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신감을 지켜보다

1976년 7월 28일 새벽 3시42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탕산시(唐山市) 일대 진도 7.8의 강진발생. 24만 2769명 사망, 16만 4851명 부상.

중국인들에게 '탕산대지진'은 최근까지도 피해가 컸던 자연재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탕산시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중국정부가 철저히 보도를 통제한 까닭이다. 중국정부는 '심각한 재해는 민심을 이탈시키고 정부 지도층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강력한 보도 통제를 해온 것이 불문율이었다.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정권의 몰락을 점칠 때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곤 했다.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진 공산주의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중국정부는 자연재해에 대해 언론의 자유로운 개입을 제한시켜왔는데, 그 이유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대처능력의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의 예보와 그에 따른 대피와 보호, 재난대비능력이 국가관리 능력으로 평가되는 만큼 재난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은 천재(天災)가 인재(人災)가 되어 정권의 존립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아래, 그동안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왔던 탕산대지진이 최근에 스크린으로 살아 돌아와 중국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의 2009년 작품인 <대지진(大地震)>은 1976년에 일어난 탕산대지진을 배경으로 헤어진 가족의 슬픔과 회복되는 과정을 그려낸 대작이다. 이 영화에 대한 중국 관객들의 반응은 놀랄 만큼 뜨거워서 지난 7월 개봉한지 불과 한 달 만에 흥행 수익 6억 위안(元)을 돌파하며 기존 중국영화의 모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중국 내에서 영화는 다른 언론보도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통제에서 제작, 유통되는 만큼 심각한 재난을 보여주는 영화를 반길 것 같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제작에서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중국정부의 간섭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교통과 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 재해는 숨긴다고 숨겨질 수 없는 사항임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자연재해를 민심의 이탈이 아닌 '국가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기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정부는 2006년, 탕산대지진 30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리는 대대적인 행사를 시행했다. 당시 보도에 드러나지 않은 실상을 담은 사진전을 개최하는 한편, 탕산시에서는 지진극복관을 개관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탕산대지진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당시 중국 관영언론들이 재조명한 탕산대지진의 핵심은 구출 과정에서 있었던 각종 미담에 모아졌다는 사실이다. '10만 명의 인민해방군이 삽과 곡괭이 등 빈약한 장비를 가지고도 1만6천4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구조했다', 혹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탕산교도소의 죄수들조차도 구조에 참가해서 맨손으로 112명을 구해냈다'라는 식의 미담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광산에 매몰된 5명의 광부들이 지진 발생 15일 만에 소변과 진흙을 먹으며 견뎌낸 실화 등은 재난 속에 핀 용기있는 모습으로 중국대중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이것은 분명 달라진 중국을 뜻하는 일이다. 자연재해가 빈번한 상황에서 새로운 대처방법을 고안했다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중국의 자신감을 표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대지진은 감출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이고, 그렇다면 숨기기보다는 이것을 역(逆)으로 이용하여 사회를 통합시키는 계기로 삼자는 계산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맞서서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은 변했고,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연재해가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대처하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재난을 대중의 문화 안에 재현하는 일은 국가의 자신감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특히 제작에 참여한 중국광전총국(中國廣電總局:영화제작을 관리하는 정부기구)과 탕산시 정부, 그리고 중국 국영투자배급사인 차이나필름 그로업스가 민영 투자배급사인 H.Y브라더스와 함께 1억2천 위안을 들여 공동 투자를 했지만 영화내용에는 간섭하지 않은 채 펑샤오강 감독에게 전권을 일임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투자는 하되 창작의 독립성을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앞으로 중국영화제작의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모든 영화를 감독의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운데 제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탕산대지진처럼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해서 일부러 감추거나 아니면 선동적 조작에 나서기 보다는 영화 <집결호>에서 보여준 것처럼 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가진 펑샤오강 같은 예술감독을 통해 진한 인간애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자존감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족애를 강조하다

대지진과 같은 재난영화는 전형적인 장르(genre)의 형식을 따른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한 자연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이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하거나 무시한 사람들을에게 재난이 닥친다.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충격적인 재난의 현장이 묘사되고, 내용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이별의 경험이 스크린을 가득 수놓게 된다.

여기까지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2012>나, 한국의 <해운대>와 대동소이하다. 할리우드의 경우, 재난의 경험을 관객들이 실감나게 느끼도록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점이 강조된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는 그 뒤에 이어지는 전개에 있다. 할리우드와 그것을 모방한 한국의 재난영화의 경우 재난의 현장에서 구조하는 영웅들의 활약상이 중점으로 묘사되거나, 가족간의 갈등이 재난을 겪는 과정에서 해소되는 등 재난현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지진>의 경우는 오히려 재난 그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심도있게 그림으로써 일반적인 재난영화와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영문제목은 '지진 이후'라는 뜻의 'After Shock'이다.

단란하게 살아가는 일곱살 쌍둥이 '팡떵'과 '팡다' 가족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재해는 큰 상처를 남기고 그 후유증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대단히 어려운 갈등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영화가 제공하는 최고의 갈등은 지진으로 매몰된 건물더미에 딸(팡떵)과 아들(팡다)가 함께 갇혔을 때 일어난다. 구조대는 황급히 달려온 쌍둥이의 엄마를 향해 오직 한 아이만 구조할 수 있으니 선택을 하라고 말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이 쌍둥이 가운데 덜 사랑하고 더 사랑하는 자식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운명은 한 아이만을 선택하라고 엄마를 몰아붙인다. 

중국식 감동 전달법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중국인들이 크게 감동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인들의 마음을 모은 것은 재난영화의 장점인 시각적 특수효과에 있지 않다. 그렇다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재난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단순한 휴머니즘에 있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감동의 조건은 바로 감정의 소통에 있다는 점이다. 감정의 소통이란 관람객이 자신의 현실 속에서 겪었던 경험에 비추어 영화의 감정을 전달받고 해석한다는 뜻이다.

남녀 쌍둥이 가운데 한 아이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속에서, 선택받은 아이가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라는 영화의 설정은 중국인들의 현실 속에서 유사한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은 사실상 '한 자녀 갖기 정책'을 강제하다시피 해왔다. 두 번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의 가정에서 그 아이를 정부의 지원 없이 정상적으로 키우기란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까닭이다.

한 아이만을 키워야 하는 현실 속에서 중국의 여성들의 선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낙태이며, 다른 하나는 남아선호사상이다. 중국 국립인구가족계획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수술 시술로 인한 낙태 건수는 연평균 1천3백만 건에 이르렀다. 이 통계에는 낙태유도제 등 약물이나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적인 낙태 건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 15세 이상 44세 미만의 중국 가임여성 1천명 당 24명이 매년 낙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한 아이의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아기를 사랑하고 갖고 싶어 하는 중국인들에게는 동병상련의 아픔이 전해지는 일과 다름 아니다.

또한, 한 자녀만 가져야하는 국가의 압력은 남자 아이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이 영화 안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엄마는 남자아이 '팡다'를 택하고 만다. 더 슬픈 일은 엄마의 선택을 옆에 갇혀 있었던 딸 '팡떵'이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엄마로부터 버려졌다는 거절감의 상처는 팡떵이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이후에도 평생을 따라다닌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었다. 그런데 이런 남녀성에 대한 편견의 결과로 빚어진 거절감의 상처와 선택의 고통은 대지진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중국인들에게서 한번쯤 일어나는 현실이란 사실이 영화의 감정에 동의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지진>은 버려진 팡떵에 대한 미안함을 보여 주려는지, 살아난 아들 팡다는 한쪽 팔에 장애를 갖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결국은 해피엔딩이다. 아들은 사업에 성공하고 딸은 대학생 시절 가졌던 선배의 아이를 낳아 키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캐나다 남성과 결혼하여 외국에 살지만 마음이 모두 집(중국)을 떠난 것은 아니다. 지난 상처를 모두 떠안고 살아간 세월이었지만 가족은 다시 만나고 사랑을 확인하며 화해를 도모한다.

중국은 영화를 통해 대지진의 역사적 상처와 가족의 아픔을 모두 극복하는 법을 터득했다. 과거 계몽주의적 성격에서 벗어나 인간애를 바탕으로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중국은 지금 정치.경제적인 규모만 키워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지혜로움도 터득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진구 | 고신대 컴퓨터영상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