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신예 감독 웨이더셩(魏德圣, 1968- )의 첫 장편 영화인《하이쟈오 7번지(海角七号)이하 약칭 하이쟈오》는 2008년에 상영,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대만 달러 5억 3천만 원을 벌어 들였고, 대만에서 제작된 영화중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로 기록되었다.《하이쟈오》는 같은 시기에 개봉했던 《적벽대전》과 《색계》를 제치고 대만 영화사에서 《주라기 공원》과 《타이타닉》에 이어 관객의 주목을 많이 받은 영화로 평가받았다.

《하이쟈오》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대만영화 중에서 파격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중화권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대만 금마장(金马奖)에서 대만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며 6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아시아 해양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대만 영화를 대표하여 제81회 오스카상 외국어 영화부문에서 각축을 벌였다. 웨이더셩은 2011년 48회 금마장에서《시디그 발레(赛德克-巴莱, Seediq Bale)》로 최고작품상의 영예를 안았고 2011년 제16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대 받기도 했다.
 

줄거리
대만 남부 핑동현(屛東縣) 헝춘(恒春)이라는 시골의 모래사장에서 일본 스타 가수 그룹의 해변 콘서트 오프닝을 현지 뮤지션이 맡게 되어 임시로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밴드는 임시 우체부 아쟈(阿嘉), 좁쌀 술 판매원 마라상(马拉桑), 오토바이 정비사 쉐이와(水蛙), 원주민 경찰 라오마(劳马), 노인 우체부 마오보(茂伯), 초등학교 여학생 다다(大大)로 구성되었다. 일본인 여성 토모코(友子)가 콘서트의 연락과 감독의 책임을 맡으며 밴드 단원들과 좌충우돌을 겪게 되고 공연 일자가 촉박해지면서 리드보컬인 아쟈와의 충돌이 빈번해진다.

임시 우체부인 아쟈는 일제시대 때 사용되었던 옛 주소인 ‘헝춘군(恒春郡) 하이쟈오(海角) 7번지’로 배달된 우편물을 발견하였는데, 이 편지는 60년 전에 일본인 교사가 일본으로 귀국하는 증기선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대만 여학생에게 보내는 7통의 러브레터이다. 일본인 교사의 딸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편지를 발견하여 대만 헝춘으로 보낸 것이다. 아쟈는 일본 여성인 토모코와 함께 수신인을 찾게 되고 콘서트를 준비하는 중에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공연은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본토와 디아스포라
《하이쟈오》는 2010년에 상연된 《멍쟈(艋舺)》와 같이, 대만의 지명을 사용하여 대만 본토의 색채를 물씬 풍겨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배경이 되는 헝춘진(恆春鎮)은 핑동현(屏東縣) 내 헝춘반도 남단에 위치한다. 이 영화는 대만 신문국(문화관광부에 해당)의 지원금을 받고 제작되었으며, 대만의 현 총통 마잉주(马英九)는 영화가 대만의 정신을 구현했다고 격찬한 바 있다. 대만은 400여 년 동안 스페인, 네덜란드(17세기 초), 명대 정성공(郑成功, 만주족이 통치한 청 왕조, 일본의 식민시기를 겪었고, 1949년 장제스(蔣介石)가 인솔한 외성인(外省人)이 대거 대만에 이주하였다. 대만에는 최소 9종류의 원주민이 거주하고 이주자는 대부분 중국대륙에서 이주한 한족(漢族)이다. 1949년 이전의 이주자를 본성인(本省人)으로 칭하고 그 이후에 이주한 사람을 외성인(外省人)이라고 부른다. 

대만은 이주민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원주민은 오히려 소수이다. 원주민과 외부 이주자의 갈등, 한족 이주자간의 갈등, 양안갈등 (대만과 중국대륙)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산자(離散者)로 구성된 대만은 민족적 동질성의 결여로 구성원 간에 서로 반목하며 내분을 겪는 진통을 겪고 있다. 1930년 원주민이 일본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여 촉발된 무사사건(雾社事件)은 2011년에 상영된 《시디그 발레(赛德克-巴莱)》의 소재가 되었고, 이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대만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1947년 2월 28일, 국민당 정부의 비호를 받은 외성인과 본성인 사이의 충돌이 발단이 되어 대규모 반 국민당 정부 시위로 확산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대만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9년 허우샤오셴(侯孝賢) 감독은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를 제작하여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대만은 장기간 식민통치와 독재에 시달리면서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이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에 내재되어 있다. 대만 작가 우줘류(吳濁流)는 대만을 묘사할 때 ‘아시아의 고아’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전임 대만 총통 리덩후이(李登輝)도 굴곡진 역사 속에서 살아온 대만인의 비애를 언급한 적이 있다.

헝춘(恒春)은 대만 남단의 작은 마을이지만 대만의 축소판으로 비유된다. 밴드 구성원과 주변 인물은 원주민, 일본인, 본성인, 외성인(1949년 이후 이주한 한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고 영화 속에서 객가어, 민난어, 국어(표준 중국어), 영어, 일어 등 여러 종류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밴드 구성원의 음악적 배경도 전통 민족음악에서 록(rock)까지 다채롭다. 밴드 단원의 직업은 경찰, 오토바이 수리기사, 우체부, 전통술 판매원 등 다양하고 나이 또한 어린 소녀에서 부터 청년, 중년, 노년까지 폭넓게 등장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인종, 신분, 연령, 문화배경 등이 서로 다른 유형의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대만은 배타성과 본토성의 양면을 내포한 지역인데, 헝춘이란 지방은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현지인은 헝춘의 해안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며 인구가 유실되는 현실을 한탄하였다. 헝춘에서는 외국인이나 외지인의 자본을 이용하여 5성급 호텔을 짓거나 일본 밴드의 콘서트를 유치하며 세계 각지의 관광객을 유치하느라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영화의 이 부분에서 경제 발전의 명목아래 마을의 사라져가는 본토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헝춘은 대만의 향토 특색이 물씬 풍기는 동시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교류가 빈번한 곳이다.

외지인들이 투자해서 지은 호화로운 호텔이 백여 년 동안 꿋꿋하게 보존된 4개 성문의 담벽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산업자본의 침투로 인해 고적(古跡)이 왠지 왜소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웨이더성 감독은 대만 본토영화 제작자인 양더창(楊德昌)의 부감독 출신으로 대만 본토 문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콘서트의 대합창을 통해 사랑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아픔으로 점철된 역사와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상처를 봉합하려 시도하였고, 문화로 교류하여 하나되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소시민의 좌절과 화해의 역량
영화는 소시민이 현실 생활 속에서 겪는 좌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남자 주인공 아쟈는 기타를 부수고 타이베이를 욕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101층 빌딩을 뒤로 하며 떠나버린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번화한 도시 타이베이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인정받지 못해 좌절하고 고향 헝춘으로 향하는 젊은 뮤지션의 좌절을 담았다. 아쟈는 성장 과정 중에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방황을 겪으며, 새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서로 충돌하곤 한다. 아쟈의 이러한 모습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대만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다. 노령의 우체부 마오보가 우편배달 도중에 오토바이 사고로 부상을 당해 아쟈가 임시 우체부가 되었는데 일본에서 온 60년 전의 편지를 발견하고, 그 러브스토리에 감동을 받아 수신인을 찾아주려고 결심을 하였다. 그는 새아버지의 권유로 밴드 단원이 되어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일본 여성인 토모코를 만나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게 된다. 

라오마는 전직이 특공 경찰대원이었지만 부상을 당해 작은 시골마을의 교통경찰로 전락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그의 곁을 떠나버려 실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아쟈가 오토바이를 타고 우편 배달하러 갈 때 헬멧을 쓰지 않아 교통법규를 위반해서 교통경찰인 라오마와 노상에서 싸움을 벌였지만 후에 두 사람은 밴드의 단원이 되었다. 시골 밴드를 감독하는 일본 여성인 토모코는 대만에 와서 모델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시대의 조류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을 당하고 모델들의 허드렛일을 도우며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신분과 연령층으로 구성된 밴드의 감독을 맞게 되는데, 공연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아쟈와 여러 차례 충돌하지만,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을 바꿔 헝춘에 남기로 결정한다. 밴드의 최고령 단원 마오보는 평생 전통 악기 월금(月琴)의 최고 연주자 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 우체부로 근근이 생활한다. 마오보는 밴드에서 탬버린을 맡다가 처음 접하는 베이스기타를 몰래 배워 연주하기도 하고, 무대에서 흥에 겨워 그동안 사람들의 홀대를 받아온 월금으로 감동적인 연주를 선사한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소시민들이 현실 속에서 충돌하고 좌절하지만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세대, 사회계층, 문화배경, 민족, 시대 등의 서로 다른 차이를 극복하고 삶의 희망의 메시지를 되찾게 되었다. 공연 중에 마오보가 전통악기 월금으로 연주한 독일의 민요 <들장미>는 괴테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전 세계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노인 마오보가 연주하는 월금과 현대 악기의 연주가 서로 어우러지고 대만인 아쟈와 일본가수가 일어와 중국어로 함께 노래하며, 가수와 관객 모두가 하나가 되는 대합창이었다. 이는 서로간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 것으로 일본이나 대만뿐 아니라 세계인이 하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현재 진행형인 사랑
《하이쟈오》는 60여 년의 시공간 사이를 오가며 두 가지의 러브스토리를 펼쳐낸다. 헝춘이라는 시골에서 토모코라는 동명(同名)의 과거 대만 여성과 현재 일본 여성은 각각 국가를 초월한 이국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대만인과 일본인의 2대에 걸친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 교사의 첫 번째 편지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1945년 12월 25일에 쓰여진 것으로, 그는 헝춘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대만 여성 토모코에게 용서를 구한다. 편지에 자신은 전쟁에 패한 유약한 국민으로 오만한 귀족에서 순식간에 범죄자의 족쇄를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이는 민족의 죄이기 보다는 시대의 숙명으로 간주했다. 일본 교사는 대만 여성 토모코를 사랑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스스로 패전국의 유약한 남자라고 여기고 대만 여성을 사랑을 할 자격마저 없다고 여겨 결국 그녀를 포기하고 홀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21세기 초에 등장하는 일본 여성 토모코는 순종적이지도 않고, 대만 남성 아쟈와 직접적으로 충돌하기도 하며 적극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강인한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아쟈와의 이국적 사랑을 과감하게 선택하여 과거에 국가, 민족, 운명이라는 명분에 순종하여 이루지 못한 사랑의 회한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사랑의 이야기를 전개하여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기를 소망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말로 대만과 일본의 결별이 시작되었고 국가간의 단절뿐만 아니라 개인간의 이별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60년이 지난 뒤 대만 감독 웨이더성은 대만과 일본이 과거 역사에서의 충돌과 앙금을 문화적인 교류와 남녀간의 사랑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하이쟈오》는 향수, 사랑, 희망, 조화 등의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좌절된 개인과 낙후된 지방은 교류와 조화를 통해서 이념과 이질성의 충돌을 극복하고 서로 이해하며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과거의 일본 교사는 패전이라는 현실적인 상황과 아픔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지만, 21세기의 토모코는 좌절에 굴복하지 않고 사랑을 선택하여 대만과 일본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주창하며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다. 일본이 투항할 때 대략 650만 명의 일본인들이 아시아 대륙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패전 후에 평민이나 군인 가족들은 자살하거나 자살을 강요받기도 했으며 귀국하여 돌아갈 집이 없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도 수십만 명의 일본인들은 여전히 해외에서 유랑의 아픔을 겪고 있는데, 이를 개인이나 민족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학대받은 위안부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데 일본 정부는 과거 역사를 직시하지 않아 피해 대상국의 분개를 유발하고 있다. 앞으로 개인이 국가란 미명아래 사랑을 포기해야하는 슬픈 역사가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