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자신에 대한 실망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이 생기면서부터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지럽고 막막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물질과 명예를 추구하는 존재로 느껴졌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은 모두 돈과 지위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중국 남방에서 나고 자랐고 또 부모님은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주변에 만나는 사람이 모두 그런 사람이었다.
장녀로 태어난 나는 더 많은 책임감을 느꼈다. 내 인생의 목표는 가족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부모님이 생각하셨던 것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무한경쟁 시대에 태어난 내게 졸업은 곧 실업과 같은 의미였다. 나와 가족들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나의 지혜와 용기로 부딪혀 나가고자 했다. 나는 내 힘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비록 운명은 늘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나를 비웃었지만 그래도 운명을 주관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믿었다. 나는 아주 확고했다. 열심히 일했고 진심으로 주변 사람들을 대했지만 노력의 결과는 주변의 노력하지 않은 사람보다도 적었다. 나의 진심과 열정은 아픔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충격은 ‘인생 무상함, 운명의 장난질’ 그 자체였으며 더 이상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은 운명이 결정해 놓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내 스스로의 노력은 필요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내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준 하나님의 말씀
스스로 운명에 순응하고자 노력하면서 세상의 죄악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의 어두움과 세상의 냉담함 속에서 공평의 기준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위해서 도덕과 양심을 아낌없이 버렸다. 그런 악한 사람들이 도리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고 정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힘없이 비척거린다. 나도 그 정의를 행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면서도 무시하며 내가 얻고자 했던 것들 즉 권력과 돈을 너무도 쉽게 얻어갔다.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타인에 의해 균형을 잃었다. 나는 그런 세태를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고결함을 지키려 할수록 내적 고통과 불균형은 더 심해져 갔다. 냉랭한 눈으로 그런 위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냉담한 마음으로 그런 냉담한 사람들을 대했다. 그러자 마침내는 나 자신조차 싫어졌다. 나는 마비되어갔다. 나는 생각하고 질문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통제했다. 마치 나무인형처럼 그냥 세상에 몸을 맡겼다.
세상의 욕망은 여전히 나를 묶고 있었다. 나는 늘 남과 비교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왜 나는 남보다 못한가? 왜 나는 남보다 가진 것이 적은가? 나는 늘 참지 못하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면서 남이 나를 비판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가? 왜 나는 늘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내 권리를 침범하는 사람들을 증오하는가? 그때는 이 모든 것이 죄악인지 몰랐다. 이 죄악들은 늘 갑자기 뿜어져 나와 나를 자극하여 마치 족쇄를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는 무의미하게 낭비하지 않으리라
2009년 2월말 남편의 일로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인 Tifton에 왔다. 그곳의 아름다움과 조용함에 내 마음은 지극히 평안해졌다. 나는 이 무릉도원을 만끽했다. 이곳엔 복잡한 인간관계도 사람들과의 다툼도 없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안정과 기쁨과 편안함이 있었다.
두 달간 성경공부를 하면서 마음은 점차 활기차졌다. 교회의 형제자매는 내게 진실함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을 깨우셨고 따뜻하게 감싸 주셨으며 깨닫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했고 주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게 되었다.
나는 결국 늘 찾아 헤매던 답을 찾아냈다. 인생의 의의는 물질을 향수 하는데 있지 않다. 또 명예와 이익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이 세상에서 짧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재능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계획을 갖고 계신다. 우리가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인생여정의 풍성함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경험한 것을 통해 우리의 품격을 만드시고 성장하게 하실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희망을 찾았다. 빛을 보았다. 내 인생은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이 아닌 것이다.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을 위해 생명과 마음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았다
답안을 찾았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했다.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잡다한 일로 고민하고 인간의 본성 때문에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위앤즈밍(?志明) 목사님의 설교를 보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사람은 마치 고아가 아버지를 찾은 것과 같이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가정이 생긴 것입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이전에 겪었던 고통스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바로 그 고아였다.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이제야 찾았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모두 용서하셨다. 이제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다시는 세상의 일로 묶이지 않을 것이다. 나의 미래는 주님께 있다. 이제 다시는 내일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2009년 5월 2일 나와 남편은 결신기도를 하였다.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평안하며 따뜻했다. 나는 내 인생 전부를 나의 미래와 과거의 모든 족쇄들까지도 주님께 드렸다. 다시는 죄의 짐을 지지 않아도 됐다.
주님은 깨닫게 해 주셨다. 이전의 내가 추구했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었고, 내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통의 근원이 되었던 죄의 사슬이었다. 그것은 없는 자에겐 늘 얻고자 하는 것이었고 가진 자에겐 늘 모자란 것이었다. 세상의 영화는 내 생명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져 추구할 가치가 없다. 탐심은 영원히 만족을 얻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은 근심도 영원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짧은 인생 가운데 영생을 얻고 하고자 하는 영원한 의미가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에 감동도 없고 사랑도 없고 단지 세속과 분노와 더러움뿐이면 그 영혼은 영원히 평안과 기쁨을 맛 볼 수 없다. 이전에 죄악들로 죽은 내 영혼은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난 것이다.
출처 | 海外校園 第111期
번역 | 이순자 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