를 이기고 강성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중국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소망이요 비전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활동의 자유를 찾은 중국교회는 빠르게 힘을 얻어 ‘중국선교’에서 ‘선교중국’으로 전환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 북한교회도 빠른 시일 안에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지난 7월에 제주의 몇 교회를 방문하여 북한선교에 대한 설교와 강연을 하였는데 “우리가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열방으로!’ 라는 구호를 많이 쓰는데 중국의 경우를 보면 이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중국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소망이요, 비전입니다.
(중국선교 100년과 북한선교에 대해서는 통일과 북한선교전문지인 월간 「통일코리아」9월호에 참고가 되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통일코리아」9월호의 특집 주제는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100년과 북한”입니다.)
“미안합니다.”
「중국을주께로」7ㆍ8월호의 특집 주제는 ‘중국을 향한 다리, 화교교회’였습니다. 높은 성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다리를 그린 표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특집을 읽으며 재한화교 크리스천들을 향해 속으로 “미안합니다.”를 연발하였습니다. 우선, 한국 화교교회의 역사가 올해로 백 년을 맞이하는데 그들이 걸어온 길과 화교들이 겪은 어려움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6ㆍ25 때 한성교회가 폭격을 맞아 파괴된 일, 한국 정부의 외국인 통제정책으로 인해 많은 화교들이 한국을 떠난 일, 요식업이 중요한 경제활동인 화교들에게 중국집에서 쌀밥을 내지 못하게 하는 정책으로 숨통을 막은 일, 경제적 차별과 법적 제한, 교육기관에 대한 제한(내국인을 받지 못하게 한 일), 그밖의 여러 제약들, “미안합니다.” 라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시아의 고아’가 되어 한국에서는 외국인등록증, 대만에서는 거류증, 중국에서는 여행증을 지녀야 하는 신분……. 주변에 좋은 믿음의 형제자매인 화교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런 것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없었던 자신을 모질게 꾸짖었습니다. 한중수교 당시 침통하고 암담한 심정으로 “누가 한국화교의 뼈아픈 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 갈 것인가?” 했다는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사실 그때는 크리스천은 물론 평소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던 화교들까지 한성화교교회에 가득 모여 철야기도회를 갖는 것을 보면서도 그 아픔에 동참하는 일에는 인색했었습니다.
담느헤미야 형제가 쓴 것처럼 화교 형제자매들이 “나는 한국화교 크리스천이다!”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화교 크리스천 형제자매들과 교제에 힘쓰며 그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지내야 할 것입니다.
위기에 대한 대비가 절실한 중국선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중국 동북지역에서 사역하던 한국선교사가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일의 전모가 명쾌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그분들의 사역지가 조중변경(朝中邊境)이었다는 점에서 다소 특수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만, 여하튼 그 일은 ‘중국은 선교의 안전지역이 아니다’ 하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즘 선교사들의 위기관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2010년 1월에 ‘선교사위기관리지침서’를 만들어 각 선교단체가 참고하도록 하였는데 중국이야말로 선교사들의 위기에 대한 대비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지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의 특집 주제 ‘중국선교사의 위기관리와 새로운 도전’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호에 김성곤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께서 두보(杜甫)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를 소개해 주셨는데 이 시는 ‘좋은 비는 시절을 안다(好雨知時節)’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특집은 물론 책의 내용 전체가 시절을 알아 내리는 좋은 비처럼 여겨졌으면 좋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가을, 능률의 절기입니다. 부지런히 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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