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는 선교사의 사역에서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시 하는 사역이 되어야 함과 특별히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사역 가운데 마음에 대한 이해함과 관심이 없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을 도울 수 없음을 이야기 했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관리하는 것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보고 세워야 할지를 연습하고 배워가는 시작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다시 마음관리의 중심에 있는 감정에 대해 성경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함을 재차 확인했다.
다시 우리는 마음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감정이라는 곳으로 더 깊이 내려가 보자. 마음은 이성과 감정으로 구분되는데, 감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어떻게 이성과 협력해서 치유의 사역을 이루어 갈까 함께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이런 치유의 영역 가운데 감정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갖고 살피는 이유는 많은 마음의 상처들이 감정의 상처에서 기인한다는 일반상담과 기독교상담에서의 연구와 임상의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감정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고찰해 보는 것은 마음관리에서 아주 중요한 시작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런 이유에서 감정에 대해 더 많이 나누기를 소망한다. 감정을 살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인식하지 않으면 아마도 뒤에서 구체적으로 나눌 치유사역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국제예수전도단 보건상담학교의 강사로 수고하시는 멜 한나 박사는 감정에 대한 성경적인 신념이 무엇인지와 감정이 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가 강의한 내용들을 참고해서 성경에서 그런 예들을 찾은 묵상을 나누고자 한다. 이로 인하여 작은 소망이 있다면 감정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여 독자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온전한 치유사역이 일어나는 것이다.
감정에 대해 나누면서 필자 개인의 예를 들어보려 한다. 고등학교 때에 영어를 잘 하고 싶어서 영문법 책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많은 시간을 영문법 공부에 투자했지만 영어 실력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나는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도 비교적 성실하게 공부한 편이지만 투자한 시간에 비해 성적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담임선생님이 더 난처해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업시간과 자율학습 시간에도 놀지도 않고 성실하게 책만 봤건만 왜 시험 점수가 안 나오는 건지 의아했다. 사실 그때는 나도 내가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는 하는데 왜 마음에 열정이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감정에 대해 알아가면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감정은 동력이다
먼저 감정은 에너지이다. 영어로 감정(emotion)은 라틴어 ‘흐르다’에서 유래했다. 즉 감정은 흐르는 에너지(Emotion in Motion)로서 방향을 향해 흐르게 하는 것이란 의미가 있다. 동기(Motivation)와 엔진(Motor)과 같은 어원이다. 이렇듯 감정은 동기를 부여해서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감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 되거나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특별히 선교사의 사역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감정은 에너지를 선한 방향으로 향하게도 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도 한다.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감정의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소멸해 버릴 것인지도 결정하는 것이다. 감정을 적절히 관리하는 사람은 충만한 삶의 에너지를 갖게 된다. 반대로 감정을 억압하고 잘못 관리하는 경우에는 삶의 에너지를 소멸해 버리는 결과는 낳는다.
감정이 에너지를 제공하는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마태복음 18장의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비유에서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27절) 라는 말씀이 나온다. 주인은 종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종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기로 결정한다. 주인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감정이 빚을 탕감해 주는 행동을 하도록 에너지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34절에서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된다.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라고 한다. 주인은 모든 빚을 탕감해 준 종이 나가서 자신에게 빚진 자에게 행한 일을 듣고 [노함]의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주인은 노하여 다시 종으로 하여금 빚을 다 갚도록 감옥에 쳐 넣는 행동을 한다. 주인이 종에 대해 빚을 탕감해 주거나 종을 감옥에 넣는 일이 있기 전에 불쌍히 여기거나 노하는 감정의 반응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에 의해 주인은 종에게 다른 행동을 하기로 선택한다. 이렇듯 어떤 사건을 대할 때, 감정의 반응에 따라서 동일한 사람이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은 먼저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의해 에너지를 받아 어떤 행동을 하도록 결정하고 선택하게 된다. 감정을 건강하게 풀어 준다면 내면에 더 많은 삶의 목표를 위한 에너지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삶에서 충만한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감정을 이해하고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가 충만한 열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이라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선한 목표를 열정적으로 이루어 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잘 돌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과 복음에 대해서도 열정적인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목표와 해야 하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한다고 해도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충만한 에너지가 없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당연한 것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찾아오는 죄책감과 좌절감만 증가될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관리할 때에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 갈 수 있다. 이렇듯 감정은 선한 방향으로 흐르는 에너지가 있다.
감정은 메시지가 있다
멜 한나 박사는 각각의 감정은 독특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 즉 가슴에서 감정이란 통로를 통해 머리에 의미가 담겨 있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마음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표현해 내고자 하는 독특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런 감정 가운데 주요한 감정이 있고, 서로 다른 세미한 감정들이 있다. 나무로 비유를 든다면 감정은 나무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굵은 주요 뿌리에 연결되어 있는 잔뿌리들이 있듯이 주요 감정에 연결된 더 세세한 감정들이 있다. 이렇게 굵은 뿌리인 주요 감정을 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잔뿌리에 속한 더 세미한 감정들에 대해 알아가고 경험해 가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감정이 나에게 말하는 서로 다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무엇을 느끼고 말하고자 하는지 더 명확하게 그리고 더 세미하게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감정에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감정 안에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감정 표현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면서 첫째 날로부터 시작해서 여섯째 날까지 반복적으로 “좋았더라” 라는 감정의 표현을 하신다. ‘좋았다’ 라는 감정의 표현을 통해 모든 만물은 존재 자체로 좋다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심히 좋았더라” 라고 더 고조된 감정을 표현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감정의 표현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창조물들에 대한 메시지를 표현해 내기도 한 것이다. 즉 하나님 창조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람을 창조하는 것이란 것과 하나님은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표현하는 감정에는 고유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사람이 처음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 즉 수치심을 경험하게 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 아담과 하와는 서로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즉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범죄한 이후에는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라고 하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부끄러워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최초로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한계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람이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9-10)” 아담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움] 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 두려움의 감정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준다. 그래서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는 경고의 메시지인 것이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안전함을 느끼도록 창조되었다. 하지만 죄의 결과로 인해 사람의 감정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듯 감정은 각각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감정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알아서 서로 다른 감정의 메시지에 따라 건강한 행동으로 옮겨 가는 것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감정에 대해 성경적인 견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의 감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며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일반적인 교육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조차 감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많이 접해 왔다. 즉 감정은 믿을 것이 못되고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부인하고 느끼지 말아야 하고 감정을 기도나 말씀 묵상을 통해 억압해야 하는 것으로 교육 받기도 하였다. 이런 감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감정 자체를 부인하고 감정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오도하도록 하여 단지 억압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하나님처럼 감정을 갖고 태어났으며 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만약 감정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도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수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계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6:5-6)”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이 죄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셨고 [근심]하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감정을 느끼시고 표현하시는 분으로서, 사람 역시 자신처럼 풍성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셨다. 이런 감정은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서 벗어나 왜곡되었다는 것은 인식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사람의 타락한 감정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인해 구속되었고 원래 창조의 목적이 의도하신 대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감정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독특한 선물이다. 다른 생물이나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미세한 감정을 느끼도록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고귀한 선물이다. 이 고귀한 선물인 감정으로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 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세워 갈 수 있는 것은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이다. 이 선물인 감정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적인 앎의 관계를 넘어서 감성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밀접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이끌어 준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영성을 세워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감정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감정을 하나님의 관계 가운데 잘 사용하는 사람만이 건강한 순고한 영성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지 메말라 버린 장작이 아니라 생명력을 뿜어내고 계속 성장해 가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적극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감정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즉 감정은 에너지를 포함함고 있고, 감정은 각각의 고유한 메시지를 갖고 있으며,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살펴보았다. 시작하면서 감정과 연관 되어서 개인적인 예를 들었다. 성실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하는데 그것에 비해 성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해 나누었다. 그 당시 나는 감정에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를 떠나서 동생과 함께 도시에서 청소년 시기를 지낸다는 것은 감정에 구멍이 생기는 과정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성취할 에너지는 고갈된 상태에 있었다. 부모의 사랑을 공급받지 못하는 감정에 상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보고는 있지만 새로운 지식에 대한 탐구열은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정이나 비전을 갖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에너지는 없었던 것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성실로 생존을 위해 삶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대학에 입학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크신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감정에 대한 이해함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며 또한 자신의 감정에 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익혀갈 수 있는 기반을 놓는 것이다. 건강한 감정 관리는 삶에 충만한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중요한 시작이다.
한해빈 | 대만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