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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에 개봉한 <엽문>은 <황비홍(黃飛鴻)>ㆍ<곽원갑(?元甲)>이래 중국 근현대에 존경받는 실존 무술인을 소재로 만든 영화로서, 70년대 할리우드에서 절권도(截拳道)로 전 세계를 풍미했던 이소룡(李小龍)의 사부인 엽문(葉問, 1893-1972)을 소개하였다. 엽문이 발전시킨 영춘권(詠春拳)은 중국 광동 불산(佛山)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져 60여 개국에서 200만 명의 수련생을 배출하였고 3,000여 도관이 설립되어 엽문을 일대종사(一代宗師)로 추앙하였다. 1930년대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광동 불산을 침략하여 무술인들이 광부로 전락했는데, 일본군에게 중국무술을 지도하라는 명령을 거절한 엽문은 일본 무사들과 공수도 고수와 대결을 펼치고 승리하지만 총상을 입어 불산을 떠나게 되었다.
2010년 6월에 선보인 <엽문2>에서는 엽문 일가족이 고향 불산을 떠나 홍콩으로 이주하여 도장을 개관하려는데 이를 저지하는 고수 홍사부(洪師傅)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쳐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후에 홍사부(洪師傅)는 영국의 권투 챔피언이 중국 무술에 대한 모욕적인 언행을 퍼붓자 분개하여 링에서 대결을 벌이다 결국 죽었는데 엽문이 챔피언에게 도전하여 승리하자 국내외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56년, 어린 이소룡은 엽문을 방문하여 제자로 받아달라고 청했다.
중국무협의 전형과 영화
무예를 갖춘 협객이 정의(正義)를 펼친다는 스토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末期)의 자객인 형가(荊軻)를 꼽을 수 있다. 형가는 진(秦)나라 왕(후대 진시황)의 폭정에 항거하다 죽자 한대(漢代)의 사마천(司馬遷)은 역사서에서 개인의 생명을 희생하여 대의를 이룬 형가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자객을 범법자로 낙인 찍어버렸던 기존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였는데 이로 인해 협객의 형상과 형가라는 역사적인 인물은 중국문화사에 중요한 자양분을 공급하였다. 양안삼지(兩岸三地) 중에서 홍콩과 대만에서 무협영화의 발전이 이른 편이고 지속적이라면, 중국대륙에서는 비교적 늦은 편이다.
중국은 1949년 이후 사적인 무력행사를 강력히 통제하는 특수한 체제로 인해 무협영화는 오랫동안 침체기를 맞다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무협영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홍콩은 무협영화의 발전이 뚜렷한데 특히 1972년 호금전(胡金銓) 감독의 <협녀(俠女)>는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홍콩은 식민지에서 중국대륙으로 회귀하는 역사 경험을 토대로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모순을 상업화와 접목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엽문>은 홍콩의 영화감독과 배우를 주축으로 색다른 중국 쿵푸 영화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화해의 도구인 무예(武藝)
<엽문>은 무술인이 ‘지과위무(止戈?武: 무예는 싸움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라는 무덕(武德)을 갖추는 것을 중시하고 무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무(武)는 대립과 화해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올바른 무덕(武德)관념은 크게는 국가ㆍ민족ㆍ지역으로부터 작게는 가정에 이르는 갈등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엽문>은 “중국 무술은 유가(儒家)의 철리(哲理)를 내포하는데, 무덕(武德)은 바로 인(仁)으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는 유가의 근본정신을 강조하였다. 영화 곳곳에 중화(中和)와 부쟁(不爭)의 정신이 나타난다. 사람 간에 온유돈후(溫柔敦厚)한 태도를 보이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다투지 않는 화평한 세상을 동경하였고, 현대 무술인이 중국 문인의 유가와 도가의 정신세계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를 원했다.
<엽문>에서는 중국 무술을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약탈자나 침략자의 폭력과는 구분되며 침략자가 자신의 편견과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선언하였다. 예웨이신(葉偉信) 감독도 기존의 무협영화에서 무술을 단련하여 원한을 갚는 복수 구조를 지양하고 관객이 상호간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내를 사랑하는 가정적인 무술인
<엽문>은 가정과 아내를 사랑하는 자상한 남편의 마음에 초점을 두었다. 중국무술의 집결지인 불산(佛山)에서는 여러 파벌이 성행하여 제자를 배출하여 실력을 과시하였다. 엽문은 고향인 불산에서 도관을 열어 제자를 받지 않고 조용히 집에서 수련에만 힘썼다. 북방의 산동 무사인 김산조(金山?)가 찾아와서 남방 불산에서 이름을 날리고자 각파의 도관 주인들을 무릎 꿇게 하고 엽문을 찾아와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산조(金山?)가 영춘권은 여자가 개발한 권법이라서 마누라를 무서워하는 당신같은 사내에게 적합한 무술이라고 엽문을 다짜고짜 몰아세웠다. 이에 엽문은 “이 세상에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자는 없고 다만 아내를 존중하는 남자가 있을 뿐이오"라고 대답하여 아내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였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이야"라는 대사는 엽문의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엽문>은 20세기 아놀드 슈워제네거 같은 근육질의 남성상과는 달리 친절하고 겸손한 예의바른 무술인을 21세기 가정적인 좋은 남자의 대명사로 묘사하고, 국가나 민족보다는 가정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는 무술은 힘센 자나 남자의 전유물도 아니며, 남을 제압하는 도구도 아님을 보여준다. 무술은 오히려 원만한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패자를 배려하는 예의바른 무술인
<엽문>은 전통 무협 영화 속에 나타난 무술인에 대한 형상과는 차이를 두었다. 엽문은 “무술 훈련하는 사람들은 기가 세서, 말할 때 큰 소리를 지르거나 큰 목소리로 말하는데 이것은 예의바르지는 않소”라고 말해 툭하면 손발을 휘두르거나 무기를 드는 혈기왕성한 무술인을 경계했다.
랴오사부(廖師傅)는 갑자기 방문하여 단란한 가정의 정적을 깨뜨리고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이에 대해 엽문은 무례한 랴오사부에게 자신의 가족과 함께 식사할 것을 청하고 식사 후에 엽문은 문을 걸어 잠그고 그와 결투하였다. 대결 후에 랴사부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오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하자 엽문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랴오사부가 자신의 패배를 알리기 꺼려하자, 엽문은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안심시킨후 그를 배웅하였다. 엽문은 패배자를 진심으로 배려하여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고 오만하지 않은 승자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는 관용이 현대 사회의 대인 관계에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상호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무술인
<엽문>은 지역ㆍ민족ㆍ국가 내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무술인의 역할을 기대하였다. 엽문은 북방권법의 고수인 김산조(金山?)가 결투를 요구하자 처음에는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했다. 집안의 집기가 부서지자 어린 아들이 네발 자전거를 타고 나오며 “아빠! 엄마가 더 이상 손쓰지 않으면 집안의 물건이 다 부서질 거래요"라고 보채자 총채로 아버지가 어리석은 아들을 꾸짖듯 김산조(金山?)를 혼내주었다. 마침내 김산조가 패배를 인정하고 북방권법이 남방권법에 패했다고 말하자 엽문은 “남북권법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문제요"라고 말해 개인의 능력을 과신하고 허풍떠는 무술인의 인격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또한 상이한 지역의 문화는 결코 우열이 있을 수 없고 서로 다르다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엽문>은 쿵푸로 ‘동아시아의 병자(東亞病夫)’로 일컫던 중국을 위해서 침략과 불의에 항거하고 민족의 존엄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무협영화는 관객의 억압된 감정의 분출을 유도하고 쿵푸는 쾌감을 자아내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침략으로 원래 부유했던 엽문은 일본군에 의해서 저택이 몰수당하고 쌀까지 떨어지는 처지에 놓인다. 친구와 처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으로 맞서게 되어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1937년 경극의 대가 매란방(梅蘭芳)이 피 점령지에서 노래 부를 수 없게 된 상황과 흡사하다. 당시 중국의 예술가와 무인들은 생존과 존엄, 이상(理想)을 위해 영웅에게 부연된 도덕적인 의무를 수행했다. 영화에서 일본군 장교는 쌀을 상으로 내걸고 일본군과 헐벗는 중국인을 대결시켰는데 결국 엽문의 친구와 랴오사부가 비참하게 죽었다. 엽문은 분개하여 10명의 일본 무사와 공수도 고수와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엽문은 ‘공원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보고 분개했고, 다수의 외국 외항선원이 중국 부녀자를 농락하는 보고 달려간 적도 있었다. 엽문은 중화민족과 중국무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일본군과 영국 권투 선수와 사투를 벌였다. 홍콩에서 도장을 열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불합리한 규정에 항거하여 홍사부와 결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엽문>은 영국 권투 챔피언과의 결투를 통해 사람의 신분과 지위는 다를 수 있지만 인격에는 귀천이 없으니 서로가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대만의 여 작가인 롱잉타이(龍應台)는 2010년 8월 베이징대학에서 ‘온유의 역량’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그녀는 중국의 굴기(?起)는 ‘대국의 굴기’가 아니라 ‘문명의 굴기’이기를 희망하고 중국이 소수민족 ㆍ반대세력과 소외계층에게 관용을 베푸는 문명국가가 되기를 기원했다. 롱잉타이가 지적한 온유함의 지혜로 중국이 양안관계나 국내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길 희망하였는데, 이는 영화 <엽문>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대중문화의 위기와 돌파구
<엽문>은 분노를 터뜨리고 파괴를 일삼는 피비린내 나는 추악한 폭력영상에 미학이란 수식어를 거부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육신과 물질보다는 정신세계에서 영양을 공급받고 위안을 받길 원했다. <곽원갑(?元甲)>(2006)에서 인문정신이 발현되기 시작되었고 <엽문>에서 가족ㆍ친구ㆍ침략자에 대한 인자하고 용감한 태도는 일관된 감동을 선사하였다. 20세기 후반 서양ㆍ일본ㆍ한국 같은 외래문화에 의해 잠식죈 중국문화는 위기감에 사로잡히고 현재 중국 문화의 진공 상태를 우려하게 되었다. 전통문화 개발에서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을 느낀 예술인들은 중국 쿵푸영화가 역사속의 매력적인 영웅 이미지나 비극적인 민족영웅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 전후로 <적벽대전>과 <매란방>같은 영화가 개봉되어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이소룡은 성룡ㆍ홍금보ㆍ주성치ㆍ이연걸ㆍ견자단 등 수많은 중국 영화인이 한결같이 추앙하는 대상이다.
쿵푸를 전 세계에 알린 이소룡의 사부에 관한 영화인 <엽문>은 미국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와 함께 중국 쿵푸영화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중국 전통 무협영화는 무술인의 강인함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희석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엽문>은 갈등의 세기에 존경받던 무술인의 형상에 중국문화의 정신적 가치인 유가와 도가의 정수를 주입하여 뜨거운 호응을 일으켰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변화는 중국영화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변화는 한국 예술계가 중국 영화를 주목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김영철│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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