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모리슨 선교사가 1807년 처음 중국에 발을 내디딘 이후 지금까지 개신교는 200여 년의 역사를 거쳐 발전해왔다. 현재 중국 전역에는 몇 천만 명의 신도와 수십만에서 몇 백만의 교회들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고무적인 수치지만 반면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중국교회는 큰 범위에서 보았을 때 정부교회(삼자교회)와 가정교회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가정교회가 난립하고, 내부 문제가 복잡하며, 지나치게 뜨겁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1990년대부터 가정교회는 정부의 압력을 받으면서 내부 분쟁과 이단 시비 그리고 해외교회의 악영향까지 겹치면서 여러 교파로 나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신도가 떠나는 결과까지 초래하였다. 이에 주님의 마음이 아프셨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문제는 오늘 날 중국교회 사역자 앞에 놓인 큰 문제가 되었다1).
1) 본문은 삼자교회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물론 가정교회가 지니는 장점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나, 이 글은 가정교회에 대한 단순한 평가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병원에 가는 것은 어떠한 질병이 있는지 진단을 받고 그에 대한 처방을 얻기 위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현재 중국 가정교회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나누고, 독자들이 가진 은사를 가지고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좋은 의견을 나누기를 소망한다.
가정교회가 이렇게 큰 혼란을 맞이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외부의 핍박이 교회 간의 교제를 방해하여 초래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근본적인 이유였을까? 사도시대의 교회들과 같이 과거의 교회들도 핍박을 받았었다. 하지만 사도행전 6장에 기록된 사건을 보면, 헬라 출신의 과부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다. 이러한 교회 관리적인 문제로 인해 후에 일곱 집사가 선출되면서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다(행 6:7)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 가정교회에도 이러한 관리 체제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몇몇 현상들이 보여주듯, 오늘날 교회는 다소 혼란스럽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지도자들이 교회의 제도와 직분을 세우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이 문제를 소홀히 하거나 심지어 여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현재 가정교회의 급선무는 교회조직과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다.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필요성가 있다. 만약 교회에 제대로 된 관리체제가 없으면 교회의 건강한 발전은 저해 될 것이다. 신구약 성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제대로 된 관리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직분을 세워야 하는 성경적 근거
직분을 세워야 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성경에 기초한다. 출애굽기 18장 13-27절 말씀에서, 지도자를 세운 것이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출 18:13 문제 발단, 인구수의 증가로 야기된 문제
둘째: 출 18:14 문제 발생,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짐
셋째: 출 18:21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 지도자들을 선출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관리하는 것을 도움
넷째: 출 18:21 모세가 직접 지도자를 선출하여 임명함
다섯째: 출 18:25 임명을 통해 지도자들을 세우는 방법
여섯째: 출 18:27 결과: 하나님 백성의 필요를 채워주는 행정 제도의 등장
사도행전 6장 1-7절에 기록된 말씀은 직분을 세운것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첫째: 행 6:1 문제 발단, 제자들 수가 많아진 것이 문제의 원인
둘째: 행 6:1 문제 발생, 식량공급의 혼란
셋째: 행 6:3 문제 해결, 집사를 선출함
넷째: 행 6:5 회중이 집사를 선출하는 방법을 취함, 직분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서 신구약 시대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
다섯째: 행 6:6 사도들이 안수하여 임명
여섯째: 행 6:7 결과: 사도시대 교회의 부흥
사도행전 6장 3절에 너희 가운데서“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사도가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행정은 목양을 뒷받침해야 한다. 따라서 행정은 더 효율적인 목양과 교회 관리를 위한 것이며 반드시 목자의 가르침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가운데 열두 제자와 칠십 명의 제자를 세우셨다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백성의 대표이다. 그 열두 명의 제자 중에서도 세 명의 대표가 세워졌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세우신 대표들로 하여금 그의 백성을 이끌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족장, 사사, 선지자, 제사장, 왕과 사도들을 세우셨다. 이는 신구약 성경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내용들이다. 구약에서 신약까지 모두 행정조직과 관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행정관리 체제와 백성들의 질서 있는 생활을 기뻐하심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라고 가르친 바 있다. 때문에 오늘날 교회들이 관리체제를 바로 세우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하나님이 교회를 관리하는 원칙이므로 교회는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
여러 가지 측면으로 보아 교회의 관리체제를 바로 세우는 것은 중국 가정교회가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제이다. 즉 객관적인 측면에서 이것은 성경의 교훈이기 때문이고 주관적인 측면에서는 이것이 중국 가정교회가 현실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가정교회와 모세시대 그리고 사도시대는 공통점도 있고 서로 다른 점도 있다. 먼저 공통점은 사람의 수가 증가하고, 사역 분량이 많다는 것이다. 또 이미 많은 문제가 실제로 나타났다. 상이한 점은, 모세시대나 사도시대에는 효과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유익이 되었고 교회는 크게 부흥했다. 이와 달리 현재 중국의 가정교회는 여전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교회가 매우 연약하며 혼란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중국 가정교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건강한 교회를 위한 질서와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경에 부합하는 교회 관리체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 관리체제를 세울 때에는 먼저 교회의 직분자들과 지혜롭고 능력 있는 지도자들을 세워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부흥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가 지녀야 할 태도
오늘날 중국의 가정교회에는 이미 사역자가 있다. 특히 청년 사역자들은 목사, 장로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이든 사역자들의 반대로 인해 교회에서 발언권이 없다. 원로 사역자들이 이처럼 반대를 하는 것은 젊은 사역자들이 아직 제대로 잘 알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될 것을 우려하는 이유도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권력을 위해 교회의 발전을 희생하려는 면도 없지 않다. 여기서“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딤전 3:1)”고 했던 사도 바울의 말을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사도바울은 감독의 직분을 얻어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라고 독려하지 않았고, 목회 사역과 교회의 성스러운 직분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는 데 힘쓰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특별한 권세를 주시고 우리에게 맡기신 일로서 칭찬받아 마땅하기에, 감독의 직분을 얻고자 하는 일은 바로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역자는 명예, 돈, 지위, 권력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한다. 특별한 권세란 자신이 받은 은사를 뽐내기 위함이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도 아니며 회중을 섬기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왜 특별한 권세라고 하는 것인가? 이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다 교회를 양육하고 회중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회중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이지 고난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이를 통하여 섬김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욱 잘 알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지난 세대와 지금의 젊은 세대 모두 겸손히 섬기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보이신 섬김은 모든 사역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이의 섬김을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영적인 성장뿐 아니라 제자의 육신의 필요에도 주의를 기울이셨다. 예수님은 입으로 말씀을 전하시는 데 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하셨다. 예수님의 실천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평생을 통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주신 것이다(마 20:25-28; 막 10:38-40; 빌 2:6-11; 요 13:3-20; 마 6:3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말씀하셨다(요13:15). 주 예수님은 우리의 사역에 모범이 되는 분이시다.
샌더스(J. Oswald Sanders)가 말했듯이“하늘에서 위대함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종이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겼느냐”하는 것이다. 이는 지도자가 실제로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다. 겸손히 섬길수록 지위도 높아진다. 위대함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사실 교회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김을 의미한다. 겸손한 태도와 준비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는다면 주님의 제자에 합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샌더슨은“진정한 영적 지도자란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힘써야 한다. 지도자는 많이 봉사하고 적게 누리며 산다”고 말했다.
주님의 종이라면 겸손함은 물론이고 자기희생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준비하고 치러야 할 대가이다(막 10:38-45). 샌더슨은 “상처란 충성된 제자들과 진정한 영적 지도자들이 분명한 증거이자 표식”이라고 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성경에 부합하는 교회의 질서를 세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겸손함과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2천 년 간의 교회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주님의 진리를 위하여 피 흘려 목숨을 잃은 충성된 종이 있었다! 샌더슨은 또한“못 박힌 자국과 총 맞은 자국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없다. 이러한 상처들은 진실의 시금석이다. 바울이 잘 알고 있듯이 누구도 반박할 사람은 없다”고 말한바 있다(막 6:17; 고후 4:8-11). 또한“영성이 높은 지도자는 때론 자기도 모르게 주 예수님을 따르다가 버림받는 길을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조차도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요 1:11)”고 했기 때문이다. “먼저 온전히 버리지 않으면 온전히 받을 자가 없다.”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온전히 버림받으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온전히 받으셨다. 샌더슨은 이를 두고 “오랜 시간 동안 군중은 지도자를 알지 못했고 그가 죽고 난 뒤 그를 치던 돌을 가져다 기념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버림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이며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그분의 상급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실로 큰 기쁨이자 영광이다.
교회의 일에는 대가지불이 필요하고 심지어 목숨을 바쳐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중국교회의 현 상황에 바람직한 체제구축을 위해 안팎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희생하는 자세로 자신의 권력, 지위, 명예를 내려놓는 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교회가 부흥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고 나아가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는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젊은 사람들을 양육하고 독려하며, 은사가 있고 올곧은 성품을 지닌 동역자가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하며 그들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젊은 사역자들 역시 원로 사역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진리 편에 서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 또는 버림을 받게 될 수도 있지만 말씀에 걸맞는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도 이 길을 걸어가셨고, 바울 역시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이 걸어간 이 길을 우리는 왜 갈 수 없는가? 예수님께서“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는 겸손히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하며 자기희생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주님의 종 된 우리 모두가 이러한 태도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의 가르침을 지켜나간다면 중국의 가정교회는 성경적 체제를 구축하고 부흥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자랑치 아니하고 교만하지 않으며 더욱더 낮아지고 겸손해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출처 | ≪敎會≫ 總第33期
번역 | 김지아·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