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처들
남자의 일손이 절실했던 과거 중국 농촌지역에서, 게다가 한 자녀 정책이 시행된 이후에 여자 아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함께 동역하던 많은 농촌 출신의 자매들 마음 깊은 곳에도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남동생의 장래를 위해 호적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고 살아온 자매, 남동생이 태어나자 자신은 바로 할머니에게 보내지고 아빠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자라다가 나중에야 삼촌이 자신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삼촌이라고 부르던 익숙함을 깨고 처음으로 전화를 통하여 아빠라고 부르며 펑펑 울던 자매, 남동생의 학비에 보탬이 되고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던 자매 등. 이들은 비록 하나님을 영접하고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치유 받아야 할 상처들을 안고 있었다. 그 상처들은 공동생활을 하는 가운데 인간관계가 문제가 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언어로 표출되었다. 그래서 나는 함께 진행할 사역보다 이들의 상처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치유되도록 돕는 것을 최우선에 두어야 했다. 많은 자매들이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러한 노력은 팀 내부뿐만 아니라 사역자들의 가족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쉬 자매와 함께 한 나날들
하나님의 은혜와 치료하심으로 축복이 넘치던 바로 그때, 30시간이 넘게 기차를 타고 우리 앞에 쉬 자매가 나타났다.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쉬 자매는 우리 팀에서 일하던 언니의 영향과 딸의 치유를 바라는 부모님들의 희망을 안고 팀에 합류하였다. 쉬 자매는 세상의 모든 아픔은 자신이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한, 키 작은 소녀였다. 그녀가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팀원들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반가운 얼굴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쉬 자매를 맞았다. 우리는 그녀의 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또한 이를 위하여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쉬 자매를 사랑으로 포용하자고 약속했다. 고향에 있는 부모도 교회도 이미 포기한 상태에서 절망 가운데 팀에 합류한 쉬 자매는 형제자매들의 따뜻한 사랑을 힘입어 굳어있던 얼굴에 미소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영적으로 회복되는 모습이 보였고 지쳐있던 육신도 많이 회복되었다. 

이렇게 점차 회복해 가고 있던 쉬 자매는 사역자 훈련반에도 참여해 공동체 생활을 하며 훈련을 조금씩 시작하였다. 그러나 새벽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짜인 훈련 프로그램이 쉬 자매에게는 조금 벅찼던 것일까? 그녀의 병이 재발하게 되었다. 쉬 자매의 발병은 팀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는 팀원 전체가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 생명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팀원 모두는 점점 지쳐갔다. 특히 쉬 자매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숙소의 자매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쉬 자매가 밤에 갑자기 사라졌다. 팀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밤중에 모두 사방팔방으로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럴 때마다 자매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타나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모두가 쉬 자매의 정신적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일이 몇 차례 발생한 후에 팀의 자매들은 순번을 돌아가며 쉬 자매와 동행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그녀가 없어진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그저 갑자기 없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는 매번 자신의 감정이 통제가 안 될 때면 그 고통을 참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고 어떠한 방법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일정한 시간을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곤 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더 심각한 상황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쉬 자매의 증상은 갈수록 심해져 갔다. 그녀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면 같이 생활하는 자매들도 동일하게 안절부절 하며 잠 이루지 못했고, 너무나 먹기 싫어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도록 하기  위해 모두가 동원되어야 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팀원 한두 명씩, 고향의 부모와 교회가 그랬듯이 우리도 쉬 자매를 포기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쉬 자매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돌려보내려니 팀원 전체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모두 힘들었지만 아직은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새벽예배 시간에 힘들어도 우리 모두가 쉬 자매를 감당하자고 여러 번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힘이 우리에게 공급되었다.

“춘절”이 되었다. 사역자들도 이 기간만큼은 꼭 필요한 사역자를 제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쉬 자매도 춘절을 맞이하여 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 교회와 부모들은 팀 전체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쉬 자매를 붙잡아 준 것에 고마워했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으니 이제는 고향에서 돌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다시 이곳으로 보내셔도 된다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라니! 잠시 쉬 자매가 집으로 간 이후에 나는 너무나 평안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쉬 자매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춘절이 지나 쉬 자매는 결국 다시 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의 마음은 춘절 전과 같지 않았고, 자매를 대하는 태도도 변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폭풍 전야처럼 흘러갔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이미 사놓았던 쉬 자매는 고향으로 간다는 쪽지 한 장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예전에도 몇 번 이런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에 팀은 평온했다. 사실 얼마 전 고향으로 가겠다고 말했었고 모두 가지 말라고 했지만, 전과 같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예측했던 것이다. 팀은 모두 예전처럼 기차역, 버스 터미널 등으로 쉬 자매를 찾아 다녔다. 고향의 가족에게는 연락을 취해 쉬 자매가 고향으로 간다고 하였으니 도착하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의 이러한 행동은 의무적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내 마음이 조금 이라도 편할 것 같아서 한 것이지, 쉬 자매를 찾아서 다시 팀으로 데리고 오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에서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얼마 후 쉬 자매가 고향에 잘 도착하였다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쉬 자매는 더 이상 팀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되었고 팀도 본래 목적인 교회개척과 전도사역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꼭 쉬 자매가 오기 전처럼 모두는 평온을 찾고 사역에 열중하며 점차 그녀를 잊어가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
쉬 자매의 소식이 다시 팀에 전해진 것은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 간지 얼마 되지 않은 후였다.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쉬 자매는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갑작스러운 쉬 자매의 자살소식은 팀 전체에게 큰 충격이었고, 나도 쉬 자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쉬 자매의 언니는 그 누구보다 큰 충격에 슬퍼했다. 충격이 채 기시기도 전에 한통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편지의 발신인은 쉬 자매였고 수신인은 그녀의 언니였다. 편지를 개봉하기 전에 나는 그것이 쉬 자매의 유서와 같은 편지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편지를 읽어내려 가면서 나는 온 몸이 전기 충격에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쉬 자매는 자신의 병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절실히 누군가의 도움과 사랑, 그리고 관심을 원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관심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보며 무관심이라는 가장 무서운 무기로 자신을 공격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쉬 자매에게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려고 노력하던 우리 팀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우리 팀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춘절 이후 팀의 분위기는 전과 같지 않았고 우리가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던 희망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어서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희망”이란 단어를 잊을 수 없다. 쉬 자매는 우리 팀과 나에게 마지막 희망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 사역에 바쁘다는 이유로 그 마지막 희망을 내가 저버린 것이다.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이 절망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누구에게나 아직 희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희망을 잃지 않고자 몸부림치는 영혼에게 나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또한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지 않았던가? 왜 나는 쉬 자매가 고향으로 간다고 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전화를 해 다시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야기하던 바로 그 사랑 없이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좀처럼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이 너무나 창피하고 화가 났다. 사무실에 않아 있다가도 쉬 자매 생각이 나면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 제가 선교사입니까? 너무나 악하고 저 밖에 모르는 제가 감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쉬 자매는 내게 진정한 선교사역은 영혼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는, 대하기에 불편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셨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영적 도움이 필요한 내 바로 옆에 있는 영혼에게 다가가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사랑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오늘도 나는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을 묵상하며 세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희망을 찾고 있는 영혼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자 한다.


서진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