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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7.2  통권 132호  필자 : 웨이따오푸(卫道夫)  |  조회 : 2355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중국 가정교회의 관리와 직분의 중요성

중국 가정교회에서 직분 세우기의 중요성
현재 중국 교회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바로 분열 문제이다. 교회와 교회 사이의 분열에서부터 교회 내부의 분열까지 현재 중국 교회 곳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그 다음은 성도 수의 대량 감소 문제인데 성도가 크게 줄었다고 하는 교회가 상당히 많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디로 갔을까? 수평이동을 했거나 교회를 완전히 떠난 것이다. 그 다음 문제는 목회자 사이, 같은 교회 교역자 사이의 충돌이다. 이상하게도 중국교회는 목회자 사이가 한번 틀어지면 화해하기 힘들다. 이는 마음이 좁아서일까 아니면 진리를 위한 싸움일까? 목회자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어나면 영적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상대가 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한다. 사실 이렇게 신앙의 이름으로 문제 삼으면 더 이상 해결책은 없게 될 때가 많다.

만약 양측의 영적 문제가 아니라면, 갈등의 주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교회의 시스템 문제일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직분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목회자는 교회에서 권위를 잃게 된다. 교회에 일반 형제자매만 있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교회는 중요한 세 가지 시스템으로 나뉠 수 있는데 바로 주교제도, 장로제도, 회중제도이다. 이외에 또 하나는 바로 “무제도”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거룩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독재적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주교제도라 해도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무제도”교회의 경우 영적인 권위, 즉 일반 형제자매들을 책임지는 권위를 굉장히 존중해주기 때문에 그 어떠한 제약도 없이 영적 지도자 본인의 위신과 영향력으로 교회를 통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중국 가정교회의 경우 대부분 형제들이 어렵사리 세웠기 때문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직설적 표현을 잘 안 하기 때문에 어느 형제에게 잘못이 있다 해도 다가가 권고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느 날 모두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사태로 인해 교회는 분열되고, 한 번 분열된 교회는 화해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교회가 목사 또는 장로의 직분을 세우면 교회 사역이 보다 명확히 구분되고 사역자가 세워지면서 동역하게 된다. 또한 이렇게 직분이 세워지므로 목회자의 위신이 서게 되고 성도들이 목회자를 존중하게 될 뿐만 아니라 목회자 본인도 스스로 자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거룩한 직분을 주셨기에 목회자는 더더욱 자신의 언행에 주의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직분을 세우지 않으면 사역자에 대한 호칭이 정리되지 않게 되고, 통일되지 않은 호칭은 교회 신도들에게 혼란을 준다. 때문에 목사, 장로, 집사 등과 같이 직분을 세워야만 사역에 대한 개념과 구분이 명확해진다. 오늘 날의 중국 교회 상황을 보면 이때만큼 사역자의 직분이 시급한 때가 없다고 본다.

교회의 사역 직분을 맡은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
지금까지 교회운영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중요성을 살펴보았다. 제도란 모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기에 좋은 교회운영에는 영적인 직분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와 세상이 다른 점은 세상은 사람이 계획하고 사람이 이끌어가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사람이 맡아 이끌어간다. 하지만 사람의 죄로 인해 때로는 사람이 계획을 하기도 한다. 2천년 동안 이어져 온 교회의 역사에서 이러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따라서 역사적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자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도자에 합당하며 교회의 직분을 맡을 수 있는가?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운영시스템을 세울 때에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좋은 자질을 갖춘 사람이 좋은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존 스토트(John Stott)목사는 “어느 지역 교회든 그 영적인 상황은 목회자의 자질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 공동체의 발전은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의 자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는 <당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저서에서 백스터(Richard Baxter)의 말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열정적이고 충성되게 그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목자를 변화시키실 때 회중이 변하게 되며, 목자의 자질이 변하면 교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으로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시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먼저 열두 제자를 뽑아 훈련시키셨으며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무장시키셨다. 또한 제자들의 성품을 갈고 닦아 앞으로 주님께서 맡기실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양육하셨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을 마치시고 죽임을 당하신 후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실 때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8-20)” 사도바울은 선교사역을 하면서 사역자를 훈련시키는 일에 가장 많은 힘을 쏟았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장로를 세우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딛후2:2)”며 이렇게 하기를 요구했다.

훌륭한 자질은 갖춘 사역자를 양육하는 것은 성경말씀에 부합하는 교회운영시스템을 세우는 데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사역자의 자질이 못 미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고 좋은 직분을 세워놓았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고 교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목사 또는 장로는 개인의 바람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필요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발전과 회중의 필요를 위해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자질을 갖춘 사람은 다음의 네 항목에 합당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둘째 확신과 열정이 있고,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또한 그에 대한 교회의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사역 열매가 있어야 한다. 

이제 바울이 딤전 3:1-7에서 언급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격을 살펴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세우는 길을 탐구해자. 첫째, 기본적인 자질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자질이라 함은 ‘흠이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 감독자는 흠이 없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사역에 있어 사람들이 봤을 때 흠 잡을 만한 것이 없어야 한다. 물론 흠이 없다는 것이 어떤 잘못도 없고, 어떤 잘못을 저지를 수도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흠이 없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의 내용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품성
사역자의 품성은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며 교회 지도자는 충실한 결혼생활, 자아절제, 기쁨으로 사람들과 교제하는 사교성 등 이 세 가지 덕목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사도바울은 우선 결혼생활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였다. 교회 지도자는 반드시 한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며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평생 일부일처제를 바탕으로 부부가 처음 서약한 내용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 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에도 충실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 

절제 역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질 중 하나인데, 이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자기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기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절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이며 교회의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마지막은 기쁜 마음으로 교제하는 사교성이다. 절제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받은 은혜와 좋은 부분을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안다. 이 점은 사역자의 리더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의 종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하기 때문에 특히 멀리서 온 손님을 환대하고 교제를 나누는 사교성이 있어야 한다.

전문성
사역자는 품성 외에도 그에 합당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가르침의 은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기독교 사역 중 가장 특별한 부분이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가르침의 은사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지도자가 돼선 안 된다. 목사란 누구인가? 목사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침은 목사의 주된 일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역자는 자신의 은사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말씀 연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말씀으로 인해 비방 받지 않기 위해 교회의 지도자는 또한 경쟁에 급급하지 않고 온화해야 하며 더구나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 지도자는 자신의 은사를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 이는 바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함과 같다.

때때로 형제자매들은 교회 지도자의 품성을 강조하는데 물론 품성도 중요하지만 교회 사역에서의 전문성 역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성도를 이끌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잘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도자가 성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어찌 성도들의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겠는가? 아무리 우수한 능력이 있어도 만약 가르치는 은사가 없다면 교회의 지도자가 돼선 안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모든 분야마다 전문적 자질이 중요하지만 교회를 양육하는 목회자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다. 

삶의 증거
사역자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고 주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가르침을 들으려 할 뿐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보려 한다. 그래서 사역자는 삶을 통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범을 보여야 할까? 

첫째,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전할 때 보다 현장감 있게 전할 수 있고 신뢰감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다. 진정한 교회 지도자는 반드시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사도바울은 가정과 교회가 마치 거울과도 같은 관계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결혼한 사역자는 작은 가정(자신의 가정)과 큰 가정(교회)을 섬겨야 하는 두 가지 소명이 있다. 가정은 훈련의 장소이며 교회는 실천의 장소이다. 가정에서 훈련을 잘 받아야 비로소 교회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다. 만약 훈련이 잘못되면 실천 또한 잘 될 리가 없다. 가정 하나도 못 다스리면서 어찌 교회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여기서 사역자가 가정을 통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어떤 교회 던지 가정을 잘 다스리는 목사가 없으면 교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없다. 

둘째,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목사는 우선 자신의 신앙을 분명히 드러내야 하며 거듭남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의 원래 뜻은 장로이다. 즉 연륜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좋은 모범을 보이기 힘들다. 사도바울은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3:6)” 라고 하였다.

셋째, 목사는 교회 밖에서도 명망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사역은 세상에서도 존중을 받아야 하는 직분이기 때문에 마귀가 교회를 공격하는 가장 주된 방법이 바로 사역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밖에서 명성을 얻지 못하면 사역자가 될 수 없다.

나의 은사이신 차영규(車英珪)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권면하셨다. “이미 교회 지도자이든 앞으로 될 사람이든 혹은 교회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든 모두 딤전 3:1-7절에 담긴 사도바울의 교훈에 비추어 자신이 교회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만약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면 빨리 회개해야 하며 정말 아무런 자격이 없다면 회개만으로 부족하고 반드시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스스로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지도자로서의 잠재력이 있다고 여기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며 늘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겨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거나 성도들을 잘 이끌지 못하면서 계속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같은 사역자를 핍박하고 그의 재능을 시기 질투한다. 그 결과 교회는 분열되고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오늘날 중국교회에서 이러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데 이런 지도자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새로운 마음가짐
수많은 중국 가정교회들은 그 동안의 “전통” 때문에 교회에 목사나 관리시스템을 세우는 것이 세속적이고 거룩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생각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성도들을 잃게 된다. 심지어 사역자가 타락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아직까지 많은 교인들은 중국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건전한 관리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사실 교회에 건전한 시스템이 없어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역시 성경의 가르침과 위배된다. 앞서 성경적 근거를 언급했듯이 우리는 늘 성경 중심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모든 근거를 성경 속에서 찾아야 영적이며 경건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교회가 하나의 유기체이자 조직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행 14:23 상)”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장로를 세워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성경은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고 했다. 이처럼 교회의 시스템을 만들어 장로와 목사를 세우는 것은 성도를 위한 것이며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주의 종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성경의 가르침대로 우리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하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그 외에도 권력에 대한 낡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어떠한 형식을 반대하는데 사실 우리 자신부터 각각의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단지 다른 사람의 형식과 다를 뿐이다. 중국 가정교회는 보통 목사를 세우거나 교회에서 누군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사실 제각기 다른 이름, 다른 신분으로 교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가정교회가 지닌 권력은 시스템을 갖춘 교회의 권력보다 더 강력하고 독점적이다. 이처럼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사역자가 본연의 능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으로 사역에 임하면 주님이 주신 은사를 허비하고 결국 교회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교회에 건전한 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역자를 감독할 수 없고 오히려 독재를 부추기거나 권력 남용을 일으키곤 한다.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데 중국교회만 한 곳이 또 있을까? 건전한 조직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고 부패한다. 중국교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불 보듯 뻔하고 이런 현상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시스템의 혼란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고 사역자가 타락하는 것 외에도 이단에게 틈을 보일 수 있게 된다. 최근 많은 교회가 동방번개(東方閃電)라는 이단에 포섭 당했다. 

건
전한 조직이 없는 교회는 모두 사역자 개인의 카리스마 혹은 감정에 의해 유지되어 왔는데 이런 교회일수록 성도들이 감정에 따라 사역자를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사역자라도 성도들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에서 새로운 사역자가 왔을 때 신선함을 느끼며 쉽게 유혹에 빠진다.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을 보고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 언제까지 잘못된 길을 가려는가? 교회 시스템을 세우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 반대하는 이유가 정말 주님 혹은 교회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의 권력이 제한 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영적인 핑계를 찾으려 하는가?


출처 | ≪敎會≫ 第33期
번역 | 성혜영, 박소정, 구경운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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