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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7.2  통권 132호  필자 : 담느헤미야  |  조회 : 3335   프린트   이메일 
[특집 플러스+]
나는 한국화교다

출생의 비밀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저의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민을 오셨고, 국적은 중화민국-대만입니다.” 이것은 나를 소개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첫마디이다. 조부께서는 중국대륙이 아직 중화민국이었을 때 한국으로 이민을 오셨기에 국적은 중화민국이고,  출생 시 부모의 국적에 따라서 국적을 결정하는 속인주의(屬人主義) 원칙에 따라, 아버지와 나는 자연스레 중화민국의 국적을 이어받았다. 지금은 중화민국이 대만에 있기에 가끔 어떤 사람은 나를 대만사람이라고 부르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화교는 이렇게 특별한 이중의 신분을 소유하고 있는 3세대 한국화교이다. 

캠퍼스사역을 할 때 어떤 제자가 나의 나이를 조심스레 돌려서 “국민학교 나오셨어요? 초등학교 나오셨어요?”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당당하게 “나는 소학교 나왔어!” 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한성화교소학(漢城華僑小學)’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연희동에 살았던 나는 명동에 있는 학교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남대문시장에서 내려야 했다. 조그만 책가방을 맨 남매가 매일 그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학교는 명동의 중앙우체국 뒤편에 있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이면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번화가의 대명사인 명동으로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졌었고, 지금도 그 진풍경은 여전하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는 여느 화교와 다르지 않게 한성화교소학교를 나오고 연희동 소재 한성화교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는 한국대학 진학반과 대만대학 진학반 중에 후자를 택하여 공부하였다. 졸업 후에는 국립대만사범대학교 국문과(중문)에 합격하여 타이베이(臺北)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Third Culture Kids(제3 문화의 아이들)
‘
Third Culture Kids(TCKs)’ 라는 사회학용어가 있다. 미국의 Ruth Hill Useem 교수가 인도에 있는 미국 아이들을 연구하면서 사용한 용어인데, 이민자의 자녀인 화교 또한 TCKs에 속한다. 나 역시 TCKs로서 정체성의 확립은 내게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조국이 아닌 타국의 문화와 환경 속에서 성장을 하였기에 “도대체 나는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라는 의문을 항상 지니고 살았다. 특히 할아버지께서는 중국에서 오셨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는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안에 한국인의 피도 흐르고 있으니 이 문제가 더 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정체성의 이슈와 방황은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대만에서 공부할 때가 더 커졌다. 

한국에서는 “나는 중국 사람이야!” 라면 문제가 없었는데, 국적지인 중화민국 대만 땅에서는 당연히 이해해주리라 생각했건만, 대만 친구들은 한국화교도 다른 나라에 있는 화교들과 같이 현지 국적을 갖고 있는 중국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무리 내가 중화민국 여권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도 다음번에 그가 다른 친구에게 나를 소개 할 때는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기 일쑤였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외국인이기에 외국인등록증이, 대만에서는 호적이 대만에 없는 국민(在台無戶籍國民) 이기에 거류증이, 중국에서는 해외화교이기에 여행증이 나의 신분을 증명한다. 어디서든지 그 나라의 국민이 소지하는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다.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중국대륙과 한반도, 대만의 중간쯤이 되는 바다의 어느 한 곳에 속한 ‘아시아의 고아’ 라고 느꼈다. 내 삶이 뿌리 내릴 곳이 없는 나무와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가슴 아픈 고민을 거듭거듭 하면서 나름대로 한국화교를 특별한 집단으로 인식하여 정립하게 되었고, ‘나는 한국화교크리스천이다’ 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대학생선교회)를 통해 복음을 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구주로 영접하고 나서는 이 정체성의 문제를 하나님 나라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인은 이중신분의 소유자이다. 이 땅에서 살면서 자신의 나라의 국적을 소지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땅에 태어났으며, 우리의 인생이 그분의 손에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장차 본향인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히 11:13-16).

대만에서 공부하면서 더 심해졌던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소유하면서 편협한 태도로 일관하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작은 굴레 속에 더 이상 갇혀있지 않고 온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와 같은 문제가 더 이상 나를 옭아매지 않았다. 이러한 이중의 특수한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그것이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어렵게 하지는 않는다. 이제 본적지인 중화인민공화국도 나의 나라요, 국적지인 중화민국-대만도 나의 나라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도 나의 나라이며, 이 나라들이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님의 통치하에 있음을 믿는다. 이렇게 많은 나라를 소유한 나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아름다운 섬김, 통로, 다리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며 CCC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던 중 대학교 2학년 때 QT 책《생명의 삶》을 번역하여 출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간에 쉬는 기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동역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또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각종 집회, 부흥회, 세미나, 컨퍼런스 등에서 통역을 해왔다. 몇 권의 신앙서적을 번역하여 대만에서 출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화교권의 기독교 잡지에서 한국교회를 소개하는 글도 기고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CCC의 캠퍼스시역을 하면서 한국대학생을 대상으로 사역할 뿐 아니라 중국인유학생도 만나면서 복음을 전하며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하심에 감사한다. 또한 지역 교회에 초청되어 말씀과 강의를 통하여 한국화교크리스천으로서 중국선교를 향한 비전을 나누기도 한다. 화교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두 개의 언어를 학습하여 자유롭게 통역이나 번역 등의 사역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실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잘하는 사람도 많고, 통번역을 잘 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들과 비교한다면 나는 잘하는 축에 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 사역 방면에 헌신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헌신자들을 일으키시고 계신다. 수많은 선교사자녀들, 양국의 유학생들, 그리고 준비하고 있는 소명자들을 보게 되는데, 특히 선교사자녀들은 나와 비슷한 정체성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지만, 성경 안에서 답을 찾아 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이런 재능이 있는 사람들 중에 부르심을 받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으며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위해 이런 사역을 해온 훌륭한 선배 사역자들을 부르셨고, 부족한 나도 부르셨으며, 귀한 후배들도 부르심에 헌신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보게 된다.

지나침이 없는 존중과 연합
많은 선배 사역자들은 한국화교가 한국·중국·대만교회를 연결해 주는 다리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씀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부분에 가끔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랬으면 정말 좋겠다’ 하는 생각 중 한 가지를 이 글을 빌어 나누길 원한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는 존중과 연합이다.

나를 낮게 여기고 상대방을 높이 여기는 존중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자세이다. 그러나 내가 나누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 교회의 용어와 전통을 존중하고 사용하자는 것이다. 특히 통번역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용어를 직역하여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중국교회의 용어를 존중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구원을 救援(구원)이라는 한국식이 아닌 중국식의 救贖(구속)으로, 성화를 한국식 聖化(성화)가 아닌 成聖(성성)의 중국식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중국교회를 존중하는 것이다. 용어에 대한 부분은 이미 정리된 서적들이 많이 출판돼 있으며,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보다 더 친절을 베풀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기본진리 이외의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전통을 존중할 때 비로소 연합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늘소망
지금 나는 건강상의 문제로 부분적으로만 사역에 참여하고 있지만, 치료받음과 동시에 장기적인 사역을 위해 신학공부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후에 나를 어떤 모습으로 사용하실지 인도하심을 계속 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사역도 함께 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우리가 장차 들어갈 본향은 어떤 모습일까? 성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천국은 금을 그어 만들어진 땅에 속한 국적이 사라지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가족공동체로 새롭게 판이 짜여지는 곳이라 믿는다. 그 아름다운 우리의 본향, 천국에서는 정체성의 문제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온 백성이 다 함께 하나님 앞에서 경배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아름다운 가족공동체의 행복한 모습을 꿈꾸며, 그날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인도하심 가운데 완수하려 노력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담느헤미야 | 대만두란노서원《생명의 삶》번역자, 前 CCC 캠퍼스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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