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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31  통권 121호  필자 : 무시앙보(慕香柏)  |  조회 : 3056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기독교 양서와 중국교회의 부흥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한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를 알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의 행동은 우리 안에 있는 정신적 가치와 세계관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정신적 가치와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에는 개인주의, 상대주의, 허무주의, 물질만능주의, 향락주의, 과학지상주의, 진화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뉴에이지운동, 소비주의와 회의주의론 등이 있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인의 우상이자, 복음전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에 비하여 기독교 사상은 여러 영역에서 후퇴를 하고 있으며, 크리스천들은  전신갑주 입는 것(성경 읽기와 기도하기)을 소홀히 함으로 하나님나라를 더 확장시킬 힘을 상실하고 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자각심도 없으며 심지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가치와 생각에 동조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단은 여러 가지 계략을 세워 성도들을 분주하고 깊이 없는 영성에 머물게 하며, 다른 이들과 경쟁의식을 갖게 한다. 또한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영상매체와 소비문화는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성도들의 삶을 유혹한다. 

유럽과 미국의 교회는 사단의 이러한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여 결국엔 그 옛날 수많은 휘황찬란한 대형 예배당들은 점점 비어가면서 심지어는 무슬림의 모스크로 쓰이게 되었다. 복음 전도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리스도인들의 높은 이혼율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단지 복음의 껍데기만 전해서는 안 된다. 그저 세례를 주고 예배에 참석하게 하는 것으로 할 도리를 다 했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중국교회는 진정 부흥하고 있는가?
혹자는 오늘날의 중국교회를 ‘넓이는 1㎞나 되지만 그 깊이는 고작 0.1ℓ 밖에 되지 않는 강’이라고 비유를 했다. 항간의 통계로는 성도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약 8천 만 명으로 추산하여 중국교회는 마치 영적 대 부흥을 맞이하고 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 교회와 성도들의 영성의 기초가 매우 연약하여 중국사회를 변혁 시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교회 영성의 빈곤함은 역대 교회 역사 가운데의 영적 대부흥과 비교 되지 못할 만큼이다. 종교개혁 운동과 영미 대부흥은 당시 사회의 영성뿐만 아니라 사회공의를 실현하며 도덕, 교육, 심지어 경제, 민생문제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그런데 총체적으로 중국교회를 볼 때 영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매우 미미하고 교회의 영성은 사람들의 죄악된 행위와 타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화 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그 원인 중에 하나는 중국의 특수한 국가 정책으로 인해 교회 안에 기본적인 성경강해서와 원문으로 된 고전적인 영성 서적들이 턱 없이 부족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어로 된 번역본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교회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이 남긴 위대한 영성 저서들이 얼마나 풍성한 영적 자산인지도 모르고 있다. 한편으론 중국인은 자기 우월감에 도취되어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아주 높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교회와 중국의 많은 목회자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영성의 기초는 매우 약해서 정리정돈이 되지 않았으며 맹목적인 낙관론에 빠져있다. 이는 중국교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위기이다.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네 양을 먹이라
영적부흥은 여러 측면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영성 서적을 읽는 것은 교회의 부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20세기의 복음주의자 중 제일 뛰어난 목사인 D. 마틴 로이드 존스는??부흥의 결과는 종종 사람들이 에드워즈의 저서 전집 같은 영성 서적을 읽고 난 후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 세계의 교회와 중국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역사 속에 일어났던 대부흥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 부터 엘리트였다. 그는 유대문화와 로마문화에 정통했으며 옥중에서도 책 읽기를 쉬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서 문화수준이 매우 높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어거스틴은 대 사상가이며 탁월한 철학가이자 신학자이다. 그리스 로마문명이 쇠퇴하여 무너지기 직전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교회가 거세게 몰아 닥쳐오고 있던 세속의 공격을 물리치게 하고 온 유럽문명의 방향을 제시하게 하시고 통합과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은 프랑스 신학자인 성 베르나르 클레르보 수사 같이 박식하고 경건한 이를 통하여 중세 시대의 교회 부흥을 일으키셨다. 또한 마틴 루터와 칼빈을 통해서 종교개혁과 개혁신앙의 기초를 다지게 하셨다. 서양문명도 그 때문에 인류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동역자들은 모두가 박식하였고 특히 영성 면에서 그 기초가 아주 탄탄하고 깊이가 있었다. 그들은 초대교회 교부들이 남긴 저서와 역대 유명한 영성 고전 서적들을 모두 섭렵하였다.   하나님은 조지 윗필드와 존 웨슬리 그리고 에드워즈 같은 신학자를 통해서 영국과 미국교회의 부흥을 일으키셨다. 이들은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학문을 할 때에 기초를 탄탄하게 닦아 두었다. 존 웨슬리는 배우기를 즐겨했으며 시간을 아껴 학문을 쌓았다. 그는 유명한 부흥가 이면서도 훌륭한 목회자였다. 에드워즈 역시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들은 미국 건국과 영국의 사회변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이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유혈사태의 비극을 피하고 현대문명과 법치국가의 모범으로 우뚝 서게 했다. 

19세기 말 휴머니즘이 범람할 때에 하나님께서 스펄전을 통해 그 시대의 설교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셨다. 스펄전 목사는 대형교회에서 수 만 명의 성도를 목회하는 동시에 60 여개의 복음사역과 사회복지사역을 개척하였다. 그의 설교집과 문장은 지금까지도 유럽과 서양의 여러 나라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수많은 성도들의 영성을 개발해 주고 있다. 스펄전은 그가 능력을 얻는 비결은 그의 1만 여권의 장서에 있다고 했으며, 천로역정을 무려 100여 번을 읽었다고 한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교회가 부흥하는 데는 베드로 같은 일꾼도 필요하고 사도 바울 같은 일꾼도 필요하다. 우리는 지식이 교만을 낳는다는 말을 조심해야 하지만 호세아서의 말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씀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든든한 진리의 기초가 없고 영성을 공급해줄 기독교 양서(良書)가 없다면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능력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부흥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사도바울과 어거스틴, 베르나르 클레르보 수사, 칼빈, 존 웨슬리, 스펄전 같은 위대한 주의 종들의 부재(不在)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온전한 진리를 전할 수 있으며 오늘날 교회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영광스런 진리의 빛을 비추어 하나님과 주의 나라로 온전히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서적을 읽어야하는 이유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은 은혜 받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기독교서적을 읽는 바람직한 태도는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성경진리의 기초아래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어야한다. 먼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그 다음에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이 마땅하다. 필요하다면 일반 문학서적과 문화, 경제에 관한 서적도 읽어 두어야 할 것이다. 

1.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과 목회
사도바울은 위대한 전도자이다. 그는 목숨을 다해 복음전도를 했지만 하나님은 사도바울이 그의 소중한 시간을 모두 감옥에서 보내게 하셨다. 오늘날 사도바울의 서신을 볼 수 있는 성도 수는 당시의 설교를 직접 들은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마지막 유언을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딤후 4:13)”고 했다. 사도바울 같이 학문에 능한 사람도 이렇게 책을 소중히 여기는데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목회에는 반드시 문서적인 목양이 필요하다. 성도들이 세상의 지식을 쌓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영의 양식을 쌓는 그것과 비교할 때, 우리는 실망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나태하게 신앙생활로는 사단의 영적인 공격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위대한 기독교 경전과 서적을 읽음으로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주의 종들과 교제하는 것은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 

2.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과 목회자의 성장
현재 중국교회에 가장 취약한 것이 무엇일까? 목회현장에 있는 지도자들의 영성에 대한 부분이다. 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위치에 있는 담임목사의 영성의 깊이는 그 교회 성도들의 영성의 초석이 된다. 그러나 목회자들 대부분이 성도들이 부딪치는 신앙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중국교회의 현실이다. 특히 문화수준이 높은 지식인 성도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언제인가 몇몇 교회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영적 성장이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필요한 분들이 바로 강단에서 양떼들을 목양하는 목회자들 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모세, 사도바울, 마틴 루터, 송상절(宋尙節), 왕명도(王明道) 같이 주께서 크게 사용하시고 교회의 부흥을 가져다 준 이들은 모두 오랜 기간을 준비하고 시련과 훈련을 거쳐 쓰임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교회의 대부분 목회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으로 감히 주님을 섬기겠다고 나선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이 중국교회의 보편적인 연약함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목회자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3. 기독교서적을 읽는 것은 사역을 위한 준비
중세 기독교 전성기 당시 큰 역할을 감당한 베르나르 클레르보 수사는??기독교서적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이 지옥을 정복하고 천국을 얻는 무기”라고 말했다. 당신이 현명하다면 댐이 되고 싶지 결코 도랑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도랑물은 한쪽에서 들어오는 동시에 이내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 버리게 되는데 댐은 그렇지 않다. 댐은 물이 완전히 차야지만 넘치는 것이기에 늘 여유롭게 복음을 흘러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댐 같이 물이 차고 넘치는 교회는 적지만 도랑같이 깊이가 없는 교회는 수두룩하다. 도랑의 물이 차지 않았는데도 그저 내보내려고만 하는 교회가 많다. 내가 가진 것을 흘려보내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기독교서적을 비롯해서 기독교경전도 읽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목회자는 마치 얕은 도랑에서 모레가 섞인 물을 성도들에게 마시게 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해서 어찌 양떼들의 갈급함을 채워 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급한 일에 쫓겨 다니지 않았다. 중국의 목회자와 전도자들은 쉽게 지치고 목말라하며 늘 연약한 영성을 어깨에 메고 사역을 하고 있다. 이는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부족하며 사역을 위해 조용히 준비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에 있다. 목회자에게 독서, 묵상, 기도는 가장 중요한 준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4. 믿음의 영적 유산을 잘 계승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과제에 도전함
기독교신앙은 인류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해오고 있는 신앙이다. 오늘날의 교회 역시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교회역사 자체와 교회역사의 영적 유산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면 우리가 처해있는 이 시대의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20세기 초 미국 근본주의는 모더니즘의 흐름과 세차게 부딪히게 되어 문화 학술계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교회와 이세상의 괴리현상을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점점 드러나는 영역에서 물러나게 되고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다. 중국교회는 중국전통문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며 중국 사회에서 아직까지 크리스천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이 세상에 대한 소명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현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통신앙의 각도에서 당대의 문화에 대응을 해야 한다. 청교도 신학자 코튼 매더의 가르침은 우리가 왜 이 시대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는??무지(無知)함은 이단의 근원이지 결코 경건함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독서 습관을 변화시키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의 작가는??당신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된다. 중국교회와 미국교회에서 베스트셀러로 순위에 올라온 책들은 대부분 감정에 호소하는 것들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책 내용 중에는 기독교에 대한 믿음의 요소는 거의 희박하다. 감성적인 기독교서적의 내용은 아주 약간의 영성에 대한 원칙을 언급한 후 거기에 재미난 스토리를 가미한 것이다. 이런 낮은 수준의 독서를 하는 중국의 도시교회 성도들은 그나마 아주 극소수이며 대부분은 아예 책을 안 읽는다. 목회자가 좋은 기독교서적을 성도들에게 선물하지만 그 중 십중팔구는 ‘너무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않는다. 농촌교회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기독교서적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과 경로가 없어서, 또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분별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여 이단이 주는 도서도 받아서 읽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잘 아는 한 농촌교회가 있는데 성도들이 모르고 이단이 준 도서를 읽고 결국에 교회가 분열되는 경우도 보았다. 

혹자는 우리 중국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시대를 건질 수 있는 어거스틴 같은 위대한 주의 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편으로는 과연 우리 중국교회가 그런 위대한 영적 거장을 탄생 시킬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있는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기독교서적을 다독(多讀)하여 영성이 더욱 깊어지는 중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출처 | www.churchchina.org
번역 | 차이나·중국어문선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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