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역자로 친히 불러주신 주님
중국선교의 비전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로를 결정하면서부터이다. 이상하게도 ‘중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떨려왔다. 그렇게 하나님은 내게 막연한 부담감을 주셨던 것 같다. 이후 대학진학과 취업까지 모든 것이 ‘중국’과 관련된 환경을 접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그 인도하심은 2006년 11월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지금 속해 있는 선교단체에서 ‘중국선교 비전학교’ 라는 훈련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먼저 직장을 내려놓게 하셨다. 수료 후 다녀온 중국 단기선교, 곧 이어진 중국어문선교회 간사로의 부르심. 이 모든 것은 강권적인 주님의 인도하심 이외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세밀하게 간섭하여 주신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직도 간사로 임명받던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선배 간사님들은 내게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하여도” 라는 찬양을 불러주었는데, 어찌나 눈물이 났던지. 너무나도 부족한 나를 친히 부르시고 동역자로 삼아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큰 감사를 드린다. 나의 사역명은 “송지은”이다. 중국은 선교를 함에 있어 보안과 안전을 중요시 하였기에 실명이 아닌 사역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어머니의 성(姓)에서 ‘송’을 가져왔고, ‘지혜로 은혜를 끼치는 사람’ 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라고 지었다. 사역명 처럼, 지혜로움을 지닌, 은혜를 끼치는 사역자가 되기를 기도하며 지금까지 걸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나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늘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선교회에서 주로 담당하는 일은「중국을주께로」라는 중국전문 선교잡지를 만드는 일, 선교사와 선교관심자를 위한 교육훈련을 돕는 일이다. 선교잡지는 중국선교 관심자와 헌신자들에게 중국의 선교동향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이며 격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2007년에 들어와 101호부터 잡지 작업에 참여하였는데, 벌써 127호를 내게 되었다. 이 잡지는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잡지를 낼 때마다 실감하곤 한다. 중국을 주께로, 세계를 주께로 올려드리는 귀한 비전을 담은 이 책이, 중단되지 않고 더욱 발전 가운데 나올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부탁드린다.
간사도 선교사, 당신도 선교사!
올해 6월, 중국선교에 대한 부르심에 순종하여 간사로 섬긴 지 5년차가 되었다. 4년의 임기를 마치고 기도하면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비전과 소명에 대한 흔들림 없는 결단이 있다하여도, 그 길을 가는 과정은 믿음의 연단, 자신과 싸움의 연속이다. 국내 선교단체에서 선교사들을 섬기는 간사들은 특히나 이러한 어려움에 자주 직면한다. 선교적인 삶을 살기로 결단하며, 묵묵히 주어진 길을 가겠다 다짐하였지만, 현실 가운데 있는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본성인양 근심하고 염려한다. 이것이 나의 연약함이다.
국내 선교단체 간사들의 실질적인 갈등 중 하나는 재정적인 부분이다. 각 선교단체마다 재정의 원칙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믿음재정(Faith Mission)원칙을 따른다. 내가 속한 선교단체 또한 이 믿음재정의 원칙을 오랜 전통으로 지켜오고 있다.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채우신다는 믿음 아래, 각 사역자들은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발굴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공급하심’을 경험하며 훈련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정 훈련이 익숙치 않고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주님 안에서 풍족히 누리며 살았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는 풍족함은 없었지만, 부족함 또한 없었다. 지나온 4년 여 시간동안 하나님의 방법으로 먹이시고 입히셨다는 것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사실, 선교사나 목회자의 신분이 아닌 ‘선교를 지원하고 동원하는 사역자’로서의 삶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해외선교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보다 덜 친숙하고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후방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내 사역자들에게도 물질적인 지원과 기도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깊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필자가 사역해오면서 느꼈던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초기에는 재정 후원자 발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에 대한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면 될 줄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선교동원, 지원을 하는 사역, 그 사역을 부르심으로 받아 헌신하는 사역자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몰라서 돕지 못한다면 알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셨다. 이번 호 특집으로 ‘나도 선교사다’ 를 준비하게 된 것도, 우리의 사역을 알리고 주님의 제자 된 모든 사람에게 ‘선교적인 삶’에 대한 도전과 인식을 주기 위함이다.
필자는 선교동원 사역을 하는 이들에게 물질과 기도로 후원하고 격려해 주시는 사람들 또한 선교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필자를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붙여주신 동역자 임을 확신하며 사역하고 있다. 그 중에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 학창시절을 함께 보내온 친구, 믿음의 성장을 함께 지켜봐 준 모교회도 있다. 예수님이 친히 보이신 모범대로 사는 것은 분명 어렵다. 그러나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와 같은 사역자들을 보며 본인들의 삶 속에서 각자의 부르심대로 살고자 다짐하며 새로이 힘을 내는 동역자들이 있기에 감히, 그 길이 결코 외롭지 않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선교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없다면 하나님의 일이 이 땅에 이루어져 갈 수 있을까? 이러한 면에서 보냄을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은 상호 필수적인 관계이다.
‘보내는 선교사’ 라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선교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선교사이다. ‘선교지로 보냄을 받는 선교사’, 그들을 물질로 후원하는 ‘보내는 선교사’, 그들을 위해 기도로 섬기는 ‘무릎선교사’ 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셨다는 것, 제자와 예배자의 모습으로 살고자 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한 번 다짐을 새롭게 하기 원한다. 우리는 모두 선교사이다. 기억하자. 선교사 ? 목회자도, 간사도, 후방의 지원자인 당신도 선교사 라는 것을!
표현되는 사랑과 격려는 더욱 아름답다
앞서 언급한 국내 선교동원 사역자들의 재정적인 어려움은 기독교인들의 인식의 전환과 교회의 도움으로 조금씩 극복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사역이외 다른 직업을 갖지 않는 전임사역자들에게 목회자나 선교사와 같은 동일한 개념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또한 이러한 후원의 과정은 개인과 교회, 선교단체가 유기적인 관계로 연합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필자가 간사 사역자로서 현장에서 일하며 재정 모금 활동을 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의 하나는 믿음의 친구들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선교단체 간사라는 것이 무슨 일을 하는 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일반 직장처럼 일정한 급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원을 요청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러한 인식에 변화를 주었으면 한다. 국내에서 선교사역과 선교사를 섬기는 전임사역자들 또한 교회가 함께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야 할 필요를 인정하고, 구체적인 행동들이 따라오게 되기를 바란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매달 선교후원의 이름으로 일정한 금액을 헌금하는 것, 교회 이외에 가깝게 알고 지내는 선교사, 간사들에게 후원하는 것, 선교단체에 일정금액 후원하는 것 등을 추천한다. 교회 또한 선교후원금을 선교단체 사역과 사역자들을 위해 일정한 예산을 잡아주고, 성도 개인들이 전임사역자 들에게 후원한다면 더욱 풍성한 선교사역과 열매들이 열리게 될 것이다.
물질적인 후원 외에, 중국선교잡지 편찬 실무자로서 <중국을주께로> 정기구독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언급하고 싶다. 국내외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이 잡지가 너무나 좋은 잡지라는 것을 알고 있고, 늘 그렇게 격려하며 칭찬해 주신다. 이 잡지가 계속해서 발전하며 더 질 좋은 내용으로 나올 수 있도록 정기구독을 적극 장려하고 싶다. 중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국내 교회에서만 정기구독을 신청해도, 잡지의 발간과 선교회 사역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교사를 ‘파송만 하고 끝’이 아니다. 선교사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이 어떤 모습인지, 일꾼들이 만나는 현지인들이 어떻게 일꾼으로 서 가고 있는지, 앞으로 선교지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고 끝까지 함께 기도해야 할 책임’이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에 있다. 잡지가 물론 영리를 구하는 사업은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쉽게 무료로 나누어주는 책이 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실무자로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정기구독은 중국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중국을 주께로 잡지가 더욱 발전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것은 중보기도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중보기도의 후원은 사역이 지속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중국을 위한 중보기도회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많은 격려와 응원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뒤에서 조용한 침묵기도로만 말고, 적극적인 표현으로 말이다. 작은 실천으로 전임사역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다양한 것들이 많다. 묵상 중에 와 닿았던 말씀을 문자로 전해 주며 격려하는 일, 생일이나 기념일에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것, 사역자들이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기도편지에 작은 반응을 해 주는 것- 등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사소하지만 큰 의미를 가지는 일들이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큰 감동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많은 후원자 분들이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예배자의 모습으로 지음 받았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기를 소망한다. 주님께서 친히 명령하셨으며, 그 분이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이번 제 3회 선교중국 대회에서 한 선교사님의 강의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선교’는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 사람들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정체성이자 부르심이라는 내용의 강의였다.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내가 있는 그 자리, 처한 모든 상황과 맡겨진 일 가운데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대로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 가운데 필자가 가장 가치를 두고 있는 모습은 인생에서의 마지막 뒷모습,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선 나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가는 모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떠날 때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나보다. 내가 머물렀던 그 자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자리, 그 각각의 자리에서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외적인 모습을 꾸미고, 보여 지는 부분에 민감하기 쉽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은 앞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뒤에서 바라보게 되는 그 모습이 성실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겸손하게 서기를 소망한다.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은 두 저울로 사람들을 심판하신다고 한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겸손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자비의 저울로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함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의 저울로서 심판을 하신다고 한다. 예전에는 하나님 앞에 한 점의 부끄럼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기를 기도했지만, 연약한 나는 그저 자비를 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마지막 그 날에,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자비로우신 심판을 구하는, 겸손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과 필자를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여 주시는 많은 동역자 분들께도 이러한 소망의 기도와 고백이 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송지은 | 본지 편집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