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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1  통권 131호  필자 : 이사라  |  조회 : 2763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한중수교20주년, 선교중국을 생각한다
선교중국의 기대주, 중국 대학생

지난 한중수교 20년을 돌아보며 
올해는 한중수교 2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이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 24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냉전시기 대표적 적성(敵性)국가로 서로를 분류했던 두 나라의 수교는 한국 외교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당시 한중수교는 노태우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적극적인 북방외교 정책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동아시아 변화의 중심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덩샤오핑의 지도 체제아래 시작된 중국의 체제 개혁 및 대외 개방정책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2년 한중수교 후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통해서 막대한 이득을 챙겼음은 물론, 한중 교류의 과정에서 중국 주요도시에서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될 정도로 활발한 민간교류가 이루어졌다. 한편, 중국은 개혁개방 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으며 산업화, 도시화, 현대화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며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제대국으로의 성장은 중국 문화산업이 경제성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국민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방식과 내용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997년 한중수교 5주년을 맞이할 때쯤은 중국 텔레비전에 한국드라마와 한국의 경제 발전과 주요 기간산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국 내에 한국문화가 방송매체를 타고 들어오면서 일본 드라마로 일색(一色)이던 텔레비전에 일대(一大) 새바람이 불어 닥쳤다. 필자가 2000년에 중국에 도착했을 때도 중국의 젊은이들이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한국의 가수, 배우, 드라마를 거론하기 다반사였다. 현재는 지방에서도 한국의 의류, 미용, 문구용품들이 끼친 영향을 손쉽게 알 수 있고 또 학교나 회사, 시정부, 단체 간의 교류도 현격하게 늘어났다. 

한중수교는 중국 대학생의 복음의 통로 
또한 한중수교는 한국교회가 중국선교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현 중국교회의 발전은 대개 80년대 초부터 시작된다. 개혁개방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경제 발전에 시동이 걸리고, 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지자 등소평은 남방을 순회1)하는 등 각양의 정치, 경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중국 사회구조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외국무역상들이 들어오고 대만인이 대륙으로 친척을 방문하러 오고 대륙의 학생들이 유학을 하게 되는 등 사람들의 국제적 이동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복음이 광범위하게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다. 이전에는 중국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울타리를 두른 것처럼 폐쇄된 모습으로 존재했었기에 어떠한 영향력도 끼치지 못했다.

90년대, 중국교회는 소명을 받은 많은 일꾼들의 헌신으로 목양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헌신자들이 헌신하기에 많은 것들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교육의 필요성이 요구되자 일순간 신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장단기 과정의 훈련모임이 생겨나고 해외에서 목사들과 서구의 신학이 중국으로 몰려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중국교회는 절대 부족의 지도자, 기준에 못 미치는 신학교육이라고 평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타가 인정하는 급성장을 했다. 이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신앙이 너무 미신화 된다는 우려를 낳기도 하였다. 또한 농촌교회와 가정교회 지도자의 자질 문제에서도 가정교회 지도자들의 상당수는 지식인 크리스천을 이끌 수 있는 교육적 수준이 너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중국교회가 양적으로는 급성장하였지만 사회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또한 도시교회는 규모가 작은 모임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베이징(北京)에서는 규모가 커질 때마다 중국 정부의 핍박으로 흩어진다. 삼자교회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삼자교회에서 탈퇴하여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만들어 독립교회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양상의 독립교회는 영적지도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임사역자도 없어 성경을 가르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도시교회가 동아리 모임 형태로 변하고 있다. 물론 대도시에 이름난 몇몇 대형 가정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동아리식의 가정교회, 학생단체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중국선교 20년,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10년 동안은 중국의 선교 상황에 대해 막연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준비나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단기선교를 떠나거나 사역자로 파송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그러니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사건과 사고, 물질로 하려는 선교 등으로 현지사역자들과 현지인들에게 오히려 피해가 되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또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CGN TV 보도에 따르면 2008년 한국교회는 중국에 134개 교단, 선교단체에서 3139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선교단체나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선교사들과 지금까지 4년의 시간동안 증가한 한국인 선교사 수는 어림잡아 적어도 4천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한국선교사들은 사회복지사업, 학원사역, 삼자와 가정교회 사역, 신학교 사역, 빈민 사역, 교육 사역 등 많은 현장에서 섬기고 있다. 필자는 그간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해왔기 때문에 그들을 통하여 앞으로 남은 시간을 중국선교, 그들이 나아가야할 선교중국의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중국 대학생들의 현재 
개혁개방은 사회경제 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는데 무엇보다도 가치 체계(價値體系)에 분열을 가지고 왔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중국 대학생들의 공산주의 이상이 무너졌고 그들의 마음은 공산당에 대한 실망과 허탈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많은 대학생들이 진리를 갈망하고 마음속으로 의지할 곳을 찾았다. 중국 대학생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공통 단어가“공허”와“허무”였다. 또한 경제적 기초가 부족한 상태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공산주의 이념교육은 대학생들이 책이나 상부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찬란한 가치관은 오히려 그들을 곤혹스럽게 하여 차츰 자기개발을 더욱 추구하게 만들었다. 

당대 대학생 도덕가치관 현황 조사 분석(고등교육연구 제5기)에 의하면 현재 대학생들이 보는 전환기적 사회에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금전이 40.9%, 자기개발40%, 과학 33.8%, 권력 22.9% 그리고 공산주의 신앙이 6.9%,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이 17.5%를 차지했다. 그중 그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자기개발로 48.8%를 차지했다. 

이제 급속한 경제적, 문화적 변화와 더불어 마우스 1세대라 불리는 90년 이후 출생한 젊은이(90후, 後)들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국 경제가 고속 발전하는 시대에 출생해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으며, 몇 천 년의 장구한 역사 가운데 인류 문명의 최고 결정체라고 하는 디지털 정보기술을 맘껏 누리는 자들이다. 80년대 후에 출생한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 핸드폰, 컴퓨터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그러나‘90후’는 거의가 최대의 인터넷 누리꾼 집단으로 마우스를 품고 태어난 세대다. 그들은 대략 1.4억으로 전체 인구의 10.21% 정도를 차지한다. 인터넷이 그들의 시야를 넓혀 그들이 받아들이는 사물이나 가치관은 광활하고도 다원적 이지만 그들의 가치관이나 이념, 행위는 여전히 중국 사회의 운명과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90후와 부모와의 관계는 어떤 연대의 자녀보다 더 긴밀한데 경제 뿐 아니라 정신상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한 연구소의 설문 항목에서 93.1%의 90후 대학생은 대부분 부모가 주는 생활비에 의존하고, 53%는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답하였고, 자기와 부모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50.3%의 90후들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것이며, 33,3%의 90후는 부모에게 만점을 주었다. 10년 전 80후에게 같은 설문조사를 했을 때 31.9%의 80후들은 부모에게 아무 느낌도 갖지 못하거나, 미움, 증오가 있었다. 그러나 24.9%의 90후는 부모가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80후는 8.9%에 불과하다. 

필자는 사역기간 동안 대부분 8,90후 중국 대학생들을 만나고 양육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부모님의 긴밀한 연계를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작은 일도 부모님과 상의하고 얘기를 했다. 필자는 사역하는 가운데 급속한 사회변화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강하여 부모는 자녀를 멀리 보내놓고 불안해하고, 자녀도 혼란한 세대에서 판단의 기준을 부모님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 1학년 새내기 때, 순진해서 복음을 잘 받아들일 것 같았지만 오히려 부모님이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회피하거나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이단은 아닌지, 사교는 아닌지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대학생들의 기독교 신앙 현황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는 가정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혼란한 시기 가운데 젊은이들이 당면하는 인생문제에 서양 문화처럼 다가온 기독교는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의 충돌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진리였다. 1년의 대학생활 동안 부모와의 긴밀한 끈이 서서히 느슨해져가고 그들도 대학생활의 맛을 알게 되면서 자유를 누리게 된다. 2학년 이후에 좀 더 자유롭게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한 통계조사에 의하면 상해에 있는 대학생들 4.7%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답해 상해 기독교인 수 1.07%를 초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53%가 신앙을 가진지 1-2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모두 대학생 시절에 신앙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또한 모태신앙의 배경을 가진 상당수의 학생들도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에 진정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모태신앙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대학시절이 그들에게 있어 기독교를 이해하고 믿는 각별히 중요한 시기이다. 

중국인민대학 기독교과제 설문조사팀의 조사(2009.10.25)에 의하면 지난 10여 년 동안 기독교 학생 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안정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설문에 응한 크리스천 대학생 9.7%가“하나님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하는데, 설문에서는“정신적 가치관을 좇아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많은 학생이 실제적인 필요, 즉 생활이나 학습 등 기타 대학생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보통 친척, 친구 등 다른 사람들의 소개로 기독교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25.3%로 최고 높다. 

일부 대학생들은 그리스도가“자신에게 구원의 복음이자 생명의 의의”라고 인식하는 조사결과에서 기독교를 믿는 이유가 정신적인 면이 가장 많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중‘13.2%는 비전을 받았다, 13.1%는 기독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12.5%는 영혼이 구원받기를 희망한다, 10.0%는 진리와 우주, 인생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로 나타났다. 조사 중 한 부류는“지식형 구도자”였는데 대학생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인 24.6%로 성경에 대해 기독교와 상관된 문화 현상 및 문학예술 작품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많은 대학생들이 신앙을 선택할 때에 더 이성적이 될 뿐 아니라 지식형 구도자의 모습을 띄는데 이는 중국에서 건전하고 보편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이 신앙을 가진 후에는 분명한 변화를 보이는데, 즉“인생의 가치관의 변화”와“성격의 변화, 영혼의 승화”가 76.5%와 41.2%를 차지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빠른 정보력만큼이나 쉽게 감염되고 흔들리기 쉬운 연약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꿈꾸고 그 꿈을 위해 도전해 나가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졸업 후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안정된 꿈을 품고 있다. 그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로 밤잠을 설친다. 엄청난 경쟁 속에서 직장을 찾아야 하고 직장 내에 만연해 있는 부정과 부패, 집 없는 남자는 결혼 조건에도 못 들어가는 현실, 양가 부모를 모두 돌봐야 하는 부담이 젊은 그들을 누르고 있는데, 그들이 이러한 현실을 딛고 일어설 믿음을 대학 때 불어넣어 줘야 한다. 그들에게 기독교가“인생의 가치관의 변화”와“성격의 변화, 영혼의 승화”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특히 이러한 어려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사역자가 되고 선교의 뜻을 품는 사람도 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외동아들이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과 집안의 경제력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을 접어두고 헌신하기란 쉽지 않다. 끊임없는 친척들의 회유 속에서 주님을 붙잡고 씨름하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원하신 말씀을 따라 날마다 사명을 확인하며 그 시간들을 이기고 있다. 

중국선교의 마무리, 선교중국 
선교의 부흥을 타고 캠퍼스 내 전도활동은 이전에 비해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에 비해 신자의 수는 그렇게 증가하고 있지 않다. 필자가 있는 지역에서도 매주 캠퍼스 전도를 나가는데(이단이나 사교의 활동도 활발하다) 실제적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 선교 초창기에는 특별한 훈련과 준비 없이도 선교할 수 있었다. 중국은 그저 나가서 전하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선교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중국이 아니다. 중국교회는 곧 전면적인 신학 폭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신학, 성공신학,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리낌 없는 도전, 온갖 사교(邪交)와 자본주의의 손길은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시시각각으로 그들에게 손을 뻗고 있다. 그들은 분별하기 어려운 신앙과 사상의 혼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대학 시절에 신앙을 갖게 되고, 신앙을 새롭게 찾게 되는 그들이 이 시기에 어떻게 신학의 기초를 닦고 교리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느냐는 중국교회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중국선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중국교회를 섬겨야 한다. 지금 어떤 사역을 하든지 중국교회와 동역하지 않고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선교를 수행할 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캠퍼스 사역도 중국교회와 연합할 필요가 있다. 한 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던 신학교육이었지만 그럼에도 목회자들은 어느 정도 배출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교회가 대학생 사역에 집중할 만한 여력은 없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캠퍼스 사역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한 분야이기도 하다. 그들과 잘 연합하여 그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물론 지역적으로 상황의 차이는 있지만 지혜롭게 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지금 중국교회에게 더 시급한 것은 올바른 목회자다.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 속에서 목회자가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고 바로 서서 복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국가는 세계경제 대국이 되어가지만 이혼 등 크고 작은 문제로 깨어져 가는 중국 가정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한다. 성도들이 말씀을 붙들고 가정을 지키고 사명을 찾아가도록 양육하는데 전력하고, 같은 비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를 양육해야 한다. 

또한 사명을 가진 전문인 사역자도 절실하다. 전문인 사역자 양육은 대학시절에 사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줄 때 배출하기가 가장 쉽다. 전공과 신앙의 기초를 닦고 뿌리 내려 흔들리지 않는 일꾼으로 자라가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 내 27개 무슬림 소수민족과 중국 접경지역의 11개국 그리고 아시아중부 및 중동지역 19개국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지역은 목회자보다 전문인이 들어가기가 더 쉬운 곳이다. 이러한 일들을 한 두 명의 목회자가 다 감당하기는 너무 힘들다. 그러므로 외국인 사역자로서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중국교회와 연합하는 일들은 이 땅에서 남은 기간을 전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러한 중국교회의 현실 가운데“선교중국”은 아직 성장의 시간이 필요하다. 빠른 성장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현재 부흥하는 몇몇 지역은 개 교회 중심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선교훈련 단체를 파송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력의 부족, 언어 훈련, 문화 이해의 부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선교와 파송은 긴 안목으로 내다보는 계획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중국교회는 선교에 대한 전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전반적인 선교 교육, 심도 있는 타문화권 선교훈련을 위한 정규 과정의 신학교 개설이 필요하다. 경험 있는 선교사의 지도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현장감독이 준비되어야 한다. 

한국은 풍부한 선교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중국교회 스스로 전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로 그 사명을 감당하며 아직은 힘이 부족한 중국교회 선교 훈련 쪽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필자가 돕고 있는 가정교회는 방학마다 젊은이들이 국내 전도를 하러간다. 또 농촌지역의 부족한 점들을 돕는다. 이제는 조금 더 나아가 그들이 젊을 때 하나님이 품으시는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이 귀한 생명들이 현실에 눌려 세상의 것을 꿈꾸고 따라가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불어 넣어 주고, 또 선교지로 복음을 들고 나가서 씨를 뿌리며 이전에 꾸지 못했던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싶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주의 일을 보고 전임 사역자로, 전문인 사역자로 헌신하는 역사들을 꿈꾼다. 그런 일꾼들을 길러내기 위해 우리의 경험들을 이곳저곳에서 개인적으로 보따리 풀지 말고 이제는 더 많은 단체가 협력하여 시간과 자원을 잘 활용하여 이들에게 부어주기를 바란다.

미주   
1) 남순강화(南巡講話): 1992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덩샤오핑(鄧小平)이 톈안먼(天安門) 사태 후 중국 지도부의 보수적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상하이(上海), 선전(深榴), 주하이(珠海) 등 남방 경제 특구를 순시하면서 더욱더 개혁과 개방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 담화(談話).

 




이사라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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