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길
오늘도 자꾸 어른거리는  얼굴이 있어 핸드폰 연락처 가운데 낯익은 이름 하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다. 한 해에 한두 번 연락하는 집사님과 통화를 한다. 연례행사와도 같은 통화이다. 내용도 비슷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정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또 서로의 집에 들러 가라고 초대한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꼭 가겠다고. 그런데 나는 알고 있다. 올해도 힘들 거라는 것을……,

이렇게 바쁘기만 한 나는 대도시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도시의 사범대학에서 언어 연수를 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현지 적응을 위해 노력했다. 6개월의 연수기간을 마치고, 타 지역으로의 이동을 생각하며 기도했지만, 하늘의 뜻이 아닌지 계속 대도시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사역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중의학을 선택했다. 중의학은 언어뿐만 아니라 고어(古?)도 배워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래서 도움을 얻기 위해 중의대학을 다니는 학생을 과외선생으로 구해서 언어와 중의학을 공부했다. 바로 이 학생이 나의 첫 번째 열매이다.

이 학생을 통해 나의 사역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어 교습 사역이었다. 나의 과외 선생님은 젊은 학생답게 새로운 문화에 개방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드라마를 매우 좋아했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았다. 한두 달 같이 공부하더니 그는 같은 반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이들이 나의 복음 전파의 대상이었다. 적은 인원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내용들과 성경이야기들을 가지고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났다.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혼자서도 거뜬히 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학생들의 소개로 8명, 10명으로 늘더니 어느새 30명이 넘어섰다. 도저히 혼자 할 수 없어 주위에 믿는 형제자매들을 동원했다. 

우리는 한글을 가르치며 배우는 만남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한글반이 해마다 커져서 같이 공부하던 유학생들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커졌다. 유학생 강의실이 부족한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그 중에서 복음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함께 교외(校外)에 집을 임대해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교 안에서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글반을 운영했고, 밖에서는 아내와 믿는 형제자매들이 한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다. 그들 중에서 복음에 더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모아 집을 임대해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성경을 가르치며 순탄하게 사역을 진행시켜 나갔다.

그러던 중 복음을 전하며 알게 된 학교 교수님으로부터 공안이 한글반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했다는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조사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선택의 순간이 왔다. 다른 방법을 강구하든지 멈추고 학교를 떠나든지 해야 했다. 들어온 지 4년 밖에 되지 않은 나는 사역을 위해 많이 생각하고 기도했다. 복음의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는데……, 얼마 있지 않으면 일꾼들을 세울 수 있는데……,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모든 한글반을 멈추었다. 그리고 학교 밖의 모든 사역도 멈추고 나는 학교를 떠났다. 마지막까지 공동체 생활을 하며 가르치던 학생들에게도 세례를 베풀고 각자의 환경으로 돌려보냈다. 이것이 내가 대도시 안에서 한 마지막 사역이었다.

내 마음 속 농자매
너무나도 넓고 사람이 참 많은 그곳, 대도시를 떠나서야 진짜 중국을 만났다. 가보고 싶다고 모두 다닐 수 없지만, 오라는 곳을 찾아다니니 참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었다. 서로 약간 다른 환경과 문화 그리고 방언들,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 즐겨 먹는 것도 다르고 어떤 때는 동?하복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기후, 기차와 버스를 비롯한 많은 교통수단들……, 나는 여전히 이 큰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또 다니는 곳마다 본명을 사용할 수 없어 성을 바꾸어 사용해야 하는데 박씨, 고씨, 이씨 3개의 성을 사용한다. 얼마 전 비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적이 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누구지 하고 쳐다본 적이 있다. “○○○씨!”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비자문제를 돕는 한국 회사 교포의 부르는 소리가 참 낯설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고국에선 이미 잊혀진 존재이지만 나조차 나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에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많은 형제자매들과 만남과 이별을 거치면서 내 마음에 박혀 있는 한 자매가 있다. 망고 생산지, 광시장족자치구의 농자매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기차역에서다. 낡은 삼륜자전거가 내게 다가왔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한 여자 분이 말을 걸어온다. “이 선생님이세요?” 난 잠시 대답을 못했다. 이곳에서는 이 선생이지만 타 지역에선 박 선생, 고 선생으로 불리다보니 가끔 생소하게 들릴 때가 있다. 난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니 나의 짐을 받아들겠다고 나선다. 나는 한사코 거절을 해보지만 중국 가정교회 분들을 이겨낸 적은 없다. 농자매의 낡은 자전거가 나와 짐을 싣고 교회로 향한다.

그 자매는 쉬지 않고 자기를 소개한다. 농씨이고 교회를 다닌 지는 1년이 되지 않았으며, 가정 전도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으며, 남편은 몸이 불편하여 늘 술만 마시고, 자녀들은 이미 다 출가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또 남편이 요즘 자기를 따라 교회에 나오고 있다고 했다. 가끔 섞여 나오는 방언에 알아듣지 못한 말도 꽤 많았다. ‘이 자매가 참 열심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교회에서 2박 3일 동안 같이 먹고 자며 모임을 가졌다. 농자매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석했다. 때가 우기인지라 후덥지근했고 비가 자주 왔다. 밖에는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젠 다시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다. 짐을 챙겨 밖에 나가보니 낡은 우산을 들고 농자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삼륜자전거를 앞세우고 말이다. 교회 분들에게 아쉬운 마음으로 이별을 고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하기 위해 농자매의 낡은 삼륜자전거에 다시 몸을 실었다. 농자매는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달렸다. 나는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 중에 하나겠지 라고 생각하며 잠시 2박 3일 간의 사역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농자매의 삼륜자전거가 멈춘 곳은 한적한 공원이었다. 농자매는 눈물을 머금은 채 날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이 낡은 삼륜자전거가 자기 집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고.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나에게 건네며 자기를 위해서 안수기도를 해달고 부탁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내게 농자매는 자기 유방에 잡히는 것이 있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더니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믿지 못해 다른 병원에서도 진찰을 받았지만 모두 같은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의 평안도 얻고, 또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음도 있다고 했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주셨다며 안수기도를 부탁하는 것이다. 200원은 자기의 마음이니 받아 달라며 간청했다. 나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며 농자매의 사정을 물었다. 도저히 그 가정의 사정으로는 수술이 불가능했다. 낡은 삼륜자전거로 사람을 태워주고 짐을 실어 날라 집안의 생활비를 감당하고 있는 그녀가 그 비싼 수술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기적 이외에는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기도 만이 필요했다. 기적밖에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기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한적한 공원으로 왔던 것이다. 나는 농자매의 손을 잡고 기도한 후 안수기도를 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외에는 없으니 치료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버스 시간이 다되어 난 자매를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그 후로는 그 지역을 가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내 기도 속에는 아직도 농자매가 자리 잡고 있다.

변치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내가 사는 중국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연안도시들뿐만 아니라 내륙의 도시들도 참 많이 변했다. 농촌 또한 변화를 위해 몸부림 중이다. 이 변화가 가져올 긍정적인 면과 부정인 면이 있을 것이다. 나는 복음의 대상인 중국인들의 이런 몸부림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남의 일로 여기며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이 땅과 사람들을 위해 부름을 받았기에 쉽지 않아도, 그들을 위해 작은 몸부림을 쳐야 한다. 나비효과라고 했던가? 나와 같은 작은 몸부림들을 중국 방방곡곡에 흩어진 사역자들이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작은 몸부림들로 인해 이 땅 사람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히 흐르게 되기를 확신하며 소망한다.

나는 다시 도시로 발길을 돌리려 한다.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가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예수의 정신과 삶을 다시 소개하려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떠나온 도시로 돌아가려 한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시로 떠나온 많은 농촌가정의 형제들을 살펴, 그들의 삶의 고단함을 예수로 위로하며 새 힘을 주어 타향살이 중에 있는 그들을 믿음으로 굳게 세우려 한다. 또 부모들이 생업을 위해 외지로 나가 홀로 방치되어 지내는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일꾼들을 키우는, 교회 안에 주일학교를 세워 예수를 전하여 내일의 중국교회를 세워나가는 작은 손길이 되고자 한다.

박믿음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