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지난호 
북쇼핑
2012.1.1  통권 129호  필자 : 이관  |  조회 : 1609   프린트   이메일 
[서평]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 볼테르 -


문서, 참여, 공유
뭐든지 처음 의도가 중요하다. 그 의도의 방향에 따라 과정과 결과에도 새로운 의미와 가치가 부여될 수 있다. 그리고 글의 의도가 정확하면 필자나 읽는 독자들도 방향을 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목사가 바라본 중국서적 읽기’라는 시리즈의 글을 쓰는 의도는 3가지이다. 

첫째는 문서사역는 여전히 귀중함을 알리기 위함이다. 본 필자는 6년간 선교지에 있다가 안식년 귀국을 통해 국내사역으로 전환한 시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그간 외쳐왔던 문서사역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확대하는 작업을 이 기회를 통해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이 잡지를 손에 쥐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중국을 향한 문서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된다. 

두 번째는 현장의 사역자들에게 작은 위로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한가지 방법으로 현장의 예상치 못한 긴박함과 또 이곳의 도서들을 편하게 실시간으로 접하지 못하는 그 안타까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읽고 요약하는 수고를 대신함으로 이곳에서도 함께 일하며 응원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세 번째는 필자의 확대를 통한 중국어문선교단체의 격려이다. 이제는 전문, 비전문 필자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모든 사역자가 모두 필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필요이자, 개인적 소신이다. 중국 문서사역의 큰 동력을 제공해왔던 ‘중국을 주께로’는 함께 만들어가는 잡지이다. 쌍방향 소통으로 인해 독자와 필자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점차 더 많은 교집합으로 서로 겹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 사역자들의 적극적인 투고와 참여를 기대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사역의 대세는 공유와 참여의 가치로 굳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는 매체는 여전히 책이다. 책으로 가치를 공유할 수 있고 책으로 가치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진 가치있는 글들은 다시 현장과 대중으로 들어가 더 큰 성찰과 전망의 열매를 맺으며 선순환을 일으킬 것이다. 현장을 떠났다는 것과 아직은 설익은 관점으로 글을 쓰며 정리한다는 부담이 있기에 코너의 이름을 ‘어느 목사가 바라본……,’ 이라는 다소 주관적이고, 다른 이들의 참여가 가능 하도록 여지를 두며 붙여보았다. 

그러나 선교전선의 전후방이 점차 일치되는 상황에서 가장 큰 무기라 할 수 있는 참여와 공유를 독려함에 작은 힘이 된다면 두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판을 계속해서 두드릴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다.

책을 통한 프레임
프레임이론이란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따라서 누군가 ‘세상이 이렇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정보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우화로 ‘핑크대왕’이 있다. 핑크색을 좋아하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옷뿐만 아니라 모든 소유물, 만져지는 모든 것을 핑크색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이 다스리는 모든 백성들과 그 소유물도 핑크색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산과 들, 나무와 동물들은 핑크가 아니었다. 왕은 군대를 동원해 그것들도 다 핑크로 바꾸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아직 하늘과 바다는 여전 핑크가 아니었다. 그러자 한 스승이 묘책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너무도 간단했다. 핑크색 선글라스를 왕에게 끼워주는 것이었다. 프레임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에게 중국을 바라보게 하는 3가지 프레임으로 대개는 뉴스보도와 현장의 소리, 그리고 이 둘을 한데 묶어 숙성시켜 한 권의 제본서로 묶여진 책이 있을 것이다. 뉴스보도는 객관성은 담보하나 심층성이 약하고, 현장의 소리는 신속함은 있으나 편향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은 객관성과 심층성, 신속함과 균형감을 살려 중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좋은 프레임을 제공해준다. 따라서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색깔과 모양을 다시 살펴본다면, 중국의 이해를 쌓아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의 중국을 바라보는 프레임에는 다양한 색상들이 칠해져있다. 크게는 분홍색(G2로 요약되는 밝은 경제전망)과 회색(독재로 모아지는 어두운 정치전망)으로 양분되지만, 그 언저리에 새로운 가능성의 빛을 가지고 있는 영역도 많다. 그중에 인권의 문제는 대부분의 우려와는 달리 꼭 회색지대로만 여겨질 영역이 아니다. 여전히 세계의 많은 눈들이 의심의 눈길로 그 영역을 직시하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은 오히려 중국이 먼저 주도적으로 인권문제에 여유와 개방성을 보인다면 그것은 BC(Before China)와 AC(After China)를 가르는 큰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처음 프레임을 다시 점검해볼 수 있는 책으로,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글모음집인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라는 책을 선정하였다.

인권의 시금석, 류샤오보
201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상식장에는 끝까지 수상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노벨위원회는 그를 기다리고 있던 빈 의자에 노벨상 증서와 메달을 올려놓는 것으로 간단히 시상식을 대신하였다. 

수상자였던 류샤오보는 그 시간까지도 반체제 사상범으로 수감중이었고, 중국 당국의 석방거부와 출국금지로 가족조차도 수상식에 대신 참여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류샤오보는 교도소에서 부인을 면회하며 수상소감을 비추었다. “노벨평화상을 1989년 천안문 민주화 희생자들에게 바친다.”

민주 활동가, 반체제인사, 국가전복선동자, 인민의 영웅,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붙는 류샤오보(55세)는 1955년 12월 중국 지린성 출신으로 지린대학교 중문과와 베이징 사범대학에서 중문학 석사, 문예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8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과 미국의 하와이대학 등을 옮겨 다니며 강의를 하던 중, 그 다음해에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자 곧바로 귀국해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시위대와 중국정부간의 협상 당시 시위대 대표로 나설 만큼 선봉에 섰던 그는 단식투쟁을 이끌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자 결국 공안 당국에 의해 수감되며,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기 시작한다. 이후 천안문 사태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다가 공직이 박탈되고 20개월 동안 구속되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천안문 사태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다가 노동개조 3년 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2008년 12월에는 ‘08헌장’을 작성하고 주도한 혐의로 공안에 체포되어 국가전복선동 혐의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랴오닝성 진저우시의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흩어진 주제, 모아진 문제의식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지식갤러리 펴냄)’는 류샤오보가 20여 년에 걸쳐 인터넷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일전에 이중텐(易中天)이 쓴 <이중텐, 중국인을 말하다>를 읽을때는 중국의 음식이나 의복, 가정이나 결혼 등 다양한 주제들로 소소한 중국의 속살을 보는 느낌으로 부담없이 읽었다면, 본 저서는 주제는 성격이나 내용에 있어 정치나 국제관계, 사회개혁과 민주화 등 선이 굵고 방대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글의 성격상 기고문의 모음이기에 하나의 큰 주제에 대한 좀 더 주관적이고 분명한 주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표지에서 웃고있는 그의 얼굴은 실제로 조국에 대해 같은 비평의 역할을 감당했던 미국의 노암 촘스키와 한국의 리영희 선생님을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의 시작을 빈 의자에 놓인 노벨상 메달과 증서의 사진으로 문을 열고 있다. 

1장의 내용은 중국의 정치이다. 강제이주정책의 일환인 토지국유화에 대한 비평적 주장도 있고, ‘불법 벽돌공장 강제 노동착취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도 소개한다. 그는 날선 비판의 대상으로 전?현직 국가 최고원수와 집권당을 가리지 않는다. 

"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50년 동안 마오쩌둥은 ‘인류해방’의 국가주의를 주창했지만,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상은 국가주의가 아닌 민족주의였다. 마오쩌둥 시대의 오만하고 전투적인 애국주의가 덩샤오핑 시대에는 현실적인 방어형 애국주의로 변했고, 장쩌민 시대에는 다시 오만하고 전투적인 힘을 얻었으나 열등감과 오만이 병존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p.55)

2장에서는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있는데, 권력의 시녀와 퇴폐한 자본주의로 전락한 문화계 전반의 모습을 보며 한탄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편향적인 애국주의에 대한 경계와 표면적 경제개발에 숨겨진 외설적인 상업문화와 경직된 사회모습 등 그늘진 사회상을 보여준다.  

“최근 1년 동안 중국 CCTV<백가강단>은 중국의 전통문화를 발양한다는 취지에서 ‘위단(於丹)열풍’을 일으켰다. 몇 년 전 마오쩌둥을 상업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TV 매체는 공자를 상업화하고 있다. 한편 위단은 대중에게 영합하는 천박한 강의를 하는 것도 모자라 공자를 자기 마음대로 분석해 ‘유교부흥’을 선도하고 있다”(p.224) 

3장에서는 대국굴기의 배경과 인권 문제 등을 다루며 중국과 세계와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특히 대국굴기의 지향하는 주제를 기획자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3가지로 소개해주고 있는데 첫째는 대중에게 ‘역사적 이성’을 알린다. 둘째, 중국 역사에는 부족한 ‘타협의 정신’을 강조한다. 셋째, 강력한 중앙집권이 국가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서 류샤오보는 제작의 목적이 ‘권위주의’의 바탕이 굴기임을 지적하고 다시 저명한 학자이자 지식인인 중산대학교수 위안웨이스의 글을 덧붙인다. 

“마지막 편인 <21세기 대국의 길>에서 제작진은 대국이 흥성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했어야 했다. 민주제도, 입헌, 시민의 재산권 보호와 자유수호의 중요성이 바로 국가가 오랜 기간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 작품은 이 부분을 소홀히 다뤘다.”

4장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사회 각층의 노력과 주요 민주화사건의 문헌을 소개해주고 있다. 특히 08헌장의 내용전문을 볼 수 있는데, 그 구성이나 표현에 있어 균형을 갖추며 인권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중에서 기본이념 중의 하나인 인권의 내용을 보자. “인권은 국가에서 베푸는 은혜가 아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인권보장은 정부의 최우선 목표이자 공권력의 합법성을 인정해주는 전제 조건이며 ‘인본주의’ 실현을 위한 내적 요구이다. 중국의 정치적 재난은 집권층이 인권을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사람이 국가의 주체이며, 국가는 인민에 봉사하고 정부는 인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p.328)

마지막 5장에서는 류샤오보의 자작시들과 법원판결문이 소개된다. 특히 자작시 중에는 아내를 향한 시들이 많은데, ‘나는 당신의 영원한 죄인’이라는 시는 아내를 향한 마음이 감옥 안에서도 멈출 수 없음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사랑하는 이여, 독재자의 감옥에서는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유의 그날까지 투쟁하겠습니다. 당신의 죄수가 된다면 시간의 구속 없이 나는 영원히 당신의 감옥에 갇히겠습니다.”

프레임 벗이나기
본 책을 읽으며 출판의 의도와 시점이 노벨상 수상에 맞추어 발행되었기에 다소 상업적인 느낌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중국을 진정으로 생각하며, 염려하는 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중국은 지금 ‘인권’ 프레임에 갇혀있다. 경제와 역사, 스포츠와 성장 잠재력에 있어서는 늘 할 말이 많은 중국이지만, 서방세계에서 인권의 문제를 지적하면 항상 예민하게 반응해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류샤오보는 중국의 숨겨진 보물이고 거울이다. 그동안 중국계 인사로 노벨상 수상의 영광은 몇 차례 있었지만, 중국 국적으로 중국에 거주하는 인물이 노벨상을 직접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중국이 우려하는 것처럼 중국의 비상에 대한 서방세계의 견제와 질투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중국의 대응이 좀 더 관용적이라면, 중국정부가 인권에 대한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 충분히 부각시킬 수 있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가까운 곳에 거울을 두고 자주 본다는 것은 그만큼 외모상의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류샤오보는 중국에게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번의 비춤이 아니라 이미 노벨 평화상 수상 이전에 국제단체의 인권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는 류샤오보는 작가이상의 표현력과 기자와 같은 통찰력으로 <선택의 비판-리저허우와의 대화>, <미래의 자유 중국은 민간에>, <중국당대 정치와 중국 지식인>, <양심으로 말하는 민족> 등의 책으로 중국의 미래가 실수하거나 오판하지 않도록 계속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길은 내가 먼저 프레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서방세계가 주기적으로 약 올리듯 제기하는 인권문제에 대해 같은 대응으로 그들의 인권문제를 노출시키고 비판하기보다는 체제에 대해 부정적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에 대한 끈질긴 관용을 보임으로 오히려 체제의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처럼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의지를 보인다면 인권의 프레임에서 헤쳐나올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책의 제목인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처럼 류샤오보는 지금까지 글로써 중국에 대해 충분히 말해왔다. 그렇다면 이제는 중국이 류샤오보에 대해 행동으로 말할 때가 되었다.




이관 | 前 중국 선교사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