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나눈 옛 이야기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이전 선교지에서의 생활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사건들을 다시 엄마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으니, 그 사건이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서로가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음에도 우리가 동일하게 내린 결론은, 선교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낸 삶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선교사의 자녀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선교사로 헌신하신 부모님의 서원이 있었기에,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서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다. 부모님은 선교지로 떠나기 전 훈련을 통하여 많은 준비를 하셨는데,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선교에 대한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어린이선교훈련학교에 보내주셨다. 이 훈련을 통해서 선교지에 가는 것이 그저 부모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에 하나님께서 나의 가족을 모두 보내시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많은 어려움을 만났는데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년 간 다섯 번의 전학 끝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회복시켜 주신 정체성
선교지에서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 도착해서 몇 년 동안은 현지의 언어를 익히느라 4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밤낮으로 언어공부를 해야 했다. 언어가 익숙해질 무렵에는 학업을 따라가야 한다는 중압감과 현지인 친구들과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그러한 것들은 견딜 만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해갔다. 중국에서는 내가 믿는 하나님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과 선교사이신 부모님의 신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어 말할 수 없다는 것이 큰 갈등 중 하나였다. 부모님께서는 이런 나를 안타깝게 여기셨다. 그래서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며,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셨다. 그로 인해 공산권에서 현지아이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으며 자랐음에도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참석한 어느 집회에서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겠다고 헌신하였다. 특별히 북한선교에 나를 사용하여 달라고 기도했다. 북한에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북한에 고아원을 세워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선교사 자녀 캠프에서 만난 하나님
선교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부모님을 따라 선교지에서 생활하면서 언어의 장벽, 다른 문화로부터 오는 충격, 학업에 대한 중압감 등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 되었다. 그 싸움 가운데 어린 시절 받았던 비전이 점차 희미해져갔다. 세상물정에 눈을 뜨게 되면서부터는 내가 가졌던 꿈이 현실적으로 볼 때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선교지에서의 어려운 삶과 갈등을 피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집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고등학생 때 한국에서 열리는 선교사자녀를 위한 캠프(MK CAMP)에 참석하게 되었다. 2주라는 긴 시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선교사자녀들과 함께 캠프에 참여 하면서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았다. 저마다 생활하는 곳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각각 달랐지만 선교사자녀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지나 온 아픔들을 토로하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캠프에 참가하는 동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자녀로 성장하게 하신 것에 대한 계획이 있을 거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곳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다. 캠프 기간 중 드려지는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선교지에서 겪었던 상처와 억울함을 씻어주셨고 특별한 감동으로 내 마음을 만지셨다. 하나님께서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그 헌신을 이미 받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속에 새로운 비전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이 선교지에서 자라난 선교사자녀들을 품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헌신을 잊은 채 안일함을 좇아가려는 나를 다시 불러주시고, 선교사자녀 사역이라는 구체적인 비전을 주셨다. 

선교사자녀들의 특별한 달란트
선교사자녀들은 참으로 달란트가 많다. 기본적으로 2∼3개국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언어만 유창한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쓰이는 나라의 문화에도 능통하다. 또한 부모님을 따라 여러 곳을 다니며 생활하였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으며, 예술과 문화, 음악 등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선교사자녀들이 많다. 이렇게 그들에게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달란트가 많음에도 그들은 선교지에서 겪은 고통이나 불편한 기억들로 인하여 그 귀한 달란트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선교사라는 신분을 숨기고 사역을 해야 하고, 공안에 쫓기는 불안한 생활을 감내해내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선교사라는 신분이 드러났을 경우, 원하지 않는 추방을 당해야만 하는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다른 문화에 적응하기까지 겪는 문화적 충격과 충돌, 외모의 다름으로 인한 열등감이 분노로 표출되는 등 마음의 문을 여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의 모국(母國)이 있기에 견뎌왔는데, 애타게 사모하던 모국에 막상 돌아와 보니 모국에서조차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발견한다. 자신이 한국인인지, 선교지의 현지사람인지 갈등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곤 한다. 그러한 혼란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져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선교사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허락하신 그들만의 귀한 달란트를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와 격려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선물 - MK를 섬기는 사역자 되기
MK 켐프에서 만났던 선교사자녀들 중 많은 아이들이 이러한 상황가운데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MK 캠프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MK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고, 부모님의 선교사역에 의한 피해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사역을 위한 동역자라는 것,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듯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바벨론에서 성장하게 하셨듯이, 그들을 어린 나이부터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원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나를 사용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에 나는 그들이 부모님의 하나님에서 나 자신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천국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세워주고 싶었다. 

그러한 소망을 가진 내게 하나님께서는 2005년 한동대학교에 입학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열어 주셨다. 너무나도 소중한 선물을 주신 것이다. 또한 선교지에 계신 부모님을 떠나 한국에서의 재정착하는 기간 동안 저는 하나님을 더 깊이, 친밀하게 만나게 되었다. 이러한 큰 선물을 받아 누린 나였지만, 선교지에서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학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가게 된 적도 있다. 부모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했는데,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반문하며 기도했다. 다행히도 그날 입학식이 끝나기 전에 나는 학교에 등록할 수 있었고, 남은 고등학교 기간 동안 행복하게 공부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렇게 공부하게 된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의 큰 기도제목은 앞으로 갈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놀랍게도 대학 입학 후에 한 교회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4년 동안 학비 걱정 없이 학업에 충실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삶을 하나님께 드린 이상,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먹이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는 견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미래를 향한 준비
그 후로 나는 선교사자녀 사역자라는 구체적인 비전을 놓고 준비하면서, 그러한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다양한 심리를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상담기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심리상담과 사회복지를 전공하였다. 또한 매년 여름방학에는 학생으로 참석했던 선교사자녀 캠프에서 교사로 섬기면서 MK 사역자로서의 꿈을 더 구체적으로 키우기 시작하였다. 지난 8년간 교사로서 MK 캠프를 섬기면서 선교사자녀들 또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으로 참석했던 MK 캠프에서 예배와 말씀을 통해 개인의 삶에 회복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선교사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교사자녀로 자라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교사로 그치지 않고, 선교사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선교사자녀들이 회복되고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현재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신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선교사자녀 사역이 더 확장되어 자녀들이 회복되고 선교사들의 가정이 회복되고 선교 현장에서 사역을 담대히 감당하실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원한다.


김경배 | 중국 선교사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