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번호 
북쇼핑
2012.5.1  통권 131호  필자 : 강진구  |  조회 : 4449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 Revolution》
- 성룡이 청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역사


성룡(成龍)의 100번째 영화

지난해 가을, 홍콩의 무비스타 성룡의 100번째 출연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여(張黎) 감독이 연출을 맡고 성룡 자신이 주연 및 총감독으로 진두지휘한 역사물《신해혁명, 辛亥革命》은 월드스타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을 한 성룡의 100번째 영화로 1911년 발발한 신해혁명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고 있다. 

코믹한 무술배우로 이름이 알려진 배우가 혁명가로 변신한 이 영화의 가치는 오락이나 상업적 관점보다는 역사적이며 사회적 의미를 헤아려보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 다시 말해서 성룡의 이전 영화에서 보아왔던 화려한 중국무술이나 익살스런 연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현시점에서 성룡이 이 영화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일이야 말로 이 영화의 가치를 보다 분명히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성룡 특유의 무술 액션은 그리 뛰어나지 못한 실력을 가진 군인 2명을 1분 남짓 상대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오히려 청조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는 혁명가로서 그리고 봉건왕조로부터 국민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민주주의의 투사적 성격이 보다 면밀히 드러나고 있다. 

성룡은 언론보도를 통해 영화 《신해혁명》을 10년 전부터 구상해 왔고,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말하고 싶은 것 모두를 표현했다고 밝힌바 있어 관객들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 이 영화 제작을 위해 한화 400억 원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성룡이 자신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고 외부적으로 다시 한 번 평가받을 수 있는 100번째 출연작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성룡의 이 같은 의지에 부합하여 과연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서 제작과 출연을 겸비한 이 작품의 가치와 의미가 남다른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의 숭고한 혁명을 기리다 
영화 《신해혁명》은 청나라 말엽을 배경으로 고통에 살아가는 중국 인민을 구하려는 청년들의 숭고한 정신으로 넘쳐난다. 영화 도입 초반부에 자막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스크린에 새겨진다. 

‘1840년 아편전쟁 후 중국은 점차 반봉건·반식민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라는 이중적 억압 속에 심한 모욕과 수난을 겪으며 극심한 생활고와 국가의 존폐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20세기 초, 혁명이란 시대의 흐름 속에 청왕조는 바람 앞에 등불과 같았는데 손중산(孫中山) 선생을 대표로 혁명당원들은 민족의 독립과 민주 자유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념 아래 망설임 없이 계획을 실행해 나갔고 그렇게 신해혁명은 점차 가까워졌다.’ 

쇠사슬을 끌며 형틀을 목에 걸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동맹회 회원 추옥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내가 죽는 것은 혁명을 위해서다. 여태껏 중국 아녀자들이 나라를 위해 피 흘린 적은 없었지만 내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설사 사람들이 혁명을 하는 이유와 내 마음을 몰라줄지라도 내가 죽는 것은 혁명의 이유에 답하기 위함이다. 혁명은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평화롭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설령 오랜 노예생활로 인해 감각이 무뎌져 평화롭고 따뜻한 생활을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사형장에서 청관리가 추옥의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 아이들이 이젠 고아가 되어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말했을 때 추옥은 이렇게 답한다. 

“전 모든 아이들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혁명을 위해서다. 죽음이 두렵거나 슬프진 않지만 희생이란 기쁨과 흥분이 잠시 내 마음 속에 흘러들어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구나.”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혁명을 위해 숨져간 젊은 혁명가들의 사진을 연속해서 보여주며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음을 강하게 증명하고 있다. 처형장에서 휘두른 칼날에 젊은 피들이 스크린에 뿌려지며 영화는‘신해혁명’의 타이틀을 붙여놓는다. 

영화 《신해혁명》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지 않는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운 ‘신해혁명’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신해혁명의 두 축인 쑨원(孫文, 자오윈쉬안 분)과 황싱(黃興, 성룡 분)을 중심으로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부를 수립하려는 정치적이며 또한 군사적인 혁명을 담아내고 있다. 쑨원은 미국과 유럽을 돌며 혁명의 필요성을 알리고 자금을 모으는 한편, 유럽의 열강들이 청왕조에 대한 경제협력이 차단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황싱은 철저한 투사다. 그는 혁명군의 선봉에 서서 청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용맹함을 발휘한다. 그가 부상당한 손가락을 자신의 손으로 잘라내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 역시 다시 총을 잡고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함이다. 다만 쑨원이 혁명을 밀어 붙여서 청조를 완전히 붕괴시키지 못하고 청왕조를 대리하는 위안스카이(袁世凱)와 타협을 본 끝에 그를 임시 대총통에 오르게 한 역사적 정황은 어설프게 처리되어 있다. 중국 역사가들이 쑨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혁명의 목적이 반외세 반봉건주의에 있는 까닭에 위안스카이를 통한 청왕조의 붕괴를 이룬 것 같아 보였지만, 그는 후에 스스로가 황제가 되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제제운동(帝制運動)을 일으켜 칭제(稱帝)를 감행하기도 하였다. 신해혁명의 뒤를 잇는 제2차와 제3차 혁명을 통해 위안스카이의 야망은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지만, 존경받는 쑨원이 보다 강력하게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한 점은 중국 역사가들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역사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신해혁명》은 쑨원의 과실을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중국 인민을 위한 대혁명이 있었으며, 그 혁명의 중심에 젊은 청년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중국 청년에게 고함 
영화 《신해혁명》은 이 혁명의 역사를 중국 청년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성룡은 2011년 9월 난징에서 있었던 시사회에서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의 분명한 의미를 밝힌바 있다. 

“이 역할로 관객들이 재키 찬(Jackie Chan, 성룡)은 잊고 황싱이 누구인지, 어느 나라든지 세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면 지난 세대에게 의미 있었던 역사도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성룡은 1980~90년대에 태어난 중국 청년들에게 신해혁명을 이해시키고자 기획한 영화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신해혁명이어야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첫째, 신해혁명은 이념을 떠난 모든 중국인, 그리고 하나의 중국을 위한 혁명이기 때문이다. 장제스(蔣介石)도 쑨원의 혁명단체인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에서 활동하던 일원이었고, 마오쩌동(毛澤東)은 아직은 전면에 부상하지 않았던 때였다. 당시 쑨원을 비롯한 혁명의 주체세력이 가졌던 생각은 오직 반봉건 반외세였고, 어떻게든 피폐한 중국을 회복시키려는 순수한 민족주의 사상이 근원에 있었던 까닭이다. 우리는 영화 《신해혁명》이 쑨원이 세계로 흩어진 해외 중국인의 의식을 대표하며, 황싱이 대륙의 민중을 대표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중국의 회복을 위해 힘을 합쳤고, 마침내 혁명이 성공하는데 초석이 되었다. 홍콩 출신의 성룡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배우로서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역사의식을 신해혁명을 통해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둘째, 신해혁명의 행동세력으로서 청년들의 기개와 희생을 오늘날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 청년들은 서구에서 유입된 자본주의 사상에 매몰되어 돈을 쫓아 살아가고 있다. 과거 혁명가들이 지녔던 국가를 위한 희생과 같이 자기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국 정부가 청년실업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원에 진학하는 청년들은 급속히 늘고 있지만 그들은 더 많은 돈을 주는 직장을 찾아 대도시로만 몰려들 뿐, 광활한 대륙의 변방에서 그들이 배운 지식을 통용할 생각은 못한다. 

중국의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대학 졸업생은 680만 명으로 지난해 보다 20만 명이 더 늘어났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중국의 초고속 성장이 멈춤에 따라 취업난이 점점 가중될 전망이다. 이들이 택한 곳은 대학원이다. 중국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2012학년도 대학원 입학시험에 전국적으로 모두 165만 6000명이 응시해 전년보다 9.3% 증가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전했다. 응시생이 계속 증가하면서 대학원 입학생수도 지난 2007년 36만4000명에서 2011년 49만5000명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입시 경쟁률이 3대 1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에서 대학원 진학 열기가 높아지는 것은 취업난으로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졸자들이 스스로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진학을 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는 점이다. 

취업이 어려워 대학원에 진학하는 중국 학생들의 어려움은 한국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광활한 국토와 다양한 민족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는 중국에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일할 수 있는 엘리트들을 필요로 한다. 돈만을 쫓아 사는 인생관을 가진 청년들이 외진 곳으로 가는 것이 만무하다. 따라서 성룡은 중국 청년들에게 민중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신해혁명의 젊은이들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교회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은 《신해혁명》의 현 시대적 가치와 의미를 잘 간직할 필요가 있다. 중국교회는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행 1:8, 마 28:19) 선교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혁명가 의식을 갖춘 젊은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강진구 | 고신대 컴퓨터영상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