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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31  통권 121호  필자 : 정형섭  |  조회 : 2501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전략적 중보기도
중국을 위한 전략적인 중보기도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에게 주신 대사명이 성취되어가고 있다. 필자는 1982년 처음 예수전도단(YWAM)이라는 선교단체에 와서 대학시절 양육과 사역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열방가운데 성취되어 가는가를 보아왔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국교(國交)가 수립되기 전이었고, 종교의 자유는 있었지만 해외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도록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두 명씩 선교지로 달려나가는 선교사들을 보면서 도전도 되고 나의 사명에 궁금증을 가지며 나의 부르심에 대하여 기도해왔다.

그 후로 수없이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하며 소식을 전해왔다. 어려움과 고통을 나누며 호소했다. 선교지의 한 영혼이라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알도록 기도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이었다.

기도는 최전방 사역이다
한국의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이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 열방을 위해서 기도하며 지구본을 끌어 안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늘 나의 귀에 들리는 이야기는 “우리를 위해 기도의 후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기도는 선교를 위해서 뒤에서 돕는 역할인가? 아니면 기도는 선교의 최전방인가? 우리가 있는 곳은 선교의 후방일지 몰라도 우리의 영적인 현장은 최전방이다. 우리가 먼저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 것은 ‘기도는 후원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기도는 선교지의 사역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현장사역’이다. 선교지의 상황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기도의 가치를 새롭게 할 때 기도의 사역이 일어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가 아니다. 기도의 제목을 내고 기도를 요청한 사람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기도해 주는 것이 중보기도가 아니다. 중보기도는 무너진 곳을 막아서는 기도이다. 중보기도의 중심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바로 중보기도이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성취되도록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새로운 세대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마지막 때를 실감하고 있다. 곳곳에 지진과 기근과 전쟁으로 고통 당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믿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종교를 바꿨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시대가 어둠 가운데로 갈 때 빛은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별된 세대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구별된 세대는 어린이나 청년이나 장년이나 노인이나 구별없이 열방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이 부르신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열방의 곳곳에서 무너진 곳을 막아서는 중보기도자들을 동원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사람을 동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전 세계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유행처럼 번지는 24시간 기도의 집을 세계 여러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이슬람의 지역에서 조차도 기도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이슬람 땅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다.

중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중국이라는 나라를 우리의 심장에 이식시켜 주셔서 중국으로 말미암아 불타는 열정이 있고, 중국을 위해서 울고, 중국이 주님께 돌아올 것을 소망하며 부르짖는 세대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중국에 대한 비전은 선교사들이 곳곳에 가서 나누지 않아도 미디어 매체가 이미 나팔을 불고 있다. 우리는 추수할 곳은 많은데 일할 일군이 적으니 추수할 일군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사람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역할하는 것이 교회이다. 열심히 하나님의 비전과 마음을 나누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다.

진정한 중보기도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다. “너희에게 무엇이 있느냐?” “우리에게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자신의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은 많은 사람을 먹이는 기적을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는 훈련된 중보기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훈련 가운데 자신을 던질 중보기도자가 필요하다. 훈련된 중보기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훈련의 한 가운데 있는 중보기도자만 있을 뿐이다.

필자가 중보기도학교를 지난 십여년 동안 수 십번 인도해 오면서 내린 결론은 중보기도학교가 중보기도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보기도학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중보기도학교를 수료했다고 해서 진정한 중보기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드려 끊임없이 주님 앞에서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마음을 내 마음 가운데 주시도록 주님께 나아가는 삶을 날마다 살지 않는다면 중보기도학교에서 배운 것은 한낱 지식에 불과하다.

기도는 자신의 수준만큼만 할 수 있다. 곧 하나님을 아는 수준만큼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으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패와 고난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성품이 나의 성품이 되고 하나님의 원리가 나의 삶의 원리로 삼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배우게 될 것이다.

중국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자
중국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먼저 중국의 무너진 영역을 발견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도록 그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된 상태로 보편적 진리로 믿게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도로 보수해야 할 무너진 영역이다.

중국에는 이미 남한의 인구보다도 많은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더 진일보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서 그땅에 하나님의 원리와 원칙이 사회의 보편적 진리로 자리잡도록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세상이 어찌되든 나만 구원을 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믿는 자를 통해서 그 사회가 하나님을 나타내는 공동체가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병은 진리를 머리로는 알지만 그 진리를 자신의 생활의 원리로 삼아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깨우치고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변혁이다. 교회만 세워진다고 해서 복음화가 된 것은 아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사회적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또 하나의 기도의 전략은 하나님의 불이 중보의 대상이 되는 땅 가운데서 계속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낮보다도 밤에 보이는 불기둥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 안에 불기둥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우리는 얼마나 사모하는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은 단지 모세의 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의 불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거룩한 열정들이 일어날 것이다. 인간적인 열정은 얼마 못가서 식어버리지만 하나님의 불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꺼지지 않는 열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불이 우리에게 있을 때 정결한 삶을 갈망할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불, 소멸하시는 불이 있을 때 우리의 찌끼들을 태우시고 정금과 같이 새롭게 하실 것이다. 순전한 믿음으로 정결한 주님의 신부로 단장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킬 것이다.

주님의 도구가 되자
하나님은 반드시 중국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야할 사람이 그땅에 너무나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중국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때로는 인내해야 할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루신 그 뜻을 중국땅에서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다. 그 일을 이루는 도구가 한국 사람이길 기대한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바로 그 도구가 될 것이다.


정형섭 목사│한국 크리스천 멘토링 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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