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 하러 푸른 산에 사느냐구요
허허 그걸 꼭 말해야 하나요?
저길 보세요,
복사꽃 떨어져 시냇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 저 곳을요
여기는 새 하늘과 새 땅,
당신이 놀던 그런 세상이 아니랍니다.
<산중문답(山中問答)>
問余何事栖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주석]
1 問余(문여) - 나에게 묻다.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는 말이다.
2 何事(하사) -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事’를‘意’로 쓴 판본도 있다. ‘何意’로 할 경우도 뜻은 같다.
3 栖碧山(서벽산) - 푸른 산에 살다. ‘벽산’은 중국 호북성 안륙(安陸)에 있는 수산(壽山)을 가리킨다.
4 笑而不答(소이부답) -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다.
5 心自閑(심자한) - 마음이 절로 한가롭다.
6 桃花流水(도화유수) - 복사꽃이 떨어져 흐르는 시냇물.
7 杳然去(묘연거) - 아득히 멀리 멀리 흘러가다.
8 別有天地(별유천지) - 다른 하늘과 땅이 있다.
9 非人間(비인간) - 인간 세상이 아니다.
이 시는 이백(..白)이 호북성 안륙의 벽산에서 살 당시에 지은 작품이다. 25세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고향 사천(四川)을 떠나 삼협을 나와 천지를 떠돈 지 2년, 스물일곱의 이백은 안륙에서 재상 가문의 허씨와 결혼한다. 허리에 만 관의 거금을 차고 고향을 떠나 꿈을 이룰 기회를 찾아 떠돈 2년의 세월은 결국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재물도 사람도 다 잃은 채 강소성 양주(揚州)의 궁벽한 여관에서 병들어 눕는 것으로 끝났다. 당시 병든 몸으로 지은 것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정야사(靜夜思)>이다.
침상에 비치는 밝은 달빛
마당에 서리 내린 줄 알았네.
고개 들어 밝은 달을 쳐다보다
고갤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擧頭望明月(거두망명월)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밝은 달은 고향이요, 어머니의 이미지이다. 사람이 궁하여지고 고통에 처하게 되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고향이다. 그 고향은 바로 우리의 근원적 고향인 어머니가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백의 지친 몸과 맘이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을 것이다. 고향을 비추던 달은 만리 타향에서 병들어 외로운 이백을 비춘다. 달빛에 스민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을까. 이백은 병든 몸을 일으켜 다시 푸른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호북성 안륙의 재상 가문의 허씨 처녀와 결혼하게 된다. 빈털터리였던 이백이었지만 허씨 가문은 이백의 재능과 꿈에 주목하여 결혼을 승낙하였던 것이다. 이백은 아내 허씨를 데리고 안륙 교외에 있는 벽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을 꾸고 공부했다. 그렇게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성과도 보이지 않자 주변의 사람들이 염려하거나 무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젊은 놈이 이런 궁벽한 산속에서 뭣 하고 있는 거야? 재상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더니 놀고먹자는 심산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지어진 것이 바로 위에서 소개한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제목이 ‘산중에서 속인에게 답하다’는 뜻의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으로 된 판본도 있다. “자네 같이 젊은 사람이 어째서 이런 산속에 살고 있는가?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속인의 질문은 힐난에 가깝다. 그가 이백의 가슴에 담긴 큰 꿈을 알 리 있을 것인가. 그의 겨드랑이에 붕새의 큰 날개가 날로 자라고 있음을 알기나 할 것인가. 무엇을 일일이 설명하랴. 설명해준다고 또 이해하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아도 마음이 한가롭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에 대한 위대한 긍정적 평가를 드러내는 말이다. 세속인들의 저열한 평가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대단한 자긍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속인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빙그레 웃는 이백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건가? ’끝까지 대답을 듣고 가겠다고 오기를 부린다. 마침내 이백이 손을 들어 집 앞을 흘러가는 시냇물을 가리키며 입을 연다. “복사꽃 아득히 흘러가는 저 시냇물을 좀 보시오.”복사꽃 물결은 이곳이 중국의 전통적인 이상향인 도화원(桃花源)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옛날 무릉의 한 어부가 고기잡이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복사꽃이 무더기로 줄지어 떠내려 오는 신비로운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이상한 느낌에 휩싸인 이 어부는 그 물줄기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그물이 다 끝나는 지점에서 조그만 동굴을 발견한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희미한 불빛 같은 것이 보였으므로 배를 버려두고 그 동굴로 들어갔는데, 동굴 너머에는 수백 년 전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숨어들어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화롭고 풍족한 이상 사회가 있었다. 이른바 무릉도원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글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로부터‘복사꽃 물결’은 이상향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곳은 또 다른 하늘과 땅이 있는 곳, 당신의 속세와는 다른 곳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속한 속세의 관점이나 견해를 가지고 다른 세상에 속한 나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를 비난하지도, 동정하지도 마십시오. 이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이 시를 약간은 다른 관점에서 감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벽산’은 궁벽한 산골 마을일뿐이겠지만 이백에게 있어 ‘벽산’은 자신의 꿈을 빚어내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남들의 눈에는 산골 마을에서 하릴없이 시간이나 축내고 있는 건달로 보였겠지만, 이백은 이 벽산에서 온 세상을 덮을 큰 꿈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백의 집 앞을 지나 멀리 멀리 흘러가는 ‘복사꽃 물결’의 의미를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보면 그 꿈을 헤아릴 수 있다.‘ 복사꽃물결’을이 백의 문학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바로 온 세상을 자신의 시의 물결로 덮어버리겠다는 꿈이다. 시의 향기로 천지를 가득 채우겠다는 꿈이다. 이곳 벽산은 그의 시의 물결이 시작되는 발원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마지막 구절은 “복사꽃 물결(시의 물결)이 닿는 곳에는 다른 하늘과 땅이 열리리니, 그곳은 더 이상 옛날 세상이 아닐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백은 대답한다. “지금 나는 온 세상으로 보낼 향기 드높은 복사꽃을 피워내기 위해 이 푸른 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네. 복사꽃의 향기는 푸른 산이 만드는 황홀한 노을과 신비로운 안개가 필요하기 때문일세.” 세상에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에 대해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이 위대한 긍정성 때문인지 훗날 이백의 시는 과연 천지에 가득 차게 되었으며 그의 시가 닿는 곳마다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감동의 세계가 펼쳐졌다. 이 시의 복사꽃 물결은 이젠 천 년의 세월 너머까지 흘러서 그 장구한 세월 내내 무궁한 감동과 환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세상에는 또 이백처럼 스스로 궁벽한 벽산을 택하고, 그 벽산에서 큰 나무가 되어 말없이 멀리 멀리 향기로운 복사꽃 물결을 보내고 있는 자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보내는 향기로 세상이 새로운 하늘과 땅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백의 <산중문답>은 바로 이러한 자들을 위해 천 년 전에 준비된 노래일 것이다. 준수한 용모의 옛 시인이 노래한다.
원위♬허스♪치 삐샨♬
시야오얼뿌다♪신쯔시엔♬
타오화♪리우쉐이 야오란 취♬
비에여우♬ 티엔띠 페이런지엔♪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