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지난호 
북쇼핑
2012.7.2  통권 132호  필자 : 김성곤  |  조회 : 4964   프린트   이메일 
[한시 강좌]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이 되어 내리니 만물이 싹을 틔운다.
바람을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만물을 적시니 가늘어 소리도 없구나.
들길엔 검은 구름 가득하고
강가엔 고깃배 불빛만 밝다.
새벽녘 붉게 젖은 곳 바라보면
금관성에 꽃이 묵직하겠지.


好雨知时节
(호우지시절)
當春乃发生(당춘내발생)   
随风潜入夜(수풍잠입야)
润物细無声(윤물세무성

주석
1 喜雨(희우) - 반가운 비. 
2 好雨(호우) - 좋은 비. 때에 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
3 發生(발생) - 싹이 트다. 싹을 틔우다. ‘비가 내리다’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
4 隨風(수풍) - 바람을 따르다.
5 潛(잠) - 몰래.
6 入夜(입야) - 밤으로 들다. 밤에 내리다.
7 潤物(윤물) - 만물을 적시다. 만물을 윤택하게 하다.
8 細無聲(세무성) - 비가 가늘어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9 野徑(야경) - 들길. 여기서는 사방 교외 들판을 가리킨다.
10 雲俱黑(운구흑) - 검은 구름이 온통 덮고 있다.
11 江船(강선) - 강가에서 고기잡이하는 배.
12 火獨明(화독명) - 불빛이 유독 밝다.
13 紅濕處(홍습처) - 붉게 젖은 땅. 비가 내려 꽃들이 피어나 붉어진 땅을 가리킨다.
14 花重(화중) - 꽃이 묵직하다. 봄비에 젖은 꽃들이 무겁다는 말이다.
15 錦官城(금관성) - 사천성 성도(成都)를 가리킨다. 성도는 예부터 비단을 생산하는 도시로 유명했으므로 이름을 ‘금관성’이라고 했다.

이 시는 시성(詩聖) 두보가 사천성 성도 완화계에 초당을 짓고 살 당시 지은 시로 봄비를 노래한 시들 중에서 천고의 절창으로 알려진 명편이다. 성도 초당은 평생 떠돌던 두보를 맞아준 안식의 땅이었다. 성도로 오기까지 두보의 삶은 참으로 신산하였다. 안록산의 반란으로 인해 반군에 의해 장안에 포로로 잡힌 일,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황제의 군대가 있는 봉상으로 찾아갔던 일, 조정에서 권력 쟁투에 휘말려 지방의 미관말직으로 좌천된 일, 굶주림을 해결할 수 없어 결국 벼슬을 버린 후 가족들을 데리고 진주로, 동곡으로 이곳저곳 유랑하던 일……. 풍요로운 땅이라 기대하고 찾아간 동곡에서 두보의 가족은 거의 아사 직전까지 이르게 된다. 당시 지었던 그의 작품 중 하나를 보자.

객이 있으니, 자미라 이름하는 객이 있으니
백두 난발이 귀를 덮었거늘
세모에 산밤을 주으며
추운 날 해 저물녘 산골짜기에 있구나
중원에선 편지 없어 돌아가지 못하고
손발은 얼어 터져 살과 피부가 죽어간다

긴 보습아, 흰 나무 자루 긴 보습아!
내 삶이 그대를 의지하여 목숨을 삼는구나.
산에는 눈이 한길 황독은 싹도 보이지 않고
짧은 옷 자꾸 끌어당겨도 정강이를 덮지 못하는데
지금 그대와 빈손으로 돌아오니
아들 딸 신음 소리에 사방 벽은 고요하기만 하네

먹을 것이 없어 구황 식물인 ‘황독’을 찾기 위해 삽 한 자루 들고 추운 날 눈 덮인 산을 헤매는 남루한 늙은 아비 두보의 모습, 빈손으로 돌아온 그를 맞는 것은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신음하는 아이들 뿐. 결국 두보는 성도로 갈 것을 결심한다. 마침 성도에는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눈보라가 천지를 휘몰아 가는 12월, 변변히 먹지 못해 비틀거리는 어린 자식들을 보듬고 달래고 하면서, 하늘로 오르는 것보다 더 험하다는 촉으로 가는 길, 고촉도(古蜀道)를 지나 마침내 성도에 도착해서 여러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성도 교외 완화계 부근에 초당을 짓게 된다. 그의 생활은 그런대로 안정됐고 그의 시에는 평화로운 삶의 기식이 스민다. “맑은 강이 한번 굽어 마을을 안고 흐르나니/긴 여름 강촌은 일마다 그윽하구나/절로 오가는 것은 대들보 위의 제비요/서로 친한 것은 물가의 갈매기라/늙은 아내는 종이 위에 바둑판을 그리고/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들겨 낚시바늘을 만든다/벗이 보내준 쌀 또한 있으니/미천한 이 몸 또 무엇을 구하리 <강촌>”

<춘야희우>는 초당에서 생활한 지 2년 된 봄날 지은 것이다. 생활은 안정되고 떠돌이 시인 두보는 이제 농사일을 걱정하는 반푼 농사꾼이 되었다. 농사꾼에게 봄날 가장 긴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으려니 바로 때맞춰 내리는 ‘봄비’가 아니겠는가. 마침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고마운 비다. 처음 두 구절은 바로 이 때맞춰 내리는 비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호우’에 대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비라고 다 좋은 비가 아니다. ‘호우’는 ‘시절을 안다’. 자신이 내려야 할 때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줄 아는 비가 바로 ‘호우’이다. 내리지 말아야 할 때 내리는 ‘폭우’이거나 ‘악우’일 뿐이다. 사람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나설 때,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가릴 줄 하는 사람이 참 좋은 사람 아닌가. 만물이 싹을 준비함에 필요한 수분을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때에 그 필요를 알아 내리는 비, 그런데 이 비가 언제 내리는가? 바람을 타고 밤에 들어온다. 그리고 만물을 촉촉이 적시는데 너무 가늘어서 소리조차 없다. 태평한 시절에 내리는 봄비는 꼭 밤에 온다고 했다. 낮에 바깥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배려해서 밤에 내리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호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인우(仁雨)’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참으로 어진 비이다. 그런데 제4구를 보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성우(聖雨)’를 만나게 된다. 목말라 하는 만물을 촉촉하게 적셔주면서도 자신은 존재조차 없는 듯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만상에 목숨 같은 생명수를 공급하면서도 자신의 공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랑도 하지 않는다. 최고의 덕성(德性)이 아닌가. 노자는 말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 사느니 도(道)와 가깝다 하겠다. …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는 것이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争, 处众人之所恶, 故幾于道.夫唯不争, 故無尤. 도덕경8

 

또 물과 같은 큰 덕을 갖춘 성인의 모습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낳아 기르면서도 소유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뽐내지 않고, 공을 이루고 나서도 그 공에 거하지 않는다. 그 공에 거하지 않으므로 공을 없앨 수 없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도덕경2장》

어떤 일의 성공은 그 성공의 열매를 스스로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일을 이루고 난 후에 스스로 자신의 몸을 물려 그 일로부터 멀리함으로써 그 일을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이른바 공성신퇴(功成身退)이다. 봄비의 공덕이 얼마나 무한한가. 이 무한한 공덕은 봄비의 ‘무성(無聲)’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두보의 기쁨은 계속된다. 들길에는 비를 실은 검은 구름이 가득하다. 밤새도록 이 비는 계속 내려 마른 대지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하게 공급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강가의 고깃배 불빛은 봄비로 인한 시인의 기쁨을 환하게 드러내는 비유적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다. 마지막 두 구절은 다음날 새벽의 경치를 상상한 것이다. 봄비의 사랑과 헌신으로 피어난 붉은 꽃들로 성도 금관성은 찬란한 봄날 아침을 맞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축복한 것이다. 천지에 봄을 몰아오는 ‘호우’처럼 세상에는 말없이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세상의 봄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의 웃음들은 어느 누군가의 봄비 같은 눈물의 기도로 피어나는 것이려니.

두보는 약 4년 동안 성도 초당에 살면서 불멸의 명시들을 창작해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시이다.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