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로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먼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와 아내는 그리스도인에게 상처를 받은 부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간단히 이렇다. 부부가 알고 지내는 자매가 함께 동업할 것을 제의했다. 남편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이라을 믿고 흔쾌히 재정 투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결국 속아서 모든 돈을 잃었다. 그래서 한동안 부부는 재정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생활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배반당하고 속았다는 생각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불신과 숨겨져 있는 쓴 마음은 여전히 부부의 삶과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 부부의 배신당하면서 겪은 감정적인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건강하게 풀어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감정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모두 용서했다는 말만 반복하며 감정을 나누는 일을 거부했다. 이들 부부는 왜 지나간 감정을 나누고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 사람을 용서했으니 해결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10년 전에 경험한 사건에서의 감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계속 부부의 마음에 쓴 뿌리로 남아서 사고와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이들 부부에게 맺혀 있는 감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최종적인 치유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내지 않으면 그 사건으로 인해 생긴 왜곡된 사고와 행동은 바로잡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아직도 그 당시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힘들고 생각과 행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어도 상한 감정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본다. 자신은 감정에 상관없이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부와 이야기 하면서 마음관리를 위해서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기반이 필요함을 느꼈다.
감정에 대한 성경적인 신념
먼저 감정에 대한 성경적인 신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 하나님은 사람이 핵심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창조하셨다. 감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지, 사람이 범죄한 이후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감정 자체는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있는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보기에 좋다고 하셨다. 또한 사람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창조물을 보시며 좋다는 감정을 표현하시는 것을 본다. 또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 역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창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은 교제 가운데 희노애락의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이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움을 느끼고, 서로가 벗었음을 발견하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듯 하나님은 사람이 감정을 느끼도록 창조하셨다.
둘째, 감정 자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이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면서 감정을 주셨다면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선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감정 자체를 느끼는 것에 대해 부인하거나 억압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감정 자체를 악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감정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시각은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이원론적인 생각으로 감정을 영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으로 봄으로 인해 감정 자체를 악하고 세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람이 감정 자체를 악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감정을 느끼는 것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부인하거나 거절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서 억압하려고 할 것이다. 감정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감정을 무시하고 감정에 주의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자체를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우리가 감정을 행동으로 옮길 때 도덕성이 개입한다. 감정이 선한지 아니면 악한지는 그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해 냈을 때에 판단이 가능하다. 감정에 의해 행한 행동은 내면과 외면의 모든 반응을 포함한다. 사람은 동일한 상황 가운데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사건 가운데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서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기아로 죽어 가는 소식을 듣고 어떤 사람은 불쌍하다고 느끼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후원 단체에 어린 아이를 위한 지원금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후원금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중국 정부가 북한 탈북자들에 대해 인도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소식을 들으며 함께 분노할 수 있다. 이런 분노 가운데 어떤 사람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항의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한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그 감정으로 인해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도덕적인 판단으로 존경을 받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그 감정에 따라 행한 사람에 대해 도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감정 자체로서는 도덕성을 평가할 수 없고 평가해서도 안 된다. 사람이 감정에 의해 행하는 행동은 내면적인 것도 포함된다. 분노가 미움과 증오로 진행되는 것은 분명히 악한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하면 이미 살인한 것과 같다고 보셨다. 즉 어떤 감정으로 인해 어떤 마음의 계획을 세우는 순간 이미 도덕적인 판단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 자체를 느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고 표현해 내는지 훈련하도록 돕는 것이 건전한 방법이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은 감정의 구속과 원래의 목적과 기능을 회복하는 것도 포함된다. 감정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면 감정 역시 십자가의 은혜 아래서 구속되어서 회복되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인류가 범죄하여 타락한 이후에 분명히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에도 죄의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원래 하나님과 사람은 두려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친밀함을 경험해야 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한 후에는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기뻐하는 감정을 느끼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처음 봤을 때에 기쁨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과 수치심의 감정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원래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다. 모두 사람이 범죄한 이후 관계의 변화에 의해 생겨난 감정의 반응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은 감정도 포함된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감정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회복하는 것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 예수님의 네 가지 밭의 비유에서도 결국 좋은 밭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굳은 마음과 돌밭 같은 마음,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 좋은 밭으로 변화되어지는 회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회복된 마음에서 30배, 60배, 100배의 성품과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감정에 대해서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감정을 체휼하시는 분으로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에 우리와 대화하는 기회로 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배제한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진솔하게 하나님에게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게 하는 아주 귀한 기회가 된다. 감정적으로 격동이 일어날 경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그 감정에 따라 선하거나 건강한 반응을 하기보다는 삶에 오점을 남기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선한 의도를 갖고 계시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고통스런 감정에 대해 체휼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 감정을 다 해결하고서야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가지고 자신과 대화하고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감정을 나눔으로 인해 참된 친밀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불경한 것도 무례한 것도 아니다. 다윗은 자신이 원수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표현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은 그 감정으로 인해 악한 것을 선택하지 않고 더 선한 행동을 위한 선택과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그렇게 우리는 감정을 표현함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고, 다윗처럼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다섯 가지 감정에 대한 성경적인 신념은 우리가 어떻게 감정을 다루고 그것을 통해 마음을 관리해 가야 할지에 대한 바탕을 제공해 준다.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어느 부부와의 대화 경험을 나누었다. 그들 부부는 10년 전 사건으로 인해 겪었던 감정적인 어려움을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용서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감정이 사고와 행동에 남긴 흔적은 아주 선명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 계속 그 상처받은 마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불신하면서 비판하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 일과 현재 자신들이 교회와 믿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한다. 충분히 비판할 이유가 있고 자신들에게 불신을 갖도록 교회가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렇게 느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 가운데 원래 고통스런 감정을 경험했을 때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고 또한 그것이 자신의 삶에 가져다준 영향력 등을 관찰해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야 그 고통스런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그것이 가져다 준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게 된다. 이렇게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위해 감정에 대한 성경적인 신념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다. 즉 감정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자체로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하시기를 원하시고 또한 감정을 통해 우리와 대화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감정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해빈 | 대만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